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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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와이어로 좀비들을 썰어재낀다. 어떤 놈은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목을, 갈비뼈 부근부터를 잘라 내장을 다 쏟아내게 하기도 하고 하반신과 상반신을 분리해서 또 나름대로의 절경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썰기 시작하던 서우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벌써 네 시인가.."

겨울도 아닌데 그새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낮일 때보다 힘이 슬슬 약해지기 시작했지만  몇 번 비비기만 하면 가볍게 돌연변이들의 목을 딸 수 있었다. 조금 몰아내고 자야 밤에 좀 조용히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썰긴했지만, 이 매너리즘은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좀 정신을 집중하고 와이어를 뽑아 팔을 휘두르기만 하면 죽으니 대체 무슨 쾌감이 있겠는가, 누가 자신을 추적하지도 않고 되려 칭찬할 테니 또 무슨 쾌감이 있을 것이고...

원했던 것은 죽을까 말까, 그 경계선에 서는 아슬아슬함이었다. 언제 물어뜯길지 모르고 언제 죽을지 모르고... 물론 능력자가 된 덕에 여러모로 편하긴 했지만 평범한 몸으로 돌연변이를 죽이러 다녔으면 아직도 그 쾌감속에 허덕이고 있었을지도. 

"아니면 좀비가 되서 침 질질 흘리고 있었겠지. 에베베베."

주절거리며 마저 좀비의 머리를 끊어 떨어뜨린 다음, 다른 유독 머리가 큰 돌연변이의 위에 올라탄 서우는 자신을 노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좀비의 위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 상태로 담배를 입에 문 서우는 불을 붙히고 다리로는 좀비의 목을 감고서 한쪽 팔로는 좀비의 머리를 와이어로 쑤셨고 다른 팔로는 담배를 잡고 연신 연기를 뿜어냈다.

"...가만, 능력자.  능력자들끼리 싸우면 한쪽이 죽기 전까지는 안 끝난다던데.."

하지만 운 좋게 능력자를 죽인다고 해도 그 나라 인간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저가 막 사는 터라 나라가 자신의 존재를 몰라서 그렇지, 강제로 군에서 일하는 능력자들도 한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워낙에 영웅을 좋아하는 미국 같은 나라는 어떨까.

거기에서 능력자는 곧 신이나 마찬가지 한 명만 죽인다고 해도 그 나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았다. 뭐 거기도 인구수가 워낙 많은 탓에 중국 마냥 인구의 대부분이 좀비가 되었다곤 하지만 워낙 능력자가 많은 나라인지라... 하지만 미국의 제 1 능력자는 여자였다.

"이름이 한나 뭐시기였는데.."

서우는 언젠가 TV에서 본 그 모습을 떠올렸다. 제 1 능력자라면서 당당하게 TV에 나온 그 자태, 보통 한 가지 기술만을 쓸 수 있는 것에 비해 그 여자는 3가지 기술을 쓸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건 저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

"....왜 잊고 있었지? 존나 죽이는데."

도도해 보이는 눈매에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라틴 쪽 피라도 섞였는지 군복으로도 숨길 수 없는 탱탱한 가슴이나 숨 막히는 곡선의 엉덩이, 그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은 숭배밖에는 답이 없었다. 물론 소라의 라인도 장난이 아니긴 하지만 그쪽은 아예 골격 자체가 달랐다.

 거기에 경이적인 허리라인.. 아마 능력자만 아니었다면 군데 들어갔을 때 상관들이나 남자 동기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밤마다 그녀를 반찬으로 삼았겠지, 뭐 지금도 충분히 반찬으로 삼고 있을지도.

"일본엔 여자 능력자없나?"

