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193)

  ―성, 황, 청.

  브리도니아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지 말게나. 증조부는 시체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살점을 취하지도 않았다네. 오로지 서로의 합의 하에, 철저한 계약으로만. 생명의 지장 없이, 정당한 거래를 통해. 병이 없는 건강한 이의 몸으로만 식인을 즐겼지."

  "…."

  "그렇다고 성황청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던 것 아니지만― 일단, 성황청도 그리 깨끗하진 않다는 걸 말해두고 싶군."

  매수했거나, 알면서도 묵인해주었거나. 그래, 네 집안 내력은 알겠다. 그런데 뭘 말하고 싶은 것이냐.

  나는 꺾은 고개를 올리지 않았다. 입 또한 굳게 닫아 묵언을 유지한다. 브리도니아는 내가 냉랭한 태도를 보이든 말든 제멋대로 말을 이어갔다.

  "조부는 손버릇이 나쁜 하녀를 고문하길 좋아했고, 아비는 극악 범죄자를 처형하길 자처했지. 가물가물하다만, 어렸을 적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하자면 목이 베이는 순간이 무척 보기 좋다는구나."

  ―하아…. 브리도니아의 한숨이 주변을 에워싼다.

  "산속에 처박혀 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내 사랑스럽고 증오스러운 핏줄들이 아무리 막장이라 해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네. 모두 어둠 아래 장막에 숨어 배덕을 즐겼다는 것이지."

  그는 나와 똑같은 각도로 고개를 꺾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나는 그제야 고개를 올리고 입을 열었다.

  "제가 공감해주기를 바라나요?"

  지금까지의 계획은 모두 잊어야 한다.

  정말 기분이 더럽지만, 브리도니아는 나와 비슷한 부류였다. 물질적인 것이나 성취감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란 소리다. 증조부는 식인. 조부는 고문. 아비는 살해를 즐겼다면― 지금의 파하르는 무엇으로 뒤틀렸을까.

  브리도니아는 작게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반대로, 나는 미소를 잃었다.

  - 주인님.

  그때, 요리를 끝마친 에르제가 쟁반 두 개를 손에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고기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내용물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냄새가 예사롭지 않은 걸 보면 값비싼 향신료가 들어갔으리라 짐작된다.

  "부디, 맛있게 드시길."

  "수고했어, 에르제."

  "무얼요, 제 본분을 다한 것일 뿐인데요."

  뚜껑을 열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네모나게 잘린 고기 조각들. 나는 의심쩍은 눈으로 브리도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딴 얘기를 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뭣하나? 들지 않고."

  

  브리도니아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기를 씹어댔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흐르는 소스하며, 포크로 집힐 때 터지는 육즙이며, 어딜 봐도 먹음직스러운 고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포크를 들었다. 손을 내려 고기 조각 하나를 찝는다. 퍽, 하고 터지는 육즙. 나는 브리도니아를 한 차례 노려보고, 천천히 입에 고기를 욱여넣었다.

  풍미 깊은 소스의 맛이 먼저, 흘러내린 육즙이 두 번째로 나와 혀를 감싼다. 그리하여 마지막. 눈을 찡그리며 고기를 짓누르자,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재차 육즙이 튀어나왔다.

  "…."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브리도니아에게 말했다.

  "…소고기, 네요."

  정상적인 고기였다.

  "뭘 기대한 건가?"

  "…재밌네요. 장난."

  "설마 손님 앞에서 그런 짓을 할까 봐. 내가 미쳤다고. 난 식인을 하지 않아."

  ―탁! 강하게 포크를 내려놓는다. 들으라고 한 거 맞다. 짓궂은 장난을 쳤으니 그에 상응하는 분노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나는 무감정한 얼굴로 물었다.

  "뭘 원하시죠?"

  브리도니아는 입술에 묻은 소스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극"

  "무슨 자극?"

  "평생 잊지 못할 자극을."

  어깨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는다. 나는 손아귀에 작은 얼음송곳을 만들어 브리도니아에게 보여주었다. 물리적 자극이라면 지금 당장 느끼게 해줄 수 있다. 그는 추운 건 질색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가 내미는 제안이 전혀 끌리지 않아. 나는 지금에 만족해. 아니, 만족하진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도시를 발전시켜서 만족할 종류는 아니지. 추천장을 얻고 싶거든 나를 만족시켜라. 아니면, 다른 귀족을 찾아가 어려움 없이 추천장을 따내던가. 개인적으로 그게 더 편해 보이는군."

