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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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어....지금 가는 거야?"

유리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서우의 앞에 섰다. 짐을 챙긴 서우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가야죠. 새벽에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이 시간이 제일 인원수가 적어서.."

"음.. 그래, 잘 가. 심심하면 문자하고..... 갈 곳 없으면 또 와. 사람 재워줄 곳이랑 먹이는 있다."

새벽에 서우를 따라 거실로 나온 유리. 역시나 눈물의 송별회 같은 것 따위는 없었다. 몹시도 쿨하게 유리는 서우를 향해 손짓했고 다시 오라는 말을 덧붙혔다. 하지만 나름대로 아쉬운 듯이 서우가 창문 밖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할 때까지 유리는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럼, 갈게요. 모모 씨랑 천년만년 장수하시고 나나 씨랑도 사이 좋게 지내시고요... 아, 좀비가 때리면 연락해요." 

"뭐어? 하하! 쓸데없는 걱정 말고 조심히 가."

둘은 그렇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뒤, 그대로 뛰어내려 골목 사이에 착지했다. 이미 착지할 곳까지 미리 봐두었으므로 조용히 들키지 않게 그렇게 일단 집밖으로 빠져나온 서우는 담을 하나 넘고 집 사이를 가로지른 다음 일자로 내달렸다.

"일단 옷부터 갈아 입을까.."

그와 동시에 배낭에서 바로 옷을 꺼내 입고있던 상의의 겉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입고있던 옷들을 빠르게 바방 안으로 쑤셔 넣었는데, 좁은 골목에서 달리는 상태로 재주 좋게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좁은 백 스테이지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델 같았으나 귀찮게도 서우는 정부에게 감시 당하는 몸이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인기 폭발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능력자인 걸 들키지 말았어야 했나..."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며 서우는 말려 올라갔던 상의를 내리고 다시 배낭을 메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조심스레 감시인들의 동선에서 벗어났고, 그대로 역을 향해 달렸다. 그러다가 잠시 높은 빌딩에 올라가서 저가 온 길을 쳐다 보았는데, 서우가 사라진 것을 감지했는지 멀리서 보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각기 다른 건물에서 몇십 명이 개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뭐야...?"

게다가 그들은 서로 대면대면하는 척하면서도 서로 무언가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 나온 이들 또한 그와 비슷했다.

그랬다. 이제까지 서우가 기껏해야 10명 정도라고 생각한 감시인은 사실 마흔 명에 가까운 숫자였다. 당연히 와이어로 일격에 좀비를 절단내는 능력자에게 붙힌 감시인이라고 치기엔 수가 적다고 생각했더니, 사실 서우의 동선 곳곳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그런 치밀함에 서우는 가볍게 혀를 내둘렀다. 여기까지 쉽게 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니, 기적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분명 제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려 한다면 생포할 생각으로 마취주사가 장착된 총을 숨기고 있을 것이 틀림 없었다. 그 증거로 벌써 몇 명은 총을 매만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노스카와 씨도 그렇고......그냥 순수한 의도로 일본에 왔을 뿐인데 말이지, 사람들이 믿음도 없고 신뢰도 없어요."

일본 정부가 생각하는 의도에 비하면 분명 순수한 것이기는 하나, 결코 순수한 생각은 아니였다. 서우는 가볍게 툴툴거리며 별 수 없이 구석진 곳을 향해서 달렸다.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역까지 갈 수 있었지만 길이 영 좋지 못해 몇 번이고 달리다가 막다른 골목에 막히며 서우는 역을 향해 달렸다. 그러던 그때였다. 그나마 조금 넓은 곳으로 길이 트여 속도를 더 내는데,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예 길을 꽉 막고 있는 무리에 의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뭐하는 거지..?'

딱 보기에도 떡대들이 손에 나무로 깎은 창이나 각목 같은 것을 들고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뭔가 끙끙거리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해 하며 위를 올려다 보자, [헨타이센빠이] 언뜻 그 글씨가 보여 잠시 그게 무엇인가 고민하던 서우는 엊그제 보았던 사이비 종교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자벳자베트교라고 쓰여있는 팻말이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동맹을 맺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것도 감히 우리 교주님을 습격하는 것이냐!"

"유일신 자벳자베트님을 두고 허접한 센빠이 신 같은 걸 우리가 인정할 리가 없지!"

"제.. 젠장...! 속이다니! 교주님 어서 피하십... 억!"

"사쿠라가! 이... 이....!"

"후후, 아침에 교단으로 향할 때는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경호를 하고 움직인다는 정보를 그리 쉽게 흘린 너희의 잘못이다! 뭣들 해? 어서 잡아!"

'사이비 종교끼리 싸우나 보군...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태연하게 서우는 그 사이를 몰래 빠져 나가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우의 어깨가 턱, 하고 잡혔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듯한 기척은 당연히 눈치챘기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인원수도 많고 머리속에서 예의 귀차니스트가 귀차니즘 교향곡 18악장을 쳐대고 있었기에 대충 좋게 넘어갈 생각으로 몸을 슥 피했다.

