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93)

  숨이 거칠어진다. 정액이 손에 달라붙는 감촉은 끔찍했지만, 그걸 덮을 정도로 강한 수컷의 냄새가 암컷의 몸을 자극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유두와 애액으로 흥건해진 침대보는 부정할 수 없는 흥분의 증거였다.

  ―잘했어요! 세르티의 응원이 들려온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경청하며 천천히 얼굴을 내렸다. 갸름한 턱날에 귀두가 닿으며 아찔한 정액 냄새가 코안에 스며들었다. 뇌가, 망가진다. 냄새만으로 절정할 것 같았다. 세르티는 추잡하게 물을 흘리며 눈을 떼지 못하는 내게 명령했다.

  "그대로 입을 맞추세요. 올려다봐 시선을 맞추는 것도 잊지 마시고."

  ―츄읍. 앵두 빛 입술에 정액 뭍은 귀두가 닿는다. 슈리엘은 누워 있어 올려다본다 한들 시선을 맞출 수는 없었지만, 꽉 쥔 주먹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행위로 흥분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실이 묘하게 만족스러워 다시금 귀두에 키스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결국 자극을 못 참고 허리를 세운 건 슈리엘이었다. 이제야 시선이 맞는다. 나는 헤 웃으며 슈리엘을 올려다봤다.

  나는 이어진 세르티의 조언대로 입을 최대한으로 벌리고, 혀는 쭉 내민 채 귀두를 삼켰다. 내보내지 못한 정액이 흘러나오며 입안을 더럽힌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켰다.

  "츄읍… 후읍…."

  이가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혓바닥을 이용해 기둥을 감싼다. 입이 작아 절반도 삼키지 못했으나 청소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

  혀를 굴릴 때마다 비릿한 정액이 목을 찌르며 들어왔다. 정액이 목에 달라붙어 숨쉬기가 힘들었지만 펠라를 멈추진 않았다. 열심히 물건을 빨고, 삼켰다. 눈은 탁해져 맛이 가버렸다.

  이 모든 게 달콤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혐오감이나 거부감은 완전히 증발한 지 오래였다.

  다시 올려다본 슈리엘의 얼굴은 전보다 풀려 있었다. 짜증 가득한 특유의 표정을 그대로였지만… 내 머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도 청소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머리에 손이 올려졌다. 슈리엘은 붉은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으며 손을 놀렸다.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듯한 행위에 또 한 번 발정한 마조 몸뚱어리는 더 많은 손길을 갈구하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흐븝…?"

  위쪽 청소가 다 끝나갈 때, 슈리엘은 돌연 손의 힘을 더했다. 지금도 겨우 절반 삼킨 건데, 더 들어오면 청소는커녕 혓바닥을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건 내 사정일 뿐. 슈리엘은 발버둥을 무시하곤 그대로 자지를 처넣었다. 목울대가 튀어나온다. 순식간에 목구멍까지 처박힌 자지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목젖을 찔러댔다.

  "끄흡, 으끄흡…."

  이건, 좀. 위험한데. 경험이 있어 봤자 박히고 잘리는 것밖에 없는 내가 목에 자지를 처박고 숨을 쉬는 법 따위 알 리 없었다. 세르티라면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었다. 뿌리까지 들어간 슈리엘의 자지는 숨구멍을 단단히 틀어막았고, 한계를 넘은 삽입은 고통을 유발했다.

  "…대행자?"

  세르티는 손발을 경련하며 꺽꺽대는 날 보더니 안색을 굳혔다. 그녀도 내가 펠라 초보자인 걸 알고 있을 테니,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리라. 그렇지만. 내심 막지 않았으면 했다. ―죽기 직전까지 장난감처럼 써줬으면. 하는 더러운 본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뇌를 더럽혔다.

  ―대행……엘…!

  소리가 옅어진다. 눈앞은 흐려지고, 감각이 사라져 간다. 이 세상에 목구멍과 자지만 존재하는 듯한, 몸이 분리된 느낌과 약간의 부유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머리에 경종이 울린다. 위험하다고.

  ―…리엘!

  빨리. 빼지 않으면.

  죽을 텐데.

  기분, 좋아서. 그냥.

  ―슈리엘!

  "케흑, 케흡! 끄흣…."

  귀를 찌르는 커다란 외침과 함께 흐릿해진 세상이 돌아온다. 눈을 뜨면, 나는 정액 웅덩이에 코를 처박고 있는 한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목에 자지가 처박혀서, 기분 좋은…

  "유진, 괜찮아요?"

