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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당신을 위한 만찬 (3) (40/193)



〈 40화 〉당신을 위한 만찬 (3)

-우우웅….


딱!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공간마법으로 추측되는 마법식이 생겨났다. 곧이어 게이트가 열리고, 마나의 소용돌이가 나를 휘감는다. 나는 얼굴을 찌푸린  몸을 휘감는 끈덕지고 불쾌한 기운의 마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마나의 구조다.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었다.

바로 가올리스를 잡아 족쳤을 때.


이건 악마의 마나였다.


'지랄났네 진짜….'


 악마였다.


제국이 브리도니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악마가 흔한 것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악마가 꼬인다. 일전에 났던 지하수로의 대화재도 악마의 짓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게 진짜라면 한 달 채  되는 기간에  명의 악마가 출현했다는 건데… 이 세상에 신도 있고 천사도 있다며? 근데  악마만 활개 쳐? 이 세상의 신과 종교단체는 생각보다 무능할지도 몰랐다.

'하아….'


두렵진 않다.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된다는 사실에 살짝 짜증이 났을 뿐이다.
좌표 분석을 시도해봤으나 위치만 특정할  있을 뿐  성과를 얻지 못했다.
마나의 흐름을 역추적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늪지대… 인가?'

브리도니아 근처에 늪지대가 있었는지는 둘째 치고, 좌표가 지하 깊숙한 곳에 특정됐다. 못해도 지하 3층 정도. 머리가 아파왔다. 가올리스도 그렇고 악마란 놈들은  이렇게 지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요호호!"
"파르시히! 내가 그렇게 웃지 말랬지!"
"아, 흠. 죄송합니다. 버릇이 됐군요."

악마의 이름은 파르시히였다.

근처에 똑같은 악마로 추정되는 여자가 '파르시히, 오늘 밥 뭐야?' 라고 물었으니까. 여악마의 목소리는 남자처럼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가 아닌, 시크하지만 발랄함을 숨길 수 없는 그런 쾌활한 목소리였다. 이들은 주인과 종의 관계일까, 아니면 파트너의 관계일까. 사역으로써 맺어진 관계일 수도 있다.

'…나중에 족치고 물어보면 되겠지.'

수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가볍게 떨쳐낸다.


우선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자 마음먹은 나는 파르시히의 '품질검사'를 천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재료를 살아있는 상태로 조리할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파르시히는 내 팔다리를 주물럭거리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살은 야들야들하고 마나 농도 또한 최상급…. 이런 재료는 평생이 지나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오늘의 밥은 나인가 보다.

식재료 선언에 아랫배가 찡 하고 울린다.


'요리… 요리라.'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취미가 다양하지 못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밖에선 놀고 안에선 게임을 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리는 실패 시 리스크가 컸다. 뒷처리도 귀찮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도 한몫했다. 음악감상 같은 취미는 그나마 낫지만….


물론 하는  싫을 뿐이지 보는 것과 먹는 것은 좋아한다. 요리 잘하는 사람들 섹시하잖아. 그래서 돈과 시간이 나면 종종 경험해보지 못한 음식들을 찾아서 먹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4대 진미라 불리는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돈이 부족해 몇 번 하다 때려치긴 했다만 나쁘진 않은 경험이었다.


"아윽…."
"가만히 있으세요! 품질 검사를 해야하니까요!"

그래서 말하는 건데… 요리를 보는 것과, 먹는 것과, 당하는 것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채로 요리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흥분되었다.

개소리하지 말라고? 나도 개소리란 걸 안다. 하지만 달아오른 몸은 개소리가 아니라 진실로 다가오니 어찌해야 하면 좋나.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몸입니다…!"

나도 내 몸에 감탄만 나온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조차 흥분하지.
아, 불쌍한  인생.

"흐음…."


파르시히는 유진의 나신을  곳도 빠짐없이 꼼꼼히 훑었다.

비록 엉망진창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소녀의 나신. 그의 머리를 스친 것은 성욕이 아닌 부위별 조리법이었다. 허벅지는 스테이크로, 종아리는 스튜로, 손가락과 발가락은 따로 잘라 꼬치로 만든다. 내장은 하나하나 긁어모아 갈아버린 뒤 소시지로 만든다.

이것들 말고도 하고 싶은 요리가 너무 많았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었다.


하지만.

옥에 티가 있었다.

"에잉… 쯧!"
"왜?  먹어?"
"아니요! 오히려 하고 싶은 조리법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그럼 왜?"
"피부 상태가  아니로군요!"


그런 파르시히에게 피부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은 크나큰 비애로 다가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나가 풍부한 고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요리사로서 욕심이 나버린 것이다.