"아, 신경쓰지 마시죠. 저는 지나가는 사람입...."

서우는 말하는 것과 동시에 고개를 뒤로 뺐다. 교주에게 과잉충성을 보이고 싶어 안달한 녀석이 서우를 향해 주먹을 날렸기 때문이다. 물론 서우가 그런 것에 맞을 리는 없지만 기분이 확, 나빠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가뜩이나 정부에게 쫒겨서 새벽부터 나왔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어쭈? 이 녀석 좀 봐라?! 어딜 메뚜기처럼....."

"그만해! 교주님의 앞에서 무슨 짓이냐!"

"아, 죄.. 죄송합니다. 교주님!"

서우는 구겨졌던 미간을 가볍게 꾹 눌렀다. 그러다가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더니 사람들의 사이에서, 배가 뒤룩뒤룩 나왔지만 꽤나 풍채가 좋게 생긴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옆에 사람들이 다 그를 감싸고 도는 것을 봐서 저쪽이 교주임이 틀림 없었다.

"어이! 네가 자벳자베트교 교주냐?"

"이 무례한 놈! 감히 우리 교주님에게....!"

"맞나 보군."

서우는 몰려온 인파를 한 손으로 치우면서 빠르게 그들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교주가, 억- 할 틈도 없이 그대로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끄흐!"

"교주님!!!"

저 멀리 교주가 날아가자 주변에서 자연스레 살의가 들끓어 올랐다. 걔중에 무기를 든 몇 놈들은 바로 서우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이 미친 새끼가?!....... 힉!"

달려오는 이들의 눈앞에 어디서 나온 것인지 여러 겹으로 그물처럼 이루어진 금색의 와이어가 뻗어져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앞으로 내밀었던 무기는 찰흙처럼 잘려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어?"

"으, 흐아아아.... 아아..! 다이고! 너 파, 파팔.... 팔이!!!!"

"흐, 후아아악 내 다리가아아아앗!"

사실 그 모양새에는 서우도 적잖이 놀란 터였다. 그저 방어하자는 생각으로 무심결에 와이어를 뽑았는데, 아직 새벽이기 때문에 주변에는 제대로 된 빛이 없어 사람의 살을 이리 쉽게 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신도들이 이렇게 피라냐처럼 달려들 것이라는 생각도 전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힉, 느.. 능력자야. 저건...!"

"뭐어? 능력자?! 왜.. 왜 그런 사람이 여기에..!"

"도망쳐!!"

결국 그렇게 완전히 잘리지는 않았어도 몸이 찢어진 신도들은 바닥을 뒹굴고, 나머지들은 교주를 데리고 도망친 듯 싶었다. 그렇게 자리에 남은 것은 서우와 그에 의해 다친 신도들, 그리고 헨타이센빠이의 교주와 신도들 뿐이었다.

"크흐, 어어억....어흐으으윽!!"

"....거 참, 사고칠 생각은 없었는데......"

머리를 벅벅 긁던 서우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문득, 바닥에서 뒹굴던 녀석이 떨군 신분증 하나를 주웠다. 마침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구하게 된 것이다. 

"오오...!"

해서 어쩌다 보니 원하는 것을 얻은 서우는..... 그냥 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비를 건 것은 저쪽이고, 뭐 팔 좀 잘린 것은 이틀 정도만 내버려 두면 알아서 스르르 낫는 것.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면서 좀 풀어졌던 배낭을 다시 고쳐메고 일어서는데, 헨타이센빠이의 교주가 제 쪽을 보고있는 것이 아닌가?

'...뭐, 뭐야?'

대놓고 보는 그 시선에서는 뭔가 빛마저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우는 교주인 여자를 보다가 뒤로 슬슬 물러났다. 아무래도 이런 사업[?]에는 사람 인상이 중요한지라 교주인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었지만, 그 눈에서 무언가... 맹신 같은 것이 들끓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꺼려지는 기분이었다.

'...물리기 전에 가자.'

금방이라도 그녀가 말을 걸 것 같아 서우가 재빨리 자리를 뜨렸는데, 무섭지도 않는지 교주가 서우를 와락 잡았다.

"저, 저어어... 구원자님!"

"구원자...?"

사실 능력자를 구원자라고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서우가 몸을 물리려 하자 방금 전까지 여자를 지키다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이들도 머리를 조아리며 서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마도 이들은 착각에 푸욱 빠져 있는 듯했다. 서우가 자기들을 지켜줬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말이다.

"...놔요, 전 바쁜 사람입니다."

"예? 예에! 알겟습니다. 하지만... 저어 제, 제발 이름이라도... 이름이라도 가르쳐 주세요!"

여자의 과도한 시선에 대답해주기 싫었지만 왠지 말해주지 않으면 놓지 않을 것만 같아 서우는 푹,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서우."

