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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오와 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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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가 나간 후에도 아키오는 계속해서 꿈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질척하고 끈적끈적한 것이 다리 사이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다리를 필사적으로 오므리려는 힘을 간단하게 누르고 누군가가 다리를 활짝, 벌렸다. 그렇게 활짝 벌려진 다리 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들어오고, 더 이상 그것을 오므리지 못하도록 강한 힘이 다리를 콱 잡았다.
그리고는 그 사이를 비집고 축축한 혀가 들어왔다. 그러자 말도 못하는 쾌감이 전신을 짓눌렀고, 그 사이에서 열심히 몸을 뒤틀어도 보았지만 저항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커다랗고 차가운 손이 옷을 벌리더니 가슴을 세게 쥐었고, 반대로 부드러운 혀로 중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당근과 채찍이었다.
완전히 젖은 내부로는 손가락이 들어와 앞 뒤로 그 안을 마구 쑤시기 시작했고, 입구부터 위를 마구 비벼서 아플 정도였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것도 쾌감이 되었다. 그렇게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데도 눈앞이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꿈 같은데도 지독히도 현실적이어서 결국 얼마가지 못해 아키오는 저항을 그만 두었다. 아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흐...?"
한참 침대에서 꾸물거리던 아키오는 어느 순간 느껴지는 다리 사이의 찝찝함에 자리에서 확, 일어났다. 하지만 머리가 띵하고 몸이 붕 뜨는 것만 같아 얼마가지 않아 바로 자리에 누워 버렸고, 그 상태로 잠시 누워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분명히..!
"어, 어떻게 된 거지?! 으하......?! 힉! 말도 안 돼!"
정신을 차리고 이불을 걷어 보니 입고 있던 잠옷바지는 반쯤 내려가 있었고, 속옷은 입혀져 있기는 했지만 온통 축축하다 못해 흠뻑 젖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다리 사이도 뭔가 찐득찐득했으며 침대 시트도 조금 젖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제 손도 마찬가지.. 비몽사몽한 정신에 서우가 제 손에 그것을 묻혔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키오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건..."
무시무시한 충격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어...어떻게 이런.."
자세히 살펴 보니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잠옷의 단추도 반은 풀려 있었고.. 손가락이 젖지만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일을 당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실제로 당한 것이었지만 독한 술과 잠에 취해 있던 아키오가 그것을 알 리 없어, 그저 혼란스러워 할 뿐이었다.
"말도 안 돼.. 내, 내가 왜... 내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아키오는 입술 끝을 세게 깨물면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속옷을 벗으려고 했지만, 너무 심하게 젖어 벗을 때마다 그것이 돌돌 말려 보기 흉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몽정이라도 하면서 혼자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요시자와가 꿈에 나왔거나, 상대가 그였다면 혹여 모를까. 아키오의 꿈에 나타난 것은 서우였다. 서우가 제 위에 올라 타서 온갖 야한 말을 쏟아내며..
'흐윽, 히..... 아앗, 아! 하으으극! 조, 좋아요.. 안에..... 그렇게 눌러주시는 거... 으하아아앗!'
'아키오 씨, 나랑 하고 싶은 거 알고 있어요. 매일 그렇게 계속 날 쳐다보는데.. 아마 그때마다 여기가 이렇게 젖었겠지? 응?'
'요시자와보다는 나랑하는 게 좋잖아, 하고 싶어서 안달난 거 알고 있다구요.'
'잔뜩 굶주려 있었지.'
꿈속에서 들은 말이었지만, 혹여 최근 자신의 상태를 보고 서우가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키오는 겁이났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언뜻 들은 말로는 서우는 그런식으로 여자와 자야할 때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만약 자신의 변화를 눈치 챘다면...
"우.."
아키오는 문득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참으며 차분하게 단편적으로 남은 기억을 정리했다.
그녀의 머리속에 남은 기억이라곤 언뜻언뜻 비추는 서우의 모습, 그리고 그의 목소리... 하지만 너무나도 흐릿하여 꿈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은 술 때문이었지만 아키오는 제 속이 미슥거리는 것이 너무 오래 자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벌써 일곱 시였다.
'잠깐 잔다는 게 그런 꿈이나 꾸고...'