원숭이마냥 생기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일본에 온 김에 한번-

그 생각을 하던 서우는 저도 모르게 좀비의 머리를 와이어로 쪼개며 웃었다. 발릴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힘들 테고 1 능력자인 만큼 그냥 발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느끼는 쾌감은 실컷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다시 그 말도 안 되는 쾌감을 섹스 외에 얻을 수 있다면.... 만약 정복한다면 그 느낌은 또 어떨까, 강한 쪽을 조교하는 그 느낌. 강한 것을 완전히 꺾어 굴복시키는 그것. 멍하니 그 생각을 하며 뇌를 쪼개다가 뇌수가 튀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으앗!!!"

얼굴과 몸에 좀비의 피가 전부 튀어 있었는데, 좀비의 피가 몸에 묻기만 해도 감염된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보았다가는 난리를 칠 모습이었다.

"하하, 좆 됐네. 옷 다 버렸잖아... 아, 미친.. 비린내... 평소엔 깨끗하게 썰리더니."

자기가 쑤신 건 생각 안하고 넘어진 좀비를 저 멀리로 걷어차면서 서우는 진저리를 쳤다.

커다란 머리속에 들어있던 것들이 잔뜩 튀겨 온몸에서 주황색으로 뭉글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보면 돌연변이 좀비로 착각하기 딱 좋은 상황, 이 후드 티는 더 이상은 못 입겠다고 생각하며 서우는 후드티를 벗어서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던 서우는 근처에 있던, 그나마 깨끗한 옷을 입고 있던 좀비를 다짜고짜 뒤로 돌려 벽에 대고 그 옷으로 벅벅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좀비의 목을 일격에 끊으며 물러서려 하는데, 멀리서 차가 부릉부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사람 하나를 뺑소니 해버릴 것 같은 엄청난 소리..!

"어디서 전설의 레이서 킬러 조의 소리가....?"

이윽고 그 소리는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했고, 뒤를 돌리자 수십 마리의 좀비 떼와 함께 차가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름이 얼마없는 것인지 얼마가지 않아 멈추기 시작했다.

"주변에 좀비가 왜 이리 몰렸나 했더니, 저거 저새끼 때문이었구먼?"

한숨을 쉬며 그쪽으로 슬슬 걸어가자 안에 타고 있던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정신없이 달렸다.

"흐어, 흐아아아아악!! 오지 마!!! 오지마아아아앗!!"

"쿠하아아악-----!!"

오지 말라고 안 오겠냐, 걔네가.

간밤에 남자가 몰고온 좀비 덕분에 내내 뒤척였던 서우는 느긋하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병신 새끼, 차를 왜 그따위로 몰아서 이 주변에서 알짱 거려.. 차를 몰려면 냉혹한 레이서 루시퍼처럼 몰라는 말도 모르나, 모질한 새끼."

남자를 구해줄 마음은 없었지만 일단 좀비들을 다 썰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결국 남자는 좀비에게 붙잡혔고, 정신없이 뜯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에서부터 좀비를 슬슬 자르며 걸어오던 서우는 남자를 물던 좀비들의 목도 베었다. 

이미 잔뜩 뜯겼으니 죽었으려니 싶어 와이어를 주욱 뽑는데 아직 남자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헤에....."

좀비사태 이후 객관적인 판단으로 살펴보았을 때, 남자보단 여자가 더 질기게 살아남았다. 좀비엑 뜯기면서 몸의 반이 날아갔는데도 살아서 버둥이는 것도 보았으니까. 그리고 어디선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질기다는 말도 주워 들었고.. 

뭐 이런 상황에 그것이 좋은 것일리는 없지만. 분명 10분에서 30분 사이에 좀비로 변하겠지, 그 전에 죽여주자고 생각해서 서우는 와이어를 길게 뽑았다.

'...이런 아저씨말고 잘빠지고 농익은 유부녀였으면 하늘이 찢어져도 구해줬을 텐데.' 

"안 돼요, 거긴 남편 밖에.... 하아."

망가에서 본 소리를 중얼거리며 길게 한숨을 쉰 서우가 팔을 휘두르려는 찰나, 남자가 손을 확 내밀었다.

"왜요?"

"...저, 느느.. 능력자 님이시군요. 제발, 저... 부탁을......."

