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루셸리니 (7) (72/193)



〈 72화 〉루셸리니 (7)

과거의 나는 분노하는 법을 몰랐다. 아무리 심한 모욕을 받아도, 내 얼굴에 침을 뱉어도. 짜증으로 그칠 뿐 진정으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억지로 화를 낸다고 바뀌는 건 없었으니까. 그럴 시간에 색다른 자극을 찾는 게  바람직했다. 제국을 뒤집어버릴 힘이 있다 한들 세상만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어디에 쓰리.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화를 내는 방법을. 힘을 쓰는 방법을.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하이라크를 바라봤다. 임신 사실을 알면  죽이려  거라고? 해봐라. 되는지. 웃는 미소에는 느껴지지 않는 살의가 담겨있었다. 슈리엘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목을 따버리는 건데…. 손짓 한 번이면 터져 죽을 나약한 놈. 저놈의 체내 마나를 흔들기만 해도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질 것이다.

"하."

맥빠진 웃음소리. 하이라크는 썩소를 지으며 내 눈빛을 받아냈다. 익숙했다. 슈리엘이 어디서 그런 기분 나쁜 웃음을 배웠나 했더니, 저놈에게 배운 거였어.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지요. 천한 평민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하이라크의 약을 올린다. 뒷감당? 뒷감당은 내가 아니라 저놈이 해야겠지. 나는 주제 파악을 아주 잘했다. 지금 발톱을 숨겨야 하는 놈이 누구인지도 아주  알았다. 배를 가르라 명령하기만 해봐라. 그 순간 갈라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네 목이다.


하이라크는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불규칙하게 숨을 쉬었다. 당황이 섞여 있었다. 그는 반격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천천히 단어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걱정이 하나 들었다.

"로드 루셸리니."


그가 선을 넘어버리면.

"그 말은 부디 뱉지 말고 담아두시길 바랍니다."

진짜 죽여버릴지도 몰라서.


"……."

최후통첩. 그가 느끼는 공포는 착각이 아니다. 나는 투명하고 날카로운 마나의 실을 뽑아내 하이라크 주변을 에워쌌다. 내가 손을 당기면, 그는 187조각으로 토막 난다. 보지 못하니 이를 눈치챌 일은 영원히 없을 테지만, 감은 좋은 모양인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

그의 마지막 선택은, '입을 닫는다'였다. 잘했다. 여기서 자존심을 내세우려 했으면 바로 전쟁이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귀족에게 칼을 들겠다.


하이라크가 입을 닥치자,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사를 이어갔다. 슈리엘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는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이지 박장대소를 하며 킥킥 댔다. 슈리엘의 반응을 보아하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같았다. 무슨 무슨 죄로 날 벌하려 들어도 그가 막아주리라 믿고 있다.


귀족과 평민의 기 싸움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식사 테이블에서 팃포탯 생사결을 찍을 수도 없는 노릇. 먼저 백기를 든 건 하이라크였다. 순식간에 본래의 품위를 되찾은 그는 짧은 코웃음 이후 묵묵히 식사를 이어갔다. 차려진 음식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생각한다. 이제 어떻게 할까. 말로는 아이를 지웠다 했지만 그가 곧이곧대로 믿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수를 쓰겠지. 성황청으로 떠나기까지 3일. 그때까지 버티든가, 먼저 선수를 치든가.


슈리엘은 하이라크가 나를 죽일 것이라 했지만, 정말로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당장 성황청으로 떠나야 하는데 미쳤다고 내 몸에 칼을 들이대겠나. 대신  아이를 없애려 들겠지. 이건 슈리엘과 따로 얘기해보자.


식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이세계에 떨어지기 전에도 소식가였다. 테이블에는 입도 대지 않은 음식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일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덥잖은 생각만 줄기차게 하며 나이프를 놓자, 슈리엘과 하이라크도 기다렸다는 듯 식기를 내려놓았다. 칼버드의 말마따나 나를 위한 대접이었다.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루셸리니의 자제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식사의 끝. 형식뿐인 감사를 한다. 하이라크는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거센 눈빛을 보냈다. 그 기세는 슈리엘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인사를 받지도 않고 말했다.


"…너는 네 말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무게라. 내가 지금까지 감당하고, 버린 것들의 무게를 알면 무슨 소리를 할지 심히 궁금했다. 바다에 물  방울 떨어트린다고 티가 나나.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제가 무게에 짓눌릴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

말이 없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꺼내기로 했다.

