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193)

  정수리를 넘어 턱밑까지 침범한 슈리엘의 손길을 느끼며 속삭인다. 펠라치오를 하며 선언하는 노예의 맹세는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배덕감을 주었다. 그야 이 선서가 끝나면, 나는 정말 인간 이하의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비참한 결말을 알고있음에도 노예 선언을 하는 입은 멈추지 않았다. 끝을 모르고 늘어난 피학성욕은 이성을 뛰어넘어버렸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끝없는 나락까지 떨어질 내가 너무 기대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르흘, 하웁… 포기하고호…"

  장난 따위가 아니다. 이게 정말 맞는 선택일까. 못해도 해제는 가능하게 헸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온갖 잡생각들이 휘몰아쳤다. 이렇게, 이렇게까지 자극을 탐해야 할까. 슈리엘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목숨마저 저당 잡혀 평생을 노예. 가축 이하의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노예가, 되겠습니다하아…."

  ――아, 해버렸다.

  "주인, 슈리엘. 받아들인다."

  - 찌이익!!

  노예 선언이 끝나는 순간.

  슈리엘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종이를 찢어버렸다. 나와 슈리엘의 마나가 소량 빠져나간다. 당사자의 동의를 얻은 '계약'의 성립이었다.

  무쇠처럼 견고한 정신 방벽을 허물자, 불쾌하고 강압적인 마나가 몸을 침범해 영역을 늘려갔다.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는 마나는 정신을 억지로 뒤틀고, 주인에게 철저히 복종할 수 있게끔 영혼을 오염시켰다.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들이 표백돼간다. 상식마저 주인의 요구에 맞춰 변할 수 있게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내 손길을 거쳐 몇 배나 강화된 노예 각인은, 어떤 수를 써도 풀 수 없는 강력한 금제까지 걸어버렸다.

  "하, 히흑, 힛…"

  나는 뇌를 주물럭거리는 끔찍하고 짜릿한 감각에 꼴사납게 쓰러져 절정했다. 처참하게 망가진 미소를 지으며 애액을 흩뿌린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 방벽을 허물었다 해도, 아크 메이지의 정신은 여전히 뚫기 어려운 것이었다.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면역체계처럼. 정신을 뒤트는 불청객을 쫓아내려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강도가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연 판에 이런 저항이 의미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성벽같이 단단한 정신이 차례차례 함락당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복종심'이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육체적, 정신적인 자유를 박탈당하고 가축의 마인드가 되새겨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국.

  나는 저항하지 못했다. 아니, 저항하지 않았다.

  "히긋, 히긱. 히그읏―?!!"

  대자로 뻗어 허리를 튕기며 발작한다. 노예 각인의 마무리였다. 각인을 새겼으니, 절대로 풀 수 없게 다시 묶어버리는 과정이었다. 뇌에 못을 박는 기분이었다. 코피가 픽 터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손발이 꺾이며 경련하는 모습은 음란하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했다. 

  다만 그 고통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가축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았기에, 되려 흥분해버렸다.

  "하우, 흣, 흐긋…."

  이제 이곳엔, 음란한 노예 암캐 한 마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끝난 건가?"

  슈리엘은 천천히 숨을 고르는 내게 다가와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하트 문신이 새겨진 자궁 위로 향했다.

  "색이, 변했군."

  그 말에 눈을 내려 성흔을 바라본다.

  "에우, 으…?"

  불꽃처럼 강렬한 색을 자랑하던 성흔은, 찬란한 황금색으로 변한 것도 모자라 모양까지 일부 변형됐다. 이전의 성흔이 정상적인 하트 모양이었다면, 지금의 성흔은 오로지 상대방의 음욕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모양이었다. 구불구불 꼬인 나선형 하트.

  신의 권능인 성흔이 어떻게, 왜 변형됐을까. 그것까진 모르겠다. 서로의 마나가 어떠한 작용을 했으리라 추측되지만…

  "헤, 헤흐…."

  뭐가 됐든 좋았다. 

  주인님의 마음에 들 것 같았으니까.

  "「일어나라.」"

  슈리엘은 시험 삼아 명령해봤다. 노예 각인이 정상적으로 새겨졌다면 감히 거부할 수 없어야 했다.

  ―일어서야 해.

  그 말을 들은 순간, 엄청난 압박감과 초조함이 들었다. 이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죽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 절정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끄흣…." 

  일어, 섰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고작 일어나라는 간단한 명령이기도 했고, 이런 것 없어도 어떤 명령이든 수행했을 테니까. 심지어, 맨정신에 자살하라 해도 좋다고 목을 맸을 거다. 그래서 슈리엘은 조금 색다른 명령을 내렸다.