자괴감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지만 아키오는 그 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소름끼치는 쾌감, 한 번 맛 보았기에 만족해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맛 보았기에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꿈인데도 지독하게 생생한 그 기억, 그 감각...... 하지만 요시자와가 생각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아아, 어쩌면 좋아.... 요시자와 씨.....요시자와 씨........."
요시자와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키오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감싸 안았다. 물론 평생 수절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다. 최소 몇 년은 요시자와를 애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머리를 감싸쥐던 아키오는 일단 정신을 차리자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어, 아키오 씨. 일어나셨네요."
"!"
"기척이 없으셔서 깨우려고 했는데."
"좀 피곤했나봐요...."
"그래도 딱 일어나셨네요, 이제 저녁 시간인데."
하지만 그것도 문을 두드리려고 했는지 문 앞에 서 있던 서우를 보자마자 끝났다. 아키오는 무심코 휘청하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다행이 서우의 손이 조금 더 발라, 제 허리를 잡아 끌어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서우와 상당히 몸이 밀착되어 버렸다.
"앗.."
그것에 본능적으로 아키오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성큼 앞으로 나서는 서우가 먼저였다. 순간 아키오는 숨이 턱, 막혔지만 겨우겨우 표정을 폈다.
"괘, 괜찮아요. 잠깐 어지러워서...."
"괜찮겠어요?"
"예....놓아주세요.."
겨우겨우 아키오는 서우를 옆으로 밀고 두 다리로 섰다. 하지만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여, 서우는 그녀의 뒤에서 씨익, 미소지었다. 동요하는 게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였다. 급한 마음에 진도를 조금 빨리 뺐더니 그게 또 효과가 좋았나 보다. 덜덜 떨던 아키오는 손을 세게 쥐고는 애써 태연하게 서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우님, 저어..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먹고 싶은 거요?"
"네, 해.. 해드릴게요."
어쩌면 이제, 기회가 눈앞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우 또한 태연하게 웃으며 그냥 아무거나 좋다고 말을 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겠지, 몸을 풀면서 시간을 떼우던 서우는 적당히 시간에 맞추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아키오가 식탁 가득 반찬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가짓 수가 많았는데,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아무거나 마구 식탁에 늘어놓다가 그리된 것 같았다. 서우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면서 자리에 앉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오늘은 반찬이 더 많네요?"
"예?.... 어, 그.. 그렇네요. 그냥 꺼내놓다가 보니까.."
"잘 먹겠습니다."
봐라, 역시 생각대로다. 서우는 말없이 짐짓 태연하게 젓가락질을 했다. 식사가 진행될 수록 아키오는 나름대로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 같았는데.. 이건 좋지 않았다. 서우는 입가를 가볍게 씰룩이다가 젓가락을 들어 앞에 있는 음식을 짚으며 대수롭지 않은 것을 이야기 하듯 운을 떼었다.
"참, 아키오 씨."
"네?"
"아까 빨래가 다 말랐길래 세탁실에 놓았는데요."
"빨래? 아.. 맞다. 감사합니다. 자다 보니까....."
아키오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서우를 쳐다보는 찰나였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그의 눈에서 뭔가 잔혹한 빛이 언뜻 스쳤다. 말 그대로 짐승의 빛, 아키오가 들고 있던 수저마저 놓칠 정도로 놀란 순간, 서우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집에 들어왔을 때 들었거든요.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네? 무, 무슨..."
"아키오 씨가 내는 소리. 전부. 그렇게 요란하게 제 이름을 부르면 밖에서도 다 들려요."
"그... 그게 무슨, 무슨 소리세요..!"
"아키오 씨가 설마 그럴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무심코 아키오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것에 맞추어 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서는 아키오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기껏해야 아키오가 물러설 수 있는 곳은 주방, 그 좁은 공간. 아키오가 올려다 본 서우는 무표정했다. 하지만 서우가 마음속으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서우가 한 발자국 아키오의 뒤로 다가섰다. 이제 아키오의 뒤에 있는 것은 그녀를 가로막는 씽크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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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거진 10000원 벌었네요. 쿠폰 주신 분들 전부 다 감사합니다! 열두 개는 이번 달 들어 처음이라서 개 깜놀, 으엉!
그러니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내일 서울로 밥 얻어 먹으러 감.. 헤헤, 민영모 작가님을 찬양합시다. 우리 모두 네임드, 두 번 네임드. 하지만 쿠폰은 저에게......[!]
전 쿠폰왕이 될 거니까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