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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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다음 대피소를 향해 다시 출발한 일행,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또 저번 습격과 같은 일이 발생했고 둘은 다시금 차 밖으로 나가 주변을 제거해야 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서우가 꾸물거리는 일이 없어, 노스카와는 나름대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우의 상태가 이상했다.

"쿠르르...."

"죽어라, 두 번 죽어라."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며 좀비를 짓밟는 서우는 뒤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어, 결국 노스카와는 소리를 빽 질렀다.

"서우, 뒤에!!!"

"....아. 감사합니다."

잘 싸우기는 했지만 물에 푹 젖은 미역처럼 흐물거리는 서우는 언제라도 돌연변이에게 얻어맞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지금도 간발의 차이로 돌연변이의 입과 손을 피했고, 그 상태로 와이어를 뻗어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깝게 생존하고 있었다.

"이보게? 무슨 일 있나?!.... 정신차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척 봐도 무슨 일 있는 것 같은 목소리로 서우는 높게 뛰어올라서 좀비의 목을 다리로 감싸안고 그대로 운전하듯 한 바퀴를 돌렸다. 그렇게 좀비를 이승탈출 시킨 서우는 그대로 그것을 발로 걷어차고 뒤로 착지했는데, 그와 동시에 다시금 노스카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조심해!"

"에..예?....윽!"

"쿠르르륵! 끄-!"

          

돌연변이는 아닌 것 같지만 다른 좀비들 보다 조금 더 거대한 좀비가 서우의 말을 세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악력은 대형견과 비슷해 분명 살이 찢어지고 난리도 아닐 텐데, 서우가 잠시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으니 노스카와로써는 기가 막히다 못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 녀석이 대체 어쩔 생각이지...?'

자기 밑에 깔린 돌연변이의 얼굴을 열심히 그 무쇠주먹으로 떡을 치고 으깨면서도 서우를 관찰했다. 그렇게 잠시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제 팔을 내주고 있던 서우의 눈에 갑자기 무시무시한 야성미가 들끓었다.

"왜 먹지를 못하니....."

"무슨 말을...?"

그 살기, 짐승 같은 눈에 노스카와가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순간...

"어이!!!!! 뭐, 뭐하는 거야! 정신차려!!"

서우가 미친 듯이 좀비의 목을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분노가 어린 것 같은 그 행동과 적절한 주먹질에 좀비는 얼마가지 않아 숨이 끊겼고 어찌나 세게 목을 쥐어뜯으며 이로 물었는지, 목이 반쯤 휘어져 있었다. 그런 흉악한 장면에 노스카와가 눈살을 찌푸리자 서우가 입안에 들어찬 살덩이와 피를 퉤, 뱉으며 씨익 웃었다. 제 이빨 사이에 피가 끼어 흉물스럽기 그지 없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서.

"하하, 이것 보세요. 밀어서 잠금 해제."

"지금 그런 농담 할 때인가?! 이만 먼저 들어 가!"

"예에."

        

서우는 너덜너덜한 팔을 지혈하며 차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피가 튄 옷을 바닥에 버리며 걸어갔다. 하지만 다시금 제 팔에서 피가 흘러 길을 만들고 있음에도 서우는 별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하 씨발."

다 차려진 음식을 먹지 못했던 후유증으로 서우는 다음 날 도쿄로 향하는 내내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게다가 이유없이 찾아온 강렬한 현자타임으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결국 그런 서우를 지켜보던 소라는 버스 안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서우의 옆에 앉았다. 처음 만남은 비록 그런 식이었지만 이런 저런 상황을 함께 하고, 몇 번이나 자신을 구해주다 보니 아무래도 소라는 서우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저, 서우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요즘 상태가 안....... 뭐예요?"

"자요."

팔을 내미는 서우를 보며 소라는 당황해서 입만 뻐끔거렸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소라는 제 입 앞까지 내밀어진 서우의 팔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서우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한참 망설이던 소라는 입을 열었다.

"어, 어떡하라고요?"

<대답이 없다. 단순한 시체인 것 같다.> 일본의 국민 게임이자 연재 중단의 신 토갓시의 연중 사유로 밝혀진 유명 게임 도라곤 케스토의 대사를 무의식 적으로 떠올리며 소라는 서우를 쳐다보았다. 왠지 깨물지 않으면 아무런 반응도 없을 것 같은 느낌.... 소라는 입을 벌려 눈치를 보며 가볍게 서우의 팔을 물었다.

