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117화 (117/174)



〈 117화 〉117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앞에 보이는건 나와 똑 닮은 모습을 한 전신의체였다. 아마도 내 전신의체의 사용 데이터를 이용해 코스트를 낮추어 생산단가를 떨어뜨린 전신의체들인 듯 했다. 하지만 저런 전신의체라고 해봤자 정작 필요한 두뇌가 없으면 안될텐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나 많은 전신의체를 제작하고 있는걸까?

“어때? 대단하지 않아? 현아 너의 양산형 전신의체들이야.”

“그래서 이딴게 뭐 어때서? 나도 알고는 있었어. 내 전신의체를 이용해 양산형을 만든다는 것은... 물론 약간 충격이긴 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

“흐응~ 뭐 현아 네 육노예에게 흘린 정보니까... 아무튼 중요한건 이게 아니란 말이지.  더 따라와 주지 않을래?”

그렇게 전신의체를 만드는 공방을 지나자 위험 접근금지 문구가 달린 방에 도달했다. 어쩐지 정말 들어가면 안될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호기심을 참아낼 순 없었다. 게다가 준후와 함께이지 않는가? 이렇게 같이 걷는 것도 오랜만인데... 솔직히 팔짱까지 껴보고 싶은데 준후가 허락할리는 없겠지.

“어때?”

“뭐가? 그저 무슨  같은걸 만드는 것 같은데...?”

“정답~ 그래. 현아  말대로 이건 특수한 칩을 만드는 공정이야.”

불안감이 더 엄습했다. 분명 들으면 후회한다. 그런 느낌이 더욱 더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치기엔 여기까지 애써 온 보람이 없었다. 결국 준후의 다음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어떤 칩인데...?”

“이정도로 공들인다면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아? 두뇌칩이야.  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두뇌칩 말이지. 조금 충격이려나?”

“두..두뇌칩?! 그..그렇다는건 설마?... 내 머릿속에도 저런 칩같은게?  대신 들어있다는거야?!”

“그래. 사실 현이의 두뇌를 이식하고 싶었는데... 실패하고 말았지 뭐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 두뇌칩에 현이의 기억의 일부를 이식한거야. 그렇게 탄생한게 현아 너야.”

“그..그럴수가!! 사..사실이 아니지? 내..내 머릿속에 있는게 두뇌가 아니라.. 치..칩이라구?!”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어쩐지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멍한 눈빛으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가! 두뇌 대신 기억을 이식한 칩이라니... 그럼 도대체 난... 누구라는 말인가! 이현이... 아니였다는 걸까? 그저 이현의 기억을 가진 안드로이드? 그거였던가..?!

“역시 충격이었나보네. 큭큭. 뭐 내 멋대로 조금 조정해놓긴 했지만... 그렇게 쉽게 망가질 줄은 몰랐단 말이지. 자존심 강하던 그 이현이... 이렇게 음란해 질 줄은 몰랐어. 역시 이현의 기억에 적당히 프로그래밍한 인격을 부여해서 그렇게 되버린건가? 그래서 질려버린걸지도...”

“거..거짓말!! 거짓말이지?! 그렇다고 말해줘!! 내..내가 섹스로이드 같은... 안드로이드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이렇게 생각도 하고 자율의지도 있는데... 게다가 세..섹스 좋아하게 된것도 내 의지야!! 비록 준후 네가 이렇게 만들어서 그렇게 되버렸지만~!! 그래도 내의지라구!! 그런데 내가 그저 이현의 기억을 복사한 그런 안드로이드 일리가 없잖아?!!”

“아아~ 조금 정정해줘야겠네. 이현의 기억중 약 60퍼센트 정도를 복사한 거의 타인이나 다름없는 가짜 라고 말야. 물론 자율의지또한 실험하기 위해 준것일뿐이야. 저기 지금 기억복사를 하고 있는 전신의체가 좀 더 이현에 가까울걸? 저건 약 80퍼센트정도 복사한 녀석이니까. 차라리 저게 너보다 이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큭큭.”

“그..그럴수가...! 아..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제발...흑.. 내..내가 이현이 아니면 뭐라는거야?!! 가짜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하하.. 하핫... 그럴 리가 없어...!!”

정말 충격이었다. 그저 이현의 기억을 복사한 안드로이드였다니... 너무도 큰 충격에 실성한 듯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럼 그동안 지내왔던 나는 뭘까? 그저 프로그램대로 행한 그런 안드로이드였을 뿐이었던가? 내 자율의지는..?

“그래. 어때? 비밀을 알게 된 소감은?”

