〈 10화 〉돌이 되어라 (3)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단순 시각의 상실로 끝나지 않는다.
어찌보면 가장 잔혹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사람을 무지無知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게 가시덤불인 줄도 모르고 다가가며 미친놈이 조용히 칼을 뽑아도 대응할 수 없다.
알지 못하니까.
'알지 못한다'라는 사실은 사람을 극한까지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으븝…."
입에 물린 밧줄은 침으로 흥건해져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능구렁이같은 손길이 몸 이곳저곳을 타고 오른다. 앞이 보이지 않아 몸이 극도로 민감해진 상태에서 느끼는 타인의 손길이란, 마치 전기충격과 같았다. 나는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갑작스레 가슴을 움켜쥐는 감각에 허리를 튕기곤 그대로 굳어버렸다.
-투두둑!
상의가 속옷과 함께 찢어졌다. 창문 닫힌 방 특유의 낮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맨살을 강타했다.
"언제 봐도 신기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잡티 하나 없는 피부, 모험가 생활을 하는 마법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부드러운 촉감…."
움직이지 못한 채 와들와들 떨고 있는 모습이 후드남의 음심을 자극했을까, 몸을 더듬는 속도가 빨라졌다. 분홍색 유두를 꼬집어비튼다거나, 배꼽 주위를 쓰다듬으며 감촉을 즐긴다든가…
치미어오르는 역겨움 애써 참아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죽이는 건 재미 없을 거 같아."
-푸슉!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왼쪽 팔에 주사기가 꽂힌다.
-쩌저적.
실시간으로 감각이 사라져간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팔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갈라지는 소리와 코를 찌르는 돌 내음으로 추측하건대 완전히 돌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살아있는 장식품으로 만드는 거야."
-콰득!
"으그읍!!"
왼팔이으스러진다. 나는 걷어차인 충격으로 뒤로 넘어졌지만 양팔을 잃은 상태라 어떤 저항도 못해보고 지면과 충돌했다. 뒤통수가 얼얼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무의미한 발버둥이 될 뿐이었다. 후드남은 미꾸라지처럼 바동거리는 모습을 보곤 크게 웃음 지었다.
"그편이 훨씬 아름다울 것 같거든."
오른다리와 왼 다리에 차례로 주사가 놓인다. 아주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퍼져 나가는 검붉은 액체는 두 다리의 감각을 완벽하게 마비시켰다..
"그리고 장식품에, 팔다리는 필요 없지. 안 그래?"
쿵! 왼 다리와 오른 다리는 무릎 아래로 산산이 조각나 가루가되었다. 후드남의 말마따나 장식품 꼴이었다. 팔과 다리를 잃고 허우적대는 꼴은 높게 쳐도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후드남은 팔다리 '였던' 돌조각들을 마구 쓸어 창문 밖으로 털어내, 마치 쓰레기 처리하듯 버렸다. 그러곤 내 목을 움켜쥔 뒤 무언가를 걸어 고정시켰다. '목걸이인가?' 앞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이게 무엇인지는 둘째치고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금속 재질이었지만 목걸이치곤 너무 꽉 조였다.
"아티팩트다. 내 의지대로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지. 꽤 비쌌다만… 네가 모아둔 돈 덕분에 무리 없이 살 수 있었다.크큭. 고맙다."
-지지지직!!.
"으그으으읍!!!!"
예고없이 찾아온 전류는 가뜩이나 긴장된 근육을 한계까지 수축시켰다. 날카로운 가시에 수천 번 찔린 듯한 고통이었다. 나는 눈을 뒤집으며 게거품을 흘렸다. 지독한 고통에 오줌까지 흘린 건 덤이었다.
이정도 세기면 사망 확정이었다. 마나막을 둘러 가까스로 막지 않았다면 필히 심정지로 죽었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첫 실험 상대가 나라는 점이었다. 작정하고 살려고 한다면, 머리가 잘려도 정신만큼은 보존되는 영원불멸함을 자랑하는 아크메이지.
물론 이제 와서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건…
안 한다.
'재미없잖아.'
그래서야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다음에 쓸 때는 세기를 낮추라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 실험체가 될 테니까.
후드남은 상상 이상의 출력에 당황하면서도 좋은 생각이 난 듯 내 머리채를 쥐어틀곤 어디론가 향했다.
바깥공기가 느껴졌지만, 감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못한 나는 밖으로 나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릴 뿐이었다.
"더러워졌으니, 씻어야겠지."
-풍덩!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 이를 악물었지만 예상한 것처럼 큰 충격은 없었다. 대신 차가운 물의 감촉이 등허리부터 올라왔다.
나는 물에 빠졌다.
"끄르읍! 읍!"
수심은 어린아이가 뛰놀기 좋은 얕은 연못 정도였지만, 내겐 심해 바닥과도 같았다. 땅을 딛고 일어설 다리도, 무언가를 잡을 팔도 없었다. 그저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주, 주거, 이러다 주거….'
