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4 / 0198 (4/198)

0004 / 0198 ----------------------------------------------

짐승

*

-우그르르르.....쿠으, 그르륵..

"......제발 좀 닥쳐라, 이것들아. 잠 좀 자자고...."

-쿠, 크르르....끅, 끄으어어......

"미친..."

-그어어어어!!!!!!!!

"..아하하하, 씨발!!"

서우는 몸을 감싸쥐고 이리저리 구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좀비가 울부짖는 시끄러운 소리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아 미칠 것만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무리 군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능력자라는 신분이 있었기 때문에 안전한 서울에서 조용히 잠들었기 때문일까, 잠자리가 불편한 건 큰 문제가 아니였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계속 설쳐서 라이터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가서 좀 썰어버리고 잘까 싶기도 했다.

오면서 좀비를 착실하게 쓸어버리긴 했지만 그 짧은 사이에 좀비들은 떼지어 주변을 걸어다니고 있었고, 가끔씩 들리는 돌연변이의 울음소리를 견디다 못한 서우는 결국 해가 뜨자마자 밖으로 나와 제일 먼저 시끄럽게 울부짖고 있는 돌연변이의 몸을 토막냈다. 

서걱서걱하는 소리부터 시작해 뼈를 가르는 소리까지... 쏟아진 내장을 발로 뭉게다가 흙이 잔뜩 묻은 채 바닥을 구르는 머리를 발로 짓이겨 보았다. 흡사 김말이에 튀김가루를 묻히는 모양새라고 생각하며 서우는 길게 한숨을 쉬다가 머리를 세게 밟았다. 이로써 김말이에는 떡볶이 국물이 묻혀졌다.

"형의 잠을 방해하면 좆 되는 거예요. 아주 좆 되는 거야."

해가 쨍쨍한 대낮이면 빛이 힘의 원천인 와이어는 돌연변이마저 일격에 썰어버릴 수 있게 변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돌연변이의 몸을 토막내 썰어버린 서우는 그것으로 축구를 하듯이 정확히 좀비들의 머리를 맞추어 좀비들의 경추를 끊어버렸다. 

워낙에 돌연변이의 몸이 단단했기에 뽀각, 뽀각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좀비들이 넘어갔다. 걔중에는 실수로 빗나가 엉뚱한 곳에 맞아 몸이 휘어버린 상태로 기어오는 녀석도 있었지만 가까이에 오면 바로 또 맞추면 그만이었다.

"핫챠! 세 골째!!!"

그런 식으로 좀비를 죽이는 것은 서우에게 있어서는 나름대로 즐거운 방법이었다. 다만 썰어버릴 때 피가 많이 튄다는 것,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는 것은 이따금 그 장점을 상쇄할 정도로 끔찍하지만. 그렇게 와이어를 사용해 좀비를 처리한지 한 시간 정도가 되었을 때, 서우는 곳곳에서 튀긴 피로 흠뻑 젖은 옷을 던지고 그나마 깨끗하게 죽인 좀비의 곁으로 슬슬 다가갔다. 

다행이 피도 별로 튀기지 않았고, 좀비가 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것인지 옷도 꽤나 깔끔했다. 좀비의 배를 잡고 윗도리를 벗겨내던 서우는 잠깐 엄청난 고민에 봉착했다.

"음...후드 티가 좋으려나 라운드 티가 좋으려나....."

"쿠르르르..."

"깜짝이야, 뒤진줄 알았더니.. 이 애미 없는 놈 보소?"

아직 살아서 버둥대던 좀비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서 숨통을 끊은 다음, 좀비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좀비의 옷을 벗겨 무슨 옷을 입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지만 머리의 모든 나사는 다 빠져버린 듯한 '최서우'라는 인간에게는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서우는 한참 동안 게임에서 민첩+1 아이템이 좋을까 힘+1 아이템이 좋을까 고민하는 중학생처럼 후드와 라운드를 놓고 고민하다가 후드티를 주워입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옷을 빼앗겼던 좀비가 서우를 뒤에서 와락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제딴에는 입으로 물려고 얼굴을 들이댔지만 이미 얼굴의 반, 즉 안면이 날아간 상태인지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입이 있었던 곳을 서우의 어깨에 치고 있을 뿐이었다. 잔인하고 피 튀기는 것에는 이미 도가 튼 서우였지만 그 징그러운 느낌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이 새끼가?...으악!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머리가 반쯤 날아갔으니 그대로 죽은 줄 알았더니 몸만 살아서 꿈틀거리나 보다. 그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는 그대로 메어쳐서 땅에 꽂아버리자 좀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능력자들이 그러하듯 서우 또한 능력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한 시간정도를 사용하면 세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를 멈추어야 했다. 

