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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그건 뭐예요..?"
"음, 어떤 아저씨가 도쿄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가방이요."
".....가, 가까이 오지 마요!"
"매정하긴."
"진짜 아프단 말이예요! 아까도 안 넣는다고 하더니 그렇게 넣고.."
달아오른 쪽이 누구였더라? 뭐, 계속해서 자극해 달아오르게 한 것은 저니까 서우는 말을 삼키기로 했다.
"...오늘은 정말 안 돼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가방을 놓는 척하면서 다가갔더니 소라가 공중에 손을 마구 휘저었다. 또 저러네, 하지만 저 모습도 나름대로 귀여워서 서우는 큭큭 웃으며 멀찍이 몸을 떨어뜨렸다. 셔츠를 빨았기 때문에 모포 밖에 덮을 것이 없는지 몸을 꽁꽁 감싸고서 소라가 모서리로 향했다. 털을 세우고 잔뜩 경계하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고양이가 연상되는 기분이었다.
"소라 씨."
"왜, 왜요!"
"야옹 해봐요."
"뭐, 뭐라구요?! 제가 왜 그래야 되는데요! 무리거든요! 무리!"
서우는 말없이 소라를 빤히 쳐다만 봤다. 자꾸 쳐다만 보니 그것이 더 부담스러워서 결국 소라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야옹."
"더."
"야.. 야옹."
"좋군, 이제 자동."
"무슨 자동이에요! 안할 거예요!"
"에, 그러지 말고."
"절대 안 해!"
어느 순간 자기 코 앞까지 다가온 서우를 아프지 않게 밀쳐내며 소라는 슬쩍 몸을 뺐다. 그때 모포 사이에서 언뜻 드러난 커다란 가슴과 쇄골이 자기가 새긴 자국으로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서우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삼켰다. 밀가루 같은 저것을 물고 빨고, 한 손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것을 세게 잡아 끌어당겼지.
...입이랑 가슴으로만 해달라고 할까.
"...서우 씨?"
위험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소라가 뒤로 물러나던 그때였다. 뭔가 아슬아슬하던 찰나에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싶었더니 나나였다.
"식사예요. 두 분 거."
"아, 감사..."
"맛있게 드세요."
인사도 받기 전에 나나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별 말은 없었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모습에 서우가 의아해 하자 소라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날인가?"
문을 쳐다보며 소라가 쟁반을 끌어당겼다. 통조림과 빵, 그리고 밀봉된 음료수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서우는 소라의 옆에 앉아 그것을 뜯어 먹으며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서우는 갑자기 말을 툭, 내뱉었다.
"...그날요?"
"예."
"상황이 이런데 그런 걸 해요?"
소라는 씹어먹던 빵도 놓고 서우를 쳐다보았다. 서우는 여전히 멍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우 씨 무슨 말하는 거예요?"
"..생리 이야기 하는 거 아니었어요?"
".....맞는데요."
"상황이 이런데 그걸 하냐니요?"
"참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조절한다거나........."
"네에..?"
"아니예요?"
"당연히 아니죠!"
"...난 그런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소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호탕해서 서우는 잠시 당황했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서우 씨는 많이 이상한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입꼬리를 묘하게 올렸다가 내리며 서우는 마저 자리에서 음식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그렇게 소라는 반도 먹어치우지 못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탁탁 옷을 털었다.
"어, 어디 가시게요?"
"시간도 좀 지났고... 소라 씨 입을 옷 가지러요."
"제 옷이요..?"
"그 상태로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꼴려서 안 되겠어요. 뭐라도 좀 입혀놔야지."
"벼... 변태! 좀 다르게 말하면 좀 좋아요?"
"소라 씨 추울까봐 옷 가지러 가요."
"최악이야!"
소라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지르는 것을 뒤로하고 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면 뭐 충분하겠지, 한 마리만 잡을 생각이고.. 그리 생각하는데 마악 다른 방에도 음식을 넣어주고 있던 나나와 딱 눈이 마주쳤다.
"...나한테 뭐 화났어요?"
"그, 그걸 몰라서 물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는 듯이 합,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귀엽기는 하지만... 어딜 가나 여자는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우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미안, 모르겠어->모르는 게 더 나빠!-> 그럼 모르는데 어떡해! ->그러니까 그걸 모르는 게 더 나쁘다구!! 우리 헤어져!->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뭘 잘못했는데->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그만해 주세요. 이런 반복 더 이상은 GAVER...
"끄음...."
묘하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으며 서우는 뭐라고 말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 어떻게 알라는 말인가, 그런 복잡다단한 여자의 마음을 아는쪽은 대부분 여자 경험이 흘러 넘치는 쪽이란 걸 제발 알아주었으면. 서우는 꾹꾹 미간을 누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럴 때 하는 말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정말 미안한데 모르겠어서 그래요, 알려줬으면 좋겠네요."
"....그... 그건......"
나나는 그나마 나은 케이스였다. 미안한데 가르쳐줘라고 말하면 가르쳐주는 타입. 서우는 그것에 안도하며 나나가 하는 말을 들어보았다.
"아까... 그렇게 뜯어 먹히는 사람을 구해주지도 않으셨잖아요."