"우와. 좋네."

"!"

"하하."

"이, 이런 거 하려는 게 아니 거든요! 서우 씨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그거 아세요, 소라 씨?"

"뭐, 뭘요?"

"제가 사용한 휴지 롤의 수가 74롤을 돌파........"

"....?!.....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서우 씨 좀 이상해요, 어디 아파요?" 

"하, 하하....아하하. 아니요. 저는 건강합니다. 이것 보세요, 아까 좀비한테 물어 뜯겼는데...."

"꺄, 꺄하!!! 누.... 누가 약 좀, 약 좀 주세요! 전부 다 짓물렸잖아요!"

"아."

"무슨 아, 에요! 빨리 팔 보여주세요!"

간혹 이렇게 소라가 말을 걸면 뭐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반 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날 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막는 것 같았던 그 기분.. 이후 또 다시 다음 대피소에서 머무는 동안 서우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하지만 얼마 뒤 그런 서우를 그나마 기운차리게 해준 것이 있었는데, 바로 도쿄에 산다는 그 유부녀에게 전해줄 물건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만난다고 해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만 사진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한번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남편을 구해주지 않고 방관한데다가 좀비가 되기도 전에 죽인 서우였지만 그에게는 그런 윤리의식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제가 없었다면 그냥 죽었을 팔자였고, 애시당초 이런 상황에서 

게다가 평소 남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살인을 하더라도 범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대부분의 감정들은 다 성욕이랑 등가교환한지 오래였기에 별 생각없이 아키오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고 있었다.

"흠... 이것까진가?"

마지막 편지를 마저 읽고는 그것을 가방에 집어 넣고서 서우는 가볍게 제 팔을 걷었다. 어제 좀비에게 물린 부분이었는데, 어제만 해도 그곳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당연히 살은 흉물스레 짓물려 있었고 곪기까지 한 상처를 소라가 치료해 주기는 했는데... 그저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른 뒤 거즈를 감은 정도여서 병원에 가서 치료라도 받지 않는 한 낫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랬다, 하지만..

"나았네."

그새 연한 갈색빛을 띄우는 멍을 제외하고는 상처는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서우는 픽 웃으며 제 팔을 돌려보다가... 조금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여자면 큰일날 뻔했네, 그것도 재생됐으면......"

저가 말해놓고도 웃긴지 낄낄거리던 서우는 옆에서 잠든 소라를 내려다 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담배를 필 생각이었는데, 근처에 하네다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대피소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공터에 나와 담배에 불을 붙히는데, 저 멀리 작은 무언가가 웅크려서 앉아있었다.

"츠부미? 너 여기서 뭐해?"

"아, 서우님!"

그러다가 또 그런 일 당할라... 그 말을 삼킨 서우는 츠부미의 옆에 앉았다. 츠부미가 무척 기뻐하는 것이 느껴져 그는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그냥 내일이면 도쿄에 도착한다고 하니까 신나서요...."

"아.. 그렇네. 거기에 가족이 있어?"

"예, 전 학교 때문에 지방에 내려와 있던 거구... 제 부모님이나 에리 언니 부모님은 전부 도쿄에 계세요."

"그렇군......"

비록 미수였지만 나쁜 일이 두 번이나 있었던 것 치고 츠부미는 여전히 밝았다. 이제 곧 도쿄로 가면 안전하다는 생각에서일 수도 있지만 버스 안에서도 그 흔한 투정 하나 없었고, 일도 말없이 열심히 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츠부미가 나름 귀엽게 보였던 서우는 잠시 아이의 작은 머리를 쳐다보다가, 에리가 떠올랐다.

"츠부미, 넌 혹시..."

"예?"

"좀비 보면 무슨 생각들어?"

혹시 츠부미도 에리처럼 좀비를 먹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는데, 그 다음 순간 츠부미의 얼굴에 어린 것은 끔찍한 공포였다. 말 그대로 두려움 그 자체...  그 표정만으로도 츠부미가 좀비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어서, 서우는 말없이 츠부미의 동그랗고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츠부미야, 넌 커서 아무 거나 주워 먹지 마라."

"네에?"

"..그냥 해본 말이야."

에리에게 손대지 못한 이유가 단지 좀비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서우는 말없이 한숨만 쉬었다. 대체 그 망설임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궁금하신 거나 답변을 원하시는 게 있으면 @ 라도 붙혀주세요. 후기에 쓸 말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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