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둑, 툭. 바닥으로 투명한 구슬이 몇 방울 떨어진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가버렸다. 치부가 훤히 뚫려있어 속옷이 더러워지진 않았다. 드레스에도 아주 살짝 묻었을 뿐이었고. 하지만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버릴 게 뻔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는 바보처럼 새는 발음으로 애원했다.
"졔바하… 며, 명령으로, 흣, 히극… 발정햐지, 먈라고호…"
유두는 빨딱 솟아 드레스 위로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래도 허리를 꺾인 채 안겨 각도 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더욱 명령이 절실했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다른 데 소모해야 한다는 게 이토록 화날 줄 누가 알았을까."
"히, 히윽, 슈리, 헬."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널 만난 건 내 최고의 행운이었다."
"햐아앙…."
그렇게, 칭찬해버리면. 또, 또 가버리는데―
"하읏, 흐긋―?!"
―찌이익!
투둑, 투두둑. 애액이 카펫트를 때리는 소리가 비 오듯 난다. 드레스 밑, 다리 사이 그늘진 곳은 성대하게 뿜은 애액으로 엉망이 되었다. 나는 그대로 녹아버려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무의식적으로, 엉덩이를 치켜든 채 천박한 신음을 낸다.
"이졔, 몰라하…"
이렇게 달아오르게 했으면 책임을 지든가, 지금이라도 명령을 걸든가. 이제는 정말, 박히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다.
"하…."
슈리엘은 머리를 박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며 짧게 웃었다. 나쁜 놈. 난 이렇게 달아올랐는데, 또 혼자만 침착하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애태우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슈리엘의 선택을 기다렸다. 자궁 안에 아기씨를 주입할 거라면 치마를 들치기만 하면 된다. 자지를 넣기 쉽게 전용 속옷까지 입었으니까. 보지는 이미 씨를 받기 위한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그러나 슈리엘은.
"「내 허락 없이는 가버리지도, 발정하지도 말도록.」"
보다 더 나중을 선택했다.
"하아아으――."
미약하게 차오르는 아쉬움을 덮어버리곤 그대로 주저앉는다. 의지마저 통제하는 '명령'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아기를 만들어달라고 소리치던 아랫배는, 마치 환상처럼 사그라들어 본래 상태를 되찾았다. 빨딱 솟은 유두는 다시 물렁해지고, 천박하게 물을 흩뿌리던 보지는 꼬리 내린 개처럼 얌전해졌다. 강제적인 현자타임으로 이성이 돌아온다.
슈리엘은 나를 지나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먼저 가겠다."
"하, 하읏… 몸에 힘이…"
끼익, 쿵. 그는 일부러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나는 목에 걸린 에메랄드 목걸이를 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주인으로부터 500미터 이상 떨어지면 즉사 수준의 전기 쇼크를 보내는 노예의 목걸이.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진짜 죽는다. 슈리엘이 정확히 500미터를 재고 재구축을 명령할 리 없잖는가. 발동되면 그대로 죽는다고 보면 된다.
"파, 파니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테이블을 짚는다. 나는 여전히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파니 알펜리스를 불렀다.
"네, 아가씨!"
"저 좀 부축해서, 빨리 슈리엘한테, 가주세요…."
"네…? 네, 네에. 네…!"
* * *
'네'를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한 알펜리스의 열정 덕분에, 나는 감전사 하기 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저도 드디어 시녀다운 일을 해보네요! 아가씨를 시중들게 되면 꼭 양산을 씌워주고 싶었어요!"
"…지금 가을인데요?"
"보기 좋다면 상관없지 않을까요? 유진 아가씨도 어깨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으니까요!"
마차는 타지 않았다. 슈리엘의 결정이었다. 애초에 '늦는다'라는 것도 마차를 타지 않았을 때를 상정한 것 같았다. 나는 의미 없는 양산의 그늘 아래서, 조금은 쌀쌀한 가을바람을 스치며 신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알펜리스와 나는, 생각보다 더 가까워졌다. 서로 솔직해지자는 말을 절찬리로 지키는 중이었다. 야한 이야기를 꺼내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수준이었다. 루셸리니 백작저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대체로 다 자기 같은 성격이라 하는데, 진실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도련님만 둘이잖아요. 게다가 작은 도련님은 저희를 부리지도, 신경 쓰지도 않고… 결국 할 일이라곤 업무 끝내고 수다 떠는 것밖에 없죠 뭐…."
형제가 쌍으로 재미없으니 시녀들로선 죽을 맛이었다. 행정 업무를 배우기 좋다고 소문난 곳이라 추후 일자리를 잡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당장이 지루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던 와중 내려온 구원의 빛줄기가 바로 나였다. 허구한 날 철벽 치는 그 맹탕 도련님이 여자를 들였다는 소문 말이다. 당연히 시녀들이 눈을 뒤집고 달려들었다.