"루셸리니에 영광을."
"…루셸리니에 영광을."











* *

식사 후.

슈리엘의 집무실로 가기 전.

나와 슈리엘은 하이라크 몰래 밖으로 빠져나와, 저녁에 만났던 미로 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완전히 어둑어둑해진 미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래서 온 거니까.

슈리엘은 정원 깊숙한 곳, 시간이 늦어 정원사도 없는 장소에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자연스러운 스킨십. 적응은 한참 전에 해서 거부감은 없었다. 나는 말없이 그에게 안겨 몸을 기댔다. 이렇게 몸을 기대면, 한쪽 팔이 부족해 어긋난 무게 중심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편안했다.


"그놈이 그렇게 당황할 줄이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별거 아닙니다."

슈리엘은 자기 형이 그렇게 당황하는 건 난생처음 봤다며 몹시 흡족해했다. 당연히, 내가 그를 죽이기 직전까지 갔다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말해봤자 좋을 거 없다. 대충 말을 흐린 나는 급히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오늘 제 편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뭐가?"
"팔 없는  제 잘못이 아니라 했잖아요."
"아, 그거 말인가. 고작 그거 가지고 뭘 새삼스럽게."


귀족 된 몸으로 모험가를 변호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그럼에도 날 위해 분노해주어 고맙다. 별것도 아닌 사소한 한마디지만 그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폭발했을지도 몰랐다. 가뜩이나 임신한 상태다. 요동치는 감정을 제어하려면  노력만으론 부족했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머리칼을 부비며 얕은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서로 몸을 비비려 정원을 찾아온 게 아니다.
고백할  있었다.


"슈리엘.  말이 있어요."
"…말해라."
"제 신분만 해결되면, 문제없는 거죠?"

나는 이제 힘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아이도 가졌는데 평생을 F급 모험가로 살 수는 없잖아. 애한테 아빠 얼굴 보여주려면 적어도 동등한 위치까지는 가야 하지 않겠나. 내가 그와 같이 살 수는 없어도, 당당하게 아빠를 밝힐 수 있을 정도면 된다.

평민의 몸으로 귀족과 버금가는 명예를 얻는 방법은 신분제 사회 치고 다양했다. '재능'이라는 조건이 빡셀 뿐이지 루트 자체는 차고 넘쳤다. 마탑, 용병, 심지어 천시받는 모험가까지. 능력만 있으면 무엇을 못하리.


물론 백성의 90%가 그 '재능'의 벽을 넘지 못해 범인에 머물지만, 내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아크 메이지인데 뭘. A급 혹은 S급에 준하는 대형 마물들을 잡아 족치면 고등급 모험가도 어렵지 않았다. 그마저도  된다면, 마탑에 올라가 대마법사의 자리를 차지하면 되겠지.


그때.


-꽈아악!

"으븝?!"


내 말을 들은 슈리엘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탓에 고개를 뗄 수 없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탁탁. 그의 옆구리를 온 힘을 다해 친다. 힘이 실린 팔짓은 분명 둔탁한 타격음까지 내며 그에게 충격을 주었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고 더 세게 끌어안았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푸하흐…!"

정말로 질식해서 죽어버린다는 착각이 들었을 때. 그는 손을 놓았다. 나는 그의 가슴에 침을 질질 흘리며 숨을 토해냈다. 곧잘 느꼈던 고통의 몽롱함이 급습한다. 약에 취한 사람마냥 흐리멍텅해진 눈은 쾌락의 증거였다. 미끈거리는 액체가 비부 사이를 흐른다.


"도, 도려님, 이게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게 너무 기특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냥 하는 말이, 하으, 아니라. 진심입니다. 후으… 제게 삼 일만 주면 바로-"
"안다. 그리고 나도 진심이고."


-탁.


"히읏?"
"이렇게 유혹하는데, 버틸 수가 있어야지."

옷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손톱자국이  정도로 강하게 가슴을 움켜쥔 슈리엘은 억지로 입을 벌려 혀를 집어넣었다. 살이 찝히는 고통에 눈물이 찔끔 났다. 저항은 하지 않았다. 그냥, 올  왔다는 생각만 들었다. 쌓이고 쌓여 결국 풀리지 못했던 음습한 애욕이 나를 향한다.

