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93)

  산 채로 요리된 적은 있어도 산채로 씹어 먹힌 적은 없는데…. 살짝 호기심이 끓었다. 다만 그러기엔 슈리엘의 눈치가 보였다. 법으로 금지된 일이기도 했고. 무고한 아인 하나를 범죄자로 만들면서까지 쾌락을 추구하기엔 양심이 찔렸다.

  '…고민되네.'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난폭한 섹스도 좋지만, 가끔은 원초적인 고통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제 이런 기회를 얻겠는가. 아인들의 나라에 왔으면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글쎄.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다.

  ―툭.

  무표정을 연기하며 속으로 망상 회로를 굴리고 있을 때, 옷자락을 붙잡은 손길이 느껴졌다.

  "으음?"

  "저기요."

  머리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삼각형 귀, 다리까지 내려와 끌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다란 회색빛 머리칼. 꼬리는 회색빛과 검은색이 섞인 줄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라쿤?"

  눈 주변이 화장이라도 한 듯 검은 걸 보면 딱 봐도 라쿤이었다.

  "라-쿠니 족을 아시나요? 라-쿠니 족을 아는 인간들은 흔치 않을 텐데…"

  스스로를 라-쿠니 족의 자랑스러운 건아라 밝힌 아인은 조금 어려 보이는 남자애였다. 헌데, 앳돼 보이는 얼굴과 달리 키가 무척이나 컸다. 슈리엘보다 살짝 작은 정도. 나는 슈리엘에게 눈빛을 보내곤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부르셨죠?"

  "혹시 숙소를 찾으시나요?"

  숙소라. 털 안 날리는 숙소를 찾고 있기는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가 큰 라쿤 소년은 숙소를 찾는다는 말에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저희 여관 어떠세요?! 무려! 욕탕과 세탁소까지 준비되어 있답니다!"

  욕탕과 세탁소? 그거 좀 혹하는데. 욕탕이 겸비된 여관은 흔치 않다. 슈리엘과 칼버드도 의외라는 듯 흥미의 눈길 보냈다. 우리는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라냐는 어디든 상관없어 보였다.

  "좋아요! 분명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옆에 계시는 엘프 분을 위한 채식 식단도…"

  "틀려. 난 고기 좋아해."

  "…뭐라고요? 아, 흠. 아무튼."

  …육식 하는 엘프라.

  하긴 나무 베고 방벽도 짓는 엘프들인데 육식한다고 뭐라 할 사람이 있겠나.

  * * *

  "포르딜. 더 흡수했다간 엘프들이 눈치챌 거야."

  "…알았어."

  철판 긁는 듯한 쇳소리가 목 밖으로 나온다. 포르딜은 몸에 두른 붕대를 새것으로 갈며 대답했다. 이 이상 땅의 정기를 흡수했다간 이변을 알아차린 엘프들이 추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넓게 돌아다니며 들키지 않게, 야금야금 갉아먹어야 했다.

  물론 지금도 추격당하고는 있지만… 세계수가 마기를 지워버려 구체적인 위치를 특정 당하지 않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멍청한 나무 같으니라고. 하지만, 마기가 지워진다는 건 곧 힘을 쓸 수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포르딜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두른 붕대. 눈과 코를 비롯한 구멍이 뚫린 부분을 제외하면 모든 부위가 붕대로 감싸져 있었다. 붕대 위로 걸친 옷만 아니었다면 흡사 미라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 붉은 머리 계집….'

  탑 최정상에서 맞은 공격이 아직도 낫질 않았다. 마기를 봉인 당하는 것과 신체 치유가 늦어지는 건 하등 상관이 없는데 왜. 추방진언 속에서 어떻게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는 둘째 쳐도, 그년의 공격엔 분명 신성력이 담기지 않았는데 어째서.

  코르딜이 시공간을 동결시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흉측하게 타버린 피부까지 돌려놓을 순 없었다. 붕대를 잡아당기면 진물이 뭍은 붕대가 늘어지며 떨어진다. 붕대 아래 녹아내린 피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뒤틀려 기괴하게 변해갔다.

  포르딜은 시력을 잃은 코르딜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런 동시에, 터무니없이 깊은 자기혐오에 빠졌다. 

  속으로 속삭인다. 아아. 코르딜, 코르딜. 너의 텅 빈 두 눈에, 빛을 잃은 너의 세상에, 나는 정말 이기적이게도 안심해렸단다. 네가 내 흉측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너에게 이런 나를 보이지 않아도 돼서, 내 마음을 내비치지 않아도 돼서, 조금은 기쁘단다.

