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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막간 - 요리의 끝에서 (47/193)



〈 47화 〉막간 - 요리의 끝에서

탁탁. 파르시히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쓸만한 도구들을 물색했다. 날이 가고 찌그러진 칼과 주방 도구들. 그나마 멀쩡한 건 싸움 도중 떨어트린 철퇴  개가 다였다. 그는 먼지 섞인 한숨을 내쉬고 아공간에 철퇴를 수납했다. 평소보다 작은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뿔이 꺾인 동시에 뭉텅이로 빠져나간 마나.... 20평은 훌쩍 넘겼던 아공간은 5평 남짓한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당장 쓸 수 있는 마나는 충분했고, 오러 검술은 죽지 않았으니 앞으로의 걱정은 덜했다. 전보단 못하다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 강자의 반열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파르시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당장 자살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손님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아르타니―."
"닥쳐…."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아르타니아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쇳소리의 욕설이었다. "날 동정하지 마." 소리칠 힘도 없다. 나태와 오만에 찌들어 있던 악마는 눈을 내리깔고 세상을 저주했다.

어떻게. 일격에 뻗어버릴 수가 있느냔 말인가. 그런 힘은 겪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다. 단순 강함의 차이라면 자신의 나약함을 탓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은 소녀보다 모든  열등했다. 싸움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웠다. 장난감처럼 다뤄지다 끝이 났는데 이런  어떻게 싸움이라 부를까.

"이런 거… 인정 못 해…."


핏물로 굳은 입술을 어거지로 비틀자, 쩌적 갈라지며 새로운 피가 새어 나왔다. 아르타니아는 흐르는 핏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얼마 만에 흘리는 피인가. 어지간한 공격이 아니면 피는커녕 생채기도 안 났던 그녀에게 '피'란  나라의 이야기였다.


"인정 못 하면 어쩔 겁니까."

퀭한 눈을 올리자 짜증스러운 파르시히의 얼굴이 보였다. 찌그러진 냄비를 들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만 푹푹 쉬던 그는 쭈구리가  아르타니아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더니, 멋대로 업어버렸다. 순식간에 높아진 높이. 아르타니아를 짐짝처럼 들쳐맨 파르시히는 묵묵히 어딘가로 향했다.


순간 자신을 해코지하는  아닐까 싶어 몸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짜증 가득한 그의 얼굴은 그대로였으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었다. 아르타니아는 창피했고, 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르타니아 님! 하면서 빌빌거렸던 반푼이 악마였는데….


아르타니아는 분노를 담아 발버둥 쳤다.

"이거… 놔."
"…."

파르시히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인간 소녀보다 못한 몸뚱어리의 발버둥이 먹힐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타니아는 최대한 살의를 담아 말했지만  또한 무시했다. 파르시히의 침묵은 비수가 되어 아르타니의 정신을 난도질했다. 제발. 그러지 마. 속으로 아우성쳐도 파르시히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이 뛴다. 조용히 두근대는 심장박동 소리. 너무나 선명해, 자신의 심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동떨어진 심장 소리가 아르타니아의 귀를 후벼 팠다. 이어 들리는 발소리. 파르시히의 구두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또각, 또각. 아르타니아는 요란한 소음 속에서 눈을 감았다.


가빠지는 호흡.

몰아치는 호흡 한 번에, 밑바닥에 꼭꼭 숨겨놓았던 절망을 두른 붕대가 벗겨진다. 아르타니아는 절망의 편린을 엿본 것만으로 토악질이 올라왔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자신은― 더는 늪지대의 여왕이니 대악마니 하는 존재가 아니다.


평범한.
아니 그보다 못한.
인간.
그 이하의―…



"인정… 하라고?"


뿌득. 이를 간다. 끔찍한 피 맛이 입안에 퍼졌다. 인간을 조리해 먹을 때와 달리 비릿하고 쓰기만 했다. 아르타니아는 파르시히의 옷깃을 쥐며 비통함으로 소리쳤다.

"그딴 거… 그딴 거!!!!"

입을 크게 벌리고―


-꽈아아악!!


"큭!"

