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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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그거 맛있어요?"

"네,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는지 에리가 당황해서 제대로 뭐라고 말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서우는 이미 오래 전에 방금 전의 그 미묘한 침묵을 털어내고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런 행동에 에리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서우는 철장 사이로 손목까지를 넣어 좀비의 머리 근처에 있던 피를 손으로 쓱 훑었다. 그리고는 망설임없이 그걸 입에 넣었고.. 얼마가지 않아 표정을 확 구겼다.

      

"우왁- 퉷, 푸웁!!!! 이....이런 걸 어떻게 먹어요? 생선 날로 먹는 맛이네." 

"아니, 저는... 그러니까. 그냥... 그게."

"그게?"      

    

손에 묻은 피를 바지에 대충 문질러 닦고는 서우가 말없이 에리를 쳐다보았다. 심하게 안절부절하면서 어떻게 입을 닦으려고는 하는데 아직 뭔가 부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우는 잠시 머리를 긁다가 뒤를 돌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안 갈 정도로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제 힘에 대한 자신과 지나치게 태연한 성격 덕이었다.          

"전 여기서 담배필 테니까 마저 먹어요. 물어볼 것도 있고."

"......"

"망 봐줄게요."

"저...정말요?"

"그러니까 빨리 먹어요."

사실은 제가 말해놓고도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서우는 담배에 불을 붙혔다. 그렇게 꺼낸 하나의 반을 태울 즈음에 뒤에서 우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이 멈췄을 때 서우는 품 안에 우연찮게 들어있었던 낡은 수건 쪼가리를 뒤로 내밀었다.

"다 먹었어요?"

"예?... 예......."

입을 닦던 에리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 사이에 서우는 좀비를 한번 살펴보았는데, 피만 먹었을 것이라 생각했더니 철장 사이로 들어온 좀비의 손이 완전히 뜯겨져 있었고, 적절하게 피가 양념처럼 묻혀져 있어 잔뜩 뜯어먹힌 닭발과 흡사했다. 그 우스운 모양새에 서우가 픽, 웃자 에리의 표정이 더 굳었지만 서우는 이내 그런 생각을 접고 다른 고민에 돌입했다.

'..이제부터 뭐라고 물어봐야 하나...? 일단 질문하기는 했는데..'

다른 질문들을 고민해 보다가 그냥 전부 다 묻자고 생각한 서우는 일단 '왜 피를 먹었습니까.' 라고 첫 질문을 정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에리가 서우를 와락 잡아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어서 서우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갔다.

            

"서우님 부탁드려요, 제... 제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네?!"

"아...."  

"만약 제가 이런 걸... 누가, 알기라도 하면...... 전 능력자도 아닌데, 만약 제가 이런 걸 알기라도 하면 분명히.... 저, 절 바로 잡아갈 거예요. 이런 거 누가봐도 이상하니까...!"

'...그렇긴 하지....'

에리의 말은 냉정했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나라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체가 커다란 위험상태에 빠지면 개인의 인권은 약해진다. 전체적인 생존을 위해 개인보다 더 큰 것, 다수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된다면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은 간단히 짓밟아 버릴 터였다. 세계가 그러했고, 한국 또한 그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능력자로써의 의무를 행하지 않았지만 능력자인 이상 좀비 사태에 대한 일들을 서우는 전부 보고받고는 했는데, 그 중에 좀비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니 아마도..

그냥 좀비에게 물리기만 해도, 혹은 그 손톱에 긁히기만 해도 비능력자일 경우에 감염이 되는데, 피를 구강으로 흡입하면 100% 감염이었다. 그런데도 에리는 피를 먹다 못해 살을 먹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니 아까 그 뭔가 한 번 세탁한 듯한 손수건도 이해가 되었다.

손으로 빤 것이 아니라, 입으로 빤 것이겠군... 서우는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언제부터 먹게 됐어요?"

"그게..."

일단 서우는 에리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잠시 망설이던 에리는 꾸물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좀비 사태가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아서요..."

'..그러면 꽤 되었다는 거군.'

"막, 입이 간지럽고... 괜히 머리도 아프고, 몸도 안 좋고......그러다가 어떻게, 막 좀비로 변한 룸메이트가 군인의 총을 맞아 죽었어요. 그래서 시체가... 잠시 집 안에 있게 되었는데, 그때... 먹고 나서 알게 됐어요...."

애원하며 매달린 에리의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 그렁그렁해졌다. 그리고는 불안한 듯이 복숭아 빛 입술을 꾹 깨물었는데.. 사실 마악 날고기나 다름없는 것을 뜯어먹었기 때문인지 그리 좋은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주변이 어두운 것도 있고, 분위기 탓도 있고... 에리가 괜시리 더 예뻐 보이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그런 장면을 보았는데도 별로 추해보이지도 않았고... 

