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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와, 씨발... 일본도 비슷하다고 사정은 들었지만 이정도면 제대로 남아있는 곳이 없겠네, 돌겠다. 내가."
겨우겨우 올라온 다음 입 안으로 잔뜩 스민 바닷물을 퉤퉤 뱉으며 서우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항구도시인 건 알겠는데 주변은 몹시도 황량했고 거기에 좀비 특유의 시체 썩는 내가 곳곳에서 풍기고 있었다.
네비게이션을 켜보긴 했지만 정확한 위치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수영하다가 실수로 유일하게 한 갑 남아있던 담배는 축축하게 젖어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도 그것까지라면 좋았다. 물에서 나오자마자 시체처럼 누워있던 것들이 꽈드득, 끼긱, 하는 괴기한 소리를 내며 저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몸을 돌린 수 많은 좀비들을 보자니 귀찮음이 먼저 앞섰다.
"퀙, 퀘에에에엑!!!"
"미친놈아 개 깜짝 놀랐잖아?! 성악을 했나, 목청만 좋네."
"쿠어어어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서우는 주머니에 박고 있던 손을 뽑아 소리를 지르던 성악가 좀비의 머리에 칼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시뻘건 눈에서 정체모를 덩어리진 액체를 뚝뚝 흘리며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달려와 무심코 혀를 끌끌찼다. 마침 해가 떠 있으니 어렵지는 않겠지만 와이어를 손에서 내뿜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일단은 집중도 해야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처음엔 좀비 한 마리 죽이는 것만으로도 마냥 기뻤었는데.. 이상한 소리를 중얼중얼 거리면서 손을 맞대고 와이어를 길게 뽑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온 좀비의 얼굴을 사선으로 그어버렸다. 순간 그림자가 진 탓에 일격에 안면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좀비의 양쪽 안구는 동시에 파열되어 계란 흰자처럼 꿀럭거리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온도로 사람을 찾는다지만 눈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겠지, 괴성을 지르는 좀비를 발로 차 물에 빠뜨리고, 뒤로 물러난 다음 근처의 좀비들을 향해 와이어를 쭉 뻗었다. 그렇게 가까이에 온 둘은 목이 잘림으로써 바로 움직임이 멎었지만 근처에 있던 좀비가 문제였다.
"새끼가 가드를 치네, 뇌도 없는 게."
양팔이 잘린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뛰어오는 좀비를 보며 와이어를 날리는 순간이었다. 뭔가 등뒤가 서늘하가 싶었더니 좀비가 덥석, 자신의 목을 물었다. 바로 머리를 잡아당겨 앞에 있는 좀비에게로 던지니 그래도 여자다. 서우는 슬쩍 자신의 목을 만져 보았다.
키스마크가 참 진하게도 남은 것 같다. 남자 좀비에게 물리지 않은 게 어디람, 나름대로 안도하며 두 좀비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며 손을 위로 올렸다. 함께 따라온 와이어는 그대로 겹쳐졌던 머리들을 갈라버렸고, 선지 피가 진하게 쏟아지는 것과 함께 머리가 석류가 반으로 갈라지듯 갈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좀비는 수십 마리가 남아 있었고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종종 생긴다는 돌연변이 좀비 하나, 다른 좀비의 키의 두 배를 웃도는 그 좀비가 자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째 한국보다 더 큰 것 같네, 방사능을 달큰하게 한 뚝배기 빨았나?"
가볍게 자리에서 점프한 서우는 그대로 좀비의 위에 올라탔다. 좀비가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으나 미칠듯이 튀어나온 근육 탓에 제대로 맞는 것 또한 없었고 그 틈을 노려 광속성의 와이어를 주욱 뽑아 목에 가져갔다. 그리고?
"쿠어, 끄아아아아아!!!"
슬근슬근 열심히 톱질을 하기 시작했다. 좀비가 된 후 변이를 일으키면서 근육이 일반인의 몇십 배에 가깝게 발달한 좀비는 일격에 다른 좀비의 목을 자를 수 있는 와이어로도 톱으로 썰듯 썰지 않으면 잘리지 않았기에, 서우는 미친듯이 휘둘리면서도 차근차근 좀비의 목을 썰었다.
"퀘엑, 퀘에ㅇ...."
"아, 더럽게 질기네, 이제 반 쯤 잘랐나?..좀 잘려라........ 아, 미친-"
방심한 순간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좀비의 주먹이 엄청난 속도로 서우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역효과가 되어, 서우가 그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와이어에 무게가 실려 목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촤악, 하고 자신에게 튀는 피에 개가 몸에 묻은 물을 털듯 서우는 부르르 떨며 축구하듯이 좀비의 머리를 발로 차서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의 몸에 명중시켰다.
"나중에 바다 들어가서 수영 한번 해야겠네. 덩치가 크니까 피도 많이 뿜는구만.."
짧은 한숨, 서우는 곧바로 다른 좀비들 사이로 파고들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렇게 야마가타에서 홀로 시작한 여행, 그 여행의 목적은 3일 후에야 겨우, 아주 조금 0.001 % 채워졌다.
"헉, 허억.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서우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발에 매달리는 여자를 보았다가, 저 멀리서 완전히 뭉그러져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죽어가는 좀비를 쳐다보았다. 아마 저대로 내버려 두어도 죽겠지. 원숭이 좀비라 그런지 확실히 빨리 죽기는 한다. 그게 참 편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올려다 보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기저기 굴러서 더럽기는 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인데도 썩 나쁘지 않다.
한 마디로 꽤나 반반한 축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 있었을 때면 씨발 갖다 버려 수준의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벌써 3일 째였다. 자기 인생의 이런 긴 금욕은 태어나서부터 15살까지 한 금욕밖에 없었노라 생각하며 서우는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맙다고요?”
“예?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요, 음... 알았으니 일단 벗고 말해요.”
============================ 작품 후기 ============================
표지와 소개글은 노쓰우드님이 도와주셨습니다.
+)
왜 배경이 일본이냐, 일본에 격한 악감정이 있냐고 물으시는 분이 많아서 1화에 적어 놓습니다~
지금은 결국 저 혼자 쓰지만 이 소설은 프로젝트[?] 소설이었습니다. 민영모 작가님이랑 저랑 같이 쓰는 소설이었는데, 그러니까 서로 세계관은 같게 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로 다른 주인공으로 따로 따로 쓰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민작가님이 바쁘셔서 민작가님 분의 짐승은 연재가 되지 않고 저 혼자 제 짐승[?]을 쓰고 있는데, 세계관이 겹쳤을 때 나라가 같으면 주인공들이 만나서 부딪치고[?] 그리고 서로가 그 세계관 안에서 있었던 일을 다르게 쓰면 이상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저는 대통령이 외국으로 도망갔다고 썼는데 민작가님은 남아 있었다고 쓴다든지] 그러면 좀 이상하니까, 민작가님은 한국- 저는 일본이 되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서우가 떠돌게 된 거[?] 이 짐승을 완결하면 아예 새로운 짐승을 해서 한국에서 사는 서우ver 로 한번 써보고 싶기도 하네요. 그러니까 더 이상의 오해는 never NAVER DAUM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