가까스로 몸을 비틀고, 다시 잡으려는 손길을 피해 목덜미를 깨문다. 파르시히는 목을 파고들어 오는 날카로운 이에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쿵. 하고 울리는 둔탁한 충격음. 아르타니아는 돌조각과 먼지투성이인 바닥을 기어가더니, 이내 무너진 기둥을 붙잡고 일어섰다. 비틀거리는 몸. 하지만  눈 만큼은 불타올랐다.


"…난 인정  해."


파르시히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아르타니아를 지켜보았다. 그는 답답함에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결의에 찬 눈동자를 보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르타니아는 쉬어버린 목을 무시하고 피를 토하며 말했다.

"네가… 네가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분노에 젖은 입술을 핏물로 빛내며 말했다.

"…그대로 두고 가."


인간과 악마들의 눈을 피하며 비참한 삶을  바엔 차라리 과거의 영광에 취한 채로 죽겠다. 그대로 늪지대 지하에 처박혀 유명을 달리하겠다. 고통을 인내하며 언젠가 필 꽃을 기다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버틸 정신도 없었고. 파르시히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르타니아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죽을 겁니다."

미련한 걱정에 눈을 감고 체념한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떨리는 고개 사이로 방울진 눈물이 떨어졌다. 그간 죽여온 인간들의 피보다 진한. 악어의 눈물. 아르타니아는 떨리는 숨을 내뱉고. 기둥에 등을 기대어 주르륵 주저앉았다. 멍하니 올려다보는 천장은 오늘따라 높아 보였다.


"그냥… 가버리라고."

그게 날 위한 거야. 피 끓는 목소리.

단 두 걸음의 거리였다. 딱 두 걸음만 걸어간다면 그녀에게 닿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파르시히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고작해야 두 걸음이지만, 그 걸음에 담겨있는 의미는 결단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아르타니아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까지 손을 뻗어야 할까.

이 걸음이 당신을 위한 걸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다 포기하고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가슴을 가득 채우는 아쉬움에 쉽사리 등을 돌리지 못했다. 대체 어디서 또 이런 악마를 만날 수 있을까. 파르시히는 다시 찾아올 고독에 몸서리쳤다.


이종족 혼혈이 으레 그렇듯 한쪽 집단에 완벽하게 속할  없는 몸이다. 당장 엘프들만봐도 하프 엘프는 별개의 종족으로 취급한다. 아집과 욕망이 그득그득한 악마 사회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임프들과 섞이기엔 키가 너무 컸고, 악마들과 어울리기엔 약했으며, 또 온전하지 못했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 요리라는 취미는 고독을 가속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혼자 요리하고 혼자 처먹는 것에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요리를 남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임프들은 요리를 가져다주면 접시째 씹어먹는 멍청한 놈들이었고, 악마들은 혼혈과는 말도 섞기 싫다는 듯 마법부터 날려댔다.

그러던 와중 겨우 날 알아주는 악마를 만났는데― 다 포기하고 돌아가라고?

파르시히가 택한 답은 간단했다.

"하하… 아르타니아 님!"

우스꽝스러운 라디오 소리가 성채를 채운다. 쾌활한 목소리. 아르타니아는 한쪽 눈을 찡그리고 파르시히를 바라보았다. 그는 활짝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그녀가 바라는 대로 동정은 담지 않았다. 평소대로의 쾌활하고 재수 없는 어투로 자신을 포장하며 옷을 가다듬었다. 머리는 한 번 풀고, 제대로. 똑바로 묶었다. 잿빛 얼굴의 혼혈 악마. 반푼이. 임프와 떡을 친 병신같은 악마의 산물… 아르타니아가 자신을 부르는 수많은 별명이 머리를 스쳤다.

"아직 식사는 끝나지 않았답니다!"

파르시히는 쓸만한 무기를 뒤지던 중, 오븐 안에 있던 찜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오븐째로 날아갔지만, 탄력 있는 자궁 덕에 속 안의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제 요리고 뭐고 의미 없었다만 먹으려면 먹을 수 있었다.

몸을 돌려 엉망이 된 주방으로 향한다.  처참한 꼬라지를 보자 억지로 웃고 있었던 미소가 절로 내려갔다. 파르시히는 아차, 하더니 곧바로 입꼬리를 올렸다.


