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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던전 어택 (4) (51/193)



〈 51화 〉던전 어택 (4)

미궁을 공략하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길을 밝힐 지도와 랜턴? 아니면 고립을 대비한 식량? 음. 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아무래도 기본적인 실력이 없으면 여러모로 난감하겠지.

미궁은 변수가 많으니까.

운명의 신이 장난스레 주사위를 굴리듯, 아무리 만전의 준비를 하더라도 한 방에 훅 가는 곳이 미궁이다. 누가 설치한 건지 모를 온갖 함정들은 물론이고 미궁의 몬스터들은 기습을 전제로 모험가를 공격한다. 눈치 없고 약한 놈들은 중심부에 진입하기도 전에 다 도륙 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변수는 인간이니―


 번이고 당해놓고, 이제 와서 이런  하기엔 조금 늦은 않은 감이 있지만, 미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적은 인간이다.


그중에서도 '기회'를 노리는 놈들이 제일 위험했다. 그들은 무언가의 기회를 위해서라면 모르는 이의 목숨은 물론이고 동료까지 팔  있는 놈들이니까. 기회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의외로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것일 수도 있다.


인간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 미궁은 물론이고 일상까지 통용되는 흔하디흔한 이야기.

그래서.

나도 조금의 준비를 하려 했는데.


"다 합쳐서 70 쿠퍼라네."
"잠시만요…… 아."


텅 비어서 먼지만 날리는 주머니. 허리춤에 찬 돈주머니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시발… 양아치 새끼들.'


눈에 담배빵 맞으면서 신나게 강간당할 때 뜯겼었지. 모험가 패는 기적적으로 남아 있었다만, 이걸로 뭘 살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주인장에게 죄송스러운 표정을 짓고 다음에 사겠다고 말했다.


"저런. 소매치기라도 맞았나 보지?"
"…그렇게 됐네요."
"조심하라고 아가씨. 여긴 관광 도시인 만큼 좀도둑이 득실거리니까."
"충고 감사합니다."

차라리 소매치기라면 잡아 족칠 수라도 있지.

즐기는 건 좋았으나 역시 이게 문제였다. 후드남에게 당했을 때도, 산맥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돈을 가지고 다녀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골이 아팠다. 하긴. 따먹고 죽여버릴 건데 돈을 그대로 두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결국, 나는 빈손으로 거리에 나왔다. 마법 능력이 워낙 사기라 맨몸으로 진입해도 공략은 물론이고 미궁째로 쳐부숴 버릴 수는 있다만 그건 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고 미궁에 들어간 마법사  명. 하물며 등급은 F급. 누가 봐도 초보티가 팍팍 나는데 그냥 내버려둘 리 없잖아. 다시 말하지만 미궁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인간이다. 악마 못지않은 욕망 덩어리란 말이다.

피학 욕망 맥스. 상상하는 것만으로 다리 사이가 젖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 팔다리를 꺾고 강간한다 해도 볼 사람도 없고, 눈과 이를 뽑고 장난감으로 사용해도 뒤처리는 몬스터들이 해줄 테니 그야말로 범죄자의 천국이 아닌가.

'돈부터 벌어야 하나….'

 행복을 겪을 수 없다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초조해졌다. 반면 돈 쪽으로는 별걱정이 들지 않았는데, 큼지막한 몬스터 하나 때려잡으면 무지하게 벌리기 때문이다. A급 상위 몬스터 머리 한 번 따면 은화 20개 정도일까. 몬스터가 있는 곳까지 가기가 귀찮을 뿐이지, 갈무리한 재료를  때 곤란이 있는 거 빼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팔 때는 마탑 명의로 팔면 되고…'

분수대에 걸터앉아 차후 계획을 짠다. 가끔 튀는 물방울이 더위를 식혀주어 생각하기가 좋았다. 여담으로 분수대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나를 쳐다봤는데,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좋았다. 나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예쁘긴 하네.'


관광 도시로 설계된 만큼 건물의 설계가 난잡하지 않고 조화로워 인공미를 자아냈다. 또 이게 다가 아니다. 카할리아의 가장 큰 특징을 뽑으라면 대부분 도시 가운데 당당히 자리 잡은 대호수를 말 할 거다. 바다가 연상될 정도로 커다란 푸른 호수. 관광 도시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크기였다.

