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 흣. 하앙…"
철벅, 철벅. 엉덩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퍼진다. 나는 후배위로 개처럼 박히며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슈리엘은 두 번째 사정을 준비하며 넌지시 물었다.
"유진. 음. 아니지… 이제 유진 레칸테인가? 아직 공식적인 작위를 받진 않았지만, 그것도 곧 멀지 않았구나."
"아, 아직, 흐앙, 흐으. 안 정했, 어요호…"
섹스에 빠져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다.
평민이 귀족이 되면, 이름 관련해서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첫 번째. 영지의 이름을 성으로 삼는 것. 가장 편한 방법이었지만, 후대에 퍼질 영광을 생각하는 이들은 다른 방법을 택한다.
두 번째. 성은 받지 않되, 후세들에게 '유진'이라는 성을 몰려주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대부분 두 번째 방식을 택하지만, 여성의 경우 의미 없는 선택지였다. 상대가 평민이 아닌 이상 남편 성을 따라가니까. 독신으로 살면 의미가 없으니 사실상 남성 전용이었다.
세 번째. 레칸테를 루셸리니의 속령으로 만들곤, 내가 루셸리니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속령과는 별개로 공식적으로 슈리엘의 아내가 된다. 이후 내 밑으로 난 구성원은 루셸리니의 방계가 되는 것이고.
여성은 선택지가 적었다. 두 번째든 세 번째든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 성을 잇는 건 똑같았으니까.
그래도, 이왕 한다면…
"도, 도시히… 가져도 돼요… 저, 저. 이거, 선물, 흐긋… 이에, 요. 마음껏 다뤄도, 죠, 죠하여허…"
…세 번째가, 좋지 않으려나.
―똑똑.
"큭… 누구냐!"
"하으윽, 크흡…"
음탕하기 짝이 없는 고백에 불끈한 슈리엘이 사정하려는 찰나,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저예요! 파니! 들어가도 될까요?"
―부르릇…!
"햐아아앙…!!"
노크의 주인은 내 전속 시녀 파니 알펜리스였다. 그녀는 내가 녹아내리는 소리를 내자 당황하며 물러섰다. 문 너머까지 들리는 사정 소리.
"…들어와라."
다만 나와 슈리엘의 정사는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네에~"
- 끼이익… 문이 열리며 갈색머리 미소녀가 들어온다. 알펜리스는 금수처럼 교미해대는 우리를 향해 목을 가다듬더니, 앙칼진 목소리로 하나의 소식을 전했다.
"그게~… 웬 꼬마애가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졸라대더라고요…?"
"흐윽, 히극…"
"듣고 계시죠…?"
정액으로 빵빵해지는 배.
알펜리스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진다.
"크흠. 아무튼! 계속 말할게요."
"끄흡, 흑… 가, 가버려허…."
"뭔가, 머리도 붉고 귀여운 게 아가씨를 닮았구…."
"흐그, 흐으…?"
그 말을 듣자 뭔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본능적인 위험 경고였다. 나는 급속도로 차가워진 머리를 돌려 파니를 바라보았다. 슈리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정하길 멈추고 살벌한 눈을 지었다.
"히,힉? 그게… 고, 고아인 거 같더라고요…?"
"…자세히 설명해라."
"자꾸 엄마를 찾길래― 히익! 죄송합니다…!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 주세요!"
……
…
…아직 이틀 남았는데?
에일린은 환한 무지개 속에서 눈을 떴다. 공기도 무척이나 서늘하다.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축축하고 어둠뿐인 심상세계와 비교도 안 되는 맑은 하늘이 보였다.
에일린은 모든 엘프가 바라보는 앞에서, 세계수의 가지를 타고 카르드라실에 내려왔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또 예상치 못했다. 지모신의 가지에 감싸여 내려온 자는 엘프가 아닌 인간의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엘프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모신이 직접 내려준 아이였다.
카르드라실에 혼란의 바람이 불어온다.