"츄븝… 휴으읍…"


이러려고 밀회를 한 아닌데에… 키스를 하면서 속으로만 투덜거린다. 그렇지만. 속마음과 달리, 강압적으로 당하는  기분은 좋아서. 밀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어울려줬지. 피가 나올 정도로 가슴을 주물럭거린 슈리엘은 30초나 넘게 혀를 섞었다. 입안에 고여 넘어가지 못한 투명 끈적한 타액은 붉은 입술을 타고 주룩주룩 흘렀다.


"하, 힉, 흐. 도, 도련님. 하, 하다못해 집무실에서어…."
"원래 그럴 생각이었다만, 불허한다. 너무 오래 참았어."


-찌걱!


속옷을 옆으로 밀어낸 슈리엘은 좁은 분홍빛 균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두터운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굽힌 그는 힘을 주어 질벽을 긁어댔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힘이 풀린 다리는 몸을 지탱하지 못했고, 이윽고 주저앉았다. 손가락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악순환. 힘이 풀릴수록 손가락은 깊게, 더욱 깊게 들어왔다. 나는 멍청하게 침만 흘리며 얼빠진 신음만 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너무 좋았다.


"흐이잇, …히긱?!"

절정.
나를 수도 없이 범한 그는, 어디를 자극해야 물을 뿜는지 나보다  알았다. 그런 그의 손놀림을 버틸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새하앴던 속옷이 애액으로 얼룩진다. 야외에서 절정했다는 부끄러움과, 애무를 1분도 버티지 못했다는 수치심이섞여, 더욱 음란한 물을 만들어냈다.

"벌써 가다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하읏, 하아…."


어느새 벨트를  슈리엘은 엉덩이에 자지를 꾸욱꾸욱 누르며 압도적인 크기를 과시했다. 커다란 막대기가 엉덩이 골 사이에서 움찔거리는  느껴진다. 오랫동안 참은 그의 자지는 평소보다 더 사나웠다. 수차례 강간으로 기억한 슈리엘의 자지. 보지 않아도 길이나 두께를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제 주인이 누군지 기억한 마조보지는 기쁘다며 물을 흘려댔다.


하지만 드물게, 쾌락을 앞서는 걱정이 하나 있었다. 아이. 이대로 자지를 처박으면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몰랐다. 2주라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마차에서 한 섹스는 문제가 없다는 소리.   섹스한다고 애가 죽을 것 같진 않았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몰랐잖아. 그때 괜찮았다고 지금 섹스도 괜찮을까?

"슈, 슈리에엘… 그, 그만. 그마안…."
"아이를 걱정하는 건가?"
"헤, 헤엑… 녜헤에… 흐, 흐읏. 졔바. 부탁, 햘게요…."

아무리 고통스러운 플레이를 해도 기쁨의 눈물만 흘렸던 내가, 서럽게 울며 부탁했다. 슈리엘은 내가 이렇게까지 애원하자 짐짓 고민하는 척했다. 삽입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 좋은 생각이 났다."

또, 좋은 생각인가. 정말이지. 그가 좋은 생각이라 말한 것 중에 진짜 좋은 건 단 한 개도 없었다. 나는 그가 무슨 기행을 할지 전전긍긍하며 몸을 경직시켰다.

-찌븝!

"햐으읏?!"

슈리엘이 자지를 밀어넣은 곳은 엉덩이었다. 보지가 아니라 엉덩이. 그는 관장하지 않았음에도 속까지 깨끗한 아크 메이지의 항문을 탐했다. 자궁구에 막히면 더는 삽입이 불가했던 지난날의 섹스와 다르게 항문성교는 막힘이 없었다. 윤활제는 필요하지 않았다. 자지를 보지에 비벼 바른 애액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평소에 사용하지 않은 곳인 만큼 갑작스러운 삽입에 충분히 반응하지 못했다. 허락하지 않은 불청객에 괄약근이 수축한다. 단숨에 뿌리까지 삽입한 슈리엘은 애액이 마르기 전에 피스톤질을 이어갔다.  슈리엘은 질보다 두세 배는  조이는 압력에 큭, 하고 짧게 비명 질렀다.

-부르르릇!!


"햐, 햐읏, 흐극. 히읏.…!"

나를 들고 박던 그는 3분  되지 않아 사정했다. 엉덩이를 지탱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직장을 타고 올라오는 정액은 뭐라 말하기 힘든 감각을 선사했다. 기분 나빴다. 질내사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쾌락, 그리고 수치심.

"후우…."

슈리엘은 자지를 처박은 채로 호흡을 돌렸다. 3분. 짧았다. 그러나 나는 그를 감히 조루라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자지는 아직도 힘을 잃지 않았다. 그의 정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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