  "우, 흐에?"

  …막았구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아쉬움이 들었다. 좀만 더, 그대로 뒀으면… 으음. 그랬으면 죽었겠지. 세르티가 구해줄 걸 알아서 그대로 있던 것도 있었다.

  "미안해요. 제 불찰이었어요.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 대신 대행자께서는… 더 강력한 '정화'가 필요할 것 같네요."

  웃는 얼굴엔 분노가 깃들어있었다. 세르티는 간단한 클린 마법을 이용해 나를 씻겨주었고, 슈리엘 옆에 가지런히 눕혔다. 침과 정액 범벅이었던 얼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하얀 피부를 되찾았다.

  다시 정화 작업이 개재된다. 분노한 세르티는 조금의 강제성을 추가해 슈리엘을 쥐어짰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슈리엘이 날뛰지 않게 꼭 끌어안아 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두꺼운 팔에 얼굴을 파묻곤 작게 속삭였다.

  "저기… 슈리엘…."

  "…."

  "정화가, 끝나면…"

  "…."

  "…다시. 해볼래요? 지금보다 더, …난폭하게."

  "…."

  내게 눈을 돌린 슈리엘은 순식간에 눈동자를 거두어버렸다. 의도적인 무시라 느껴질 수도 있었으나, 무언의 허락이 담겼음을 알 수 있었다. 곧 찾아올 쾌락을 상상하니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슈리엘의 손으로 자위하며 정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 *

  사실, 세르티가 입에 정액을 담아냈을 때부터 정화는 끝이 났었다. 정화의 조건은 몸을 섞는 것. 굳이 아랫구멍에 막대기를 쑤시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가령, 키스라든지.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나는― 그냥 무덤덤했다. 화낸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고, 화낼 일도 아니었다. 그녀가 말하길 굳이 섹스까지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남자들이 키스만으로는 만족 못 하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발기된 채 돌아가는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슈리엘은 이 두 가지 전부 해당하지 않았지만… 침묵 마법으로 입이 닫힌 대행자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무엇보다.

  정화가 끝났다고 달아오른 내 몸까지 식혀진 건 아니었던지라… 약까지 먹였으면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책임은 슈리엘이 대신 져주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난폭하게. 나는 그렇게 세 시간을 침대 위에서 헐떡였다. 세르티는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은 거 맞아요…?"

  목을 조르고, 팔다리를 꺾고, 마구 두들겨 패는 난폭한 섹스를 모두 지켜본 세르티는 질린 눈을 지었다. 당연히. 하기 전에 허락을 구했다. 느닷없이 마조섹스를 하면 세르티가 슈리엘을 죽여버릴지도 몰랐다.

  이걸 설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통스러울수록 올라가는 입꼬리와 애액을 싸지르는 내 몸이 증거인데 어쩌겠나.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내 성 취향을 이해해주진 못했다. 존중은 하되 이해까지는 못하겠다, 라고 하던가. 나도 내 파멸적인 취향을 이해해주길 바라진 않았다.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나만 좋으면 된 거지. 그녀도 남의 성 취향에 간섭할 생각은 없었는지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었는지 드문드문 조언을 해주었는데, 덕분에 배운 게 많았다. 대부분 창녀가 배우는 밤기술이었는데, 슈리엘을 도발하거나 할 때 유용했다. 좀 더 여자다워졌다고 해야 하나.

  별개로 질식 펠라를 하면서 숨을 쉬는 방법은… 솔직히 쓸모없었다. 그럼 질식의 메리트가 없어지잖아.

  "그래도, 자제해주세요. 설마 매일 그러는 건 아니겠죠?"

  세르티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슈리엘 등 뒤로 숨어버렸다. 등판 너머로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렇게 바라보니 마음이 아픈 걸…. 나도 내가 한심한 건 충분히 알고 있지만, 참아서 병 드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충고는 슈리엘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슈리엘. 심마가 정화되었다고 해도 완전한 건 아니에요. 한 번 싹이 튼 마기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마련. 뭐, 어련히 잘하실 거라 믿고는 있지만…"

  세르티는 뒤에 숨은 날 끄집어내더니, 두 손을 잡고 미소 지었다.

  "대행자께서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게, 곁에서 노력해주세요. 알겠죠?"

  ―가는 길 세상에 빛 밝히길 축원祝願하오니 영원한 천상 행복을 위해 그 칼 빛내리로다. 성전사의 축복을 내린 세르티는 이 외에도 기타 잡다한 축복들을 걸어주었다.