물론 인간의 힘을 뛰어넘은 신체능력이라면 좀비들이 떼로 몰려온다 해도 상대할 수 있겠지만 위험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귀찮았기에 나중을 기약하며 서우는 대피소 안으로 들어와, 곧바로 옥상으로 향했다. 

보지 말라고 미리 언질해 두었건만 보고 달달달 떠는 꼴이 보기 흉해 웃음마저 날 지경이었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은근히 기분이 좋아,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있어 그런 것은 별로 신경쓸 만한 일이 아니었다.

남편이 밤에 잘해주면 다음 날 아침 밥상이 바뀐다고 했던가? 저의 경우에는 정반대였지만 딱 그런 마음이었다. 

"하, 씨발.....진짜, 놓고왔으면 어쩔 뻔했냐."

서우는 허공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름 어젯 밤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장난 아니었지, 킬킬 소리내어 웃으며 입술 끝을 잘근잘근 물었다. 아무래도 능력자의 신체인지라 코끝에 저 멀리에서 풍기는 좀비의  역겨운 냄새가 맡아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만족스럽게 놀아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을 정도로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으니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예의랍시고 빼내어 슬쩍 벌려진 입에 쑤셔넣어 가득 싸질렀을 때 숨을 쉴 때마다 입 안에서 부글거리는 정액에 괴로워 하는 얼굴은 특히.... 뱉어내긴 했지만 뭐, 먹이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으니까.

"사진이라도 남겨뒀음 좋았으려나."

혼자 킥킥 웃으며 묘하게 짠맛이 나는 담배를 밖으로 던졌다. 그때였다. 옥상 문이 살짝 덜컹인다 싶더니 조그마한 인영이 어른거렸다.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살펴 보니 아까 그 자매 중에 언니쪽이었던 에리였다. 이 밤에 왜 여길? 유일한 실외공간이 여기밖엔 없긴 하지만...새로 담배를 꺼낼 생각도 안 하고 그쪽을 보고 있자니 곧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는 게 진짜 토끼 같아서 웃음이 났다. 

"저.. 아,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친 이상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쪽에서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별로 파인 옷도 아닌데 인사할 때 가슴에 손을 올리며 옷을 붙잡는 게 인상에 깊게 남아, 서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자 죄송합니다 어쩌구 저쩌구 중얼거리던 에리는 다시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예, 예?"

"있고 싶으시면 있다가 가세요. 제가 전세낸 것도 아닌데."

분홍색 가디건에 흰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게 참 보기 좋다. 분홍색 가디건 위로 슬쩍 부풀어 오른 가슴이라거나 언뜻 분홍빛이 도는 팔꿈치와 무릎, 보기좋게 혈색 도는 얼굴 위의 오물거리는 입술. 자세히 보니 키는 작지만 나올 건 다 나와 있었고 얼굴도 소라보다 더 예쁜 쪽에 속했다.

"예, 예에.. 그러면.."

하지만 계속 시선이 가는 것은 물들 듯이 분홍빛이 도는 깨끗한 피부였다. 저런 쪽은 대부분 피부가 약한 탓인지 잔뜩 애무해주는 것에 약했다.

"........"

방금 전까지 어젯 밤 일을 생각하며 실실 웃고있던 것도 잊고 서우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마침 안쪽 주머니에 약도 있고, 반항하면 슬쩍 약을 먹이고 여기서 그냥 잡고 확 저질러 버릴까 하고... 아니, 아니지. 서우는 슬슬 고개를 저었다. 고기가 앞에 있으니 신난다고 상추에만 싸 먹으면 그 무슨 고기에게 실례하는 짓인가, 무쌈에도 싸먹고 꺳잎에도 싸먹고... 이왕 왔으니 갖가지 방법으로 싸먹어봐야 하는 법.

서우는 주춤거리며 걸어오는 에리에게 제 옆으로 오라는 듯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는 슬쩍 말을 걸어보았다.

"이름이 에리예요?"

"네?...아, 네. 아케라 에리예요."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이것도 기분 탓이라기엔 너무 심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서우는 일단 고개를 젓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서우, 하지만 일본인인 탓인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에리는 자꾸만 소우라고 발음을 했고 어쩔 수 없으려니 하며 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파벳도 아루하벳토, 맥도날드도 마쿠도나루도라고 발음하는 곳인데 뭐 어쩌겠는가.

"여긴 혼자 계세요?"

"아뇨, 사촌 동생인 츠부미랑 같이 있어요."  

"츠부미요?"

"예."

"......국민...딸.........동생..?"

"...에, 그건 한국말인가요?"

"아..음, 네. 그냥 별말 아닙니다."

