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살아있는 벽 (2)
촉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종국에는 모든 벽면에 촉수가 돋아나, 방 전체가 분홍색 고기 벽이 되어버렸다. 촉수는 동시다발적으로 내게 뻗어왔다. 목덜미, 가슴, 음부, 엉덩이, 등허리 등 만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분홍 촉수를 뻗어왔다. 연기 때문에 가뜩이나 민감해진 몸은 이 모든 감각을 몇 배는 더 짜릿하게 받아들였다.
옴짝달싹 못하고 추잡한 교성을 흘린다.
"하아읏! 흐응, 흣!"
거푸집 속 밀랍처럼, 내 전신 모양으로 홈을 파고 집어넣은 뒤 뚜껑을 닫으면 이리될까. 사방이 분홍색이다. 코앞까지 다가온 촉수가 역겹게 꿈틀거렸다.
자유가 박탈당하는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감을 가져다주었다.
범해질 때마다 사지가 결박당하는 건 일종의 운명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제야 촉수가 나온 이유를 깨달았다. 정말 역설적이게도,혐오감을 느끼고, 공포를 느끼고, 나를구속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빌어먹을 몸….'
적나라하게 드러난 욕망을 마주 보자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혹시 레일라가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 그마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던 촉수는 절규 어린 외침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손을 뻗어왔다. 촉수는 난폭했다. 내가 계속해서 발버둥치자, 만지는 데 불편함이 있었는지 손목과 발목에 촉수를 휘감아버리곤 곧바로 당겨버렸다. 고기뿐인 벽으로 빨려간 손과 발은 팽팽하게 당겨져 대大자를 이루었다.
"으아, 으그윽! 사, 살려져…!"
거열형을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금방이라도 사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고통에 오줌까지 흘리며 애원했다. 촉수는이 모든 반응을 흥분으로 받아들였다. 다행히도, 촉수는 팔다리를 당기길 멈추었다. 대신 몸을 더듬는 속도를 늘려갔다. 촉수가 지나갈 때마다 끈적한 액체가 남으며 역겨운 기분을 더했다.
속옷 사이로 미끈거리는 분홍 촉수가 비집고 들어온다.
"힉?!"
가랑이 사이로 향한 촉수는, 속옷을 찢어버리곤 두 갈래로 갈라지더니 기저귀처럼 음부에 착 달라붙었다.
-쭈우웁!!
"흐익, 학?!"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감각.
촉수는 저속하게 실금해버린 노란 액체와, 나도 모르게 흘려버린 애액들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소름이 끼치는 감각에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보았지만 어린아이 앙탈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몸부림은 촉수의 흥분만 돋구었을 뿐이다.
"이, 이거, 이상해에…."
꿈틀거리는 촉수는 음핵과 그 주변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연기에 중독된 몸뚱아리는 이 모든 감각을 끔찍하리만큼 선명하게 받아들였다.
"아, 아윽…."
두 눈은 흐리멍텅해져 초점을 잃고 방황했다.
촉수는 이상하리만큼 '분홍색'에 집착했다. 제 색과 닮은 연분홍색의 젖꼭지는 촉수들의 타겟이 되기에 충분했다. 꼬집고, 비틀고, 핥는다. 그럴 때마다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음부도 별다를 바 없었다. 촉수는 몸 전체를 희롱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능욕, 달아오르는 몸. 나는 뇌가 녹아버리는 듯한 자극에 가늘게 신음했다.
"흐으…."
-툭.
음부에 붙어있던 촉수가 떨어져 나갔다. 다만 그것을 의식하기엔 몸을 희롱하는 촉수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다리 아래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도모른 채 신음했다.
다리 아래에선 촉수들이 서로 몸을 꼬며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꽈배기를 틀 듯이 덩치를 키운다. 그리하여 완성된 모습은 성인 남성의 육봉, 어쩌면 그 이상의 크기의 고기 막대기.
"으에…?
'그것'은 아주 천천히 음부로 다가왔다.
-툭.
그리고 마침내, 촉수가 벌어진 균열 사이에 당도했을 때.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방금 전처럼 무언가를 빨아들인다거나, 핥거나 꼬집는 등의 감촉이 아니었다. 둔탁하고, 굉장히 두꺼운 무언가가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애액을 뿜어냈다. 아무것도 달라붙지 않아 허전한 음부에서 투명한 액체들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꿈틀.
그것이 시작이었다.
뭉쳐진 촉수 위로애액이 떨어졌을 때, 그것들은 균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성은 없는, 폭력뿐인 돌진.
-찌걱.
"으게, 게윽?!"
쑤컹, 하는 추잡한 소리와 함께 질내로 들어온 촉수는 본능에 따라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눈이 뒤집히며 헛구역질이 나온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이물감에 힘없이 떨던 다리가 경직되었다. 촉수는 일반적인 남성들의 성기와 달리, 길이의 제한이 없었기에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파고들었다.
-부르르르르!!
자궁경부까지 도달한 촉수들은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세차게 진동했다. 동시에,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양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애액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타액을 마구 흘려댔다.
"흐긋, 아힉, 주, 주거… 나, 주거… 흐읍?!"