물론 사용하려면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담뱃재가 눌어붙은 피부라니? 이런 저질 재료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거… 그걸 써야겠군요."
"힝… 난 괜찮은데."
"사역마의 힘 좀 빌려야겠습니다."
"그냥 먹으면 안 돼? 그거 쓰면 다섯 시간은  기다려야 하잖아."
"어허!"

파르시히는 아르타니아에게 "정액과 담뱃재가 눌어붙은 고기를 드시고 싶으신가요?" 라고 물었다. 무엇이든 잘 처먹는 그녀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으나 파르시히가 죽일 기세로 눈을 부릅떠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쩝."

아르타니아가 입맛을 다신다.


그녀는 마나만 깃들어 있다면 돌도 씹어먹을 수 있었다.


실제로 파르시히가 합류하기 전엔 마나석과 늪지대 드라이어드가 주식이었다. 인간들이 항상 늪지대를 거치는 건 아니었으니. 그래서인지 다른 악마들 사이에선 돌 처먹는 악마라고 소문이 난  오래였다. 아르타니아 본인은 모르지만.


그런 아르타니아를 딱하게 여겼던 파르시히는 좀 더 풍부한 맛의 세계를 알려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자신의 고객이 아무거나 처먹는 새끼라 소문이 나면 자신의 명예도 깎인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번 재료도 다르진 않았다.
깨끗이 씻은 다음, 정성껏 조리해 대접한다.
그것이 요리사니까.

파르시히는 엄숙한 목소리로 외쳤다.

"세척을 시작하겠습니다!"

딱! 손가락을  번 더 튕기자 조금 전 느꼈던 불쾌한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위치 좌표는 머리 바로 위.


'사역마? 세척?'

의미심장한 키워드 두 개.


 두 단어를 조합하면 조합할수록 불길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수많은 능욕으로 타락한 뇌로 감히 추측하자면 숨이 막혀 죽을 때까지 물에 담가놓거나, 브러쉬 같은 거로 구멍이란 구멍은 전부 쑤시던가. 하나같이 기대되는 것들뿐이다.


문제는 사역마였다.

어떤 종류가 나오느냐에 따라 능욕의 수위가 천차만별이 된다.

-우우웅!


앞이 보이지 않았던 나는 그저 벌벌 떨면서 앞으로의 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또 촉수는 아니겠지.


"찰리 씨! 오늘도 수고해주세요!"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떨어진다. 그것은 내 머리 옆에서 한참을 꾸물거렸다. 나는 그 기묘한 움직임에 몸을 경직시키곤 귀를 기울였다. 찰팍, 찰팍하는 기묘하고 미끄덩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찌른다. 촉수는 아니었다. 굉장히 징그럽고, 껄끄러운 무언가가 연상되는 소리였다.


인간의 혐오본능을 자극하는 소리.

"헤익, 흑?"


뭐, 뭐야 이거.
기분 나빠.


"난 저 저거 기분 나빠서 싫어."
"찰리 씨가 들으면 슬퍼할 거라고요? 귀는 없지만요!"
"사역마한테 이름을 붙이는 새끼는 너밖에 없을 거야. 시발 그리고! 저것들 슬라임이잖아!"

악마남의 곁에 있던 여자도 싫은 소리를 내며 찡찡거렸다.

'슬라임… 이라고?'

그보다, 지금 내 얼굴로 다가오는 이게 슬라임이라고?
평원에 나가면 멍청하게 굴러다니는  슬라임?


"히끅!"


슬라임, 아니 찰리는 머리칼을 넘어 머리로, 머리를 넘어 안면 전체를 감쌌다. 미적지근하고 미끈거리는 점액질의 감촉이 등허리를 타고 흐른다. 나는 차오르는 혐오감을 못참고 암퇘지처럼 울부짖었다.

-꾸물....


찰리는 슬라임이었다.
작은 코어를 제외하면 몸 전체가 점액질로 이루어진 생물체.
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다.
콧구멍. 입. 심지어 귓구멍까지.
헬멧을 씌운 것처럼 머리를 감싼다.
작은 슬라임은 몸을 늘려가며 구멍이란 구멍은 다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븝…!"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입과 코를 막았음에도 숨은 쉴 수 있었다.
그 탓에 괴롭긴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통만 감내한다면 조금 기분 좋을 지도 모를 정도로.

내가 변태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기분 좋았다. 나는 이 포근한 기분이 미약한 치유 효과에서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뱃재로 눌어붙은 혀가 점액질로 둘러싸이자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세척이라고 한 게 이런 의미였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포근함이 영원토록 지속되진 않았다.


슬라임이 노리는 곳은 입과 콧구멍만이 아니었기에.


"헤긱, 흐극, 히기이이익?!"


남은 곳은 하나였다.

귓구멍.


"학, 힉?!"