  그리하여 다시금 속삭인다. 이렇게 된 건 다 내 힘이 부족해서라고. 뭘 기뻐하고 있는 거냐고. 자기 혈육을 사랑하는 마음은 깊고도 진해 그 이상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부끄러움. 포르딜 앞을 보지 못하는 코르딜에게 굳이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콰직! 코르딜은 삐쩍 말라 비틀어진 풀을 밟으며 중얼거렸다. 정기가 빨려 생기를 잃어버린 풀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바스러졌다.

  "당초 세웠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엘프들의 땅에서 개화해도 문제는 없겠지."

  개화.

  하늘에 증오의 꽃을 피울 것이다. 지금까지 모은 모든 정기를 대가로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일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서로를 증오하게 될 것이다. 현세에 지옥을 현현시킨다. 혼돈. 이들은 오직 혼돈만을 바랐다.

  추방진언을 뚫고 공격을 날린 규격 외의 존재로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렸으나, 전체적인 뼈대는 멀쩡했다. 탑에서 모았던 정기는 아직 남아 있으니까. 코르딜은 말라 비틀어진 땅을 보며 속삭였다.

  "…재밌겠네."

  혼돈에 빠질 세상이 너무 기대됐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열이 오른다. 처음엔 눈을 앗아간 인간들에게 복수하고자 이런 일을 벌인 것이었지만, 악마 특유의 가학심은 감출 수 없었다. 막상 개화의 끝이 다가오자 복수심보단 흥분감이 몸을 지배했다.

  "개화가 끝나면 바로 도망칠 거야?"

  포르딜이 묻는다. 그 붉은 머리 계집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년은 미친년이다. 여러 의미로 말이다.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추방 진언을 설치한다 해도, 그때처럼 압도적인 마나로 폭발을 일으키면 진짜 죽을지도 몰랐다. 코르딜은 불안에 빠진 포르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동안 조용히 살아야겠지. 그리고."

  "그리고?"

  "그 붉은 머리 인간. 다른 악마들을 시켜서라도 죽여야 해. 그러니 다른 동포들에게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야. 우리 힘으로는 부족하니까."

  악마는 극도의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행동하기에 협력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찾아볼 수 없지만, 모든 악마가 위협당하는 상황이 온다면 일시적으로나마 힘을 합쳤다.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가 나타나거나, 지금처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이레귤러가 악마를 사냥하러 다니는 경우.

  "무시하고 살아간다는 선택지는?"

  "도망쳐봤자 다시 인간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면 언젠간 마주치게 될 거야. 그 마법사랑 싸워서 이길 자신 있어? 아니면, 그때처럼 동굴에 처박혀 몇 년을 살고 싶은 거야?"

  "…."

  포르딜은 몸을 떨었다. 그년의 얼굴을 생각할 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와 맞먹는 공포가 몸을 잠식했다. 몸이 산채로 타오르는 고통. 눈을 감으면 그때의 고통이 생생하게 기억나 정신을 좀먹는다. 코르딜이 살려주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죽었겠지. 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

  "…누구에게 갈 생각이야? 아르타니아? 플뤼톤?"

  "아니."

  "그럼?"

  "삼두묘 쿠드."

  삼두묘三頭猫 쿠드. 포르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째서, 라는 말을 덧붙였다. 삼두묘 쿠드라 하면 말 많기로 유명한 떠돌이 하급 악마가 아니던가. 그것도 동물의 몸을 가진 잡종 중의 잡종. 거기에 머리가 세 개라 세 배로 시끄러운 놈이었다.

  "그 말 많은 고양이? 왜?"

  "소문을 내려면 재담꾼의 입을 빌려야 하지 않겠어?"

  삼두묘 쿠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연출의 대가이다. 비록 짐승의 몸을 가져 모두에게 천시받지만, 그를 덮을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남을 이야기로 매료시키는 재능을 말이다. 세 머리가 번갈아 말하는 각기 다른 톤의 이야기. 유희라곤 생명체를 죽이는 것밖에 없는 악마들에게 쿠드의 '이야기'는 적지 않은 수요가 있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가게?"

  포르딜은 되물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아갈 건데? 삼두묘 쿠드는 하루 만에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널 정도로 발이 빠른 악마다. 그러나. 포르딜의 질문을 받은 코르딜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가 있는 곳에 찾아오는 법이지. 개화가 시작된다면 알아서 찾아올 거야."

  

  그는 시력을 잃은 눈을 아쉽다는 듯 매만졌다.

  "개화가 시작되고 아인들을 단체로 폭주시키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황홀한 이야기가 펼쳐질 테니까."

