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기사단의 미친개 (3)
"미안… 하다고?"
미안해요. 그 차갑고도 시린 말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그네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시선이 교차한다. 그녀의 손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저 자그마한 진동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겼을지 감히 추측하기도 어렵다.
숨이 막히는 고요 속에서 아그네스는 입을 열었다.
"왜지…? 왜 그대가 사과하는 거지?"
변해버린 당신의 모습에 사과한다.
아그네스가 처음부터 내게 집착하진 않았듯, 나 또한 그녀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적에 눈이 멀어 일행을 위험에 빠트리는 싸가지없는 여기사. 죽어도 별생각 들지 않는 인간군상. 이게 나의 평가였다.
그런데 어느새 변해버렸다. 어떤 형태로든 서로의 마음에 남아버린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인 형태인지 부정적인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알 필요도 없고.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나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당신을 속였어요. 아그네스."
"무엇을?"
"모든 것을."
너에게 보여준 모든 것이 거짓이다. 미소도, 상냥함도 모두 기만이다. 지금 내뱉는 사과에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 떠나지 못하고 4일간 머무른 이유조차,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책임감 때문이지 이것에 죄책감은 없었다.
아그네스가 내 마음에 남긴 것은 책임감뿐이었다.
"……."
아그네스는 지극히 무덤덤한 내 모습에 무언의 공포를 느꼈다. 입술을 꽉 깨문 그녀는, 속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공포에 삼켜질 것만 같아서.
아그네스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상관없다. 너는 나를 절망 속에서 구원해주었다. 너의 희생이 있었기에 나는―…"
하아.
내게는 유희, 누군가에겐 구원. 어마무시한 차이의 간극에 쓰게 웃는다. 이게 아이러니가 아니라면 무엇이 아이러니일까. 나는 아그네스의 필사적임을 무시하고 말을 끊었다.
"그것도."
그리하여 떨어진 마지막 선고.
"그것도 모두 거짓이에요."
"……."
"미안해요."
질 떨어지는 농담이라고 생각한 걸까, 아그네스는 이를 뿌득 갈았다.
"헛소리."
하지만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자신은 눈앞의 소녀를 모른다고. 소녀를 감싼 배일을 단 하나도 벗기지 못했다고. 차마 인정하기 싫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결국 도피일 뿐,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그네스는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헛소리!"
이 모든 게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이라면.
슬픔도 희생도 모두 기만이고 거짓이라면.
다 알면서도 뻔뻔하게 자신을 속였다면.
자신이 무대 위 인형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거다. 느꼈던 절망은 진실이고 나를 향한 죄책감은 실제로 족쇄가 되었으니. 그러니 이제는 그만두려고 한다. 기만의 끝. 인형에게 자유를 줄 시간이었다.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작은 정적 이후, 적청흑백의 작은 구체들이 그녀를 맴돌기 시작했다.
아그네스는 입을 떡 벌렸다.
"어, 어떻게…."
장난하지 말라고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뚜렷한 증거.
주위를 떠다니는 순수한 4원소의 결정체는 단순해 보여도 어지간한 경지의 마법사가 아니면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순도 98% 이상의 순수한 마나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러를 강화하려면 최대한 순수한 마나를 응집시켜야 하는 기사 특성상, 이 기술을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거리인지는 아그네스가 제일 잘 알 거다.
"힘을… 숨겼다고? 어째서?"
장막은 들춰졌고 눈은 뜨여졌다. 귀를 닫고 애써 무시하려 한 잔혹한 진실은 칼날이 되어 아그네스를 찢어발겼다.
"자극을 얻기 위해 위험을 자초한다고 말한다면, 믿을 건가요?"
만류귀종이라 하던가. 한 번 마법의 `끝`을 본 나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극에 다다르면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끝을 알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향한 흥미를 잃었다.
그러던 와중 찾은 `새로운 자극`이 고통일 뿐이었다.
