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막간 - 악마 사냥꾼
하얀 안개가 거두어졌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위장 결계에 막혀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탑의 모습이 호수 밖에서도 또렷이 보이게 된 것이다. 하늘을 뚫고 대호수 한가운데 당당히 솟은 탑의 자태는, 아름다운 카할리아의 풍경과 비교해 실로 이질적이라 모든 주민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카할리아의 주민들이 놀란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호수가 변했다. 도시의 상징이었던 호수가 변해버렸다. 푸르고 커다랗다는 장점밖에 없는. 그래서 더 아름답던 대호수의 색이 변했다. 끈적이는 짙은 군청색… 물이 파랗다고 호들갑을 떨면 정신병자가 따로 없겠지만, 이번 경우는 정도가 심했다.
분명 바닥이 보일 만큼 맑은 호수였는데… 땅은커녕 물고기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색을 띠었다. 물론, 영주가 도시의 주 수입원인 호수의 이상을 내버려둘 리 없었다. 영주는 곧바로 수질기사를 파견해 확인해보았는데, 사태의 심각성은 영주조차 놀라 자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마나'가 일렁였다.
물에 포함된 순수 마나 농도가 미친 듯이 높아져 버렸다. 평균 함유량이 1.5%에서 높아 봐야 3%를 웃돌던 것이 갑자기 31%를 넘어버렸다. 수질기사 목을 걸고 장담하건대 드래곤의 둥지를 가도 이 정도로 마나 함유량이 높은 물은 구할 수는 없을거란다.
이유는 하나였다. 유진이 최상층에서 대폭발을 일으킨 후. 탑이 마나를 흡수하다 못해 과부하가 된 시점에서 흡수보단 방류를 택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마나는 모두 호수 바닥으로 몰려들었고. 아크 메이지의 '모든'마나를 응축시켜 터트린 결과였다.
그와 함께 탑의 모든 기능도 정지했다. 칠흑의 탑은 다 타버린 숯처럼 하얗게 변질하였고, 입구는 사라졌다. 탑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탑이.
죽었다.
이 모든 일은.
대행자 슈리엘이 차원문을 넘어 1층으로 내려왔을 때부터 시작됐다.
슈리엘이 탑을 내려오기 직전 바깥세상에선.
대행자 구원 작전은 계속 실패해 어느덧 3차까지 이어졌고, 4차가 된 지금은 구원이라는 이름 아래 시체 회수를 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때였다. 노숙자나 다름없는 몰골로 조를 편성하고 있던 칼버드는, 강렬하게 느껴지는 마魔의 기운에 대검을 들고 즉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때. 탑의 입구가 닫힘과 동시에 생성된 차원문.
그 너머에서 검은 기운을 마구 흩뿌리며 걸어온 자는 무려, 자신의 주인 슈리엘 루셸리니였다.
"주이인!!!!"
칼버드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슈리엘에게 달려갔다.
"대행자가 생환했다!!!!"
생환生還.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혹시 몰라 준비해놓았던 사제, 성기사, 최고급 포션들. 일반인이라면 꿈도 못 꿀 호화가 슈리엘을 위해 모여들었다.
"…."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칼버드."
시간에 박제된 유진. 그녀를 품에 안은 슈리엘은 뭐라뭐라말하려던 칼버드의 말을끊었다. 순간, 칼버드는오한이 들었다. 주인이 주인 같지가 않아서. 아니―. 인간 같지 않아서. 그 냉랭하고 소름 끼치는 한마디에 입을 닥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주인의 명령을 듣기 위해 검을 거두었다. 슈리엘의 명령은 간단했다.
"살려라."
그녀를 살려라.
그러지 못하면 전부 죽여버리겠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런 눈동자는 익히 봐왔던 것이었으니까. 과거, 칼버드가 아직 젊어 세상을 떠돌아다녔을 때. 목이 잘린 동료를 들고 사제에게 매달리는 한 남자의 모습이 저러했다. 세상이 미워서. 세상이 미워서 모든 게 증오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눈동자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품에 안긴 모험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진 모르겠다만… 상처 입은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굳이 이유를 알고 싶지는 않았다. 전신화상에 오른팔이 산산조각 나고 가슴에 관통상까지 있었으나―'살아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으니까.
