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2)

그렇게 그 날의 묘했던 상황이 지나가고, 난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 날 일어나서 그 낯선 이를 제압하지 않았던 것만을 후회할 뿐, 그리고 그 

낯선 이는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내가 꿈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제 안 나타나려나.. 정말 내가 피곤해서 착각한 건가? 꿈이랑 현실을..??’

이제는 그 날의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혼동이 올 정도의 상황 이였다. 

그렇게 내가 그 날의 상황을 추리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와중에 찾아온 막내 김 이병의

100일 휴가, 우리 모두 섬에 있느라 밖에 나갈 수 있는 기회는 휴가 때 밖에 없어서

다들 김 이병을 상당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건 나또한 마찬가지였다.

“야.. 밖에 나가서 괜히 사고치지 말고, 알았지? 손 넣고 다니다가 헌병한테 걸리면 죽어.

특히나 서울역엔 잠복해 있는 헌병 새끼들이 많다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하 병장님 말대로 사고치지 말고.. 그리고 알지? 부탁한 사제담배! 크크크”

“뭔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그래. 막내한테”

“정 소위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사제담배를 피워봅니까..흐흐. 저희도 휴가 나가면 다

사와서 후임, 고참들하고 나눠서 피고 그럽니다“

“으이구..이 꼴초들..”

“아..김 이병!”

“네! 하 병장님!”

“그.. 부탁한거 알지? 흐흐..”

“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배 출발한다. 얼른 타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김 이병이 배를 타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우린 모두 부러움을 느끼며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아 근데 하 병장”

“네! 말씀하십시오”

“그... 뭘 부탁한다는거야? 아까 김 이병한테 한 말 말이야”

“아..아닙니다. 그런 게 있습니다..흐흐...”

“뭐야! 난 알면 안되는건가?”

“그게.. 남자만의 비밀입니다. 그냥 모른 척 해주십시오”

“지금 상관한테 말하지 않겠다는건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그냥 넘어가 주십시오!!”

“흠.. 알았어..!”

난 하 병장이 숨기려 하고 말을 돌리는 걸로 봐서 대충 눈치를 챘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갔다. 

‘훗.. 뻔하군.. 포르노 잡지 같은 거겠군...’

그리고 그런 내 추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김 이병의 짧은 100일 휴가가 끝이 나고,

복귀한 날 난 경계근무를 마치고 들어와 곧바로 내무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구석에 모여서 웃어대던 녀석들은 일사분란하게 무언가를 매트 안으로 숨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거기 숨긴 게 뭐야?”

“아..숨긴 거라니..그런 거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눈에 다 걸려버린 상태, 난 뚜벅뚜벅 내무실 안쪽으로 들어가 매트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순간 좆 됐다는 표정의 녀석들의 표정, 난 녀석들의 표정에 실소가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숨겨진 물건들을 꺼냈다. 

매트에서 나온 물건은 총 5권의 포르노 잡지였다. 

“잘한다. 이런 걸 막내한테 심부름이나 시키고..”

“아..그게 저..”

“됐고..! 이게 다야?! 더 숨긴 거 없어? 나중에 더 나오면 뼈도 못 추린다”

“네.. 그게 다입니다! 진짜입니다”

“흠..알았어.. 이번은 그냥 넘어가주지”

“저..근데 그건..!”

“이거야 당연 압수지!! 어딜 군대에서 이런 걸..!! 군대에서 이런 물건도 취급가능 

품목이라고 되어 있나?!“

“아..아닙니다.!!”

“그래.. 그냥 넘어가 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 것이지. 그럼 쉬어!”

“네.. 들어가십시오..”

난 힘 빠진 목소리로 울상이 된 녀석들을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내무실을 빠져 나왔다.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잡지들을 하나하나 펴 보았다. 일본, 독일, 미국 등등

잡지들은 출신들도 다양했다.

“참.. 이런 게 뭐가 재밌다고 그러는건지...”

잡지들을 슬쩍슬쩍 넘기면서 보는데 정말 자극적인 사진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완전히 벗은 상태의 사진들은 기본 이였고, 손으로 성기를 활짝 벌리고 있는 사진, 

가죽 끈으로 된 옷을 입고 채찍을 든 사진 등등 정말 저질스런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우..!! 저질들..!!”

잡지들을 잡아 모조리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는 더운 열기를 식히러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 안에는 박 상병과 하 병장이 있는 듯, 밖에 슬리퍼가 벗겨져 있었다. 

“흠.. 있다 와야겠네..”

그때 샤워실 안에서 하 병장과 박 상병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가..”

“뭐긴 뭡니까!! 정 소위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삶의 낙을 그렇게 뺏어 가는 건지.!!”

“놔둬라.. 여자가 뭘 알겠냐.. 에휴...”

“그래도 그렇지 말입니다!!! 우리가 휴가 때 아니면 그런 거 어떻게 본다고...!! 다른 부대는

인터넷도 있고 그런데.. 우린 이게 뭡니까!!“

“에휴.. 난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빨리 제대 하는 게 상책이지~ 이 노무 섬에서 얼른

빠져 나가는 것만이 답이다“

“아휴.. 열 받아서 정말..!! 정 소위 분명 빨통도 무지 작을 겁니다..!! 그러니 열폭해서 

저런거나 뺏어가지..!!“

“크크크..아 존나 웃긴다... 진짜 그런 거 아냐?”

“진짜입니다!! 분명 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껍니다”

“아..크크크.. 존내 대박이다. 너 정 소위 앞에서 그렇게 말해봐. 어떻게 되나 보자”

“미쳤습니까.. 맞아 죽게..흐흐.. 화나니까 그냥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지 말입니다”

난 나를 조롱하며 웃어대는 소리에 순간 화가 울컥 나서 샤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억지로 화를 눌러 참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 녀석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나를 물로 봐?! 내가 너무 잘해주기만 했어..!!

앞으로 더 빡세게 굴려야 정신을 차리지..!!`

하지만 이내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나이에 군대에 들어와서 그것도 이런 섬에서

외부와 정말 완벽히 차단된 상황에서 저런 잡지까지 못 보게 뺏어간 건 너무 했나

싶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흠.. 잡지는 돌려주고 내일부터 빡세게 굴려? 아.. 어떻게 하지.. 고민되네..거 참..’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잡지를 돌려주자니 뭔가 모양새가 이상할 것 같았다. 결국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 이였다.

‘아 몰라.. 뭐.. 하는 것 봐서 빡세게 굴리든가 하면 되겠지.. 뭐.. 내 앞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뒷담화를 들은 거니.. 에이 몰라.. 잠이나 자자.. 피곤한데.. 또 새벽 근무 나가야

하니..‘

골치 아플 땐 더 생각하면 머리만 아파지는 지라 난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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