  눈을 떠도 분별할 수 있는 이성이 없으면 맹인과 뭐가 다르리. 포르딜과 코르딜은 정기를 흡수하기를 멈추고 자리를 옮겼다. 개화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혼돈이 다가온다.

  * * *

  나는 가끔, 이상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사실 나는 전생에 남자인 줄 아는 미친년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남자의 기억을 가진, 그냥 존나 센 여자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자아 분열 비슷한 정신병이 도져 육체가 마나로 산화하려 하기에, 정신을 억지로라도 끊어 사고를 멈추는 편이다.

  "말한 곳이 여긴가?"

  "예예. 특히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나는 라쿤 소년이 소개한 여관 일 층. 식당 테이블에 앉아 생각을 이어갔다. 최근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으니 정신병도 많이 완화된 듯했다.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걸까. 보통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하면 자살 충동이 기본으로 밀려왔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없었다.

  "이곳으로 하겠다. 이봐. 방은 몇 개지?"

  "사용할 수 있는 방은 현재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두 개입니다. 가격은 이곳 화폐로…."

  "오늘 하루 여관 전체를 빌리겠다. 제국 화폐로 금화 한 장이면 충분하나?"

  "…예?"

  "금화 한 장이라고 했다."

  "…무, 물론입죠."

  슈리엘은 라쿤 소년에게 금화 한 장을 건네며 계단을 올라갔다. 제국에서 묵었던 숙소가 아무리 비싸도 동화 삼십을 넘지 않았는데, 금화 한 장이라니. 실로 돈 낭비였다.

  얼떨결에 거액을 받은 라쿤 소년은 눈을 빛내며 물 안에 금화를 집어넣었다. 그러곤 몇 번이곤 씻었다. 씻은 후에는 누가 홈쳐갈까 주머니 안에 꼭꼭 숨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밥. 언제 나와? 이거, 맛있어 보여."

  "예에!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배가 고픈 엘프는 고기 요리를 무려 다섯 개나 주문했다. 내 음식까지 시켰냐 물으니 혼자 다먹을 거란다. 참나.

  "끄응. 난 좀 쉬겠네. 맛있게들 식사하게나."

  오랜 조사로 지친 칼버드는 우리를 뒤로하고 계단 위로 올라가 버렸다. 슈리엘은 아직 방을 둘러보느라 위층에 있고… 나와 단둘이 남은 라냐는 한 손에 포크를 쥐고 말했다.

  

  "친구. 혹시 하프 엘프야?"

  "저요?"

  "응. 여긴 너 말고 아무도 없어."

  "그건 갑자기 왜…?"

  "신기해. 마나를 체외순환하는 인간은 처음 봐. 엘프들도 힘들어하는 기술인데…"

  마나 순환. 체내에 있는 마나를 순환시켜 일시적으로 마나 감응력을 높이는 기술. 마법을 배운 이들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이었지만, 라냐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체외순환. 나는 공중에 떠다니는 마나를 끌어다 순환시키고 있었다. 드래곤이 심장에 마나를 축적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 드래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체내에 쌓지 않고 그냥 내보냈다. 마나 감응력은 이미 최대치라 순환한다 해도 의미 없었다.

  "인간이에요. 일단은."

  대충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라냐는 내게 다가와 볼을 찌르거나, 가슴을 주물럭…거리기도 했다. 성추행이라는 자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뭐라 두둔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닥치고 라냐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흐읏… 라, 라냐?"

  "아이. 가졌어? 배가 불렀어."

  "아, 읏. 네, 네. 그러니까 손 좀…."

  섹스를 종의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종족이 성교육을 제대로 받을 리 없었고, 지금 내 몸을 주물럭거리는 은발 엘프의 손은 처참한 성교육의 결과물이었다.

  그때,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며 소리를 냈다. 방을 확인한 슈리엘이 내려왔다. 그는 엘프에게 몸을 내주며 야릇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곤 썩소를 지었다.

  "둘이 뭐하는 거지?"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친구 몸. 신기해. 조사하고 있어."

  "이제, 그만. 흐읏."

  나는 슈리엘이 왔음에도 계속 몸을 만지려는 라냐를 억지로 떼어놓았다. 아쉬움이 담긴 숨결이 피부에 닿는다. 그와 동시에 들리는 비웃음. '그런 일'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고 일갈한 슈리엘은 상황을 대충 정리하곤, 의자를 끌어 나와 라냐 사이에 앉았다. 상당히 억울했지만 할 말은 없었다.

  "조사 방침에 관해 얘기하겠다. 칼버드는 올라온 김에 얘기하고 나온 참이고…"

  슈리엘은 네 장의 두루마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수인들의 도시가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이런 지도를 어디서 구했냐 물으면, 라쿤 소년이 판매용으로 가지고 있던 걸 사 왔다고 했다. 그는 한 장의 지도를 품에 넣으며 말했다.