남자의 유언은 접수받지 않습니다, 이 새끼야. 마저 팔을 내리는데 남자가 안고 달리던 가방을 내밀었다.

"도쿄에,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에게... 제발 이걸."

"아내?"

"아내가 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 제발....."

아내라는 말에 혹한 서우가 가방을 받아들었다. 가방 한 가운데에 떡하니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앞에 있는 남자와 곱게 웃고있는 여자 하나. 방금 전 생각했었던 잘빠지고 농익은 유부녀의 표준형 모습이었다.

[요시자와 씨와 아키오의 결혼 3주년 기념 여행]

"이, 이걸 도쿄에 있는 아내에게 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주소는 여기 적혀있는 그대로인가요?"

"예? 예에..!"

그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서우는 잠깐 몇 마디 정도 남자의 말을 들어주다가, 지쳐 쓰러지는 남자의 머리를 베어 죽인 다음 가방 안을 뒤져보았다. 카메라, 사진, 그림 같은 것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남자의 얼굴은 필요없고 여자. 이름이 아키오..? 낮 익는 이름이지만 이미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된 서우였다. 

"예쁜데..."

일본에 흔히 있다는 정숙하고 얌전한 부인이라는 느낌일까, 여보 오셨어요? 밥 부터 드실래요? 아니면 목욕?.. 그러면서 안 돼요. 남편이 와요. 이런 소리를 하면 그것도 재밌겠네. 남편이 지방에서 일하고 있었을 테니.. 서우는 큭큭 소리죽여 웃으며 금방이라도 핥을 듯이 사진을 내려다 보았다.

굉장히 일본틱하게 생겼지만 뭐 나쁘지 않다, 여러 겹 쌍커풀이 져 있는 커다란 눈이나 보조개, 니트 위로 보이는 부푼 가슴, 단정히 올린 머리가 보기 좋았다. 아이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아이는 없는 것 같고.. 남편이 지방에서 일을 하다가 아내가 있는 도쿄로 올라가려고 했던 것인가 보군.

슬쩍 입술을 핥은 서우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와이어 대신 허리에 차고 있던 군용 단검으로 달려드는 좀비의 눈을 일자로 그은 뒤 대피소로 다시 걸어갔다. 짐이 더 늘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잠깐 방에 들어가기 전에 서우는 안에 담겨져 있던 편지를 읽어 보았다. 아무래도 여자가 쓴 편지 같다. 

[요시자와 씨, 그쪽은 어떤가요? 요즘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도시 괴담이려니 생각하고 넘기기엔 너무 무섭고 좋지 못한 소문이라 요시자와씨가 너무나도 걱정이 돼요. 뉴스에서도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하고.. 인터넷을 가끔 보면 안 좋은 소문 투성이어서.....]

[무엇보다 요시자와 씨가 너무 보고 싶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요시자와 씨를 따라갔을까봐요. 제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괜히 억지를 부린 것 같아요. 제 일보다도 요시자와 씨가 훨씬 소중하다는 것을 요시자와 씨가 파견 근무를 가셨을 때가 되서야 깨달았어요. 잘 지내고 계신 건가요? 건강하신 거죠?... 전화를 해도 되겠지만 왠지 전화로 하면 제 기분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편지로 보냅니다. 이번 달 말이면 파견 근무가 끝난다고 들었어요. 하루라도 빨리 도쿄로 돌아오세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사랑을 담아서, 아키오.]

"아키오라.... 그리고 도쿄..."

서우는 다시 사진을 보았다. 몸 까지는 제대로 나와있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느낌인지는 감이 잡혔다.

"유부녀, 아니 남편 잃은 미망인."

남편은 가방을 맡기는 대신 그 대가로 아내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서우는 만족스레 웃으며 편지를 다시 집어 넣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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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9시에 알람 맞춰놓고 좀 자야지, 그렇게 생각했더니 일어나 보니..

.......오전 9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더라구요. 으헝헝헝 죄송. 짐승 같은 3참은 다음에,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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