서우는 이 이상한 우연에 대해 더 이상 신기해하거나 의아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러려니. 무심코 담배를 꺼내려다가 에리쪽을 슬쩍보며 담배를 집어 넣으니 에리가 슬쩍 뺨을 붉혔다. 부러 노리고 한 것인지도 모르고.. 서우가 은근슬쩍 미소를 지었다. 소라 때는 너무 급해서 강제로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알아보며 슬슬 꼬셔보기로 했다. 이왕 미연시의 본고장에 온 거, 4D 미연시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한국에서도 그러했듯 원래 사람은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약한쪽은 강한쪽에 붙으려고 하는 법, 거기에 챙겨주고 있는, 챙겨줘야 하는 사촌 동생도 있다면 그 부담감에 기댈 대상이 더욱 절실해지는 법이겠지.

"부모님은요?"

"그게.. 도쿄에 계세요. 그래서 츠부미랑 같이 올라가던 길이었는데....이 주변이 좀비로 가득 차 버려서요...."

"아아."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쉽겠네. 미소를 지우며 짐짓 걱정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서우님은요? 같이 오신 여자분과 가족?"

"아니요. 오다가.......어...도와드린 분이죠. 좀비에게 쫒기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어, 기절하셔서 어깨에 메고 왔구요."

"저, 정말요?! 대....대단해요. 굉장해..... 이 주변은 이제 좀비들 뿐이라고 들었는데..."

옆에 있는 내내 살짝 기가 죽어있는 듯하던 에리의 표정이 그제야 살아났다. 왠지 영웅대접을 받는 기분이랄까, 괜찮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서우의 눈에 소매 부분이 다 헤진 에리의 옷이 보였다.

"옷은 그것밖에 없어요?"

"아....두 벌 정도 더 있긴한데 비슷해요. 도망치다가 옷이 거의 다 들어있는 가방을 놓쳐서.."

"흠."

에리를 보고서 서우는 건물 밑을 내려다 보았다. 어느샌가 다시 몰려온 좀비들이 사람의 체온을 감지했는지 근처에서 거어어어, 그어어- 하는 괴기한 소리를 내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때마침 여자인 좀비가 건물 근처를 걸어다니며 연신 머리를 쿵쿵 박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입은 옷이 꽤나 고왔다. 체형도 얼추 비슷한 것 같고..

"좀비가 입던 옷도 입을 수 있죠?"

"네, 네?... 입을 수만 있으면.. 이제 뭐 그런 거 가릴 때가 아니니까요.."

"털털해서 좋네."

말하자마자 서우는 3층 건물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리면서 물론 중간중간 튀어나와 있던 부분에 착지하긴 했지만 놀라운 움직임으로 지상까지 내려간 서우는 점 찍어두었던 좀비 근처에 선 다음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을 하나 주웠다.

"쿠르르르, 웩....우붑!!!"

손에 들고있던 짱돌을 좀비의 입에 그대로 쑤셔넣으니 좀비의 이빨이 부숴지고 입이 옆으로 주욱 찢어졌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부수며 돌을 쑤셔넣은 서우는 좀비의 뒤로 돌아가 등 뒤에서 지퍼를 쭉 내린 다음 몸을 반쯤 들어 원피스를 빼냈다. 

옷을 벗겨낸 다음 입이 막혔음에도 좀비는 달려들었지만 발로 뻥, 차 버린 다음 건물벽을 다시 기어올랐다. 그때까지 멍한 눈으로 토끼 같은 눈만 꿈뻑이던 에리는 먼지를 탁탁 털어 저에게 옷을 건네는 서우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 대단하네요, 능력자는.....너무 멋져요."

"별 말씀을, 여기 물이랑 가스는 조금 나오지요? 좀 더러우니까 한번 삶아서 입어요."

"네, 네에! 감사합니다!" 

본성과 얼굴은 정반대, 키도 훤칠한데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서우가 씩 웃으며 옷을 건네니 머뭇거리면서도 에리는 얼굴을 붉히며 옷을 받아들었다. 좀비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에리 또한 상당히 도도한 여자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좋으니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믿었던 사람들은 전부 좀비가 되어버리고 본인도 가뜩이나 지병이 있어 몸도 약한데 어린 사촌동생까지 부양하고 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런데 처음보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구원자라고도 불리는 능력자가 자신의 앞에 있고, 상냥하기까지 하니 짧은 순간이라 해도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서우는 그런 그 점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끝까지 넘어오지 않는다면 도쿄로 가는 걸 도와준다고 말하면서 꼬셔도 충분히 넘어올 법했다. 에리가 아닌 대피소의 다른 여자들도..... 감사하게도 다들 평타 이상 쳐주니 이렇게 감사할데가.

...일본에 오길 정말 잘했어.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우는 무심코 제 입술을 핥았다.

============================ 작품 후기 ============================

짐승 같은 연참을 여섯 시에 할 수 있도록 저에게 용기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