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거짓 선지자 (4) (80/193)



〈 80화 〉거짓 선지자 (4)

―그날 떠오른 '빛'을  적이 있는가?

루셸리니 령은 '2지구 외곽 증발 사건'으로 모든 정보기관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몇 없는 신문사들이 유례없는 특종을 놓칠 리 없었고, 이게 어찌나 심한지 길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주우면 예외 없이 '특보! 2지구에서 일어난 대폭발!' 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을 정도다. 멀리 가지 않고 거리 게시판만 봐도 볼 수 있었으니 루셸리니의 주민들이 모를 수가 없었다.

사건의 여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외곽이 아무리 손을 놓은 지역이라 해도, 엄연한 루셸리니가 지배하는 곳이자 언젠가는 개발될 땅이었다. 그런 땅이. 폭발과 함께 2지구 외곽 삼 분의 일이 싸그리 증발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폭발보다 그날 떠오른 빛에 주목했다. 새하얀 빛무리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어둠.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해수 속에서도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찬란한 빛. 마법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저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의문은 자연스럽게 '누가 그런 짓을 벌였는가?'로 귀결됐다. 그날의 빛을 목격한 유일한 마탑인 백색 마탑은 극도로 흥분하며 공고했다. 그 빛을 일으킨 마법사를 찾아오는 자에게 백지 수표를 주겠다고.

그리고 사건의 조사는 모두.
대행자 슈리엘 루셸리니의 몫이었다.

"대체 어디를 싸돌아다녔길래 이 꼬라지가  거야?"

슈리엘은 녹아내린 땅덩이를 보며 기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폭발 직후 가장 먼저 정보를 전달받은 곳은 당연히 백작가였다. 폭발 이후 10분 만에 모든 정황을 파악한 하이라크는 슈리엘을 대리인 삼아 파견했다. 슈리엘은  이딴 일에 자신이 나가야 하냐며 투덜거렸지만, 당장 출격할 수 있는이가 자신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다.

허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슈리엘은 보고를 받았을 때부터, 이 거대한 폭발의 범인이 유진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하고 있었다. 무덤덤하게 팔을 재생시킨 그 날의 모습은, 그녀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마법사라고 말해주었으니까. 그러니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칼버드.  보이는  있나?"
"…지금으로선 보이는 게 없습니다."

녹다 말아 굳어버린 돌조각을 발치에서 털어낸다. 지표면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 뜨끈한 흙을 밟고 폭발의 중심지로 나아간다. 하지만 오러 나이트 둘이 온 신경을 쏟아부어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폭발의 근원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슈리엘은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이만 복귀하시죠. 더는 건질  없습니다."
"…잠깐만."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슈리엘은 익숙한 마나의 향을 느꼈다. 자신과 수도 없이 몸을 섞은 그녀의 향기가. 유진. 유진의 마나가 이곳에 존재한다. 슈리엘은 씨익 미소 지으며 마나의 향을 따라갔다.

"아니. 있다. 무언가가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슈리엘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마나에 냄새가 난다고 했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을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칼버드는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유진과 몸을 섞은 적도, 유진이 사용한 마법의 극의를 본 적도 없었으니. 그 모든 것을 가까이에서 목도한 슈리엘만이 느낄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따라간다. 마나의 향을 따라갈수록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지만, 마땅한 소득은 없었다. 슈리엘은 답답했다. 이곳에 유진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나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 중심부 주변을 맴돌던 슈리엘은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

무언가가 가로막는 듯한…
중심부에 다가오지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그런가.'

유진이 설치한 인식 저하의 결계.
간파했다. 정신을 집중하자 조금 전까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희미한 실선들… 슈리엘은 미궁에서의 감각을 최대한 살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에서 배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법. 선을 따라간다면 앞으로 나아갈  있을 것이다.

'이쪽… 인가?'

칼버드는 허공에 손을 올리며 허우적대는 주인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주인?"

꼴사나운 모습으로 허우적대기를 몇 분. 칼버드는 주인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생각해 억지로라도 끌고 가려고 했다.

그 순간.

"…주인?!"