"처음엔 못 믿었다니까요. 도련님들 유혹하다 꺼지란 소리 들은 애만 다섯이 넘어가는데…"
대행자가 여자에게 인기 없는 직종이라지만 역시 외모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잘생기기만 한 것도 아니라 돈도 많고, 신분도 보장되니 '정치적 관계'가 아닌 '남편'으로선 죽기 쉽다는 점만 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주로 지위가 낮은 영애들이 그런 시도를 많이 한다고 한다.
"정말이에요…?"
그녀가 내 말을 믿을 수 없듯이, 나도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슈리엘이 사실은 철벽남이었다고? 그럼 나한테 사용한 기교들은? 그건 절대로, 처음 섹스한 남자의 손길이 아니었다. 여자의 약점을 속속들이 꿰차고 있어야만 가능한 기교였다.
"네가 내 옆에 있는데 다른 여자가 눈에 찰 리가 없지."
슈리엘은 흥, 하고 코웃음 쳤다. 날 바라보지도 않았다. 내가 아니라 자신한테 고백한 시녀들을 비웃는 코웃음이었다.
"저도 보고 나서 이해되더라고요. 이런 여자가 있으면 저도… 오징어인 걸요."
알펜리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슈리엘의 말에 동의했다. 나는 낯부끄러운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부끄러워했다. 그래도 명령 덕분인지 천박하게 발정하진 않았다. 나는 슈리엘을 힐끗 바라보며, 조금 기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긴, 이해해요.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잠자리를 가지면… 여자 쪽이 죽을 게 분명하잖아요."
그 괴물 자지를 삼킬 여자가 나 말고 어디 있을까. 살이 늘어나도록 보지를 개조해도 버거운 자지다. 그걸 평범한 여자한테 넣는다면… 농담 아니고 뚫려버린다. 물리적인 의미로.
"죽, 죽는다고요…?"
알펜리스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말을 더듬었다. 야한 이야기 자체는 괜찮은데, 상상에 들어가면 망상을 주체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나는 아랫배에 손을 얹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게, 얼마나 크냐면…"
"어…."
"이 정도…?"
허벅지 사이, 꿀이 흐르는 균열로부터 점점 위치를 높여간다.
"크, 크네요…"
알펜리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엔 말이다. 하지만 올라가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의 위치가 점점 올라갈수록 초조해했다. 배꼽 밑까지는 괜찮았다. 헌데 배꼽, 배꼽 위. 심지어 명치 아래까지 도달했을 땐, 입을 떡 벌리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와 슈리엘을 번갈아 보았다.
"하아…"
슈리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남의 자지 가지고 뜨거운 토론을 하니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녀가 나와 슈리엘의 관계를 알기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슈리엘도 그 사실을 알고, 평생 입을 닫을 걸 알기에 넘어가주었다. 이렇게만 보면 대인배였다.
그렇게. 알펜리스와 조금 야한 이야기를 섞어가며 수다를 떨자 벌써 신전 앞까지 도달했다.
―어라…?
신전 앞에서 마당을 쓸고 있는 백발의 미소녀, 하 테리알.
저 작은 견습 사제가 있다는 소리는, 신전 정문이 코앞이라는 소리였으니까.
순간 신전의 문이 열리며 수백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막 저녁 예배가 끝났는지, 신전 앞은 퇴실하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견습 사제 테리알은 나가는 이들을 안내해주는 역할이 있기에, 당연히 신도들에게 향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 명의 인간을 감히 내칠 수 없었다.
루셸리니의 두 번째 가지라 불리는 슈리엘. 그리고 딱 봐도 귀족처럼 보이는 영애 한 명. 귀빈을 먼저 안으로 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늘 그랬던 것처럼 신도들을 안내해야 하는지. 테리알은 고민에 빠졌다.
―음?
―…뭔가 허전한데?
신도들은 예배가 끝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해줬던 꼬마 사제가 보이질 않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경직된 채 쭈뼛거리는 백발의 사제 앞에 당도한 세 명의 인간. 그 조합은 무척이나 기괴하고 압도적이어서, 보지 않고는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황금빛 뿔을 머리에 단 금발의 사내와, 우아한 자태로 발을 뻗는 검은 드레스의 소녀.
처음엔 뿔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슈리엘에게 시선이 끌렸지만, 그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 몰려드는 시선을 가볍게 쳐냈다. 그렇게 튕긴 시선은 자연스레 내게 향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싱긋 웃어주며 고개를 돌렸다. 허나 내가 고개를 돌렸음에도 그들의 고개는 여전히 나를 향해있었다. 이것은 현혹이었다. 바늘처럼 꽂힌 시선들은 내게서 떠날 생각을 못 했다.
검은 꽃잎을 흩날리며 신전에 당도한 것은 하나의 장미였다.
"오랜만이에요 테리알."
나는 정신을 못 차리는 테리알에게 가볍게 묵례하며 미소 지었다.
"어, 어라…?"
얼핏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거짓 선지자 헤리엇에게 납치당했을 때, 몸을 희생하여 자신을 구해준 붉은 머리의 언니.