  한 박자 쉬고, 조금 다른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추천장을 따고 싶나? 솔직히 말해서, 이 종이 쪼가리에 부단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 아드득….

  이를 갈며 나이프를 구부린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끝을 중심으로 반경 5cm 정도가 얼어있었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증거였다. 나는 짜증어린 목소리로 하하 웃었다.

  "하하… 브리도니아 백작님께선 같은 말을 반복하시게 하는데 재주가 있으시네요. 다시. 말할. 게요. 뭘 원해요? 구체적으로 말해봐요.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호오, 무엇이든?"

  "하지만, 협조가 필요해요. 정확히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말해보세요. 식인, 고문, 살해. 뭐든 좋으니 말 좀 해보시라구요."

  "…."

  하아. 이렇게 급하면 안 됐는데.

  나는 약간의 후회를 하며 한숨을 퍽퍽 쉬었다.

  지금 브리도니아는 '이해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유전을 통해 이어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자극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는 저주받은 체질.

  하지만 역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자극은 한계가 있는 법이고, 인륜과 윤리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나마 느낄 수 있는 자극마저 질려버린다면, 그 끝은 암울한 심연뿐이다. 그는 이미 번아웃 단계에 다다랐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나를 밀어낸다. 이해받지 못하면 거절하고, 부정해서 끝내 돌아가게 만든다. 확실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어중간한 자극은 허탈함만 키울 뿐이니까. 지금 내가 그를 광인狂人 취급한다면, 협상은 결렬된다.

  하지만.

  "…나는."

  내 눈빛에서 '진심'을 느낀 브리도니아는 약간의 희망을 담아 입을 열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네. 그것도 고기 요리를."

  "요리?"

  무엇이든.

  무엇이든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촉구했다.

  사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다른 백작을 만나러 가도 됐지만―… 오기. 오기가 생겼다. 호기심이 들끓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마법사였다. 브리도니아라는 인간이 무얼 원하고, 어떻게 자극을 얻으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나 같은 부류는 처음 만나보니까.

  브리도니아는 내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망설이며 말을 이어갔다.

  "…먹기 위한 요리는 아니야. 대접하기 위한 요리도 아니고. 내가 직접 만든 요리는 단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다."

  "그럼?"

  "나는 과정을 중시해."

  "과정. 이해했어요. 완성된 요리보다는, 직접 손을 써서―"

  "살아있는 재료를 직접 손질하는 맛은, 뇌를 태우는 짜릿함이라고.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구나. 언제 숨이 끊어질까, 조마조마하며 칼을 놀리는 그때만큼은. 조상들이 남긴 말이 이해가 갔다. 왜 그토록 베고 먹는 것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었어."

  "…."

  "그때 깨달았다. 나만은 정상인 줄 알았으나, 나 역시 광인이었다. 하지만. 잔혹한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새로운 취미에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었거든." 

  당황하지 않고 얌전히 대답을 기다린다. 그는 피식 웃으며 숨겨놓았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나니 그마저도 질리기 시작하는구나. 소, 돼지, 양, 닭. 심지어 악어, 사자, 흉악한 몬스터까지. 개중에는 임프도 있었지."

  "…."

  "임프… 가장 마지막으로 느꼈던 최고의 자극이었다. 인간을 닮은 몬스터들 중, 그나마 지성이 있는 놈들이니까."

  파하르는 요리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특히 에르제와 함께 요리하는 걸 즐겼는데, 수준이 이미 프로급에 다다라 따로 조리장을 두지 않아도 될 정도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하르의 말을 귀담았다.

  그래. 요리. 평범한 취미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닮은 몬스터를 조리할 때 쾌락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 마지막으로 느낀 최고의 쾌락이었다고도 말했다.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인간을 손대지 않았다는 소리이기도 했지만, 은연중 '해보고 싶다'라는 욕망을 표출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가 괴짜로 불릴 수 있는 마지막 선이었다.

  구비된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말한다.

  "참고 계시는군요."

  브리도니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뛰노는 어린 하녀들을 볼 때마다 미친 생각들이 마구 떠올라. 하지만 늘 생각으로만 그쳤지. 난 조상들처럼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네."

  조급함으로 뜨거워진 몸이 차갑게 식는다. 그의 무기력한 한마디엔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나는 브리도니아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았고,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정말로, 정말로 선명하게 보이는 광기. 그 어두운 욕망 속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분 나쁜 세세함마저 들어있었다.

