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원래 은협은 고등학교 때 적이 많았다.
녀석이 워낙 철딱서니가 없는데다가 너무나 순수한 마음으로 여기 저기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녀서 미워하는 녀석도 꽤 있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녀석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덩치도 크고, 순수하고 철없는 아이 같았다가도 한번 또 빡 돌면 무섭게
주먹질도 했던 녀석이라 주변에 친구도 많았다.
그러던 와중,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강서준이 입학했다. 한 해에도 늘 새로운 입학생이 생기고 떠나는 졸업생이
생긴다. 그러니 강서준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였을 리 없고, 서준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윤은협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고, 또 누구에게 시비가 붙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언제나 시작은 은협의 그
철없는 행동들 때문에 생겨났으니, 뭐 누구를 탓할 마음이 없다.
은협과 서준은 시작부터가 안 좋았다. 바로 잘 나가던 일학년 강서준의 누나를 겁도 없이 꼬득인 은협이 잘못한 것이다.
녀석은 물론 나이트에서 전혀 모르고 꼬신 것이라고 두 손을 싹싹 빌었지만, 문제는 조금 깊었다. 어린 여고생은 은협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은협이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날 유산을 한 후 시름 시름 앓았다.
물론 은협이 녀석은 끝까지 아무 것도 몰랐다. 그녀가 임신 한 것도, 정신적 충격으로 자연유산을 한 것도, 그리고 학교를
퇴학당한 것도..그것이 서준의 누나라는 것도-!
처음부터 이 일의 뒤처리는 내가 맡았다. 나는 이미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부터 냉정한 편에 속했고, 어지간해서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서준에게 유린당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부터 서준은 우리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아니, 사실 서준이 그 차갑고 악마같은 시선으로 우리를 노려본 것, 특히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은협을 보호하는 나를 노려본 것은 언제나 그 때부터였다. 녀석의 입장에서보면,
원래 단순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은협보다 당연히 사리판단이 있으면서도 은협을 늘 보호하는 내가 미운 것이다. 나라도 응당
그랬을 것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언제나 더 얄밉다.
하지만, 나도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그 이후로 서준의 누나가 다행히도 몸을 회복하고, 공부에 전념하며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라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는 내
인생도 죄의식이 가득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남으로 인해서 그 일은 곧 잊혀졌다.
무엇보다 나는 우정으로 은협을 지켰으므로 되었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강서준의 입장은 달랐던 것이 분명하다. 그
녀석은 역시 나를 망치고 은협을 망쳐야 할 당연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