  음란하기는 해도 신관은 신관이었다. 신에게 몸을 맡긴 자. 그녀에게 축복을 받으니 한결 개운해진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무슨 효과가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 답했다.

  "좋아요. 그러면 당장 출발할 건가요? 아니면 내일?"

  마침내 대삼림으로.

  문밖으로 나서기 전 슈리엘에게 묻는다. 침묵 마법에서 벗어난 슈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장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밥은 먹었으니 식사는 사양하겠습니다."

  "매정하기는. 당신은 교단에 단 하룻밤도 묵은 적이 없어요. 알고 있나요?"

  "입을 틀어막고 덮치려는 사람과 함께 밤을 지새우는 취미는 없는지라."

  싹퉁바가지 없게 대답한 슈리엘은 뚜둑,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턱을 쥐었다. 너무 오래 침묵 마법을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세르티는 그런 슈리엘을 보며 조곤조곤 말했다.

  "정화 작업에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 그리 마음 쓰진 마세요. 그리고 시녀 아가씨에게도 꼭 필요해 보였던 걸요."

  "…."

  ―사랑해요. 애써 잊고 있던 흑역사가 다시금 떠오른다. …죽을까. 그냥. 자살 충동이 밀려왔다. 더 생각하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던 나는 슈리엘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이끌었다.

  …묘하게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 * *

  성황청은 각 신전으로 통하는 포탈이 존재했다. 우리는 그 포탈을 이용해 실베흐린으로 떠날 것이다. 아쉽게도 돌아오는 건 직접 마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이 포탈은 일방통행이다. 초장거리 이동 술식을 신전마다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해는 갔다.

  "축복의 지속시간은 삼 주에요. 그사이에 해결하지 못했다면 후퇴하세요. 이건 명령이에요."

  "하…. 충분합니다."

  "농담 아니에요. 삼 주가 넘는 시점에서 연락이 없다면 곧바로 다른 대행자를 파견할 거에요. 앙그리드랑 그렇게 싸워놓고 얼굴 볼 자신 있어요?"

  "대체 언제적 일을…"

  세르티는 공간 이동 마법진을 준비하며 경고했다. 목적지는 실베흐린 대삼림 부근에 위치한 성 마이할 신전. 아인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지어진 신전이었다.

  "모두 준비는 됐나?"

  슈리엘은 마법진 위에 선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따로 짠 수색조였다. 그는 단체 행동을 그리 달가워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 넓은 대삼림을 나와 슈리엘, 칼버드 셋이서 조사하긴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들을 데리고 뭉탱이로 다닌다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나, 슈리엘, 칼버드 이렇게 셋이서 움직이고 다른 조는 악마의 흔적을 추적하며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방식이다.

  ""예!""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추적 대상은 지명 수배된 쌍둥이 악마 코르딜, 포르딜. 과거엔 대행자라는 결전 병기가 없어 충분한 대처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행자는 같은 팀이라는 사실만으로 사기를 올려주는 존재였다.

  ―…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세르티는 우리를 떠나보내며 눈을 감았다.

  마법진이 빛난다.

  세상이.

  일변한다.

  세상이 뒤집히고 점차 원래의 빛이 돌아온다. 우리가 눈을 뜨면 어느새 널찍한 방에 도착한 후였다. 새하얀 대리석, 신을 형상화한듯한 동상. 곳곳에 종교적 양식이 뭍어나는 장식물들을 보아하니 세르티가 말한 성 마이할 신전인 듯했다.

  "이건 언제 타도 어지러워."

  슈리엘은 속이 울렁거리는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동감, 이에요."

  나는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러워 죽겠다. 악마한테 납치됐을 때는 그나마 좀 나았는데, 그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하니 몸에 부하가 갔다. 혹시나 해서 옆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병사 대부분이 토를 하거나 어지러워하고 있었다. 토사물 냄새까지 더해지니 더 혼란스럽다.

  "허허. 언젠가 익숙해질 겁니다. 주인."

  그 난장판 가운데 칼버드만이 멀쩡히 서 있었다. 오래 살면 이런 것도 익숙해지나. 가진 힘에 비해 연륜은 부족한 편이라 이런 건 잘 모르겠다. 나는 대충 속을 갈무리하곤 마력을 끌어올렸다. 언제나 유용한 클린 마법이다. 기다리면 병사가 치워줄 테지만, 둘러보니 바닥을 치울 걸레도 없어 보였다. 그럴 바엔 후딱 끝내는 게 나았다.

