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당신을 위한 만찬 (1) (38/193)



〈 38화 〉당신을 위한 만찬 (1)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만약 죽음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면. 한없는 무無라면. 끝없는 망각뿐이라면. 그야말로 허무. 대부분의 이들은 이 끔찍할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 공포에 빠진다. 공포가 얼마나 심하면 종교단체 따위에 몸을 의탁할까.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당연히 나도 아직 사람인 만큼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밤을 맞이한 아이처럼 겁을 먹어 나도 모르게 몸을 떨고, 죽음에 가까워지면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변태 같게도 생을 향한 발버둥을 쾌락으로 치환시켜버렸다.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다리 사이가 젖고 유두가 솟는다. 고통이 성적 생리 현상으로 나타날 정도로 몸과 정신이 썩어버린 거다. 후회되지는 않냐고? 글쎄. 이세계에 떨어진 첫날보다 지금이 백배 천배는  기쁘고 즐거운 거 같다.


 큰 쾌락을 위해.


나는 피학쾌락을 느끼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행한 일 중 가장 위험한 짓거리일지도 모르겠다.

목숨을 판돈으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 내가 그러려고 한다.

오감이 닫히고 정신만 깨어있는 준각성 상태. 무협으로 따지자면 주화입마랑 비슷하다. 미숙한 마법사들은 정신 속에 갇혀 영영 깨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볼  없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시간 감각마저 뒤틀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알아차릴 수도 없다. 마법사 대부분은 정신 속에 갇혀 굶어 죽는다.


의존성의 극대화.


거동도, 청결도, 목숨도, 오직 타인의 손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양아치들이 시체처럼 늘어진 나를 어떻게 대할지 몹시 궁금했다. 다시 강간을 할까, 아니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쓰레기처럼 버릴까. 팔아버린다고 했으니 죽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곤 있지만… 사람 마음이란  다 똑같은  아니잖아. 나처럼 망가진 장난감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고작 양아치의 변심으로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다는 스릴감….

그 스릴을 느끼기 위해 목숨을 걸어버린 것이다.


`….`

-쩌적….


그러나 아크메이지의 강인한 정신은 일부러 각성을 막았음에도 저절로 벽을 뚫고 기어 나왔다.

조금 더 스릴을 즐기고 싶었던 나로선 다소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쯧….`

한  깬 정신을 다시 죽일 수도 없으니…. 정신을 강제로 끊는 건 가능하다만, 그래서야 잠이  거랑 똑같다. 맨정신일  느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에윽…."

그래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거겠지.
뒤틀린 신음을 내며 눈을 뜬다.

-…런걸 어디서…구했…

움찔.


"히긋?!"


눈이 뜨이고 오감이 다시 활성화되자, 몸을 더듬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등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

내가 몸을 부르르 떨자, 배꼽을 더듬던 남자는 손을 떼며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의 손가락 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러니까, 양아치의 손길이 아니었다. 늘 연초를 달고 사는 양이치들의 손끝은 검어지다 못해 뜨거웠다.

나는 곧바로 주변에 마나를 퍼트려 위치를 파악했다.
일종의 맵스캔.
색은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적인 형상은 알 수 있다.

`남자 둘에… 저건 시체? 왜이리 많지?`

날 당혹스럽게 한  다름이 아니라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었다. 정육점 고기처럼 늘어진 시체들은 하나같이 신체 부위 몇 군데가 부족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거야…?`


자, 잠깐. 왜 젖는 거야.
심각하다고.


"대체 어디서 이런 보물을 구했는지 추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당신이 `제압`한 게 맞습니까?"
"그냥 길거리에 널린 마약중독자가 무슨 보물이라고…"
"헛소리!"