근데 몬스터 어디서 잡지. 여기 관광 도시잖아. 밖엔 끽해봤자 늑대 무리가 다일 텐데…. 아니 그보다 모험가 길드가 있기는 한가. 그렇게 여러 잡생각이 교차하며 머리를 달굴 때였다.

"…?"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린다.


"칼버드?"


슈리엘은 없고, 혼자 거리에  있는 노기사 칼버드. 그는 분수대에 앉아 우울한 얼굴로 고민하는 나를 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얼굴을 무표정으로 돌렸지만 이미 눈에 담긴 후였다. 칼버드는 우울한 내 얼굴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하고 있는 거지?"

노인의 눈은 언제 봐도 참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의 눈은 치기 어린 자들이 보지 못하는 깊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나는 음습한 욕망이 실수로라도 흘러나오지 않게 속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랬다간 곧바로 들킬 테니까.

"…조금 생각 중이었습니다."
"보아하니 돈 문제로군."
"경께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짓더니 허허, 하고 웃었다.

"같이 식사라도 하겠나?"
"괜찮습니다."
"내 그대가 어제오늘 입에 밥을 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굳이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네."
"…대행자 분께서는?"

노인네가  이리 주책일까. 호위 기사라며? 여기서 이래도 되는 거야? 말을 돌린다. 나는 슈리엘의 행방을 물었을 뿐이었지만, 그의 직무유기를 지적하고 있음을 그도 모르진 않을 거다. 칼버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주인은 공격대를 꾸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네. 나와 주인, 그리고 병사 둘. 총 네 명이지. 헌데 권장인수인 다섯을 채우지 못해 진입이 불가하더군."


진입이 불가능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칼버드는 내가 머리를 갸웃거리자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권고를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는 있다만, 좋은 생각이 나서 말이야. 마침 마법사가 필요했…"
"…생각 없습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만."

반사적으로 거절하긴 했으나 살짝 혹했다.


공격대라…. 머리를 차분히 하고 생각해보니 최악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  없어서 아무것도  하잖아. 파티도 없고. 귀족과 동행하는 것이 조금 디메리트긴 하다만 중간에 빠져버리면 해결될 일.


'괜찮은데?'


나쁘지 않은 계획 같다. 함정이나 고립 등의 이유로 파티에서 탈선하면 혼자 다닐 수도 있고. 저들이 구하러 오지 못하게 깊숙한 곳으로 빠져버리는 거다. 저들이 생각보다 강해 무사귀환 한다는 시나리오는 없다. 함정 정도는 내가 연출하면 되니까.

그러다 성격 나쁜 모험가 파티라도 만나면…

"하으…."
"왜 그러는가?"


아차. 나는 아랫배를 꾹꾹 누르며 저속한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칼버드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아랫배를 누르는 기묘한 모습에 눈을 꿈틀거렸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런 배려 안 해도 되는데….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니 잘 생각해보게나. 너의 불명확한 신분도 이미 확인이 끝난 차이니."
"확인이라뇨?"
"광장에 임시 모험가 길드가 세워져 있더군. 확인하는 김에 따로 조사해봤다만… 정말로 무고한 모험가였어."


그는 짐짓 놀란 채 말했다.

"이는 저번 무례에 관한 내 사과이기도 하다네. 모험가 유진. 부디 내 사과를 받아 줄 수 있는가?"

나는 움찔거리는 아랫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했기에 대충 고개를 주억였다. 망상도 병적으로 심해진 것 같았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으니….  본심이 얼마나 추한지 모르는 칼버드는 내 수락에 활짝 웃을 뿐이었다.











* * *

"어서오세요~ 루피나르 주점입니다~!"


대해양의 수룡 루피나르의 이름을  가게. 인기가 많은 가게인지 사람이 몰려있었다.

"여기 앉지."

칼버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다. 나는 대충 감사를 표하고 메뉴판을 훑었다.