얼굴이 새파래진다.
'그, 그래도. 그래도오….'
그러나 죽지 않을 거다. 후드남이 원하지 않으니까. 확실하게 죽이려 했다면 물에 빠트린 뒤 전류를 흘려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수고를 할 리 없다.
팔다리를 잃고 가축처럼 기어 다니며, 종국엔 목숨조차 후드남에게 귀속된다….
축사에 갇힌 돼지도 이렇게까지 비참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도구로써 이용될 뿐이다. 그리 생각하자 무심코 절정을 맞이했지만, 물에 빠진 탓에 흘러나온 애액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푸하아!
"흐큽, 흐케엑! 흡!"
예상대로였다. 후드남은 내가 죽기 직전까지 몰리자 물에서 걷어냈다. 나는 필사적으로 숨을 쉬었다. 알게 모르게 들어간 물이 입과 코에서 뿜어져 나왔다.
"직접 씻겨준 걸 영광으로 알아라."
안대와 밧줄은 풀려버려 물살에 떠밀려갔다.
후드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 어린 표정을 눈에 담자 더욱 기뻐했다.
"하아… 천천히 음미하는 게 원래 취향이다만, 도저히 못 참겠어. 너만 보면 참을 수가 없군."
벨트 푸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 것 같았다.
후드남이 양 옆구리를 잡고 들어 올리자 고개가 아래로 늘어졌다. 아직 물기가 빠지지 않아 무거운 붉고 긴 머리칼이 무게를 더했다. 그는 몸을 뒤집어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가뜩이나 작은 체구는 팔다리가 잘리자 정말 양손에 들기 딱 좋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와중에도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은 멀쩡했다. 비록 팔다리가 부서져 고기 인형 같은, 아니 고기 인형 그 자체인 모습을 취하고 있더라도 외형만큼은 망가지지 않은 것이다. 그 모순적인 배덕감에 미치도록 흥분한다. 그것이 나인지, 후드남인지는 알 수 없었다.
후드남과 시선이 맞는다.
그는 취해있었다.
욕망과, 또 배덕에.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시작하는구나.'
지하수로에서 행했던 것처럼 난폭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아무리 울고 빌어도 멈추지 않는,
그저 성욕 처리를 위한 노리개로 사용되는 인형.
―나는, 장난감이다.
-찌걱!
"헤으윽!"
"흐읍!"
삽입과 동시에 신음이 동시에 울려 퍼진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에 배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지하수로에서는 죽기 직전이라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착각이 아니다. 자궁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에 배가 튀어나온 것이다.
피가 흐른다. 파과혈이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예열 없는 삽입에 찢어져 흐른 피였다. 미치도록 좁은 질구는 자연스레 후드남의 양물에 맞추어 크기가 확장되었다.
마치 처음 남자를 맞이하는 듯한 모습.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체 재구축은 '완벽한 때'로 돌아가는 기술이었으니까. 가장 찬란한 시절의 마나 파장, 세포하나하나까지 모두 기억해 되돌린다. 그것이 재구축이다. 지금 나는 지하수로 때보다 더욱 완벽하고, 고결한 몸뚱어리를 갖추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후드남은 뿌리까지 집어삼키며 조여오는 질내에 감탄하면서도 허리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하그그윽!!"
모두 잠이 들어 내일의 준비를 하는 새벽 밤.
달빛 아래서 울려 퍼지는 교성.
그는 내 양 옆구리를 쥐곤 자위기구를 쓰듯 앞뒤로 왕복했다. 그가 허리를 내빼면 분홍빛 속살이 양물을 감싸며 빠져나오고, 앞으로 꿰뚫으면 크기에 맞춰 배가 튀어나왔다. 후드남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하게 조이는 질내는 남자의 페니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늘 주도권을 잃지 않던 후드남이었지만 전보다 강해진 조임은 그의 이성을 잃게 하기 충분했다. 지하수로에서의 여유만만한 모습은 사라지고 성난 황소처럼 일그러진 표정만이 남았다.
철퍽- 철퍽- 살이 맞부딪히는 추잡한 소리가 연못을 울린다.
옆구리를 쥐고 있던 손은 점차 올라가 가슴을 탐했다. 한 손에 꽉 들어오는 크기. 결코 성숙하다고 할 수 없는 크기에 또한 번 배덕감을 느낀 건지 전보다 거세게 몰아붙였다. 가뜩이나 큰 페니스는 전보다 더 부풀어갔다.
"하으, 학."
피스톤질이 반복될수록 내뱉는 숨의 양은 적어졌다.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것들은 심장박동을 부추겼지만, 그에 비해 들어오는 공기는 적었다.
"하윽…?"
그렇게 오나홀처럼 박히며 호흡곤란을 겪던 도중, 갑작스레 행위가 멈췄다. 배아래 가득 찬 이물감은 그대로라 숨쉬기 곤란한 건 똑같았지만, 전보다는 나았다. 나는 이 틈을 타 크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다시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체위를 바꾼 것이다. 후배위… 였는데 팔다리가 없어 의미가 있는 구분인진 모르겠다.