둘 사이에 묘한 대화가 흐른다. 꼴초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는 몇 시간 전 나를 강간했던 라힐 일행   명이었다. 그런데 다른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목소리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사람 목에서 나올 수 있는 발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채널 끊긴 라디오처럼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과연 `목`소리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

양아치는 라디오 보이스에 겁을 먹었는지 말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너희 같은 빡대가리 새끼들에게 굴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만약 죽었더라면 당신네들 머리통은 남아나질 않았겠죠! 뭐, 농담입니다만! 하하!"
"……."
"아, 흠. 죄송합니다. 말을 하는 게 오래간만이라. 이제 됐습니다. 이번 거래는 끝내도록 하죠. 다른 시체는 필요 없습니다. 이거 하나면 충분… 하거든요."

남자의 목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귓구멍에 맴돌아 떠나지를 않았다. 지직, 지지직… 소름이 끼치는 건 둘째 치고  인간의 목소리는 사람의 정신을 흔들어놓는 무언가가 있었다.


양아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축은 하지 않을 건가?"
"뭐라구요?"
"항상 하던 선별작업이 있지 않았던가? 저기 널려있는 시체들처럼."

양아치는 시체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심장만 가져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여자, 엄지와 중지가 없는 남자, 췌장이 뜯긴 어린아이. 전부 다 눈앞의 남자가  짓이 아니던가.

"하하…."

양아치의 말을 들은 남자가 낮게 웃는다. 노이즈가 더 심해졌다. 웃음소리인지 TV가 지직거리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남자는 개그 프로그램 진행자처럼 목소리를 다잡고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나요?"
"…뭐라고?"


-퍼어엉!!

딱!


"당신 머리가 터지는 소리 말입니다!"


후두둑. 한차례의 폭발음 이후 뜨듯하고 끈적한 무언가들이 내 몸 위로 쏟아졌다. 살점과 뇟조각. 그리고 뇌수. 구슬 같은 건 안구인가? 딱딱한  잇조각…… 아니 뭘 이렇게 침착하게 파악하고 있는 거야. 지금 머리 터진  맞지?

미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남자가 말한다.

"제 농이 어떤지 봐줄 관객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참, 당신. 살아있었죠? 어땠습니까? 제 회심의 농담이!"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


시발 뭐하는 새끼지.










* * *


다른 조직원들이 `그들`, 그러니까 항상 시체를 사러 오는 자들을 만나기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그것을 꼽았다. 소름이 끼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다 큰 사내들이 단체로 겁을 먹는 모습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으나 막상 만나보면 그런 소리는 못한다.


"설마,  배웅하러 나오신 건가요? 감동하였습니다!"


호탕하게 말하는 그는 하얀 가면에 멋들어진 검정 테일 코트를 입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키가 무척이나 커 옷빨이 잘 살았다. 시체를 사러 온 사람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대신 얼굴을 가린 가면의 기능은  좋지 않았다. 구멍 하나 없는 하얀색 가면은 눈코입을 포함한 얼굴 전체를 가렸는데, 어찌나 큰지 턱선까지 가릴 정도였다. 저런 가면을 쓰고 어떻게 말하고 숨 쉴 수 있는지 궁금할 노릇이다.

"그보다 당신의 내장은 안녕하십니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양아치는 입을 다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면남의 말은 장난스럽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지직거려서 더욱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기괴할 정도로  가면도, 과장된 몸짓과 행동도 모두 소름이 끼쳤다. 양아치는 눈앞의 가면남을 만나러  것이 후회됐다. 왜 아무도 가면남을 만나러 오지 않았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된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준비된 시체는  구야. 꼬맹이 여자 하나, 남자 둘."
"그래 봤자 저번처럼 쓸모없는 살덩이들이겠지요!"
"…."

가면남은 우스꽝스럽게 말하면서도 가끔 날이 선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장난스러운 어조는 그대로였기에,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지 몰랐던 남자는 결국 말하기를 포기하고 도축장 내부로 진입했다.


남자는 가면남에게 준비해둔 시체들을 보여주었다.


"호오…."


따라 들어온 가면남이 작게 탄성을 흘린다.

"마음에  게 있나?"
"…."
"이봐?"


그의 시선은 유진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면남은 양아치의 말을 무시하곤 말했다.