  "네 명이 몰려다니며 조사하기엔 효율이 낮아. 그러기엔 도시가 너무 넓어."

  얼핏 살펴본 지도는 확실히, 뭉쳐서 조사하기엔 너무 넓었다. 세르티가 경고한 삼 주보다 더 걸릴 것이다.

  "흩어질 건가요?"

  그럼 흩어지는 건가? 같이 따라온 병사들을 데려오지 못해 인원이 부족하긴 했다. 제국 소속 병력을 함부로 타국에 들였다간 외교적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것 같진 않지만, 그놈들이 인간으로 분장해서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 인원은 적은 편이 나아. 그리고 각자 자기 몸은 지킬 수 있겠지. 안 그런가?"

  무언의 동의를 보낸다. 일부러 당하는 한이 있어도 실력으로 밀리는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거다. 날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있는지도 의문이고. 마법 무효화 술식은 조금, 아니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두 번 당할 생각은 없다.

  "난 3방벽 가르퀴나 구로 가서 부족장들을 만날 생각이다. 너희는 어쩔 거지?"

  지도를 살펴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동쪽, 적랑문이 위치한 바르하이야 구였다. 그 외에 세 가지 구가 더 있었다. 나는 특히나 눈에 띄는 지역을 입에 담았다.

  "황호문?"

  도시의 북쪽을 담당하는 렉센 구. 북문의 이름은 황호문黃虎門이었다. 황금 갈기의 범들이 지배하는 구. 흥미가 갔다. 내 물음을 들은 라냐가 말했다.

  "위험해. 주민들의 성질이 흉포하니 추천은 하지 않아. 그래도, 괜찮다면 말리진 않아."

  약육강식의 본능을 가장 짙게 몰려 받은 황호黃虎족은, 가히 황호皇虎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진취적인 종족이었다. 생각해보면, 성 마이할 신전에서 가장 처음 만난 아인 사제도 황호족이었다. 어떻게 사제가 된 거지? 아무튼. 황호족은 뭐든지 싸움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해 관광으로는 젬병인 도시였다.

  "…."

  …최고잖아?

  "저는, 렉센 구를 조사할게요."

  좋아.

  이곳으로 결정.

  *^@/ *1 *

  내가 슈리엘과 오랜 시간을 함께 다니며, 지나가듯 물었던 질문이 있었다.

  왜 대행자인가.

  왜 제국은 성황청을 통해 성기사와 사제들을 양산해놓고, 대행자라는 인간 병기를 만들어 악마를 잡는가. 무엇보다, 왜 항상 당해야만 토벌에 나서는가. '악마 토벌'은 일반적 몬스터와 비교하면 이질적인 부분이 많았다. 가장 이상한 점을 뽑자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악마를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이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하는가? 슈리엘은 이 물음에 얼굴을 잔뜩 구기며 대답했다.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나는 눈을 좁히고 되물었다. 무엇 때문이냐고.

  슈리엘은 말했다. 그놈 때문에. 사실상 마왕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그놈 때문에. 인류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쌍둥이 악마와는 다른 이름의 악마였다.

  제1 군단장 바르페우고스.

  이명, 전쟁의 악마.

  먼 과거, 혼돈만이 가득한 지옥 같은 세상에 기적처럼 내려온 용사. 

  그에게 토벌당한 마왕.

  지금은 빛바랜 역사서에나 적혀있는 이야기였지만, 마왕 패배 이후 생존한 악마들은 얘기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악몽으로써 현실에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오백 년 전. 용사가 늙어 사망하자마자 전 생명체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킨 악마가 바로 바르페우고스였다.

  세계수 일부를 불태우고, 수룡인들의 왕자를 살해하고, 인류를 학살한 전적이 있는, 지금까지 토벌했던 악마들과는 급 자체가 다른 거물 악마. 그러나. 인류는 이런 피해를 당하면서까지 승리를 쟁취했지만. 정작 바르페우고스는 죽이지 못했다고 한다.

  ―오백 년 전이라면서요. 아직도 살아있나요?

  ―그놈은 실체가 없어. 전쟁이 있는 이상 어디서든 나타난다.

  악마를 상대로 대규모 전력 충돌을 발생시키면 어느 순간 나타나는 전쟁의 악마. 그는 뛰어난 사령술사이자 총력전의 재앙이었다. 그놈의 목을 잘라도, 전장의 냄새가 나면 수많은 언데드들을 이끌고 다시 나타난다. 

  출현 조건은 오직 전쟁이다.

  전쟁이 없다면,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