"전원!!!"
칼버드가 소리친다.
유진을 건네받은 그는 사제와 성기사들을 제외한 모든 전투 병력을 물렸다.
"치유 술식을 준비해라!!"
고위 사제 셋과 성황청 직속 성기사 다섯이. 이름조차 모르는 모험가 한 명을 위해 성역을 준비한다. 그렇게 호숫가 다리 위에서 성가가 울려 퍼졌다. 마나로 가득 찬 물의 수면이 신성력에 공명해 파동을 일으킨다.
성스럽고, 웅장했다. 사자死者조차 고개를 들고 미소 지을 광경은 성황청 신성 마법의 정수. 대행자 구원이 세 번이나 실패하자 작정하고 준비해놓은 그들이었다. 그들이 현세로 부른 신의 기적이 하늘 너머로, 단 하나의 인간을 위해 날갯짓한다.
"…."
그런 신의 비호 아래서.
슈리엘은.
속이 울렁거렸다.
*
내가 눈을 뜨자 보인 건 낯선 천장도, 모르는 공간도 아니었다. 그야 밖이었으니까. 밖인 것도 모자라 익숙하기까지 한 공간이었으니까.
나는 탑의 입구, 다리 위에서 눈을 떴다.
구름 가득한 창공과 하얗게 변해버린 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오른 눈이 떠지질 않았다. 아니, 떴는데…? 아. 눈이 타버렸구나. 입을 열려 해도 폐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왔다. 오른팔은… 부서졌구나. 하긴. 그 거리에서 터트렸는데. 하여튼 전체적으로 미칠 듯 아팠다.
"…."
그러면서도 포근한 기분이 드는 게… 드디어 내가 미쳐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치유 마법이었다. 그것도 성역을 펼치면서까지 나를 살리려 들었다. 이 포근한 기분은 신성 마법의 영향이리라. 하아. 이런 상황에서까지 흥분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보다…
성공, 했구나. 슈리엘.
"……?!"
노래하던 사제 하나와 눈이 맞았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주변인에게 손짓했다. 그러면서도 성가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노래하며 손짓하는 꼴이 조금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픽 하고 터져 나왔다. 노래를 끊으면 성역이 해제라도 되는 걸까. 성역은 뉘엿뉘엿 해가 져가는 저녁밤에도 빛을 잃지 않고 내 주변을 밝혔다.
그때. 사제와 성기사들 사이로 한 남자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를 보자 안도감이 몸을 휘감았다. 슈리엘이었다. 그는 죽음 직전에 이룬 재회에도 눈물 흘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히려 내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무릎 꿇고 질질 짜는, 그런 삼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행동을 했다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
"살았구나. 유진."
헌데, 목을 수차례 긁었는지 목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상처를 보자 고통도 잊고 얼굴을 찡그렸다. 포션도 널렸는데 왜? 그 상처에 대해 따지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왼팔을 뻗어 그에게 손짓했다. 누워있는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낮춘다. 나는 그의 목을 어루만지며 눈빛으로 따졌다. 이 상처는 대체 뭐냐고. 그는 황당한 얼굴을 짓더니 내게 역으로 따졌다.
"…눈을 뜨자마자 본 게 그것이냐."
…음. 조금 이상하려나. 그래도, 날 구해준 사람이 상처투성인데 신경 쓰이잖아. 그래도 뭐, 어련히 잘 하겠지. 슬며시 미소지은 나는 팔을 거두고 눈을 감…
"토벌은 실패했다. 미안하다."
…지 못했다.
다시 눈을 뜬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슈리엘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 이 꼴 되면서까지 악마를 조져놨는데, 놓쳤다고? 어떻게? 그를 책망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이다. 초근접 거리에서 터트렸는데, 그 상처를 가지고도 슈리엘을 압박했다고? 악마가 그렇게나 강했나?
내 의문의 절반은 그의 대답 하나로 해결되었다.
"악마가 하나 더 있었다."
"…."