"저거, 시체입니까?"
"뭐가?"
"당신이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 붉은 머리 소녀 말입니다."

가면남은 유진의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마나의 흐름을 보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박동하는 마나의 맥은 상상 이상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멍청한 양아치 새끼가 눈치를 챘을진 모르겠지만— 저건, 물건이었다. 진흙탕 속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 불타버린 초원 위에 핀 꽃.


`저런 물건이 고작 뒷골목에서 나오다니?`

가면남의 눈에 탐욕이 일었다. 비록 가면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가면을 뚫고 전달될 만큼 강대했다. 저건 꼭 얻어야 한다. 저 정도의 마력이라면 할당량을 모두 채우고도 남았다.

"이년? 조금 전까지 돌림빵 당한 년이라 살아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툭툭. 양아치는 유진의 뺨을 치며 생사를 확인했다.
그는 별생각 없이 친 것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가면남의 심기를 건드려버렸다.

"뭐하는 거죠?"
"응? 살아있나 확인하는 거다만."
"이래서 인간들이란… 꺼지십쇼!"

양아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초라도 빨리 유진을 데려가고 싶었던 가면남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대체 이런 보물을 어디서 구했는지 추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당신이 `제압`한 게 맞습니까?"


이 정도 마력를 지닌 인간이 그냥 당했을 리 없다. 정황상 이 양아치 새끼들이 제압한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질 떨어지고 멍청한 대답뿐이었다. 더는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 가면남은 인간을 향한 혐오를 가득 담아, 양아치에게 끝을 고했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나요?"
"…뭐라고?"


-퍼어엉!!


딱!


"당신 머리가 터지는 소리 말입니다!"

한때 인간이었던 것의 살점이 공중에 흩날린다.


이렇게 죽여버리면 더는 시체 수급은 불가능해지지만… 상관없다.  소녀의 몸에 깃든 마나는 지금까지 수거했던 시체들을 다 합쳐도 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더는의 시체수급은 필요없다. 대미궁으로 핫한 카할리아와 온통 눈밭인 하펠린 북부를 지났음에도 쓸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가면남에게 유진의 존재는 정말 뜻밖의 수확이었다.

"제 농이 어떤지 봐줄 관객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이걸 가지고 돌아간다면 주인에게 입이 닳도록 칭찬받겠지. 가면남은 차오르는 기쁨을 표출할  없는 게 참으로 아쉬웠다. 그는 보석처럼 빛나는 유진을 보곤 말했다.

"아참, 당신. 살아있었죠? 어땠습니까? 제 회심의 농담이!"

그러곤 가면을 벗는다.


남자의 피부는 잿가루와 비슷한 회색빛을 띠었다. 능글능글한 눈매와 뾰족한 콧대는 그의 장난기를 반영시킨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마에 난 작고 귀여운 뿔이 눈에 띄었다.

그는 악마였다.

"아아, 아르타니아 님이시여! 드디어 노력의 결실을 맺은 겁니다!"


최대한 눈에  띄게 행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맘 같아선 다 죽여버리고 시체들의 산을 쌓고 싶었지만 제 주인의 안위를 생각하면 해서는 안  노릇. 인간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없었으니까. 늘 제멋대로인 악마치고는 사리분별을   알았던 그였다.


"에윽…?"
"죽지 않도록 조심하십쇼!"


붉은 머리 소녀를 둘러업고 허공에 마법진을 그린다. 고위 공간이동 마법이었다. 위치 좌표는 브리도니아에서 한참 떨어진 케탈리아 늪지대. 아르타니아 님의 성이 위치한 곳이다. 그는 손가락을 굽혀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법진은 푸른 빛을 발하며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게이트를 생성해냈다.


작은 뿔의 악마는 잇몸이 만개할 정도로  웃음을 짓곤 유진에게 말했다.


"혹시 선호하는 음식이 있으신가요? 원하시는 음식이 있다면 그걸로 조리해드리겠습니다!"






* * *


`…지랄났네 진짜.`

또 악마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