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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저어..?"

"......"

"어제 뵈었던 것 같은데, 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요? 왜 제 손에.."

그제까지 한쪽 손이 묶여있던 아키오가 수갑을 쩔그럭거리며 서우를 재촉했다. 하지만 그것도 은근히 너덜너덜했는데, 한창 할 때 쩔그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기도, 그것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이 짜증나 무심코 세게 잡아당겼더니 이음매 중에 하나가 휘어, 아키오게 세게 잡아당기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뜯어질 것 같았다. 

"저기....?"

서우가 대답이 없자 아키오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간밤의 일로 격하게 울적했던 서우였기에,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아키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으며 요시자와는 어떻게 되었고 그래서 너는 이렇게 되어 어떤 사람을 불렀고 그 후에 쓰러져서 잠들었다는 식으로.. 아키오는 다시금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것은 서우에게 실낱 같은 희망을 전해주었다.

'..혹시...! 이번에 나와주신다면 강화+20 아이템처럼, 후배위하는 선배처럼 소중하게 다루겠습니다..!'

서우는 혹시, 혹시나 아키오의 그 인격이 또 튀어나와줄까 기대했지만 아키오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가슴부근을 꾹 잡고 고개를 숙이다가 고개를 돌았다. 

                  

그 모습에 서우는 난생 처음, 지독한 절망감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역시, 그 사람은......... 저어... 요시자와 씨랑은 어떻게.."

"우연찮게 같이 가다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럽게 가진 않았나요..? 편하게........."

아키오는 서우의 그 표정이 제 마음에 공감해주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슬퍼할 때 남이 같이 슬퍼하고 았다면 제 슬픔에 공감해 주는 것이라 생각하지, 자신의 다른 인격이 튀어나오지 않아서 슬퍼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이렇게 먼곳까지 유품을 전해주러 와주고.. 게다가 저런 표정이라니..... 정말 좋은 분이구나..'

서로 다른 뜻으로 침통한 표정을 짓고있던 둘의 침묵은 서우의 말로써 깨졌다.

"시체는 거둘 수 없었지만 좀비가 되지도 않았고 편하게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 분신들도 휴지 안으로 편하게 가셨습니다."

"....뒤에 말은 한국말인가요..?"

"아.... 고인을 애도하는 한국어입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그렇군요.."

                     

나름대로 서우는 제 말이 거의 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아키오를 쳐다보았다. 우는 건가 싶었지만 애써 울음을 참고있었다. 잠시 후에야 그나마 진정된 듯한 아키오는 몸을 일으켜 옆에 있던 가방을 받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침묵, 한참 후에야 그녀는 서우와 제대로 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이렇게 전해주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서우라고 합니다."

"소우요?"

"아니요, 서우. 한국인이에요."

"한국 분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 일본까지..?"

"아....으음. 이건 비밀입니다만...."

어제 제 몸을 달래려 원치않게 달밤의 체조를 했던 서우였는지라, 마당 안에 있는 집안의 집,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발견했던 서우였다. 딱 보니 전에 하숙을 주는 것으로 이용했는지 침실 같았는데, 어차피 당분간은 몸을 사리고 정부의 시선을 피해야 했기에, 그리고 아키오의 다른 인격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서우는 제 손을 쫙 폈다.

".....?"

물론 아키오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다. 서우는 아직까지 제 주머니에 들어있던 사이비 종교의 찌라시를 왼손으로 펼치고, 오른손에서 와이어를 뿜었다.

"어엇...?"

"카와이하게 별 모양으로 잘라보죠."

하지만 매일 크게 고깃덩이를 서걱서걱 썰던 정육점 직원 같은 서우에게 그런 섬세함은 없었다. 결국 완전히 모양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아키오를 놀라게하기는 충분했다. 아키오는 큰 눈을 꿈뻑이며 종이와 서우를 번갈아 보다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느, 능력자님이세요? 정말로...?"

"예에. 한국의 능력자인데 그러다가 사정이 있어서 일본에 좀 오게 되었죠."

"아아.."

서우는 간단하게 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혹시 저 밖에있는 집이 남는다면, 재워만 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아키오는 당연하게 수락했다. 거기에 그녀는 조건을 하나 내걸었는데, 기껏해야 좀비가 혹여 저 벽을 뚫고오거나 하는 사태가 발생하거나 다른 곳에서 좀비가 넘어왔을 때 저를 지켜달라는 것일거라 생각했더니, 마을을 도와달라는 상당히 큰-이라고 쓰고 귀찮다고 읽는 부탁이었다.

"마을엔 자경단도 있지만... 그 분들은 아무래도 나이도 있으시구요, 저기 혹여나,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실 때 도와주신다면.... 저희 마을엔 배급이 잘 오는 편이라 식량도 문제가 없어요, 식사도 충분히 챙겨드릴 테니까.. 안될까요?"