  "「너는 지금부터 네 속마음을 숨겨서는 안 된다.」"

  "으, 에…?"

  속마음을 숨기지 말라니. 그냥, 기분 좋으면 기분 좋다고 말하면 되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간단한 일이겠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명령의 진가는 따로 있었다.

  ―와락!

  "꺄읏?!"

  "지금은 어떻지?"

  나를 와락 껴안은 슈리엘은 다짜고짜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커다란 품에 인형처럼 안긴 나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명령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지금은 어떻냐 물으면, 평범하게―

  "기분, 좋아요…."

  "그리고?"

  "계속 냄새 맡고 싶고, 안기고 싶고, 그리고, 또, 으스러질 정도로 껴안아 줬으면 좋겠어요."

  …말이 제멋대로 나오기 시작헀다.

  "조금만, 더. 안아주세요. 그리고, 그리고. 그, 그걸로."

  "그거라니? 제대로 말해야지."

  "자지로. 자지로 빨리 암캐 노예 보지 찌, 찔러주세요. 죽을 때까지, 숨도 못 쉬게 박아대면서, 목도 조르고오…"

  은연중 표출해왔던 욕망을 대놓고 드러낸다. 나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입을 닫으려 노력해봤지만, 어떠한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얼굴이 새빨개진다. 주인의 허락 없인 얼굴을 찡그리지도 못했다.

  "그만."

  "…."

  입을 꾹 다물고 새빨개진 얼굴을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슈리엘은 큭큭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나를 껴안은 채 이동한 그는, 커다랗고 푹신한 소파 위에 앉아버렸다. 나는 슈리엘의 등허리를 꽉 껴안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 모여주고 싶지 않았다.

  "고개 들어."

  그러나 주인의 명령 한마디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였다.

  "부끄럽나?"

  "네, 네에… 부끄, 러워요. 그,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요."

  …기분 좋다는 말은 딱히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솔직한 너도 나쁘지는 않구나."

  "…저, 저.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호오, 기분 나쁘지는 않고?"

  "아니, 아니에요. 좋아요. 더, 더.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 알겠다."

  비열한 웃음을 지은 슈리엘은 악기를 사용하듯 내 몸을 주물렀다. 허벅지를 쓰다듬고, 손가락이 허리를 스칠 때면, 나는 앙앙거리는 신음을 내며 악기의 본분을 다했다. 한 팔 다 휘감기는 작은 체구는 옴짝달싹할 새도 없이 사로잡혀 이곳저곳을 희롱당했다.

  나는 슈리엘의 허벅지에 올라타 비부를 문질렀다. 가슴팍에 코를 박아 진하고 깊은 수컷 냄새를 맡으며, 몸 전체를 관통하는 두터운 손길을 탐닉한다.

  슈리엘의 손은 점점 올라가더니,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괴롭히기 시작했다. 혀를 만지작거리고, 오물 한 점 없는 새하얀 이를 문지른다.

  "하굽…."

  나는 슈리엘의 손가락을 쪽쪽 빨며 자위를 시작했다. 다리 사이에 커다란 자지가 있음에도 감히 허락 없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질구에 손가락을 넣어 달아오르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자위에 몰두하던 때였다.

  ―철컥.

  목에 무언가가 채워졌다. 사이즈가 작아 목을 죄어오는 답답한 철제 개 목걸이. 노예의 각인이 있어야만 착용할 수 있다는 죄수용 목걸이였다.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을 수 없었다. 비록 이것이 노예용 목걸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평소보다 수십 배는 더 기쁘게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이처럼 기쁨과 감사함으로 충만해진다.

  "헤, 헤헤…."

  속마음을 숨길 수 없다는 명령 때문에. 헤헤 웃으며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슈리엘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게 그리도 좋더냐?"

  "좋아, 요. 평생, 평생 차고 싶어요. 밖에서도, 남들이 볼 때도…"

  슈리엘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헤실거리는 얼굴로 몸을 밀착했다. 그는 한계까지 솟아오른 자지를 슬그머니 바라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슬슬, 시작하지."

  "네, 으에?"

  번쩍! 허리를 붙잡아 위치를 바꾼다. 허벅지에 둔부를 비비며 자위하던 나는 그대로 끌려가 슈리엘의 다리 한가운데에 놓여졌다.

  "히, 히윽…."

