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살아있는 벽 (1)
가봤자 좋은 꼴 못 볼 거라 생각은하고 있지만 내심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흥미를 못 느낄 뿐이지 흑장미의 시설은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레일라의 말마따나 귀족들이나 쓸 법한 공간이었다.
"맹세하건대, 손님께서도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그런 흑장미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의, 흑색의 드레스를 입은 레일라가 저렇게까지 말하고 있다.
"손님, 따라오시겠습니까?"
-꿀꺽.
그녀의 제안을 수락한다.
'…….'
부나방은 눈앞의불이 자신을 파괴할 거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빛으로 받아들인다. 불이 내뿜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본질을 망각해버린 것이다.
어쩌면, 나도 같을지도.
다이나가 보여준 순수함이, 레일라가 보여준 예의 바름이, 흑장미가 보여준 모든 찬란한 시설들이 날 망각케 했다.
이곳은 식당도, 호텔도 아니다.
나는 잊어버린 것이다.
이곳의 본질은 창관임을.
* * *
"죄송합니다 손님. '그곳'까지의 과정은 보여 드릴수 없어, 눈가리개를 쓰셔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숨기는 걸까. 호기심에 마나를 풀어 스캔을 시도해봤지만 딱 한 곳만이 가로막힌 듯 마나가 들어가지 못했다. 아마 이곳일 테지.
레일라의 손을 잡으며 따라가자, 순간 몸이 붕 뜨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라가고 있다. 이세계에 엘리베이터는 없을 테니 마력으로 작동하는 마도구 같았다.
-덜컹.
"도착했습니다. 눈가리개는 계속 쓰고 있어 주세요."
암전된 시야 속에서도, 문 너머의 공간은 강렬하게 느껴졌다. 나는본능적인 단계에서 위험을 알리는 감각에 심장을 뛰며 긴장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풍겨오는 달짝지근한 냄새.
"스으으… 하아아…"
레일라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방 안의 공기는 후덥지근하여 살짝 답답하기도 했지만, 몸 곳곳에 퍼져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피부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나는 그녀에게 아직도 안대를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후드남에게 강간당했을 때 그러했듯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람을 긴장시키게 만든다.
"아…예? 아,눈가리개는 벗으셔도 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묘하게 음란하게 들린 건 단순 기분 탓일까.
나는 찝찝한 마음을 숨기며 안대를 벗었다.
"이건…."
시야가 트이자마자 눈에 들어온건 방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대였다. 일반적인 분수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물 대신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일까.
정체모를 분홍색 연기는 실내를 떠다니며 방 구석구석을 채웠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한 색은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레일라는 내 어깨를 슬며시 쥐며 앞으로 밀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세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답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흐읏?!"
어깨를 쥔 레일라의 손길은 이상하리만큼 저릿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민감해진 감각은 그녀의 터치 한 번에도 심장을 크게 뛰게 하였고, 자연스레 심호흡을 빨라지게 만들었다.
분홍색 연기가 체내에 마구 들어온다.
머리가 멍해졌다.
"후후… 귀여우시네요 손님."
"으, 아?"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그 욱신거림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배배 꼬았다. 이윽고, 비벼지는 허벅지 사이에서 습기어린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는 심해졌다. 고작 몇 분 서 있기만 했을 뿐인데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그것은 레일라도 마찬가지였는지, 옷 앞섬을 풀며 음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아…. 저는 세상의 모든 쾌락을 존중하고, 좋아하지만, 역시 살과 살이 부딪힐 때에, 서로의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낼때의 쾌락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검은 드레스가 벗겨지고, 새하얗고 커다란 유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래지어는 입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분홍빛 돌기는 한계까지 돌출되어 절로 침을 삼키게 했다.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우윳빛 가슴과 매끈한 겨드랑이를 과감하게 노출한 그녀의 고혹적인 자태는 가히 흑장미 제일第一이라 부를만했다.
"저마다 욕망을 품고 있지만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은 그런 분들을 위해 존재하니까요. 이 연기는 마음속에 간직한 욕망을 표출하기 쉽게 만든답니다."
―네 안의 욕망을 표출해라.
"가장 깊은 속 잠들어있는 욕망은 지고지순하여, 그 존재만으로 사람을 기쁘게 만들죠. 한 번쯤 상상해 보셨을 거에요. 온 세상의 왕이 되어 모든 이를 노예처럼 부린다거나, 잘생기고 예쁜 연인을 양옆에 끼며 황금의 길을 거니는… 이룰 수 없지만, 강렬하게 원하는 꿈."
몽마의 속삭임.
그녀는 살짝 허리를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곤 녹아내리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없는 열락의 방, 흑장미의 최상층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쪼옥.
"하읏, 흐읍…."
갑작스런 키스.
그녀는 나와 입맞춤을 하곤 그대로 혀를 집어넣었다. 서로의 가슴이 맞닿으며 움찔거렸다.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아주 느릿하게 다가와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 않았다는 게 더 들어맞겠지.