양 귓구멍 깊숙이 들어온 슬라임은 달팽이관을 넘어 이곳저곳을 찌르기 시작했다. 백치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감각에 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경련한다. 등이 활처럼 휘고 손발 끝이 쪼그라든다. 쪼르륵… 통제를 벗어난 몸은 애액과 소변을 추잡하게 흘렸다.

'이거… 위험해에에….'

마법사의 이성이 경종을 울린다.
뇌 손상은 돌이킬 수 없다.
백치가 되어 재구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끝이다.
식재료가 되기 직전인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지, 지금이라도… 분리를….'


몸과 정신의 분리.

몸이 산산조각이 나도, 압사되어 으깨져도 최후의 순간까지 마법을 쓸  있게 하는 아크메이지의 능력이다. 내가 불로불사에 가까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이 덕분. 가능하다면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분체로 생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으….'


정말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능력을 사용하기를 주저했다.

지금도 그렇고 평소에 이 능력을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삶의 긴장감이 없어지잖아.
분체를 만들어 불에 뛰어들어봤자 가짜 고통이고 가짜 죽음이다.

그리고….

바보가 되어버리는 기분…

생각보다 좋은 걸 어떡해…

"헤익… 히윽…."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야? 정말로? 끝없는 자문자답이 이루어진다. 그 와중에도 중요할지도 모르는 기억들은 점점 파편화돼갔다. 나는 점점 멍청해짐을 느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왜 행복한 줄도 모르고, 침을 질질 흘리며 바보같은 웃음을 흘린다.

결국.


나는 정신 분리를 하지 않았다.

다만,  몸에 몇 가지 장난질을 해두었을 뿐이었다.


―…구……완료……

기억이 흐릿해진다.

"찰리 씨. 저번처럼 뇌를 녹여 먹거나 그러면 용서하지 않아요. 뇌도 훌륭한 재료라고요!"

파르시히의 살기어린 말에 기가 죽은 슬라임이 소심하게 꿈틀거린다.


슬라임은 뒤늦게 귓구멍에서 점액질을 빼냈지만…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이세계에 떨어진 첫날의 기억이.
흑장미에서 보낸 나날들이.
서리 굴에서 당한 짓들이.
아그네스와의 추억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간다.

'나, 나…  하고 있었지…?'


얼굴을 감싼 슬라임이 멀찍이 떨어진다.
나는 눈을 떴다.
슬라임의 치유 효과로 시력이 회복된 것이다.


"누, 누구셰여…?"

눈동자를 굴리면 붉은 벽.
사방이 붉었다.

그리고  붉은 벽돌 사이로 긴 흑생머리를 뒤로 묶은 키 큰 남자와, 뚱한 표정의 가슴  금발 머리 여자애가 서 있었다. 누구지? 여긴 어디고? 왜 내가 이런 곳에 있는 거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뭐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왜 알몸인지도 모르겠다.


무서웠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눈을 맞춰 인사하는 건 처음인가요?"
"히끅…."

눈앞의 남자는 얼굴이 잿빛이었다. 뿔도 달려있었고. 게다가 키가 나보다 머리  개는 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눈을 감고 쭈그려 앉았다. 눈을 뜨기가 겁이 났다. 머리에  달린 사람은 처음이었고, 저렇게 지지직거리는 목소리도 처음이었다.

"히, 히익…"


갓난아기처럼 와들와들 떨며 고개를 무릎 안에 처박는다.
눈앞의 남자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게 읊조렸다.

"저런 저런… 쯧쯧. 찰리 씨 때문에 조금 멍청해졌나 보군요."
"오, 오지먀…."
"아쉽게도! 세척은 아직 끝이 아니랍니다!"


딱하다는 표정은 잠시.
악마 특유의 미소로 돌아온다.

"시, 시러어…!"


슬라임이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하익?!"


하반신에 달라붙은 슬라임은 피부에 눌어붙은 담뱃재를 빨아들이며 꾸물꾸물 기어 올라오더니, 마침내 항문과 보짓구멍에 당도했다.

"우읏…."


찌브븝….


질구멍과 항문을 찌르며 안을 채운다. 살을 억지로 넓히는 슬라임의 행위는 난폭하고, 고통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왜, 왜 기분이 좋은 거지? 그야 기억을 잊어버렸으니까. 피학쾌락에 대한 기억마저 잊어버린 나는 그 영문모를 쾌감에 몸을 떨며 자지러졌다.

"햐, 햐아앗!"

자궁과 직장을 가득 채운 슬라임 덕에 배가 기형적으로 부풀었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멍한 눈으로 침만 더럽게 흘렸다.

"아윽, 흐으으…."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M자로 벌리곤 양손으로 배를 감쌌다. 낳고 싶고, 싸고 싶었다. 몸 안의 슬라임을 내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보짓구멍은 양아치들에게 가장 호되게 당했던 장소인 만큼, 치유하기 위해선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했다.

"제, 제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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