방향성이 좀 비틀어져 피학성애로 변질되었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힘을 숨기고 위험을 자초하는 이유는 자극, 오직 자극을 얻기 위함이니…
아그네스는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믿어야겠지."
자조섞인 한탄이었다. 그러곤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엔 장난이라 생각했는지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올라간 채로 굳어버려, 진실을 깨달은 지금도 내려오지 않았지만.
"미안해요."
인간의 정신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이기적이어서, 충격을 받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곱씹고 되새기고 반복해서 부정한다.
하지만 소용없다. 그럴수록 현실을 깨닫게 된다. 끔찍한 현실을 수용했을 즈음엔 이미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걸레짝이 된 후. 결과보다 과정이 몇 배는 괴롭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눈이 뜨인다. 수용 단계에 접어든 아그네스는 나지막이 말했다.
"유진…."
나를 항상 그대, 모험가 따위로 부르던 아그네스가 웬일로 `유진`이라 부른다. 그 의도를 굳이 파악하려 하지 않았던 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는…."
무너져내리는 목소리.
"나는 그대에게 있어… 얼마만큼의 자극이었지?"
예상외의 질문.
환멸을 느끼거나 검을 들이댈 줄 알았던 나는 아그네스의 질문에 눈을 감고 고민했다.
자극의 양만을 따진다면 다소 부족한 건 사실. 그러나 지금의 감정은 처음 겪는 것이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까지 집착한 적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내 정체를 밝힌 것도 처음이다.
"아그네스 당신은…."
눈을 뜬다.
"조금 부족했지만… 색다른 자극이었어요."
"그런가…."
아그네스는 허리를 낮추고 소파에 앉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손을 뻗는다. 그러곤 내 뺨을 천천히 쓸었다. 날 바라보는 눈동자는 공허했다. 나는 그녀의 손길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아그네스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유진."
손은 점점 내려가 목에 자리를 잡았다. 한 손으로 내 목을 감싼 아그네스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자극을 얻기 위해 위험을 자초한다고 했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앞으로의 자극이 되기에 충분한가?"
배신당한 믿음은 비애가 되어 가슴을 옥죄고, 차오르는 절망은 나오지 못해 안에서 썩는다. 아그네스의 일그러진 미소엔 지독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아…."
그 처절한 모습에 짧게 탄식한다.
나는 그녀가 어딘가 망가졌음을 눈치챘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있으신가요?"
"아니."
"그렇다면 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모순적이네요."
"그대만큼 모순적인 사람이 있을까."
"흐으…."
실없는 비아냥에 쿡쿡 웃는다.
한참을 쿡쿡거린 나는 아그네스의 비어있는 한쪽 손을 붙잡고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럼요."
생각이 바뀌었다.
"충분하고말고요."
기꺼이 어울려 주겠다.
모든 사실을 밝혔는데 발을 빼지 않고 되려 달려든다니? 이렇게까지 고조된 감정은 어디서 찾아보기 힘들다. 격의 차이를 알면 식을 법도 한데 아그네스의 감정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나는 그 사실이 퍽 마음에 들었다.
"아그네스."
끌어당기고, 내 목에 둔다. 아그네스는 내 기행에 살짝 당황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양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한 손으로만 하면 모양새가 안 살잖아.
아그네스의 양손 위에 손을 포개고, 도발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밉나요?"
"……."
"밉겠죠.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겠죠. 사지를 분질러놓고 개먹이로 줘도 시원찮겠죠. 저는 당신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이라고요?"
"……."
이번에는 유혹하듯이.
"괜찮아요."
"……."
"그대로 목을 졸라도, 먼지가 나도록 때려도, 팔다리를 자르고 지하실에 처박아도 괜찮아요."
"……."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그대로 쏟아내도 괜찮아요. 분노, 절망, 슬픔… 어떤 감정이라도 좋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테니까."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그네스에게 속삭인다.