  그에게 '어린 하녀'는 암송아지 따위의 것과 같은 무게를 지녔다. 값비싼 사치품. 딱 그 정도인 것이다. 어린 것을 높게 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요리사의 관점으로 하녀를 보고 있었다. 아직 못다 한 생을. 어린 생명의 미래를 감히 돈으로 지불하곤, 그들에게 응당 내려져야할 찬란한 미래의 가치를. 요리라는 이름하에 끊어버리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요리는 수단이었고, 어린 하녀는 이루지 못한 진실된 욕망이다. 가능성을 끊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브리도니아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자극이었다.

  "…."

  이제야 '브리도니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선의 의미가 달라진다.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그에게서 소름 끼치는 집착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생각은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떼며 말했다.

  "…조상의 존함을 입에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

  "사형수들을 이용하면 되잖습니까. 전대 가주 칼셴 브리도아나처럼 말입니다."

  그는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며 말했다.

  "죽어야 할 놈을 죽여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금화 한 장에 심장을 건네는 부랑민은 취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놈들은 눈에 두지 않는다. 그들은 미래를 모두 소모했다. 끊어버릴 가능성이 없으니 자극 또한 얻지 못한다. 그게 파하르 브리도니아였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그가 내뱉은 말을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어리고, 재능있고, 미래에 필히 장성해 제국을 빛낼 아이를 사로잡아, 한낱 식자재로써 소모하고 싶다고."

  "…."

  "도마 위에 올려놔 팔다리를 묶어놓고, 살점을 잘라낼 때의 비명을 음악 삼아, 죽어가는 미래를 감상하고 싶다고."

  "…."

  "그렇게 이해했습니다만, 제가 감히 이 추측을 긍정해도 되겠습니까."

  "후우…."

  숨을 삼킨 브리도니아는 눈을 질끈 감곤 입술을 짓이겼다. 그 중후한 미모 속에서 깊은 고뇌가 보인다.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길고 긴 삼 분의 침묵이 지나자, 브리도나아는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정확해."

  정확하다고.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관찰했다. 어찌 이리 나를 잘 알까. 그런 의미로 보였다. 나도 이해하고 싶어서 이해한 게 아니다. 별 미친놈을 다 만나보고, 나조차 미쳐있으니 싫어도 이해하게 됐다.

  하아. 자괴감이 느껴진다. 이 미친 소리에 공감하는 내가 싫었다.

  "흐."

  피식 웃는다. 산 채로 요리되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리를 자르고, 자궁을 들어내 상상도 못 한 요리를 만들어낸 미친 악마. 그는 나를 요리하며 최고급 재료라 찬미하기 바빴다. 그렇다면 인간이 보기에도 똑같을까. 평가 기준이 살짝 다른 듯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을 터이다.

  나는 웃음기를 지우고 되물었다.

  "보기에 외람되고 오만해 보일 수 있겠으나, 무례를 무릅쓰고 물어보겠습니다."

  "말하라."

  "저는 그 조건에 만족합니까?"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라니. 질문의 의도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는 흥미로운 얼굴로 말했다.

  "…만족한다면?"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손을 뻗는다.

  '나이프.'

  방금 구부러트린 나이프를 쥐었다.

  ―끼기긱… 구부러진 나이프를 바로 핀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날카롭게, 스쳐도 살이 갈라질 만큼 얇게 개조한다. 그러곤 손을 들어 목에 가져다 댄다.

  살이 갈라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 핏방울이 뚝, 하고 떨어져 테이블 위 장미를 피워낸다.

  브리도니아는 눈을 부릅뜨고 내 행동을 지켜봤다. 약간 상기된 얼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붉은마녀라 불리는 파헬른의 구원자가. 청옥공주라 불리는 아리따운 미소녀가. 백작님의 부탁을 듣고 흔쾌히 목숨을 끊어버린다면."

  "…."

  "무척, 흥분되겠네요."

  너보다 몇백 배는 가치 있는 소녀가 기쁜 마음으로 자살한다면, 네가 바라는 자극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까. 그가 원하는 자극은 비단 요리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아…."

  조금 더 깊숙이.

  칼을 밀어넣는다.

  "유, 유진…!"

  에르제는 창백한 얼굴로 발을 떼려 했지만, 브리도니아가 내뿜는 살기에 저지당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집중하고 있었다. 이 잔혹하기 그지없는 쇼에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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