  ―환영하오!!

  병사들이 싸지른 토사물을 클린 마법으로 없애고 있자니 멀리서 커다란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어찌나 큰지 신전 천장이 울릴 정도였다. 나는 한손으로 귀를 막고 슈리엘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구죠?"

  "…교구장이다. 아마."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발소리에 집중한다. 바닥이 쿵, 쿵, 하고 울린다. 땅을 울리는 발소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지지 않아 크고 둔탁했다.

  "성 마이할 신전에 온 걸 환영하오! 어디, 몸은 괜찮소?"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등장한 이는 딱 달라붙는 사제복을 입은 거구의 남성이었다. 키가 2미터는 돼 보여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올리니 열혈적이게 생긴 얼굴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풍성한 머리칼, 삐죽 튀어나온 동물 귀가 보였다.

  "아인이군요."

  아인亞人.

  몰아치는 태고의 본능을 이어받은 자들.

  인간처럼 생겼으나 결코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심장에는 황야를 달리는 맹수의 발톱이 숨어있다. 그리고, 엄연히 식인을 하는 종족이었다. 인간은 물론이고 다른 종족까지. 인간과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법으로 금지는 되었지만, 인간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등의 본능은 아직 남아있다.

  "아인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지어진 신전이니까. 교구장이 아인이면 더 효과가 좋다고 생각한 거겠지."

  교구장이 하하 웃자 천장이 다시금 떨렸다. 슈리엘은 익숙한 듯 귀를 막았다.

  식성을 제외하고 아인들의 특징을 뽑자면, 머리털이 굉장히 풍성했다. 겨드랑이같은 민감한 부위는 인간과 같지만, 머리털이 미친 듯이 빨리 자랐다. 한 달만 내버려둬도 어깨를 넘길 정도다. 이는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교구장만 봐도 사자 갈기처럼 풍성한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두 번째는 피지컬이 인간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그래서일까, 마나를 각성해도 오러로 발현하는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즉, 마법사가 적다. 엘프가 수인들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물론 이게 꼭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세계의 전투에선 마법사의 존재는 반필수이기도 했으니까. 교구장은 기다란 꼬리로 바닥을 쿵, 하고 때리더니 슈리엘에게 말했다.

  "연락은 한참 전에 받았다오. 듣자하니 악마를 추적한다고?"

  "쌍둥이 악마 코르딜, 포르딜. 악명은 자자하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교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아인들에게도 악명 높은 놈들이지. 듣자하니 카할리아에 다시 나타났다고 하던데…"

  "피해를 입은 후 이곳으로 도망쳤다고 추측 중이다. 수사에 협조 바란다."

  "물론이오. 아, 그리고 대행자."

  교구장은 사람을 시켜 묵직한 주머니를 수십 개씩이나 가져왔다. 금속이 찰랑대는 소리가 들려 돈주머니인 줄 알았으나, 울리는 소리가 살짝 달랐다. 동전은 아니었다.

  "요즘 엘프들의 움직임이 어수선하오. 보이는 엘프마다 독초라도 처먹었는지 얼굴이 험악하기 그지없으니, 만에 하나 벽 밖으로 나온 엘프를 발견하면 괜히 자극하지 말고―"

  투둑. 주머니 끈을 뜯는다.

  "이걸 건네시오."

  "…뭐지?"

  "엘프와 친구가 될 때 꼭 필요한 물건."

  주머니 안에는 이상하게 빛나는 금속쪼가리들이 한가득하였다. 수상해 보여서 바로 분석해봤으나 마력이 감도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슈리엘은 알고 있는지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파르늄 아닌가? 드워프들이 환장하는 물건을 왜 엘프에게 건네지?"

  "곧 방벽 보수 기간이니도 하니… 줘서 미움받을 일 없으니 그냥 건네시오. 내 장담하겠소."

  슈리엘은 "벌써 보수 기간인가." 라고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세상의 엘프가 금속을 좋아하던가? 나는 칼버드의 옆구리를 찔러 몰래 질문했다. 슈리엘은 병사들을 나눠 수색 구역을 배정하느라 질문을 받을 틈이 없었다. 칼버드는 내게 눈을 돌리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제국 밖으로 나간 적이 있나?"

  "음. 아마도, 없어요."

  "그럼 기다리게나. 나가보면 알 걸세."

  그냥 말해주면 안 되나.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꾹 닫기로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봐서 이해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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