피스톤질의 시작. 배가 팽창하고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였다. 어쩌면, 내심 배가 튀어나올 정도의 크기를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 촉수들은 가장 깊은 곳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었으니까. 첫상대인 후드남의 말도 안 되는 크기가 내 가치관을 격변시켜놓은 것일 지도 몰랐다.
-찌걱, 찌걱…
"헤윽, 학. 흐갸…"
더는 교성을 낼 힘도 없었던 나는 그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촉수의 기계적인 피스톤질을 받아들였다. 극심한 탈력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헤으, 히. 히으…."
결국 나는 실소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쩌저적!
"흐아아……?"
축 늘어진 시체처럼 인외의 것들을 몸에 받아들이길 수십분, 촉수는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었다.
질내 가장 깊은 곳에서 멈춰버린 피스톤질.
나는 멍하니 촉수의 행동을 기다렸다.
"으, 으으?!"
촉수는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 질내가 불만족스러웠는지 자궁경부를 벌리고, 자궁 '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쾌락은 없었다. 본래 해부학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위치였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촉수였다. 무한정으로 길어지고, 모양새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는 인외의 존재들.
'여, 여기서 더 들어간다고?'
배가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아, 아파, 아파아앗…!"
여유 공간을 발견한 촉수들은 끊임없이 전진했다. 배가 부풀고, 자궁이 한계까지 확장될 때까지 전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아….'
이곳은 욕망이 구체화 된 세계. 본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자연스럽게벌어졌다. 내 배는 임산부처럼 크게 부풀었다. 배 안에 아기 대신 촉수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만 빼면, 더할 나위 없는 만삭의 임산부였다.
대大자로 결박당한 사지와 몹시 어려 보이는 외형은, 크게 부풀어오른 배와 대비되어 부조화를 일으켰고 배덕감을 한층 상승시켰다.
자궁 안에 자리잡은 촉수들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보금자리를 찾은 듯 얌전히 있었다. 간헐적으로 부르르 떨리긴 했지만 아주 가끔. 그들은 움직이기를 멈추었다.
'끽해봤자 앞뒤로 흔드는 것뿐이겠지…'
…라고 생각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보다 더한 것이 찾아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꿈틀.
"므, 므슨… 하아앗?!"
배가 경련한다.
쯔브븝- 질척한 소리와 함께 촉수들이 빠져나갔다.
나는 기묘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며 또 한 번 절정했다.
하지만 커다랗게 부푼 배는 그대로였다. 자궁 내벽에 달라붙은 촉수들은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자궁 안은 비었지만, 벽에 달라붙은 촉수들이 부푼 배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걸 막고있었다.
그렇게 자궁 내에 작은 공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만든 촉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준비했다.
"서, 서마…."
안색이 급속도로 파래졌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세차게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서, 설마 아니겠지.
-꾸르륵…….
"흐으, 아, 안대에―…."
기대가 박살 난 것은 한순간.
내벽에 들러붙은 촉수들이 뿜어낸, 동그랗고 단단한 '무언가'는 계속해서 수를 불려 자궁 안을 가득 채워갔다. 후드남에게 강간당했을 때보다 몇 배는 강한 절망이 나를 급습했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몬스터의 씨받이가 되다니?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도구처럼 쓰이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적어도 인간을위해서 사용되는 것이었으니.
머리 끝까지 올라온 절망감은 눈물이 되어 표출됐다. 그럼에도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촉수들은 떨어지는 눈물을 핥아 먹기 바빴다.
자궁에 알이 있어서 그런 걸까, 촉수는 이 이상으로 질내를 건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구멍들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으켁, 케흡…"
첫번째는 목구멍이었다.
깊숙히 박힌 촉수는 호흡을 원천 봉쇄했다. 목구멍은 불룩 튀어나와 촉수의 모양대로 변해갔다. 나는 꺽꺽대며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했다. 촉수는 내 반응이 무척이나 재미난 지 죽기 직전까지 몰리면 빼고, 숨을 쉬면 다시 박기를 반복했다.
"흐으읍?!"
두번째는 항문.
음부를 건들지 못한다는 것에 분노라도 했는지 훨씬 더 난폭하게, 또 자비 없이 항문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촉수는 자궁에 들어왔을 때처럼 본래라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뻗어 나갔다.
"그 그마내… 우븝…"
대장을 역주행하며 전진하는 촉수는, 정말 신기하게도 체내에 어떠한 상처도 내지 않았다. 촉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끈거리는 체액에 미약한 치유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론상 내가 충격에 죽지만 않는다면 대장과 소장, 위를 거쳐 입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왜… 멀쩡한 거야…!'
한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이곳은 '환상세계幻想世界'라는 것.
현실이 아닌, 욕망을 표출하기 위한 공간. 죽을 만큼의 고통은 있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상처도 나지 않는다. 레일라의 말대로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우브읍… 으게에엑……"
엉덩이로 들어간 촉수는 입을 뚫고 나왔다. 꼬챙이에 꿰뚫린 듯한 모습은 임산부 같은 배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었다.
-쩌저적,
알들이 흔들림을 느꼈다.
부화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