후드남은 한 손으로 몸을 받들곤 머리채를 쥐었다. 정확히는 아래로 축 늘어진 로우 트윈테일의 한 부분을 집어 올렸다. 후드남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머리칼을 쥐자, 다른 한 손으로 반대쪽 머리칼을 쥐었다.
본래라면 무게 때문에 머리칼이 뜯기든 하복부가 무너지든 했어야겠지만 나는 팔다리가 모두 잘린 상태. 몸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거기에 후드남의 거근과 다릿심은 무게를 지탱하는 데 적합했다.
남자가 허리를 튕기면, 그에 맞춰 허리가 흔들린다.
'내 머리는, 손잡이가 아닌데…!'
이래서야 태어나기를 성처리를 위해 태어난 것 같지 않은가.
존재 의미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그 짜릿함에 나도 모르게 추잡한 교성을 흘렸다. 후아앗― 달 뜬 숨은 유혹하듯 흘러가 후드남의 귀에 닿았고, 그것은 멈출 수 없는흥분으로 치달았다.
남성기가 부푼다.
나는 몸에 힘을 주었다. 의식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대로, 여성의 몸이 남성의 정을 더 많이 받을수 있도록 조이는 본능적 행위에 과정이었다.
후드남은 그에 답하는 힘차게사정했다.
-부르릇! 부릇!
그는 사정과 함께 머리칼을 힘껏 당겼다. 그 힘에저항할 수 없었던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뒤로 고개를 젖혔다. 등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사정은 길게 지속되었다. 지하수로 때보다 몇 배는 더 긴 사정이었다. 평범한 몸이었다면 곧바로 임신해버렸을지도 모르는 많은 양의 정액은 역류하여 후두둑, 하는 추잡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나… 라고? '
시선을 내리깔아 연못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연못에 비친 나는 길거리에 창녀를 방불케 하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비록 고통에 일그러진 미소였지만… 행복감을 숨길 수 없는 음란한 표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크흑. 씨발!"
사정을 끝낸 후드남이 전보다 홀쭉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지를 빼내었다. 쁘직, 하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정도로 저속한 소리가 났다. 정액은 폭포수처럼 흘렀다. 숨을 가쁘게 쉬는 후드남을 바라보니 어째 나보다 지쳐있는 것 같았다.
* * *
정사가 끝난 뒤.
연못가에서 나를 물건 다루듯 씻긴 후드남은 내게 다시 안대를 착용하게 한 후, 밧줄로 입을 막았다. 그러곤 날 검은 자루에 쑤셔 넣었다.
"목걸이는 삼십 분마다 작동될 거야. 뭐… 내일 아침까지 살아있다면 특별히 애완동물로 길러주지. 살아있다면 말이야. 크큭."
적막.
'하아…….'
나는 후드남이 확실히 잠이 든 걸 확인하자마자 재구축을 시도했다. 아무리 그래도 애완동물로 살 생각은 없었다.
빠르게 재구축을 한다면 곧바로 재생시킬 수야 있겠지만 그래서는 리스크가 컸다. 어차피 시간은 남아도니 천천히 하기로 했다. 문제는 목걸이인데… 재구축 과정에서 즐기는 소소한 여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지지직!!!
"이그으윽!!"
이렇게 재구축을 하다 보면 심장을 터트릴 기세로 전격이 퍼진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타이머로 취급했다.
그렇게 전기 충격이 다섯 번 일어났을 때, 나는 재구축을 마칠 수 있었다.
'목걸이 좀 탐나네….'
저새끼가 쓴 은화 대신 받아가야겠다. 약물 주사기도 덤으로. 모르는 게 있으면 궁금한 것이 마법사의 본질인지라 호기심을 참기 힘들었다.
자루를 찢고 밖으로 나온다.
자루를 찢고 나오는 꼴이 흡사 알을 깨고 나오는 모양새였다. 뭐 팔다리가 자란 건 똑같으니 비슷하지 않을까. 참고로 옷은 아직 재구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알몸이었단 소리였다.
후드남은 내가 탈출할 거라곤 꿈에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몹시 지쳤는지 대놓고 한숨을 푹푹 쉬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가슴팍에 슬며시 손을 얹었다.
―마나는, 곧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지니. 나의 심상이 곧 그대들의 모습이 될지어다.
후드남의 심장에 몰린 마나를 비튼다.
이로써 그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끝이 다소 싱거웠지만 내게 마나란 신체 일부와도 같은 것. 별다른 마법을 쓰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든 마나를 조작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웃을 재구축한다.
거울에는 다소 우울해 보이는 미소녀가 서 있었다. 나는 거울을 애써 외면하곤 돈주머니와 주사기, 목걸이를 챙겼다. 여관주인은 아직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은 끝을 고했고, 여명이 찾아오고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