  허벅지 사이로 쑤욱 들어온 자지는 배꼽을 넘어 명치 부근까지 도달했다. 다시 봐도 괴물 같은 크기였다. 저런 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생각하니 절로 긴장됐다. 나는 이걸 정말 집어넣을 거냐고, 애원하는 얼굴로 슈리엘을 올려다봤다.

  "빠, 빨리, 박아주세요, 빨리, 빨리이…"

  다만, 몸과 입을 생각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슈리엘은 애액투성이인 보지를 한 번 쓱 훑더니, 물투성이 손가락을 내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넣어도 된다."

  "하웁, 가, 감사, 함미다아…"

  자리에서 일어나 삽입 준비를 한다. 워낙 커다래서 일어나지 않으면 넣을 수조차 없었다.

  "흐끗…"

  조그마한 분홍빛 균열이 벌려지기 시작한다. 귀두만 살짝 넣었을 뿐인데 벌써 빡빡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꽉 물며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이런 걸 한 번에 집어넣으면 분명 망가진다. 슈리엘의 자지는 길이도 길이지만, 두께도 인간을 한참 벗어났다.

  그렇게 힘겹게 귀두 전체를 삼켰을 때, 거친 숨을 내뱉으며 숨을 골랐다. 아직 절반은커녕 삼 분의 일도 못 넣었는데 칠칠찮게 가버린 탓이었다.

  "햐앙, 힉, 흣… 졔송, 제송합니다아…."

  사죄를 구하며 다시 허리를 내린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만 넣었을 뿐인데 이 바보같은 조루 보지는 물을 뿜으며 가버렸다. 이 추태를 다섯 번이나 반복한 나는 혀를 쭉 내밀고 머리를 기댔다. 이런 거, 무리, 무리였다. 이런 걸 어떻게 집어넣으란 말이야.

  결국 참다못한 슈리엘이 명령했다.

  "…진짜 암캐도 너보단 잘 참을 거다."

  "힉, 흣. 졔, 졔성, 합…"

  "「내 허락 없이 가지 말도록.」"

  그 순간, 불처럼 뜨겁던 몸이 순식간에 진정됐다. 

  "에, 헤으…?

  대신, 답답한 무언가만이 마음 깊은 곳에 처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봉인된 쾌락이었다. 주인의 명령은 노예의 육체마저 통제할 수 있었다.

  나는 벌벌 떨면서 다시 삽입을 준비했다. 명령 덕분인지 바보같이 가버리지는 않았다. 귀두를 넘어 기둥을 삼킨다. 살이 찢어지고 질벽을 긁는 고통에 이를 꽉 깨문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쾌락은 느껴지지 않았다.

  "끄후으…."

  나는 배꼽 위로 툭 튀어나온 자지를 쓰다듬으며 웅얼거렸다. 이 작은 몸으로는 딱 절반이 한계였다. 이 이상으로 자지를 집어넣으려면 내장을 헤집거나 재구축으로 살을 늘려야 했다.

  "움직이겠다."

  그런데.

  봉인된 쾌락은 '답답함' 수준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 으?"

  이건,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이 답답함을 당장 해소하지 않으면 몸이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자지를 넣고 흔들면 뭐라도 될 것 같아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지만, 이 끔찍한 답답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거, 이상해에…"

  미칠 것 같았다. 가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주인의 허락이 필요했다. 가버리는 것조차 주인의 허락이 필요했다.

  "하아… 너무 커져 불편한 것도 있구나."

  슈리엘은 절반밖에 넣지 못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으, 아."

  급해졌다. 이대로 피스톤질을 시작하면 정신이 붕괴할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쉽게 가버리는 몸이다. 이런 음란한 몸뚱어리로는 일 분도 버티지 못한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가, 가고, 가고 싶어요."

  "벌써? 아직 시작도 안 했다만."

  "제, 제바. 제바알…."

  "쯧. 조금만 더 참아라."

  조금만 더 참으라고?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지금 허리를 흔들면 죽을지도 모른다.

  "이, 이거. 다 넣게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슈리엘은 자지를 전부 넣지 못해 불만족스러운 상태였다. 나는 그런 슈리엘에게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소피아의 몸을 개조한 것처럼 몸을 재구축하면 된다. 아무리 커다란 자지가 들어와도, 재구축으로 살을 늘려 전부 넣어버리는 인간 오나홀이 되는 것이다.

  그는 내 제안이 솔깃했는지 허리 움직이길 멈추었다.

  "…한 번 해보거라."

  "감사, 감사, 햠미다…."

  재빨리 재구축 술식을 새기고 허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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