"나의 기사님. 오늘 하룻밤, 당신의 장난감이 되어드릴게요."
악마의 속삭임.
아그네스는 더이상 침묵을 유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에 힘을 주었고, 조그마한 숨구멍을 조여왔다. 오래간만에 느낀 순수한 욕망의 덩어리. 극한까지 고조된 감정은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꾸우욱….
"괘… 괜찮으니…끄흑…."
숨이 통하지 않아 시뻘게진 얼굴. 목을 움켜쥔 손가락 마디까지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꺼져가는 의식을 즐기며 팔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끄흐…."
-쿵!
아그네스는 내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 손을 놓았다.
그대로 쓰러진 나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꼴사납게 나뒹굴었다.
그러나.
"역시…."
더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역시, 못하겠다."
더 이상의 폭력도 없었다.
"미안하다."
더 이상의… 연기도 없었다.
"나는, 네 자극이 되기에 충분치 못하구나."
나는 멍하니 주저앉아 아그네스를 바라봤다.
그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껴안았다.
"처음으로… 모든 걸 바치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
"이런 건… 이런 건…."
"아그네스…?"
이제 와서… 이제 와서 그러기야?
이렇게 애태워놓고 빠진다니?
제발, 망설이지 말란 말이야.
달아오른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식어갔다.
"미안…하다…."
아그네스는 나를 껴안고 한참을 울다, 기력이 다하자 탈진해서 쓰러졌다. 그녀의 절규를 듣자 깨달을 수 있었다. 다 내 착각이었구나. 망가진 건, 나 혼자였구나.
나는 비참함을 느꼈다.
* * *
아그네스가 쓰러지고 하루를 더 있었다. 극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동반된 자살 충동이 밀려와 움직이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하룻밤 정도는 곁에 있어 주는 게 예의일 거 같기도 했고.
"어젯밤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사과하겠다."
"괜찮아요.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아그네스는 전처럼 내게 집착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한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정말… 허울뿐인 인생이구나. 너도, 나도."
아직 불만족스러운 나와 다르게 말이다.
`이게 뭐하는 짓거리람….`
달그락, 달그락…. 식기와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를 노래한다. 시각은 오전 9시 정도. 조금 늦은 아침 식사는 이것이 마지막 만남임을 예고했다.
"나는 그동안 미뤄둔 일을 하러 가야겠지."
"그렇군요."
"유진, 너는 어떻게 할 거지?"
"흐음…."
아마 동네 양아치 도발해서 실컷 얻어맞지 않을까. 어제 애매하게 끊긴 것도 있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솟아오르는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든다. 아그네스는 삐진 듯한 내 얼굴을 보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그대의 흥미가 동할 정보가 있다. 카할리아에서 대미궁이 발생했다더군."
"미궁?"
미궁迷宮, 그 단어의 뜻대로 모험가들을 미혹하는 수많은 보물이 담긴 궁전이다.
"카할리아는 브리도니아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중소도시다. 모험 쪽으로는 조금 시들시들한 도시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겠지. 미궁의 수명은 못해도 5년은 가니까. 그 정도 크기라면 최소 10년, 아니 20년도 넘길지 모르겠군."
당연히 보물을 노린 수많은 모험가가 몰려들고, 그만큼 위험했다. 떼돈을 번다는 건, 어중이떠중이 모험가들 말고도 실력 있는 모험가들이 대거 몰린다는 소리기도 했으니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그럼…."
식사가 끝났다.
"이제 진짜 작별인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걱정은 마라. 네 진짜 실력은 불문에 부칠 테니."
나는 아그네스의 배웅을 받으며 거리에 나섰다. 솔직히 카할리아와 미궁, 이 두 가지 키워드 말고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간질거리는 아랫배를 꾹꾹 누르며 참아낸다.
`부족해….`
너무 부족했다.
이제 진짜 한계였다.
나는 뒷골목에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