"하?"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어서 서우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오후에 자신의 머리삔을 찾아준 서우에게 반쯤 반해, 나나는 밖에서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좀비를 해치우는 서우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 본 것이 바로 그런 장면, 서우는 도망가는 사람을 보고도 구해주지도 않고서 되려 설렁설렁 걸어가 좀비를 죽이고, 남자를 죽인 뒤 가방을 들고왔다.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 시대에 딱히 서우가 그를 구해줄 이유는 없었지만 서우에 대한 환상이 가득 차 있던 나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혼자 환상을 가지고 그 환상이 깨지니 화를 내는 경우라고 할까, 서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이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해냈지만, 그걸 그대로 입 밖으로 냈다가는 목표가 -1이 될까봐 일단은 말을 삼켰다.
빈유라 아쉽지만 저 정도의 완벽한 빈유도 나름대로 희소가치가 있는 법.
"게다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가방까지 들고 오다니... 최, 최악이에요!"
"뭔가 오해가 잇으신가 본데, 그 사람이 부탁한 거예요. 도쿄에 있는 아내에게 전해달라고."
"...도, 도쿄에 있는 아내요?"
"지금은 좀 그렇고 나중에 그 가방 보여줄게요. 가방 안에 아내에게 보내는 선물이나 사진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어요. 그건 전해주려고 받은 거예요."
"그, 그럼 왜 구해주시지 않았는데요? 능력자님이면 구해주시고도 남았잖아요!"
"아, 그건..."
서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기서 잘 대답해야 한다고. 여기서 잘 말해야 뭐가 되도 되겠다고.
"구해주면 되려 여기 사람들이 힘들어지잖아요, 안 그래요?"
"네?"
"군이 식량을 가져다 준다고 하지만 그게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고 사방은 좀비 투성이, 거기에서 입을 하나 더 늘리면 뭐가 좋겠어요, 게다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현실적인 이야기여서인지 나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사람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지 현실적인 것은 생각치 못했나 보다.
"하지만..."
"구해서 여기로 데리고 와야 했어요? 무슨 일이 생길줄 알고?"
"......."
"지킬 수 있는 사람만 지키는 게 낫잖아요, 현실적으로. 여기있는 대피소의 사람만 지키기에도 벅차요."
정확히 말하면 대피소 안의 여자만. 뒷 말은 자체 생략하며 서우가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나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더니 슬슬 나나가 얼굴을 붉히며 뒤로 뒷걸음질 쳤고, 그 상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나가 구석에 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을 때, 서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완벽한 빈유 여자."
낑깡도 아니고 저 정도면 AA건전지가 아닐까. 한국에 있었을 때, 서우는 자기가 붙힌 별명이 낑깡이던 여자와 했던 생각이 났다.
"흔들리는 게 별로 없어서 신기했는데, 저 정도면......"
중얼거리면서 밖으로 나간 서우는 곧바로 소라가 입을 만한 옷을 구해왔는데, 무심코 윗도리만 구해와서 소라의 가벼운 펀치를 맞았다. 다시 또 밤에 바지를 구하러 나가기 귀찮았던 서우는, 바지는 내일 구해오겠다고 말하며 잠시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담배를 피면 소라가 화생방에 들어간 군인마냥 기침을 해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으음, 아직 잠은 안 오는데.. 어쩔까."
아무리 꽤나 밝히는 소라라고 해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그렇게 해대는 것은 무리일 것 같고, 능력자가 되어 신체능력이 상승했을 때 하필이면 정력도 그 전보다 훨씬 좋아져서.. 쭈욱 기지개를 피면서 서우는 방 밖으로 나왔다.
'혼자 DDR이라도 춰야 하나...'
이게 무슨 청승이람, 이럴 때 그 에리가 어떻게 해주면 좋을 텐데.. 서우는 혼자 썩은 미소를 삼키며 대피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도중, 2층 즈음에 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멈춰섰다.
"....신음 소리?"
서우는 자기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구석에 있는 방도 아니고 떡하니 중앙에 있는 방에서 그 소리는 마치 들으라는 듯 신나게 흐르고 있었다. 마침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서우는 그것에 쾌재를 부르며 살짝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응, 응....! 유리 씨, 거.... 거기는...!"
"아직 모모의 여기는 복숭아 빛이네. 응? 아직 어려. 모모처럼 복숭아 색이야. 후후후."
그렇게 말하며 위쪽에 올라타고 있는 여자는 모모라고 불리는 여자의 안에 손가락을 찔꺽, 쑤셔 넣었다. 두 개 정도 들어가 있던 것이 이내 세 개로, 그리고 네 개로.. 금방이라도 주먹을 쑤셔넣을 것마냥 쑤걱쑤걱 그 안으로 손가락을 넣고 휘젓고 있었다.
"흐앙!!"
시시각각 그 손놀림에 반응하던 모모는 몸을 바르르 떨며 허리를 휘었다. 애가 탄다는 듯 바닥을 손으로 긁던 모모는 이내 자신의 다리를 쫙 벌리는 여자를 보며 깜짝 놀라 벗어나다가, 다리를 잡고 끌어당기는 힘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흐웅... 아아아앗!!! 부, 부끄러워요. 계속 그렇게... 보... 보시며언.."
"괜찮아, 괜찮아. 자아 좀 더 다리를 벌려. 그래, 착한 아이네."
진귀한 광경에 서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개 쩌는데?'
좀 더 가까이, 더 가까이....그 순간 문에서 삐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앗차.."
"응? 뭐야, 처음 보는 녀석이네."
"...꺗! 뭐, 뭐야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