세계수는,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더 빠르게 에일린의 육체를 만들었다. 적응을 위해서였다. 기초 상식도 없이 세상에 나간다면, 괴리감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에일린은, 땅을 밟자마자 얼음송곳을 만들어 팔목을 잘랐다. 엄마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것.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처음 느껴본 자극에 소리를 지르며 끅끅댔다.
기겁한 엘프들에게 신속히 응급처치를 받아 곧바로 멀쩡해졌지만, 난생처음 느낀 고통은 너무 강한 자극이었다.
과다출혈로 정신이 몽롱해지는 감각은, 고통과 별개로 집착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통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엄마가 왜 그토록 집착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직 모든 게 궁금한 시기.
아크 메이지의 핏줄을 이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호기심을 풀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 뒤로도 에일린의 기행은 계속됐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엘프들을 속여 자신에게 화살을 쏘도록 만들기도 했다. 다만 제 어미와 다르게 쾌락도, 행복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마다 엉엉 울며 끌려갔지만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뭐… 얼마 가진 않았다.
고통에 거부감을 느낀 에일린은 그날로 자해를 관뒀다.
그이후.
엘프들은 필사적으로 에일린을 가르쳤지만… 기초 지식이 부족한 건 엘프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나쁜 짓이다'라고 막연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자해를 금하는 이유는, 다치면 세계수를 지키지 못하니까. 그뿐이다. 그런 걸 인간에게 설명해 봤자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나머지 교육. 특히 성교육이 문제였다. 엘프들은 에일린이 쉽게 다리를 벌리길 원치 않았다.
"이거, 오늘 주제. 번식 방법을 가르칠 거야."
그리하여 시작된 성교육.
에일린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녀를 가르칠 선생님은, 일전에 쌍둥이 악마 토벌에 가담했던 엘프, 라냐의 몫이었다. 말투가 좀 어눌하지만 직설적이고, 에일린을 보고 지모신님의 아이라며 호들갑 떨지도 않았으니까.
"저요, 저요! 저 그거 알아요!"
교수는 적극적인 학생을 좋아하는 법. 라냐는 한 명밖에 없는 학생이 우등생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말했다.
"좋아. 대답해."
에일린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성이 여성의 목을 단단히 조른 다음, 배꼽이 튀어나올 때까지 자지를 박으면 돼요! 그리고, 그리고. 여성은 사정이 끝나면 임신하기 쉽게 보지에 마개를…."
"틀렸어."
"힝…."
파멸적이었다. 엄마가 너무 좋아하다 보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라냐는 이 안타까울 정도로 무지한 아이에게 성性을 가르쳐주었다.
"잎이 많으면 번식할 필요가 없어. 하지만, 저번처럼 너무 많은 잎이 떨어지면 수를 맞춰야 해. 그래야 지모신님을 지킬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평소에 섹스를 안 하나요?"
"불필요. 아프기만 한 의미 없는 행동이야."
아하! 그래서 엄마가 섹스를 좋아하는구나! 에일린은 새로운 깨달음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고통을 좋아하니, 섹스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실로 참담한 결과 도출이 아닐 수 없었다.
라냐는 깨달음을 얻은 에일린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른 살까진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가지고 싶어도 생기지 않고. 최소 이십 년은 지모신님을 지켜야 하거든."
"으음… 엄마는 스무 살인데요?"
"…어려운 질문. 그런 어린 나이에 번식에 성공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어."
"에엥…?"
당연히 이 모든 건 엘프 기준이었다.
라냐는 무엇이 이상한 줄도 모르고 본인의 성지식을 주입했다.
"암컷은 강한 수컷의 씨를 선호해. 카르드라실에서 가장 강한 엘븐 나이트는 적게는 넷, 많으면 열 명 이상의 암컷에게 씨를 뿌릴 수 있어. 그 반대는 금지돼있으니 알아둬. 암컷이 여러 수컷의 씨를 받다간… 섞여버릴 수 있으니까."
"강한 수컷은… 씨를 뿌릴 의무가 있다아…"
"정확해. 똑똑한 아이. 칭찬해줄게."
"네! 헤헤, 감사합니다!"