연기가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평범한 미약과는 달랐다. 내 몸은 어지간히 강한 미약이 아니면 듣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내 몸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이 연기가 상상을 초월하는효과가 있었다는 건데,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무언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정신이 유도당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츄릅… 츄르릅…
레일라는 키스 도중 허리를 굽히는 게 불편했는지 그대로 나를 눕히곤 키스를 이어나갔다. 그녀가 나를 덮치는 모양새, 서로의 몸이 들썩인다. 애액은 허벅지 아래로 흐를 만큼 뿜어져 나왔다. 레일라의 애액인지, 나의 애액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혀와 혀를 섞은 키스는 수십 초 동안 이어졌다.
"후아…."
키스가 끝나고 입과 입이 멀어지자 끈적한 타액이 실선을 이루며늘어졌다. 레일라는 몹시 불만족스러워 보였지만 맨바닥에서 행위를 이어나가긴 좀 그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입었다.
반면에 내 모습은 엉망이었다. 뻗어버려 흐트러진 팔다리는 아무렇게나 놓여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가학심을 부추겼으며, 미처 삼키지 못한 레일라의 타액이 입가에 번들거려 언뜻 보면 저속해보이기도 했다.
나는 간헐적으로 다리를 떨며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보니 첫 키스였다. 두 번 강간당한 주제에 입술만은 사수했다니, 이건 이거대로 우스웠다.
첫키스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복숭아 맛이 났다. 따로 관리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했으니까. 동시에 속으로 감탄했다. 타액마저 상대를 위해 준비했다는 소리였으니까.
나는 부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쥐곤 일어나려 노력했다.
바닥은 서로의 애액으로 흥건해져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손님, 메인 디쉬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답니다."
레일라는 내 손을 쥐곤 그대로 당겼다. 나는 힘없이 그녀의 품에 안기었다. 그 전신을 감싸는 감촉에 또 한 번 절정했지만 그녀는 이마저도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간은 많고, 밤은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충분히 즐기지 못해 아쉽지는 않나요?"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 공간이 일변했다.
"자아, 함께 즐기도록 해요."
무색뿐인 벽과 바닥은 점차 일그러져가더니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손님의 욕망을 구체화 시킬 거에요. 그 과정에서 저는 빠질 수도 있으니 갑자기 사라지거나 한다 해도 너무 놀라진 마세요."
내, 욕망을, 구체화 시킨다고?
나는 그말에 다급히 고개를 들어 레일라를 올려다보았다.
"어머……손님은……혼자서…즐기신…좋……"
그녀의 얼굴이 흐릿해진다.
몇 초가 흐르고, 레일라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나는 자연스레 넘어져 바닥을 짚었다.
주위를 살펴본다.
출구도, 창문도없었다.
분홍색 연기만이 떠다닐 뿐, 그 무엇도 없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이곳의 마나를 분석해 탈출구를찾았겠지만, 연기에 취해버린 나는 우왕좌왕하며 아무것도 없는 벽을 애써 만질 뿐이었다.
벽은 점점 좁아졌다.
시간이 흐르고, 한 걸음 내딛기 힘들 정도로 좁아진 벽은 내 몸을 구속했다. 다행히한계 이상까지 좁아져 몸이 압축돼버린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생각했다. 이 방은 내 욕망을 구체화한 곳이라 하였다. 그런데 좁아지는 밀실이라니?
'잠깐, 좁아지는 밀실?'
나는 비슷한 상황을 하나 떠올렸다.
천을 사기 위해 [금빛 수선]을 가던 중 만난 살인강도 삼인방. 그들을 압축시켜 죽일 때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도, 좁아지는 밀실에 갇혀볼까.
그런가. 이 욕망이 반영된 것인가.
'하지만 그것뿐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밋밋했다.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것밖에 못 할 정도로 좁긴 했다만, 그뿐이었다.
설마 끝까지 이렇게 가는 건 아니―
"흐이이익?!"
'뭐, 뭐야 시발.'
엉덩이에서 무언가가 더듬는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사방이 꽉 막혀 꼿꼿이 서 있을 수밖에 없던 나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흐극, 윽?!"
더듬는 감촉은 점점 늘어났다.
엉덩이에서 허벅지, 그리고 다시 올라가 등허리까지.
"하윽, 으읏!"
그리고 마침내 목덜미를 넘어 가슴까지 뻗어왔을 때, 나는 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히, 히엑?!"
어, 어째서 이딴 게?
이게내 욕망이라고?
-휘릭!!
"으급?!"
입 안에 가해지는충격.
쿠웁, 우윽 따위의 소리를 내며 헛구역질을 한 나는 시선을 내려 입안에 들어온 '그것'을 바라보았다.
'…촉수?!'
팔다리를 휘감고 몸 이곳저곳을 더듬다 못해 입안까지 침범한 분홍색 '촉수'는 내 몸을 자비 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쿠궁!!
주위를 감싼 벽에선, 분홍색 촉수가 돋아나며 꿈틀거렸다. 나는 인지를 초월한 이 미쳐버린 광경에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상자.
나는 그곳에 살아있는 촉수들과 함께 갇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