서우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무늬만 어려울 뿐 쉬운 부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른 수락하기로 결심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중앙에서 군대가 내려올 테니 시간 끌어주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선심쓰듯이...'

"그거 어렵겠네요....."

"아.. 역시......"

"하지만 뭐... 사실, 요시자와 씨가 아키오 씨를 저에게 부탁한 것도 있고.."

순 말도 안 되는 뻥이었지만 술술 나오는 제 언변에 감탄하며 서우는 속으로만 씩 웃었다.

"요, 요시자와 씨가요?....아......"

"아, 제가 일단은 쫒기는 입장이라. 제가 능력자인 게 밖으로 소문만 안 난다면 좋겠는데요. 그 이야기를 하자면 좀 복잡하고."

"예에, 물론 비밀로 할게요...!"

아키오의 표정은 그제야 밝아져서, 처음 보았을 때 평화롭게 빨래를 널고있던 그 모습을 연상케 해, 서우의 눈을 즐겁게했다. 하지만 그것도 가방 안의 내용물을 보자 다시금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어, 서우님..어제 실례가.. 정말인지 이것저것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실례라고 할 것까지는... 별 일도 없었......."

"저도 어렴풋이 기억은 나요.... 쭉 안 그랬었는데... 그래서 이제 나았나 싶었는데...."

"완치되셨던 건가요?"

"요시자와 씨와 결혼한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1년 전부터는 완전히 나았고.. 예전에 안 좋은 일을 당한 이후로 그렇게 됐어요,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녀가 나왔어요."

"그녀요?"

"그녀라고 불렀어요, 치료할 때에도 딱히 뭐라고 부를 것이 없어서.. 사실은 여러 개가 더 있었어요."                                                              

'다중인격 증상... 흔한 것은 아니라고 하던데.'

              

서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마저 아키오의 말을 들었다.

"어린 아이, 사나운 아이... 그리고 그녀까지..... 해서 시집은 고사하고 집안에서 치료만 받았었거든요. 그러다가 요시자와 씨를 만나게 되서...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시고 계셨거든요.."

수많은 미연시 경력 때문인지 서우는 둘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대충 예상이 갔다. 왠지 모르게 미연시 같을 것 같은 느낌... 다중인격의 여자가 집안에 히키코모리 같이 살다가 아르바이트 생으로 우연히 배달을 온 남자와 그렇고 그런 사랑에 빠지는.. 그 뒤 해피엔딩은 여자가 밖으로 나와서 남자랑 사는 거, 베드엔딩은 남자가 소꿉친구 같은 애랑 놀다가 히키코모리녀의 얀데레 기운이 각성하여 그 집으로 끌고 들어가서....

"보기 흉하셨지요? 죄송합니다.."

"예? 아, 아니요. 보기 흉하긴요, 그보다....."

"예?"

"아니요.... 흉한 일은 없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구요......."

서우가 머쓱하게 말을 삼키자 아키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가방의 내용물을 마저 살펴보았고, 이내 가방을 열어보던 아키오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

다행인 것은 아키오의 눈물이 그나마 빨리 멈추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지금의 좀비사태로 인해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보아온 것도 컸지만, 어느 정도 남편의 죽음을 예상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시자와가 살고있던 지방이 좀비로 뒤덮였을 때, 반은 그의 죽음을 예상했으니까.... 그래서 늘 마음을 졸였고, 그가 잘못되었다면 유품만이라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가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키오는 유품을 꼭 끌어안으며 요시자와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때, 서로 반드시 무사하기로 했던 그 내용대로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그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액자를 꼬옥 쥐었다.

"죄, 죄송해요, 계속... 저... 서우님, 그보다 여기까지 이렇게 오시느라 힘드셨는데 밥도 제대로 못해드리구... 혹시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지금 해드릴게요."

"...너요."

"너요...?"

"아니요, 한국에... 너요라는 요리가 있는데.. 모르시는구나..... 어, 계란 두 개에.. 조개랑 김을 얹어서 하는 요리인데요."

"조개는 없지만 계란이랑 김은 있어요, 만들어 드릴까요?"

"...아, 아니요... 그냥 생각나서 말해본 겁니다. 그냥 편한대로 해주세요."

============================ 작품 후기 ============================

어제는 하루 쉬었네요.

네임드의 민작가님이랑 쪽붉소 안드레아나 작가님이랑 홍대를 달리느라... 껄껄. 

그보다 이 소설보고 괜히 일본녀에게 환상가지거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시면 안됩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소설을 현실과 착각하다가는 당신은 여성부가 됩니다. 아아아악

...연참은 무리일 듯..

조만간 할게요. 오늘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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