라냐의 말을 열심히 주워 담으며 생각에 빠진다. 강한 수컷이라… 당장 떠오른 자는 제 아비인 슈리엘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슈리엘보다 강한 남자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 머릿속에는 말이다.
"서른 살이 되면 아빠랑 번식해도 되나요?"
순수한 질문이었다.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 그럴 만한 게, 유진이 보여준 것이라곤 죄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 뿐이었다. 강간, 사지절단, 마약 등…. 에일린이 '고작' 근친에 이상함을 가지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유진이 슈리엘을 만나고, 비로소 고통 없는 행복을 느꼈을 때―― 에일린의 사고는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종일 고통을 갈구하며 몸부림치던 엄마가, 자지에 좀 박혔다고 금세 얌전해지다니? 이는 라냐가 말한 '암컷은 강한 수컷의 씨를 선호한다.'라는 말과 결합했다.
'강한 수컷 씨를 받으면 저렇게 되는 건가…?'
한 가지 의문은, 아빠보다 엄마가 더 강한데 어째서 치료가 됐느냔 거다. 본인보다 더 강한 수컷의 씨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수컷 중에서 가장 강한 씨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렇다면, 가장 강한 수컷이 제 혈육일 때는?
당장 교정이 필요한 미친 소리였지만, 라냐는 생뚱맞은 답을 내놓았다.
"딱히… 상관없어."
세계수 아래 모두가 가족인 엘프는, 대를 걸쳐 근친 교배를 해도 유전적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근친은 사소한 '선택사항'이었다.
라냐는 몇 초 고민하더니, 이내 별거 아니란 걸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강한 수컷이라면, 가능해."
"그렇, 군요!"
결론만 말하자면, 서로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에일린은 이것을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했다. 그냥 알아만 두는 거다. 바로 실행할 것도 아닌데, 이리 끙끙대봤자 시간낭비였다.
틀리면 그때 가서 정정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루하루.
카르드라실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처음 맡은 풀의 향기.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대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계속 있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심정은 세상 빛의 기쁨보다 앞서있었다.
아직 일 년 채 되지 않은 미성숙한 영혼을 담는 기술은, 아무리 세계수라도 어려워하는 기술이었다. 최대한 당겼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둠 속에서, 어미의 눈을 빌려 세상을 훔쳐보는 나날. 말을 걸어도 닿지 않았다. 혼잣말하며 노는 것도 질렸다. 이곳에서 엘프들과 노는 것도 질렸다.
에일린은 부모 품이 간절했다.
결국, 결심했다. 본래 약속 기간인 석 달을 채우기 정확히 사흘 전이었다. 에일린은 엘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이곳을 떠나겠노라 선언했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전 이만 가볼게요!"
지모신의 선택을 받은 아이가 떠난다. 엘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몰려와 에일린의 결정을 만류했다. 다만 적극적으로 말리진 못했다. 떠나는 것조차 지모신의 뜻이 있겠거니 생각한 탓이었다.
"에일린."
그런 소극적인 인파 사이로, 은발의 엘프 소녀가 당당히 등장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에일린을 가르친 라냐였다.
그녀는 에일린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밖은 추악해. 모두가 서로를 미워하고, 더러운 괴물들이 살고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세계수 아줌마가 말했어요. 저보고 엄마를 인도하는 등불이 되라구요. 여기 박혀 있으면 어떻게 등불이 되겠어요?"
"여기, 어머니 대자연이――"
"미안해요. 제 엄마는 세계수가 아녜요."
"…."
서로 알고 있는 바였다. 따라서, 억지를 부릴 순 없었다.
"…우리 카르드라실은 언제나 대자연의 아이를 환영해."
어머니 대자연, 대지모신이 내려준 아이.
카르드라실이 거부할 일은 없었다.
라냐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곤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때. 에일린이 출구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일린.
"…세계수 아줌마?"
세계수와의 연걸은 육체가 만들어지고 곧바로 끊겼을 텐데…? 에일린은 울려 퍼지는 파동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 어…?"
하늘에서 길쭉한 가지가 내려온다. 에일린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세계수의 가지는 무언가를 감싸고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