거꾸로 뒤집힌 오븐을 연다. 엉망이  찜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원형은 유지하고 있는, 먹으려면 먹을 수 있는 음식물. 차마 음식물 쓰레기라곤 말하지 못하겠다. 깨진 접시를 걷어내고 새로운 접시를 꺼낸다. 아직 아공간에 남아있던 기본적인 도구들.


지극히 간단한 조미료와 소스를 꺼내어 정성 들여 장식했다. 그러니 생각보다 모양은 잘 나왔다. 파르시히는 한 손에 요리를, 다른 한 손엔 망가지지 않은 의자와 탁자를 들곤 아르타니에게 향했다.

"자아아!! 아르타니아 님!! 못 다한 요리를 가져왔습니다!!"


능숙하게 자리를 세팅한 파르시히는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


기둥에 기대어 숨만 쉬고 있던 아르타니아와 눈이 맞는다. 그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게슴츠레 눈을 뜨고 식사 테이블만 멍하니 바라봤다. 파르시히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아르타니에게 다가갔다.

"아르타니아."


단 두 걸음의 거리.
그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드시지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요리밖에 없었으니.


뻗은 손을 바라보는 아르타니아의 얼굴은 복잡미묘했다. 입만 뻐끔거리며 괴상한 신음만 내고 있으니 꼴이 퍽 우스웠다. 그렇게 뭘 말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러워하던 중.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식어 냄새가 날아간 음식에 억지로 향을 주입한.
지금까지 해온 요리 중 가장 형편없는.
그런 요리의 냄새가.



"왜…."

눈물이 흐른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눈물이.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거야…."

차라리 내 머리를 철퇴로 내리찍었다면. 그대로 분풀이 삼아 곤죽으로 만들었다면. 그게  마음이 편할 거다. 지금까지 욕만 하고 노예처럼 부렸는데… 화풀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그게  마음이 편하단 말이야. 아르타니아는 파르시히의 손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

파르시히의 배려는 오히려 극독이 되어 작용했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저딴 반푼이에게 동정받는 현실이 너무 비참해서. 그대로 다시 쭈그리가 되려던 때였다.

-탁.

"어, 으?"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무언가가 자신의 손을 붙들었다. 악마 특유의 차가운 촉감. 파르시히의 손이었다. 아르타니아는 충혈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파르시히를 바라보았다.


"아르타니아."


장난기 없는 진지한 목소리.


"아무것도 아니라뇨?"

그리고 살짝 화가 난 듯한 목소리.


"아르타니아. 내 첫 번째 손님…. 저는 당신이 강해서 아래에 빌붙어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요리를 좋아해주기에 당신 곁에 있는 거지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다. 제 유일한 손님인데 그럴 리가요! 그러니 나의 특별한 행운. 그리고  모든 것. 아르타니아. 일어나세요. 제 요리를 먹고 미소 짓는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평소라면 오글거린다고 뒤통수 한 대 후렸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는데 어떻게 고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런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오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아르타니아는 떨리는 목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말했다.


"정말… 그거면 돼?"
"예. 그거면 됩니다."


망설임이 없는 대답이라 더욱 애절했다.

"…."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상처투성이인 연약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의자에 앉는다. 늘 그랬듯 파르시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요리에 대한 설명도 열심히 경청했다.

조교 당하듯 오랜 시간 요리를 받아왔던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아르타니아는 이런 자신의 모습에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는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혀를 깨물어 자살해버릴까.
하지만.


"자아. 그럼… 흐음. 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부정적인 생각은 파르시히의 다정한 얼굴을 보자 사르륵 녹아 없어져 버렸다.
아르타니아는  간질거리는 감정의 충동에 또 한 번 깨달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 *




그렇게  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실베흐린 대삼림에서 카라고리 꽃의 뿌리를 구할 겁니다. 육수를 내기에 제격이라고 하더군요. 인간들 사이에선 없어서 못 쓰는 재료라고 합니다."

검은 테일 코트를 입고 얼굴 전면을 덮는 가면을  키 큰 남자.
그리고 그 옆에서 큼지막한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청순한 금발 머리의 여성.