"서우.. 이,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

"구원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자의 눈이 선망과 동경으로 부담스럽게 반짝거리는 것을 보며 서우는 다시 뒷 머리를 벅벅 긁다가 다시 네비게이션을 보며 달렸다. 언제 제 위치를 찾아낼지 모르는 일이었고, 이곳에서 가장 빨리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전철이다 보니 역으로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철의 시간이 거의 20분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아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서우는 이 일로 인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거대 사이비 종교집단의 수호자이자 교주가 된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게되었다. 

지금 그것을 알 리 없는 서우는 전철역을 향해 달리다가, 개찰구 앞에서 검문을 서고 있는 사람에게 걸려 멈춰서 있었다. 

"음? 무슨 일이에요?"

"죄송하지만 신분증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최근에 검문이 강화되어서요."

"신분증이요... 잠시만요."

마침 녀석에게서 주운 것이 있어 신분증을 내미려는데, 갑자기 앞에 있던 그가 귀에 꽂고있던 이어폰을 잡았다.

"아, 잠시만요... 응, 무슨 일이야? 뭐?"

"......"

아무리 모든 감각이 뛰어나진 서우라 한들, 이어폰으로 듣는 것까지 알아 듣는 것은 무리.. 잠시 얌전하게 이어폰에서 흘러들어온 질문에 대답하던 역무원은 서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손님."

"?"

"츠, 한번 발음해 보시겠습니까? 아,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츠.

별 거 아닌 발음 같아 보이지만 일본인이 아닌 이들이 하려면 가장 어렵다는 발음이 바로 츠였다. 해서, 1923 관동 대지진 때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조선인 학살에서 이것으로 자국민인지 아닌지를 구별해 '츠' 발음이 되지 않는 자를 한국인으로 간주하고 죽였다는 설도 있을 정도였다. 

고로 서우도 츠 발음을 잘하지 못했다. 아무리 해도 일본인이 하는 츠, 발음대로는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일본인인 역무원이 들으면 단박에 눈치채고도 남을 것이다.

"손님?"

잠시 망설이던 서우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 좋게도 검문을 하고있는 것은, 그리고 이 역사 안에 있는 것은 앞에있는 상대 하나였다.

"....알겠습니다. 할게요."

"예."

"자, 하나 둘-"

빠악!

"억-"

그대로 서우는 주먹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세게 찍었다. 관자놀이를 그렇게 세게 얻어맞은 역무원은 작은 비명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K.O 당해 몸이 옆으로 기울었고, 서우는 말없이 그를 제대로 바닥에 눕혀주며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이 붐비는 전철속에 몸을 실었다. 

============================ 작품 후기 ============================

서우는 갑질에 한 발자국 다가서기 위해 미래의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되었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가 갑이죠.

아, 그리고 여러분 저의 승리입니다.

안녕내손모가지...녿 : 제 손 도착하면 손톱 갈아서 드세요

오함마자벳 : 넹..

오함마자벳 : 냠냠

오함마자벳 : 쩝쩝...

안녕내손모가지...녿 : 그러면 설사 멎음

오함마잉다 : 손 모가지!!!

안녕내손모가지...녿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참대전

저의 승리였습니다. 영혼과, 커피값과 건강과 잠을 희생해서 승리를 쟁취했지요. 노쓰형님과 소이정 누님께서는 저에게 딱지 50장씩 서둘러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근데 노쓰옹께서 글쎄, 어제 하루 쿠폰을 150장 받으신데다가 아름다운 세계 출판계약까지 오셨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어제 모든 멘탈을 바쳤건만...... 그렇습니다... 쿠폰 감사합니다... 크흑...

그리고 밑에는 하루 전날에 적었던 시놉시스? 라기 보다는 그냥.. 플룻입니다'ㅠ' 대 연참용이죠. 어쩌다 보니 서우가 양아치랑 싸우거나, 사이비 교주가 되는 플래그가 선 내용이 추가되서 횟수는 달라졌네요.

 2013/03/09 06:54

31화, 거절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미행이 붙은 걸로 끝남.

32화, 유리 집으로 감. 좀 머물게 해줄래요? +이야기. 서우 자다가 엄청 이상한 꿈을 꿈. 그러다 깨서 욕실로 ㄱㄱ 모모 혼자 있을 때 덮덮하려던 서우- > 유리에게 들킴->전설의 삼피

33화까지 ㅋ

여기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키오 편지 봄. 항 정신제 어쩌고 자시고 그런 내용도 있고 암튼 복선.

34화, 거기서 3일 정도 머물다가 좀 경계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도주. 아무튼간 도주하자마자 열차를 타고나서 아키오에게 가봄. 도중에 한 번 검문에 걸림. 발음이 이상한데?! 하니까 ㅇㅇ 나 한국인임. 알았으니 쥭어라 ㅃㅃ 하고 존나 세게치고 [이 부분은 뒷내용.]

그럼 님들, 좋은 하루 되세요.

제가 언젠가 미치면 또 연참대전에 참가하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내가 이능력자 독자님들, 로벨리아 독자님들.

두 분의 손모가지는 제가 각각 하나씩 가지게 되었으므로 두 분의 연재는 이제부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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