칼버드는 눈을 크게 뜨고 주인이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슈리엘이 사라졌다. 그 어떤 기척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렸다.

"이게 무슨…."

대행자 슈리엘.
그는 아크 메이지의 결계를 뚫고 내부로 진입했다.




* * *

마을 주민은 총 일곱 명이었다. 이들을 원래 몸으로 되돌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을 재구축하는 것보다 쉬웠다. 시작은 클라라, 루리였다. 둘이 한몸이 된 만큼 분리하는  가장 어려웠지만, 정신을 보존시켜 고정하니 반으로 갈라도 죽지는 않더라.

"루리!"
"언니!"

과거의 몸을 되찾은 어린 자매는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껴안기를 반복했다. 보기에 무척 흐뭇했으나 지금의 나는 그딴  느낄 겨를이 없었다. 후딱 끝내고 셰멜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급하게 재구축을 하면 몸이 썩어버리는 부작용이 있어 필연적으로 시간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후회가 들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아이가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그냥 이들이 처형당하든 말든 갔어야 했는데. 괜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후회와 별개로 약속은 약속이었다. 약속을 저버리고 떠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을 배웠다.

그리고 저들의 선망의 눈길을 보아라. 날 신처럼 보고 있다. 이 기적과 같은 권능을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오해하든지 말든지.


웃기게도, 나야말로 거짓 선지자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게 엎드려 절하는 자매를 무시하고 다음 주민을 부른다. 두 명, 세 명, 네 명. 천천히 몸을 재구축하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준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와 같이 신중하게, 또 조심스럽게.

―쩌적.

"…?"

그때.
결게에 이상 신호가 들어왔다.

'들어왔어? 누가?

헤리엇의 결계를 배끼긴 했어도 출력 자체가 다를 텐데.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지간한 실력자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할 위력의 결계였다. 다음 주민을 부르려다 말고, 신호가 울린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구냐. 신전에서 나온 조사대인가? 여차하면 결계 밖으로 내쫓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신호로 다가간다.

그런데, 결계 안으로 들어온 자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슈리엘."
"역시. 너였구나. 결계라니. 재밌는 짓을 했어."

슈리엘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의 얼굴을 보자 긴장감이 훅 하고 풀려버린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휙 몸을 돌렸다. 어떻게 들어왔느냐 따지는  나중에도  수 있었다. 지금은 주민들의 몸을 되돌려주고 셰멜을 만나는 게 급선무다.

그는 내 퉁명스러운 반응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그러다 곧, 바뀌어버린 몸을 보고 당황하며 침을 삼켰다.  손으로 움켜쥐기 딱 좋았던 가슴은 작은 키와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커다래졌고, 골반은 음란함이 전보다 강해졌다. 땅딸막한 키에 앳되고 귀여운 얼굴은 그대로인지라 남자의 음심을 마구 자극했다.

불건전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도 내 몸이 음란하게 바뀌었음은 자각하고 있다. 비율적으로 완벽한 몸이었는데 여기서 가슴까지 더 커져 버린다니. 허나. 결계 안에서 '그럴' 생각은 없을뿐더러 시간도 부족했다. 나는 슈리엘의 생각을 읽어, 그가 말하기도 전에  잘라 거절했다.

"그럴 시간 없습니다 도련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제가 도련님 곁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속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할 말이 없어진 그는 저 너머의주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클라라와 루리 이후로 세 명을 복구해주었으니  다섯 명이 복구가 되었다. 슈리엘은 아직 복구되지 않은 세 명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번에 처형된 사교도들이군. 사로잡은 건가?"

주민들의 시선이 슈리엘을 향한다. 그들의 눈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모르는 이의 등장. 그것도 검을  채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혼란에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슈리엘은 그 일련의 움직임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는지 검을 뽑아들고 저들에게 겨누었다. 나는 검기를 뿜으려는 슈리엘을 막곤 신경질적으로 명령했다.

"검을 거두세요. 저들은 죄인이 아닙니다."
"오늘따라 사나워. 무슨 일이라도 있나? …네 몸을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다만."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잠자코 기다리기나 하세요. 도련님."