어쩐지 정신이 멍해져 버렸다. 준후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잘 들려오지 않아버렸다. 뭐라고 하는  같았지만...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그만큼 충격이 컷나보다.

“이것참... 고장나버린건가? 그럴 리가 없을텐데?”

“나..난... 네 장난감이 아냐!!”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 없었다. 준후가 좋았었는데... 이런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니...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텐데... 정말 슬프고 분한 기분이 들었다. 준후의 명령대로 이런저런일을 했었다니...

“그래. 뭐 그렇다면야~ 그래봤자. 넌 이현의 기억을 가진 장난감일 뿐이지만... 이제 그것도 질려버렸어. 내게 필요한건 역시 완변한 이현 그자체야. 좀  괴롭히는 맛도 있고, 자존심도 굽히지 않는 녀석 말이야. 너 따위와는 틀려.”

준후의 독설에 이대로 무너져버릴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준후앞에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준후가 좋아하는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오기가 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붙들어 맸다.

“으득. 사..상관없어!! 내..내가 그저 이현의 기억만 복사한 존재더라도!! 나..난 나야!! 현아라구!!”

“호오? 그렇게 충격이 심하지 않았나봐? 아니면 반발심이려나? 뭐 상관없지. 어차피 이제 너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네 멋대로 해버려.”

“큭! 으으. 죽여버릴거야!! 흑~!”

“근데... 그건 알고 있으려나? 네가 빼돌려서 현준이에게 넘겨준 지연이 말야. 섹스로이드로 두뇌를 옮겼다고 알고있는건 아니겠지?”

“서..설마?! 아..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설마 지연이마저... 아닐거라 생각된다. 현준이가 나와 같은 모습으로 지연이의 기억을 복사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당연하잖아? 우리 기업도 못한걸 현준이네 기업이 했을 것 같아? 아니 되려 너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버렸을걸? 대충 20~30퍼센트정도 효율이려나? 그정도 기억에 현준이 녀석 멋대로 적당히 조작했겠지.”

“그..그럴 리가 없어! 그..그딴  지연이도 뭣도 아니잖아?!!”

그러고 보면 분명 그랬다. 착했던 지연이었는데... 섹스로이드가 된 이후에... 어쩐지 상당히 바뀐 모습을 보여줬었다. 현준이에게 매달리기나 하고... 날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그땐 그저  몸이 변해버려서 어색해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런 이유가 있을 줄은...

“하하. 이번건 더 충격이었나봐?”

“그..그럼 지연이는... 지연이는 어떻게 되버린거야?!”

“그야 패기처분했겠지. 어차피 필요한건 기억의 일부일뿐이니까.  좀 더  사용하기 위해서 였겠지. 우리 기업의 기밀을 빼돌리기 위해서였으려나?”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준후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그저  좀더 쉽게 조종하기 위한 인질... 아마도 현준이는 있지도 않은 뇌 이식에 대한 기밀 자료를 가지고 싶었던 거겠지.

“결국 현준이 집에 있는 지연이는... 그저 섹스로이드였을뿐인거네..? 하하...”

헛 웃음이 나왔다. 내가 전신의체가 된 이유도...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도...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지연이가 그렇게 된건... 분명 내탓이었다. 차라리 그대로 놔뒀다면 어떻게든 치료를 했을텐데... 아니면 다시 뇌 이식 실험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전부 망쳐버린 듯 했다.

“으흑.. 내가.. 나 때문에... 지연이마저... 흑흑.”

“뭐 그렇긴 해. 그냥 우리 기업에 맞겨놨다면... 낮은 확률이지만 전신의체에 뇌이식을 다시한번 해  수 있었을텐데... 어때? 현아 네 자신이 바보 멍청이처럼 느껴지지 않아?”

“흐윽...”

더 이상 무언가 할 말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준후가 보는 앞에서 오열하며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알  있었는데... 그저 무심코... 알고싶지 않아서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결국 결과는 모든게 엉망진창이 되버리고 말았다.

“이제 이유도 알았으니 네 멋대로 한번 살아봐. 뭐 패기처분하는게 좋겠지만... 인심썼다. 킥킥.”

비열한 준후의 웃음을 들으며 처량하게 준후의 집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저 복사된 거짓기억이라니... 게다가 지연이마저 그런 꼴이 되버렸다니... 지연이를 도대체 어떻게... 아니 현준의 집에 있는게 정말 지연이라고 생각해야하는걸까?

“현아...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흑.. 시..시리아 언니... 우아아앙~!!”

시리아 언니가 준후의 집을 나오며 그렇게 말하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며 울음이 터져나왔다. 정말 서럽게 울어버린  했다. 시리아 언니의 품에 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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