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19/38)

            4. 

            마침내 결심했다. 

            나는 은협에게 비장한 메일 보냈다. 내 아파트 전세금을 빼..라고. 

            그 아파트 전세금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다들 모른다. 미친 듯이 일하고 동물같이 일해서 번 돈 1억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모아도 겨우 번다는 게 2억에서 3억이다. 그런 돈을 함부로 써대는 이들 모두에게 화가 났다. 

            나는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점점 지쳐갔고, 이제야 서서히 내가 정리해야 할 것이 뭔지를 깨달았다. 

            바로 이 일의 화근이 된 윤은협이야 말로 내 삶에서 정리되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이었다. 강서준의 말이 맞다. 어느 정도는 

            내가 은협을 그렇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만을 바라보게 만든 댓가. 그 보상이 너무 크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사내의 배출구로 쾌감에 점점 

            가까워지는 이 상황이 초조해진다. 이 심장을 가득 채우는 나의 살기가 언제 밖으로 튀어나올지가 가장 두려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파멸한다. 나는 정말 강서준을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감금되고 납치되고 유린당한지 딱 일 개월. 나는 마침내 내 피같은 돈을 강은협의 뒤치닥꺼리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와 같은 일이 한두번도 아니지만, 이번에야 말로 끝이다. 나는 더 이상 고등학교 이학년 때, 장난과 혈정에 얽매여 

            손가락에서 피를 끊으며 의형제 어쩌고를 했던 그 시절의 유기연이 아니다. 이것으로 은협과 나의 인연도 끝이다. 정말 

            완결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것으로 나와 녀석의 이 끈질기고 빌어먹을 우정이 쫑나야 맞는 거다.- 아니, 적어도 이제 정말 일어설 수도 

            없을만큼 지쳐서, 내 스스로가 은협을 포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 내 아파트 전세값 1억을 빼. 그리고 니 사무실 계약 보증금 5000만원도 빼 내. 둘이 합쳐서 담보로 잡고 은행에서 

            나머지 금액을 어떻게든 빌려. 

            ....이번에 나 못 구하면 넌 죽을 줄 알아, 강은협!...- 

            그렇게 메일을 띄운 날도 어김없이 녀석에게 안겼다. 몇 번의 동물같은 신음들, 그리고 부질없는 저항, 언제나 그 저항의 

            말미에는 기다렸다는 듯 뚫고 들어오는 몸- 

            내 머리 속이 점점 갈라진다. 욕실의 타일들처럼 산산조각 나기 전에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삶에서 

            나는 살아남기를 희망했다. 

            그러니, 네가 제거되어야겠다. 강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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