목에 힘을 주며 끝말을 강조한다. 슈리엘은 내 따가운 눈초리를 받곤 얌전히 닥쳤다. 진즉에 그랬어야지. 아이의 정확한 생사를 모르니 굉장히 예민해졌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자꾸 투덜댄다. 하아. 짧게 한숨  나는 주민들을 진정시키고 재구축을 이어나갔다.

다시 집중에 들어간다. 슈리엘은 괴물 형상의 주민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난 네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라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신전에 보고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말해봤자 미친놈 취급받을 게 뻔한데 내가 왜?"
"…."


* * *

2지구 외곽 폭발 사건은 헤리엇의 소행으로 일단락됐다. 마을 주민들과 입을 맞춘 것도 있지만, 슈리엘이 나서준 것도 크다. 지금 슈리엘은 외곽 증발의 뒤처리를 위해 백작가로 복귀했다.

내가 없애버린 외곽도 엄연한 루셀리니의 땅일 텐데, 정작 슈리엘은 별생각 없는  같았다. 어차피 영지 관리는 자기가 아니라 장남인 형이 해야 된다나 뭐라나. 자기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를 배웅한 나는  더 밖에 있겠다고 말했다.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리하여 신전.
세례의 장.

나는 주민들의 몸을 모두 재구축하곤 곧바로 세례의 장으로 달려왔다. 슈리엘이 말하길, 셰멜도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복귀했다 했으니 여기서 기다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주민들의 감사 인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그들의 몸을 재구축했다고 어디서 떠들어대면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지만, 씨발. 어쩌라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빨리. 셰멜을 만나고 싶었다. 빨리.

―까득. 손톱을 씹는다. 불안했다. 일분일초가 영겁 같았다. 손톱 물어뜯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려다본 손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더 물어뜯을 손톱도 없어 생살을 짓이기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유진 자매님. 안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셰멜의 목소리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진홍색의 머리칼.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거구. 셰멜이 보였다. 왜 이제야 온 거야. 속으로 안도한다. 셰멜은 엉망이 된 손가락을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성장하신 것 같군요."

그녀는 특히 커다란 가슴에 시선을 두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돈주머니를 건네며 재촉했다.

"탄생의 축복. 빨리. 돈은 드릴게요."
"…."

느닷없는 재촉에 당황하지 않은 그녀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셰멜의 눈이 하얗게 빛난다. 성물화. 하얀 눈 위로 검은 정십자가 새겨진다. 축복의 시작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결과를 기다렸다.

"…?"

셰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흔들림이 너무나 불안했던 나는  쉬는 것도 잊고 셰멜을 바라봤다.

"…10주? 아니, 11주?  짧은 사이에 무슨 수로?"
"그, 그게 아니라. 아이는 괜찮아요?"
"…."
"네, 네?"
"진정하세요 자매님.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극도로 불안해진 나를 진정시킨 셰멜은 차를 건네며 의자에 앉았다. 나는 맛대가리 없는 차를 들이켜며 숨을 내쉬었다. 호흡 곤란이 진정된다. 떨림이 잦아든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셰멜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비친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아이는 정상적으로 자란 게 맞습니다. 무언가의 이유로 시간이 조금 당겨진 듯한데… 오히려, 그래서 더 신기합니다. 몸의 절반 이상이 마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
"마치 정령 같군요."

정령이라니?
 정지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령… 이라뇨?"
"더 놀라운 건, 태아가 자체적으로 보호막을 둘렀습니다. 자기 보호를 위해 그런 건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마법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태어나기도 전에 마법을 배우는 종족은…"

셰멜은  힐끗 처다보더니 의심스러운 눈길로 말을 이어갔다.

"…엘프나 드래곤 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몸의 긴장이 확 풀린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나는 쥐꼬리만 한 목소리를 쥐어짜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아, 아이는. 건강한 거 맞죠?"
"건강하다 못해 죽기는 하는지 의심이  정돕니다. 자궁에 극독을 쏟아부어도,배에 칼을 찔러도 죽지 않을 겁니다. 아마, 모체가 죽어도 알아서 성장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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