과연, 수룡의 이름을 딴 만큼 액체와 관련된 메뉴가 많았다.

몬스터 고기를 이용한 스튜, 야채 스튜, 크림 수프 등 보편적인 메뉴부터 죽, 국수, 심지어 냉국도 있었다. 미역이나 오이 대신 '카나파' 라는 이 지역 특산물을 이용했지만 하여튼.

"나는 간단한 고깃국으로 하지. 마음껏 시키게나.  배를 채우려고 온 자리가 아니니까."

야채 스튜를 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스튜 두 그릇이 세팅되었다. 나는 가볍게 묵례를 하고 수저를 들었지만 그는 허허 웃으며 내가 먹는 모습만 구경하기만 했다. 그 꼴이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같아 예의상의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딱 봐도 만들어진 미소였으나 칼버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였다.
그렇게 식사 테이블의 웃음과 웃음이 오갈 때였다.

-쿵!


"칼버드으으으!!!!"

문이 거칠게 열리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주점을 가득 채운다. 순간 주점에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짧은 침묵이 생기고, 없어졌다. 동시에 시선이 쏠렸다.


"나한텐 그렇게 눈치를 주더니, 뒤에선 몰래 저 계집이랑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야? 응? 행복해 보여서 좋겠네? 누구는 공격대 짜고 물품 목록 정리하느라 피곤해 죽겠는데 말이야."


루셸리니…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눈동자. 비록 지금은 용암처럼 부글거리곤 있다만 여전히 아름다운 색채였다. 그는 내게 시선을 둔 채 칼버드를 쏘아붙였다. 그래서인지 나를 향해 책망하는 느낌이었다.


"도련님."
"주인."


목소리가 동시에 울린다. 우리는 불륜을 들킨 남녀마냥 시선을 주고받곤 침을 꿀꺽 삼켰다. 슈리엘은 그 모양새에 이를 뿌득 갈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어떻게, 어떤 이유에서 찾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으므로,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이런 나보다 먼저 행동을   칼버드였다.


"죄송합니다."


칼버드는 몇 초의 침묵 이후 그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 또한 상황을 벗어나는 게 우선인 듯했다. 슈리엘은 그가 무릎을 꿇을 줄은 몰랐는지 살짝 당황하며  발짝 물러났다.
그는 무릎을 꿇은 기사에게 성을 내긴 좀 그랬는지 원망의 대상을 바꾸었다.


"모험가 유진."
"…예."
"내 기사랑  하고 있던 거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범한 무례를 사과하겠다는―"
"그딴 걸 물어보는 게 아니야. 왜?"


'왜'라는 한 글자에 넘실거리는 감정의 격동이 느껴졌다. 불안했다. 다음 대사가 유추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흔하고 흔해서, 차마 닥치라고는 하지 못하는, 정말로 듣기 싫은―


"나는  되고 저 노인네는 되는 거야?"

그런 대사가.

"도련님."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 소리를 높일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금 저 귀족 놈은 날 좋아하고 있었다. 지금 슈리엘의 모습은 첫사랑을 빼앗긴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었으니까.

나와 슈리엘의 대치는 계속되었고 칼버드의 무릎은 땅에서 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무릎을 꿇는  보기 조금 흉해보여, 상황을 끝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공격대에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뭐?"

공격대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그의 눈동자에 파동이 일었다. 슈리엘은 입을 꾹 닫고 입술을 빠르게 핥았다. 나는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화火, 수水속성 마법에 능통하고 지도를 짤 줄 아니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빛의 구체를 만들  있으니 굳이 기름 등불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슈리엘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나와 칼버드를 번갈아 보았다. 이거. 다. 오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의미는 전달 됐으리라. 나는 저 노기사와 데이트 따위를  것이 아니라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는 전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칼버드가 말했나?"
"한 자리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

고민.
그리고 승낙.

"…따라와라."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무섭게 칼버드의 무릎이 땅과의 작별을 고한다. 나는 슈리엘은 보지 못하는 각도로 칼버드에게 미소 지어주었다. 그는 무릎에 뭍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내게 무언의 감사를 표했다. 뭐 이게 별거라고. 그냥  사준 대가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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