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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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서우는 그리 말하고는 구석에 가서 앉아 자리를 잡았다. 아키오는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앞치마를 메고서 손을 씻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뒷태를 보던 서우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물론 딱히 할 것은 없어서 그냥 유리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유리 씨, 뭐해요?]

        

문자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유리는 바로 전화가 왔다. 뭘하고 있었는지 무척이나 심심했던 탓이었다. 그렇게 서우가 유리와 통화를 하는 동안, 아키오는 주방에서 덜그럭 거리며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무엇을 만드는지는 몰라도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흠?"

[왜?]

"아니, 같이있는 분이 무슨 요리 해주시는데... 냄새가 엄청 좋아서......"

[응? 어디로 들어갔길래 요리를 해 먹어?]

"도쿄에서도 끝자락 같은데 배급이 잘 오더라구요."

잠시 말을 멈추고있던 유리는 생각났다는 듯이 아아- 하고 말을 이었다.

[맞다, 맞아. 방어벽 근처면 배급이 잘 온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그래요?"

'한국에서도 북한과 인접해 있는 지역에 상당한 혜택을 주었었지, 아무래도 전쟁이 나면 그곳이 제일 큰일이니까... 김정은 개새끼.'

나름대로 기특한 생각을하며 서우는 유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차암, 그런데 거기 가끔 돌연변이가 어디선가 넘어온다던데?]

"저야 뭐 상관없죠. 오히려 가끔 몸 풀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런데 그쪽은 어때요, 잘 지내요?"

[너 나가고 나서 잠깐 이상한 놈들이 계속 돌아다녔지 뭐어, 너 찾는 것 같더라. 그래도 집안에는 못 들어오고..]

"음.."

[아- 그보다 나나가 너 보고싶어하더라? 그런데 지금은 자고있네.... 아, 맞다. 나 몰랐는데, 네가 나나 처음이었다면서! 몰랐어어.]

"예?"

[네가 처음이었다던데?]

"...그랬...던가?"

            

정신없이했었기에 서우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넣을 때 인상을 콱 찌푸리기도 했던 것 같고, 굉장히 좁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나나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갑다고 생각하며 서우는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렇게 몇 분 정도 통화를 하다가, 누군가 깼는지 유리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해서 서우도 이제 전화를 귀에서 떼려고 하는데.. 주방에서 아키오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서우의 청각은 그 작은 소리마저 잡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요리를 해드려야 하나, 으음.... 밥은 이걸로 됐는데, 반찬이.... 뭘 해드려야 좋아하시려나... 가만, 배급품에 뭐가 있지? 아아, 다행이다. 고기가 가득해... 이걸로 대접을 할까?"

아키오의 중얼거림에 서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고기보다는 다른 고기.....크흑,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부엌에서 아키오는 다시 중얼거렸다. 고기가 도마에 닿는 듯이 찰박찰박하는 소리가 나고있었다.

"그런데 곤란하네, 이걸 삶아야 하나, 볶아야 하나..."

"가슴..."

"그렇지, 불고기라도 해드릴까나?"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그 목소리에 아키오가 깜짝 놀라 주방에서 서우를 돌아보았지만 한국어로 한 것이었기에 그녀가 알아들을 리 없었다. 서우는 말없이 몸을 웅크렸다. 몇십 분이 지난 후에, 아키오는 다 준비되었다며 서우를 불렀고 서우는 멍하게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유리의 요리솜씨도 수준급이어서 그 집에서 충분히 입을 즐겁게 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데, 서우는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깜짝 놀라서 아키오와 식탁을 번갈아 보았다.

"...이게....."

"한국 분이라고 하셔서... 제가 요리 배울 때 한정식도 배웠거든요."

한정식 풀세트를 차려놓은 아키오가 수줍게 옆에 서 있었다. 멍하니 젓가락을 집어 그 끝을 우물거리고 있던 서우는 왠지 모르게 옅은 향수를 느끼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여기에 와서는 늘 맛없고 잘못 먹으면 벽돌 같은 똥을 싸게 된다는 전투식량, 비상식품을 먹어야 했고 그게 좀 나아졌을 때는 유리의 집에서 생선, 생선, 생선.... 그러다가 나름 한국 음식을 보니 그리워진 마음이 없지않아 있었다.

3대 욕구중 아무래도 성욕<식욕<수면욕이 우선 순위다 보니 서우도 잠시 동안 성욕을 잊고 젓가락을 집는데, 아키오는 먹지않고서 앞치마를 풀고 주방을 나섰다.

