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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그 후에 다시 잠들었던 서우는 한참 뒤에야 눈을 떴다. 이번에는 소라가 있었고, 소라는 서우가 눈을 뜬 것을 오자마자 커다란 대야와 함께 수건을 가지고 왔다. 언뜻 창밖을 보니 이제 낮인가 보다. 엄청나게 퍼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우는 뻑뻑한 눈을 부볐다.
"괜찮아요? 내리 잠만 잤어요."
"아...."
"잠시만요, 땀 좀 닦아드릴게요."
언제 또 식은땀이 났던 것인지 소라가 물을 조금 적신 수건으로 머리를 꼼꼼히 닦아주었다.
"......."
그렇게 몸을 숙여 머리를 닦아주면서 단정하게 가슴가를 붙잡고 있는 게 묘하게 이끌린다. 다 벗은 것보다 살짝 파인 옷을 입은 여자가 인사할 때 옷을 붙잡으면서 몸을 숙이는 것이 더 꼴린다고 하던가? 하지만 지금은 몸이 여기저기 쑤셔서 할만한 기분은 아니었다.
"...베개가 없어서 불편해서 그래요?"
"아, 예에. 아무래도."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색하게 서우가 팔을 벴다. 그때 소라가 옆에 슬슬 다가가더니 통통, 자기 무릎을 두드렸다.
".....?"
말없이 무릎만 두드리는 소러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서우는 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 거면 무릎 말고."
"무릎 말고..?"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듯이 소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우는 작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은근한 기대를 담고서.
"가슴으로......"
"최, 최악이야! 누가 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푹신할 것 같은데.."
"그렇게 보지 마요! 절대로 무리니깐!"
소라가 대야를 들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이내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큭큭 웃던 서우도 팔을 벤 다음 어색하게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의아해 하며 몸을 다시 돌리는데 소라가 베개와 함께 봉투에 감싸여진 빵과 팩으로 된 우유를 내려놓고는 다시 나갔다. 뭐지? 서우가 당황하는 찰나
"이, 이거 드세요! 딱히 걱정되서 드리는 거 아니니까....!"
"아.. 고맙습니다."
콰앙-
...이것 때문에 츤데레가 그렇게 오랜 시간 흥했던 것이로군? 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다르게 츤데레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볼 수 있다. 1737년도 조선시대에 살았던 연암 박지원은 이미 마장전에서 츤데레를 완벽하게 정의했기 때문이다.
마장전에서는 상대방을 칭찬하려거든 겉으로는 책망하는 것이 좋고, 상대방에게 사랑함을 보여주려거든 짐짓 성난 표정을 보여야 하며, 상대방과 친해지려거든 뚫어질 듯 쳐다보다가 부끄러운 듯 돌아서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예전, 인터넷에서 본 것을 생각하며 서우는 만족스럽게 혼자 낄낄거리다가 빵 봉투를 찢었다.
....맛은 물론 심하게 없었다. 방부제 범벅이어서인지 먹고나면 시체가 썩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뭐, 비상식품이라는 것이 다 그런 맛이겠지.
몇 분 동안 대충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정신없이 부숴져 있던 대피소를 복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우가 나오자 사람들이 굽신거리기 시작했는데,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색하게 그 시선을 피해 2층으로 올라온 서우는, 가볍게 씻을 생각이었는데 목욕탕 앞에서 딱 유리와 마주쳣다.
"어라아."
"아, 유리 씨."
마악 씻고 나왔는지 가운을 입고 나온 유리는 막 꺼낸 삶은 달걀마냥 매끈매끈한 느낌이었다. 왠지 그때랑은 또 다른 느낌, 유리가 씨익 웃으며 흠뻑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자, 묘한 향기가 났다.
'이 상황에서 샴푸나 바디 클렌져 같은 것을 사용하는 건가? 여유롭군.'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에 비해 참 태평하다는 생각을 하며 서우는 픽 웃었다. 그 표정에 유리가 왜? 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리 씨는 일 안 해요?"
".....능력자가 너인지 몰랐어."
동문서답. 기묘한 웃음소리를 내며 유리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방금 씻고나왔으면서 붉은색을 띄우고 있는 입술이 여전히 요염했다.
"왠지 힘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능력자는 다 그런 건가?"
"...능력자가 되니까 힘이 좋아지긴 하더라구요."
"버릇이 되 버리겠는데.. 한번 먹으니까 다른 걸로는 만족하기 힘들더라구.....후후, 빨리 나으라구."
"..보통으로 회복되서는 어림도 없겠네요."
대담한 말을 내뱉으며 유리가 또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왜 해? 내가 여기 관리자인데."
"정말요?"
"그래도 내가 있어서 도쿄에서 이렇게 떨어진 곳까지 군이 왔다갔다 하는 거라구. 도쿄에 있는 가족들이 좀 힘이 있거든."
"헤에..."
"맞다, 군이 이따 내려올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달라고 했는데 그런 일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자원도 모자르고 보고할 것도 생겼고....뭐 말해줄 수 있어? 이것저것. 그 돌연변이가 어땠다던가."
