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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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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
서우는 간만에 담배에 불을 붙혔다. 그것만으로도 거리에 나자빠져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배냄새를 킁킁거리기 시작했지만, 서우가 휙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었는지 다시 곱게 자리에 누워 버렸다. 서우와 눈이 마주치자 무심코 기가 절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야 저 녀석은....'
낡은 이불을 덮고 그는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언뜻 보면 서글서글한 인상인데도 퇴폐적인 빛을 띄는 것이 마치 야수의 그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가 저도 모르게 타인의 기를 죽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서우는 태연스레 담배를 입에 물고, 표지판을 보며 A구역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가만, A구역이...."
서우는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주변을 살펴 보았다. 주변은 끙끙거리는 거지들, 의미없이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 같은 사람들 투성이었다. 도쿄는 그나마 사이비 종교로 시끌벅적하기라도 했는데, 나고야는 도시 전체가 죽어있는 것 같다고 할까?
'아니, 여기만 C구역이라서 그런가...'
서우는 머리를 긁적긁적 거리다가 표지판을 보면서 A구역을 향했다. 하지만 길이 상당히 어지러웠고, 군데군데 비슷한 건물들이 복사한 것처럼 놓여 있어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다른 길을 헤매기도 했다.
"와, 진짜 여기가 어디냐.."
그렇게 겨우 어렵사리 앞까지 가게 된 A구역 앞은 철조망이 높이 쳐져 있었고... 풀숲이 상당히 많았는데, 거기까지도 부랑자들이 모여 있었다. 삼삼오오, 가족인 것처럼 모여 있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제법 시끄러웠다.
그리고.... 서우의 귀는 그 사이에서도 낮게 울리는 것을 잡아냈다.
".....종족보존을 하려고 참 열심이시군."
인간은 죽음을 직면했을 때 가장 번식욕구가 강해지고 번식능력도 강해진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강간 당하는 여자가 임신할 확률이 높.... 잠시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며 서우는 그곳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안한지가 엄청나게..
-띠리리리릭. 띠리릭.
"아.. 츠부미잖아?"
너무 오래 오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도 바로 이 앞인데.. 서우가 그쪽으로 슬슬 걸어가는 순간, 아이의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우님!"
"아, 츠부미."
"우와아아- 오래간만에 뵈요,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그 짧은 몸으로 우다다다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서우는 손을 뻗다가, 귓가에 울리는 소리를 듣고 츠부미에게 재빨리 다가가 아이의 몸을 뒤로 휙 돌렸다.
"츠부미 안 된다."
"예?...."
"눈 감고 귀 막아."
"어..어엇?!"
"자 이대로 가자, 큼큼."
풀숲에서 들리는 신음소리, 그리고 언뜻 보이는 흰 몸뚱이에서 시선을 돌리며 서우는 그대로 츠부미의 귀를 막아주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츠부미는 귀엽게도 눈을 꼭 감았고, 그 상태로 둘은 묘한 모양새로 앞으로 쭉쭉 걸어갔다. 그렇게 A구역으로 안으로 들어간 서우와 츠부미.. A구역 안은 C에 비해 신세계 수준이었다.
"..여긴 완전히 다르네?"
호오... 감탄사를 내면서 서우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도쿄보다 좀 더 좋아 보인다고 할까? 나름대로 사람 사는 느낌이 제대로 나는 곳이어서 서우는 고개를 절로 끄덕끄덕 거렸다.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었는데, 나고야로 다량의 피난민이 몰려오며 원래 거주하던 주민의 큰 반대로 인해 이렇게 구역을 나누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철조망도 없었고 경비를 하는 사람도 없었으나, 피난민들이 주민들의 집을 습격하는 일이 있어, 군이 나서 이렇게 막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서우는 그것을 모르니 마냥 신기하게 동네를 둘러볼 따름이었다.
"흐음.."
그래서 서우는 츠부미의 귀를 제가 아직도 막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뒤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귀까지 서우에게 막혀 있던 츠부미가 꾸물거리기 시작했지만 서우는 아직도 A구역을 둘러보고 있었고, 츠부미는 아무것도 못하고 눈을 꼬옥 감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저어.."
"아."
"안녕하세요. 서우님."
"어, 으응! 오랜만이야."
그제야 서우가 손을 뗐고, 그렇게 제대로 보게된 츠부미는 못 본 사이에 그새 꽤 자라 있었는데... 흰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 꽤나 성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역시 크면 좀 예쁘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츠부미가 다시 해맑게 웃는다.
'아, 진짜 예쁘게 자라겠다.'
서우는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면서 츠부미를 따라 A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그저 평범한 주택가와 비슷했는데, 그렇게 몇 집 정도를 스쳐 지나가니 공원이 나왔고 그것을 넘어가자 다른 집보다 큰 집이 하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둘 다 없나보네.."
들어가 보니 안은 더 좋아 보인다. 이리저리 다시 서우가 집안을 둘러보는데 츠부미가 서우의 손을 잡고 2층으로 데려갔다.
"어.."
"여기가 서우님 쓰실 방이에요, 삼촌이 여기 쓰시래요."
...너무 좋은 방 아닌가? 서우는 머리를 긁다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분위기, 이런 시국에 너무 베푸는 것 같은데.. 어지간히 조카들을 예뻐하나 보다, 그리 생각하던 서우는 문득 깜짝 놀라서 츠부미를 잡았다.
"츠부미!"
"예?!"
"혹시 내가 능력자라는 거 말했니?!"
"....아.. 네...."
"아, 이런."
하긴,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서우는 허탈하게 웃음짓다가 별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 주저 앉았다. 츠부미는 말해선 안 되는 것이었느냐며 눈을 꿈뻑꿈뻑거렸고, 서우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이 작은 애한테 말해봤자 무엇하리.
"하아."
그 삼촌이라는 사람한테 어디가서 말이나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저어.."
"고마워서 어쩌지?"
"예?"
"아니,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머물 곳이 없었거든.. 네 연락보기 전에는 어디로 갈지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 그런데..."
"네?"
"도쿄에 있을줄 알았는데 나고야로는 어떻게 온 거야?"
"그게...."
"음?"
츠부미는 말하기가 힘든지 망설이는 것이 느껴졌다. 서우는 그것을 괜히 캐묻지 않으려 했지만 여자 둘이 나고야까지 온 것이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오기도 엄청 힘들었을 텐데..
"사실 언니랑 여기저기 도쿄에서 많이 돌아 다녔어요."
"돌아 다녔다고?"
"네... 이유도 모르고 그냥, 언니가 여기저기 좀 다니자고 해서.."
'....대범하네.'
서우의 감상은 그것이었다. 이런 위험한 시국에 여자 혼자 도쿄를 싸돌아 다니다니. 서우는 그렇게만 생각하고는 마저 츠부미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삼촌이 여기로 차를 보내주셔서.."
"차?"
"네, 군인분들이 타고 계시는 차였는데요.. 그거 타구 나고야까지 왔어요. 에리 언니가 전화하니까, 곧바로.. 헤헤."
차라고? 차를 보낼 정도란 말인가..? 그냥 집인데..... 서우는 잠시 그 집을 올려다 보다가, 무슨 연줄이라도 있거나 가는 김에 그랬으려니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기로 오게 된 거야?"
"네. 계속 여기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렇군.. 서우는 그리 대답하고서는 잠시 츠부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계단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문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서우님......"
왠지 츠부미보다 훨씬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에리였다. 서우는 무심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졸리다.
만우절이네요.
저랑 원빈이랑 닮은 것 같아요. 크큭.......
......눈물이 흐른다. 원빈처럼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