"어, 안 드세요?"

"저는 요리하면서 계속 먹어서 괜찮아요, 드시고 계세요. 밖에 서우님 머무실 곳 준비 좀 해둘게요."

그리 말하고 뒤를 도는 아키오를 보며 서우는 잠시 있다가 음식을 빠르게 해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가 부르고 나자 무척 기분이 좋아져 식탁을 정리했다. 열 일곱부터 혼자 살았기에 되려 설거지를 하지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더 거슬리는 성격이라,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설거지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육체적 능력이 상승하다 보니 서우의 설거지는 가히 묘기에 가까웠고, 서우는 제가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속도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장난 아닌데?"

무서운 속도로 설거지를 끝낸 서우는 깨끗하게 물기까지 털어내고 완벽하게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씽크대까지 깨끗하게 닦고, 와이어를 적당히 이용해 식탁을 닦고나서 뿌듯하게 주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털고 밖으로 나갔는데, 밖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열려있고 작은 창도 열려있는 것이, 아키오가 한창 청소중인 듯 싶었다. 왠지 거기로 가기엔 뭐해서 서우는 슬슬 집 안을 둘러보았다.

대충 보아도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집 같다. 몇 년.... 5년 정도는 흐른 것 같지만 왠지 둘이 여기로 이사오면서 지은 집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슬슬 돌아다니면서 안을 살펴보다가 서우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그렇게 숨을 들이키자 집의 냄새가 확, 코 안으로 스며들었다.

"음...."

이제는 많이 빠진 듯하지만 특유의 새 집 냄새, 페인트나 풀, 시멘트 냄새 같은 것이 기분 나쁘게 코를 간지럽힌다. 서우는 제 코 밑을 슥 한번 문지르며 다시 집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거실, TV옆에 상당히 많은 액자들이 놓여져 잇었는데, 보니까 거의 같은 배경에서 촬영한 것이 많았다.

"이게 뭐더라.. 코스모스? 그럼 가을인데."

거의 다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하고 찍은 사진들 뿐.... 그러고 보니 여기에 올 때 들판에 꽤나 코스모스가 많이 피어있었다. 요즘에는 여름에도 핀다고 하지만 코스모스의 계절은 아무래도 가을인지라 들판에도 여기저기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

잠시 그것을 보던 서우는 다시 집 안을 살펴보았는데, 뭐 딱히 특별한 것은 없어보였다. 반쯤 끊어져 덜렁거리는 수갑이 뭔가 묘했지만, 신경쓰지 않고서 서우는 할 것이 없어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얼마가지 않아 아키오가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내내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주방을 보고 다소 놀란 듯이 눈을 꿈뻑거렸다.

"어... 가, 감사합니다."

"아뇨, 뭐... 차려주셨는데 치우긴 해야죠."

아키오가 작게 미소짓더니 이불 한 채를 서우에게 건넸다.

"저 때문에 못 주무셨죠? 피곤하실 텐데 다 정리해뒀으니 가서 주무세요. 식사 가져다 드릴게요."

"예? 아니.. 뭐, 나름 잘 잤어요. 그런데 뭘 하시려고요? 바쁘신 것 같은데."

"아 그게.. 불단을 차리려고요."

"불단이요?"

'그 일본 애니에서 가끔 나오는 그거? 누가 죽으면 그거 차려놓고 사무라이 만화면 검 올려놓고 요리만화면 식칼 올려놓고 뭐 그러는 것 말인가...?'

서우의 생각대로 그것이었다. 방 한쪽에 아키오는 분주하게 불단을 차렸고, 서우는 딱히 할 것도 없고 가냘픈 아키오가 그 무거운 것을 들고 낑낑거리는 것을 보고 옆에서 차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찌됐건 내가 죽여놓고 불단이라니, 참 아이러니 하지. 안 그래?'

거의 다 차린 불단에서 서우는 저 혼자 고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에 죄책감이나 회개는 요만큼도 없었지만.

                                                                                                                                                                                                  

============================ 작품 후기 ============================

오늘 내용 요약

1)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2)김정은 개새끼. 저 사는 곳 바로 옆에 관사가 있어서 심히 무섭기 그지없네요.

후기: 오늘 자정즈음에 올려야 할 텐데...

+)짐승 뒷 부분 내용을 요즘 구상중인데...

응? 조교물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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