"그 정도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1층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일본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말하자마자 들어오다니, 서우는 가볍게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등을 미는 유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일본군은 오자마자 서우에게 이것저것 보여주며 정체불명의 자료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을 보자마자 서우는 속이 울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도저히 일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멀쩡히 히라가나가 있으면서 한자를 이렇게나 많이 쓰는 것인지도. 그리고 어려운 한자를 써놓고 위에 또 작게 히라가나로 써놓는 것도. 뭐만하면 어려운 한자로 도배를 해놓는 것인지도. 오타쿠답게 한자를 배우기 보다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만, 그리고 말하고 듣는 것에만 익숙한 서우는 서류를 스킵하고는 다시 군에게 넘겼다.
그것을 그새 서우가 다본 것이라 생각했는지 뭔가 또 경의에 어린 시선을 보낸다. 서우는 슬쩍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
"최근 들어 계속해서 돌연변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아마 서우님께서 처치하신 돌연변이도 최근에 새로 나오게 된 변종이겠지요."
명찰에 새겨진 이름은 스즈키 --- 한자인지라 뒤를 읽을 수 없었던 없었던 서우는 거기까지만 읽고는 군의 말을 들었다. 주 내용은 요즘에 돌연변이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며 서우가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또 방사능을 바닷물에 푼 건가?"
"..방금 하신 말은 한국말입니까?"
"그냥 혼잣말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아, 예에. 혹시 돌연변이에게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까?"
"네?... 아, 글쎄요..... 맞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두 번째로 몸에 달라붙었을 때 저를 흡수하려고 들더군요."
"..흡수요?"
"예. 그러고 보니.. 어, 제가 엉덩이에 박아넣은 좀비도 흡수했고."
엉덩이에 박아넣었다는 말에 잠깐 표정을 구기던 군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능력자님이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진지한 이야기라도 하려는 건가, 은근히 귀를 파고있던 서우는 구멍에서 손을 뺐다. 옆에서 유리가 입을 가리고 웃고있었다.
"좀비 바이러스는 감기 바이러스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계속 변형을 하고 또 분열할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그런데요?"
"이제까지 돌연변이는 그저 돌연변이라고 생각했지만.."
"......."
"요즘 들어 마치 몇 마리를 붙여놓은 것 같은 좀비가 종종 발견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녀석들은 온도 뿐만이 아니라 소리에도 반응하고 있지요."
"종종 발견된다고요?"
"예...."
'..뭐지? 이 사람, 기뻐하는 건가?'
무심코 웃고있던 서우는 서둘러 웃음을 지우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려 몸이 묘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다행이 군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나갔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10명 정도가 잠시 이곳에 머무르다가 떠나겠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지금은 유리를 상대할 힘이 없었기에, 혹시나 유리가 덤벼들라 서우는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밖에서는 사람들이 건물 보수에 한창이었고, 남는다는 군인들도 무너졌던 벽을 고치고 쏟아졌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일을하는 와중이었지만 그 누구도 서우에게 일을하라 감히 강요하는 자는 없었다.
그렇게 할 것도 없으니 잠이나 더 자며 체력을 보충할까 생각하며 통통 어깨를 두드리는데, 제 앞에 어린 츠부미가 자기 몸의 반 만한 봉투를 끌고가고 있었다.
'...뭔가 위험한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확하고 츠부미의 몸이 기울었다.
"꺄하앗!!"
"아, 조심 조심."
"고..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배를 잡아서 일으켰는데 어린아이라 그런지 순간이지만 참 말랑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나가 어리게 생겼더라도 츠부미랑 같이 있으면 역시 나나쪽이 어른인지라 성숙해 보이겠지. 그때 무언가가 와르르 쏟아졌고, 봉투에 있던 것이 전부 깨졌다.
"아, 어... 어떻게 해...어쩌면 좋아...으아아, 다 쏟아버렸어.."
"중요한 거..?"
"아, 그게..."
그 순간 멀리서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화가 잔뜩 난 듯한 목소리에 서우는 무심코 자기 귀를 막았다.
"야! 너 설마 그거...!"
언제온 것인지 한두 번 정도는 봤지만 이름은 모르는 여자가 역정을 내며 츠부미의 앞으로 걸어왔다. 힘든 일 때문인지 잔뜩 약이 올랐는지 뭔가 쏘아붙히려는 기세에 츠부미가 몸을 움츠리자, 서우가 츠부미를 자기 뒤로 보냈다.
"아, 그거 츠부미가 깬 거 아니예요."
"네, 네?"
"제가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죄송합니다."
"느.. 능력자님이요? 그, 그..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여자는 다가온 것처럼 빠르게 쏟아진 재료들을 주워담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 여자가 사라진 후 서우는 츠부미를 내려다 보았다.
"가... 감사합니다. 능력자님."
"뭐어, 이 정도 가지고."
츠부미가 눈을 반짝반짝였다. 딱 학교의 잘생긴 선배를 보는 어린 후배의 눈이었다. 동경이 어른어른 거린다고 할까.
.....너 말고 네 언니.
그렇게 생각하며 서우는 츠부미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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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22. 로린이 ㄴㄴ;;
작다고 다 로린이가 아님당.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츠찡만 로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