그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내뱉었다. 그 악마가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얼마나 강한지는 상관없었다. 나머지절반의 의문. 나와 너는 어떻게살아있는 건가. 이게 중요했다. 악마를 둘이나 썰어버리고 빈사 상태의 나를 데리고 나왔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거래했다. 너의 목숨을, 그 악마의목숨과 거래했다."
"……."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널 버리고 갈 수 없었다. 악마 둘? 한 놈은 빈사 상태에, 한 놈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지. 하지만. 너를 살릴 수 있다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느냐."
"흐…."
"원망해라. 책임은 다 내가 지겠다. 불구가 되어버린 너도, 악마를 놓친 잘못도 모두. 다 내가 지겠다."
"…스리, 헤…엘."
억지로 쥐어짠 목소리.
"개…핸차, 나…요…."
괜찮다. 악마 사냥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일이다. 날 살렸으면 그걸로 된 거지. 무엇보다… 네가 죽지 않았는데. 그거면, 된 거지. 악마에게 당해 실컷 즐긴다는 변태적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게 생겼는데 왜 널 원망하겠느냐.
고통은. 너는. 내게 새로운 길을 밝혀주었다. 때로는, 타인의 고통을 짊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고통이 내게 속삭인다. 드디어, 변했구나.
웃는다. 내 미소에 그도 웃었다.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며, 그 이상의 눈물은 흘리지 않으며, 크게 미소 지었다. 나는 뺨에 흐르는 작은 물방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 *
"팔은 괜찮나?"
슈리엘이 나를 부축하며 마차에 태운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어 하나만 남은 왼팔을 그의 몸에 걸고 마차를 탄다. 그렇다. 나는 외팔이가 되었다.
성역을 설치하고 무려 여덟 시간 후. 다행히 실명되었던 눈은 회복되었다. 두 다리도 멀쩡히 붙었고. 오른팔은 어쩔 수 없었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팔을 쑤욱 자라나게 할 수는 없잖는가. 나중에 재구축하면 되겠지 뭐.
-덜컹, 덜컹…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새벽이다. 나는 새벽 공기를 가로지르는 마차의 진동 속에서 눈을 감았다. 마주앉은 칼버드, 내 옆의 슈리엘. 첫 만남 때와 똑같은 배치. 고작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인데 흐릿하게 기억되며 향수 비스름하게 다가왔다.
"유진. 뒤처리가 끝난 후엔 무엇을 할 거지?"
"…."
슈리엘이 물었다. 나는 왼쪽 눈만 가늘게 떠 시선을 돌렸다.
지금 우리는 '뒤처리'를 위해 루셸리니 백작가를 경유해 성황청에 들를 예정이다. 악마 토벌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내가 빠지면 안 되니 일단은 따라가기로 했다. 다른 귀족들을 만난다고 하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슈리엘과 같이 지내다 보니 귀족에 대한 편견도 많이 수그러져 괜찮아졌다.
그보다 조사가 끝나면…?
음… 생각해본 적 없는데.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할 건 있었다.
"굳이 목표를 잡자면, 그놈들을 추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놓친 악마를 말하는건가?
"예."
내 마법이 통하지 않는 악마라니. 처음이었다. 아무리 마법사의 이성을 죽여놔도 나는 결국 마법사라는 걸까. 경각심보단 호기심이 들끓었다. 만나고싶다. 만나서 연구해보고 싶다. 악마를 사로잡아 사지를 결박한 다음 세포 하나하나 분해하며 분석하고 싶다. 내 호기심을 풀고 싶었다.
"악마를 잡겠다고?"
슈리엘은 묘하게 기쁜 안색이었다.
내가 악마를 잡는 거랑 무슨 상관― 아. 얘 악마 사냥꾼이었지.
"그거 우연이군. 나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
"난 누구한테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그렇습니까."
젠장. 잘못 걸렸네.
"일단은, 백작가에 도착하고 나서 얘기하도록 하지. 만찬을 대접할 테니 부디 거절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제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저는 천한 평민인데.
반사적으로 그런 말이 나오려 했을 때였다.
"그만."
슈리엘은 삐진 얼굴로 내게 투덜거렸다.
"내가 널 인정하는데 누가 감히 널 무시할까. 그러니 천한 평민이니 비루한 모험가니 하는 말은 더는 하지 말아라."
"…."
"알겠느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슈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