"서, 서우님... 저 정말 좀비로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계속... 머, 먹었는데도..... 제발 아무한테도.. 흐윽, 말하지 말아주세요.. 뭐, 뭐든지 할게요! 정말.... 아니면 그냥 얌전히 있을 테니까....."

고개를 푹 숙인 에리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고 둥근 어깨도 뭔가 작게 들썩이는 것이 울고잇는 것만 같았다.

"........"

...서우는 제 눈앞에 선택지가 등장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하하하하, 걱정하지 마요. 절대 안 말할게요! 그 대신 H........ 이야아앗, 신명나네!]

[비밀은 지켜줄게요. 걱정하지 마요....... 아들이 운다, 흐규흐규 쑤컹쑤컹!]

'당연히 전자지, 후자겠냐!'

평소 전[電]자계집을 좋아하던 서우는 이번에도 전[前]자를 선택하며 마음속으로 씩, 미소지었다. 마침 버스도 근처에 있겠다. 그리 생각하며 에리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에리가 좀비를 먹었다던가, 먹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서우에게 일도 아니었다.

".....!"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에리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서우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서우는 저도 모르게 놀라 어깨에서 손을 떼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와 마찬가지로 에리도 놀라서 서우의 눈치를 슬슬 볼 따름이었다. 게다가 에리 또한 아무래도 눈치가 있다 보니 뭔가 분위기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서우는 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어..?"

잔뜩 겁 먹은 강아지처럼 자신을 올려다 보는 에리에게서는 그날, 욕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이 다가왔던 그 감정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미친, 이게 뭐야....'

서우는 미친 듯이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번뇌를 떨쳐내려 해도 그릇에 들러붙은 미역찌거기 마냥 그 마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번뇌에 서우는 바싹 마른 목을 축이려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이 뭔가 뿌얬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런 망설임은 모 야메룽다!'

<아니 이 오라질 아들놈이.... 에리를 가져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

<이 아들 놈아! 왜 바로 서질 못해! 왜애, 왜 서질 못해.... 에리를 가져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누..! 으흑흐흑흑끄흑.>

자전거를 타고 신문배달을 하며 돈을 벌면서도 아내를 위해 갈비탕을 준비해 놓고도 아내가 죽어 결국은 먹이지 못했던 츤데레 박첨지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서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확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자빠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상상만 그러할 뿐 몸이 도저히 움직이지를 않았다.

"왜... 왜 먹지를 못하니."

서우는 저도 모르게 모국의 언어로 중얼거리며 눈앞을 쓸어내렸다.

"...흐우, 후....."

             

서우는 낮게 한숨을 쉬다가 머리를 마구 헝크러 뜨렸다. 뒤에서 에리가 저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전혀 동하지 않고있는 아들과 몸이 문제였다. 마치 에리에게 무슨 쉴드라도 쳐진 것처럼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손을 대려하면 무언가 계속 마음에서 걸리고, 또 마음에 걸리고... 걸리고...... 지금이야 말로 좋은 타이밍인데 대체 왜 무엇이 마음에 걸린단 말인가, 왜 손을 대지 못한단 말인가.

'에반게이ANG의 GV쉴드처럼 V.G 쉴드냐! 버진 쉴드인 거냐!!!!! 크아아, 아아! 왜 서지를 못해! 아, 미친... 이 병신 좆 같은 게! 아니, 맞기는 한데..... 왜 서질 못해! 왜 나를 바로 보질 못하누.... 왜 먹으라고 놓아줘도 먹지를 못해....'

"왜, 왠지 운이 좋더니만..."

"서, 서우님?"

불안하게 저를 올려다 보는 에리를 보며 서우는 미소지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체념의 미소였지만 에리에게 있어서는 더 없이 든든해 보이는.... 그리고 이제까지 몇 번이고 저를 도와준 강하고 상냥한 능력자의 미소로 바뀌어 보여, 에리는 무심결에 환하게 미소지었다.

"에리 씨."

"....."

".....에리 씨."

"네, 네! 서우님..."

"..그냥 가세요."

"에?"

".......아무한테도 말 안할 게요, 걱정하지 말고, 가서 자요..... 츠부미가 걱정하겠네."

"..가, 감사합니다....! 들어가 볼게요!"

쑤컹쑤컹하는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눈물 흘리는 아들을 차마 내려다 보지 못한 채, 서우는 한참 뒤에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며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쵸메쵸메!!!!!!!!!!!!!!!!!!!!!

쵸메쵸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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