조금 많이 기괴한 조합의 두 인간― 아니 두 악마는 자신들의 거처였던 늪지대를 버리고 새로운 모험을 향해 떠났다.
둘은 놀랍게도, 집을 떠난 이후  한 명의 인간도 죽이지 않았다.
뿔이 꺾인 아르타니아의 입맛이 인간에 가까워진 것도 있었지만 파르시히는 본인이 먹을 요리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파르시히."

아르타니아는 바람에 흩날리는 원피스 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지도에 머리를 처박고 방향을 가늠하던 파르시히 앞에서 까치발을 들고 시선을 마주 봤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리며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시선에 슬며시 웃은 아르타니아는 검지로 지도를 스윽 내리곤, 정면으로 그를 바라봤다.
파르시히는 커다란 가슴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무엇을요?"
"몰라서 물어? 식재료를 찾아서 모험을 떠난다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이제 장거리 공간 이동도 못 하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나야 지치면  아공간에 들어가 쉬면 되지만…."
"후후. 그런 거였습니까."


아르타니아는 머리 위 모자를 매만지며 말했다.

"농담 아니야. 그보다 내가 전에 말했던 건 기억하고 있어? 슬슬 정착하자는 소리 말야."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린 뿔의 단면은 황금색 머리칼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머리를 헤집지 않는 이상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모자를 쓴다면 더욱 요원했고. 겉으로 보기엔 가슴 크고 순박한 시골 처녀의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마주친 인간 대부분 눈치채긴커녕 아르타니아의 출중한 미모에 자지만 껄떡였을 뿐이었다. 참고로 그놈들은 파르시히가 곤죽으로 만들어주었다.


문제는 파르시히의 잿빛 얼굴색.

"얼굴이 흉측해서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인간들은 많으니 괜찮으니까… 아. 그게, 네 얼굴이 흉측하다는 게 아니고…."


말실수를 한 듯 안절부절못하며 변명한다. 아르타니아는 그저 단둘이서 오붓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요리를 끝마친 파르시히에게 수고했다며 안아주고 싶었다. 저 큰 키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뺨에 입술을 맞대고 싶었다.


…물론. 밖으로 나서고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말이다.


"아르타니아."
"응?"

번쩍.

"꺄, 꺅?!"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들려진 아르타니아는 파르시히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며 발버둥 쳤다.  발버둥에 커다란 유방이 그의 상반신을 짓눌렀다. 몸과 몸이 맞닿는 접촉. 창피함에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진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렇그렇 맺히기 시작했다.

"우선, 사과의 말부터 드리겠습니다."


파르시히는 그딴 건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말했다. 사실, 가슴이 너무 커서 균형이 앞으로 쏠린 것이지 스킨십은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으무, 무무므뭐?"


껴안는 힘이 강해졌다. 아르타니아는 서늘하지만 확실하게 전달된 체온에 어버버거리며 몸을 움찔하고 떨어댔다.


"요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말았군요."

포근함에 떨림이 잦아든다. 아르타니아는 약에 중독된 것처럼 몽롱한 표정을 짓고 제멋대로인 포옹을 받아들였다. 이어 뒷머리를 내리 쓰는 손길에 감전이라도 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팔은 어깨를 휘감고, 다리를 꺾어 갈고리처럼 허리에 건다. 그의 몸에 매미처럼 들러붙은 아르타니아는 달뜬 숨만 계속해서 내뱉었다.


파르시히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애정의 감정을 품은 대악마의 모습을.

"그리고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이기적 욕망으로 점칠된 제 여정에 어울려주셔서…."

지금까지는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 손님을 건드는 요리사라니. 있을  없는 일이잖는가. …라고 자위하며 필사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애정을 갈구하며 점점 지쳐가는 아르타니아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본디 죽으려 결심한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자신이었다.

"아르타니아."


그러니까.

책임을 지려 한다.

"사랑합니다."



들이키는 헛숨. 아르타니아는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가 가질 않은 듯. 간헐적으로 팔다리를 부르르 떨며 끊어진 신음만 흘렸다. 그 상태로 수십 분. 파르시히는 지친 기색 없이 매달린 그녀를 지탱해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가 품에서 내려왔을 때.


"왜… 왜…."

가슴에 머리를 묻으며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말하는 거야 바보야…."

인적 하나 없는 푸른 초원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남녀는 사랑을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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