"…유진 언니?"
다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는 팔도 한쪽도 없었고, 이렇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지도 않았다. 전형적인 서부 모험가의 모습이었던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었다.
―흥.
그때, 슈리엘이 가볍게 코웃음 쳤다.
"아, 아! 백작가의 긍지 높은 검, 대행자 슈리엘 루셸리니 님을 뵙습니다!"
그제야 눈앞의 손님을 깨달은 테리알은 슈리엘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자세는 엉망이었으나 대사는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슈리엘은 입가를 비트는 것 외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두의 시선 속에서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앙그리드와 프루카이스의 대행자를 만나러 왔어요. 선객이 있지 않았나요?"
경갑옷에 수녀복을 걸친 여인과 잿빛 머리의 사내. 우리 못지않게 튀는 조합이었다.
"자, 잠시만요! 이쪽으로 따라와 주세요!"
테리알은 생각나는 게 있는지 허리를 바짝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따라가요. 세례의 장에 가려는 것 같으니까."
세례의 장. 부신관 셰멜이 지내는 작은 방. 귀빈이 방문했다면 아마 그곳에 들이지 않았을까. 그곳은 셰멜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대행자들이 눈에 띄는 곳에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쓸데없이 이 일을 발설이라도 한다면, 여기서 발 뻗고 잘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슈리엘은 발을 떼며 중얼거렸다. 멍하니 고개만 갸웃거리는 파니 알펜리스를 향한 말이었다.
무척 강경한 단어였지만, 지금 하려는 일을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말이 대대적인 악마 토벌이지, 사실상 악마들과 전쟁을 치르겠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마땅한 활약을 보이기도 전에 이 계획이 발설된다면, 그리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행자가 한곳에 모였다는 정보는… 그리 심각하게 다뤄지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전부 동부에 있는 가문이기도 하고, 일 년 내내 악마만 족치며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들은 귀족이었다. 그것도 백작. 소문이 돈다 해도 무언가의 교류로 추측되거나, 관계 회복을 위한 사교성 만남이라 불릴 가능성이 컸다. 안 그래도 앙그리드와 루셸리니는 사이가 나빴다.
"거, 걱정하지 마세요! 무덤까지 묻고 가겠습니다!"
파니 알펜리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가 대행자들의 계획을 듣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얘기가 오갈 때면 밖으로 내쫓을 게 분명했으니까.
나는 파니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슈리엘. 셰멜이 애 어디 갔냐 물으면 탈 없이 낳았고, 사정상 유모가 몰래 키우고 있다고 말하세요."
이제 에일린을 만나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계획이 실행될 즈음엔 확실하게 만날 수 있겠지. 다만 그와 별개로, 텅 비어버린 배는 오해를 부를 수 있었다. 낙태라든지 말이다. 부신관 셰멜은 성물 개조를 받은 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세계수가 유모인 아이라니…"
슈리엘은 자기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인생은 온통 기연뿐이었다. 나와의 만남도, 사고로 아이를 가진 것도, 그 아이를 세계수가 담당해준 것도 모두. 설마 마기에 조종당해 강간한 여자가 아크 메이지인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물론 서로 후회는 없다. 이 모든 게 주사위 신이 정한 장난스런 운명일지라도, 당장의 현실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이만한 힘을 가지고도, 한 인간의 노예로 사는게 불만족 스럽진 않았다.
나는, 이 자체로 행복했으니까.
"빨리 가요. 이러다 늦겠어요."
* * *
"부신관니이임…!!"
쿵쿵쿵! 테리알은 거대한 문을 두드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끼이익.
그 커다란 문이 열리며,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여성이 우리를 맞이한다. 부신관 셰멜. 그녀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안을 보여주었다.
진홍색 단발을 바로 세우며 말한다.
"들어오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스터 테리알, 이만 가보세요."
"네에…!"
테리알은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였으나 세 명의 대행자, 그리고 부신관 앞에서 날 멈춰 세울 순 없었다. 그녀는 아쉬운 얼굴로 뚜벅뚜벅 뒤돌아갔다.
"파니, 미안해요. 잠시 다른 곳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파니도 마찬가지였다.
"옙!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녀는 테리알을 따라 본관 내부로 이동했다. 나와 슈리엘은 불필요한 인원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조그마한 테이블, 그 양옆에 아담한 의자를 두고 앉아있는 두 명의 대행자가 보였다.
"참 빠르게 오기도 하네. 우리가 한가해서 여기서 죽치고 앉아있는 줄 알아?"
라엘 프루카이스가 말한다. 그는 하품을 쩍쩍 날리며 비아냥거렸다. 짜증이 날 법했지만, 우리 측에선 할 말이 없었다. 섹스하느라 늦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것도 짐승처럼, 안팎을 가리지 않고 수 시간이나.
슈리엘은 말없이 고개만 까딱거리며 사과했다.
"…일이 많아서 말이야. 사과하지. 유진, 들어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