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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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저, 저저..... 방은 둘러 보셨습니까? 마음에 드시나요?"

"예? 아... 네, 감사합니다."

단순히 감사하다는 인사에 후지야마는 스크류바마냥 몸을 베베 꼬았다. 에리가 했다면 귀엽게라도 봐줄 수 있는데 저건 대체..

".........."

.....미친 개 같다고 생각하여 서우는 그냥 후지야마에게서 시선을 떼자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피곤했다는 핑계로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간만에 온수로 샤워를 하니 몸이 완전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해서 옷도 벗은 김에 서우는 제 몸을 내려다 보았는데, 제일 먼저 거울에 비추어 본 것은 푹 가라앉아 있었던 갈비뼈였다.

"흠."

또 아플까봐 조심스레 주먹으로 툭툭 쳐 보았는데도 이제 괜찮다. 그리고 치킨마냥 뜯겨 있었던 다리도 흉터만 남았을 뿐 거의 사라지고 있어, 서우는 문득 제 머리를 반으로 가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플라나리아처럼 되지는 않겠지?"

해놓고도 쓸데없는 생각이다. 서우는 물을 틀어놓고 머리를 감았다. 그 동안 모래 바람을 하도 맞은 탓에 머리에서는 한 움큼 모래가 쏟아져 나왔고, 다듬지 못한 사이에 머리가 꽤나 길어 있었다. 하지만 혼자 자를 정도로 길지는 않아서, 서우는 발에 밟히는 모래들을 치우고 마저 몸을 씻은 다음 밖으로 나왔다. 

2층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냥 바지만 입고 밖으로 나왔더니, 츠부미가 손에 옷을 들고 있었다.

"...꺄으.........."

작게 소리를 내던 츠부미가 눈을 꼭 감고서 서우를 향해 옷을 내밀었다.

"어.. 고마워."

"예, 예...!"

얼떨결에 서우가 옷을 받아들자 츠부미는 전속력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눈으로 쫒던 서우는 무심코 제 상반신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좋은 구경 시켜줬네, 뭐.'

딱히 만드려고 한 것은 아닌데,  완벽하게 제 배에 자리 잡은 복근을 뿌듯하게 두드리던 서우는 머리에서 물기를 마저 툭툭 털고, 츠부미가 준 옷을 입으며  방 안으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의 푹신한 침대...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한들 서우도 피로를 느끼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는 얼마가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해, 꿈을 꾸고 말았는데 그것은 실로 이상한 것이었다. 예전, 유리의 집에서 잠들었을 때 꾸었던 그 꿈과도 몹시나 비슷한 예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때보다 선명했다. 

'리셋. 리셋. 리셋. 리셋.' '진화에 도태되는 것은 죽인다. 그것이 역사였지 않은가. 이제까지 인간은 그렇게 진화에서 도태되는 것을 살육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성공이다.'

'지상 최강의.........될 거야.'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새로운 인류.'

'지배자.'

'완전체.'

그때처럼 서우는 눈앞에서 수십 개의 불빛이 동시에 터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은 그때처럼 똑같이 꿈 한번 지랄 같다고 느끼면 서우는 버릇처럼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다른 손으로 창문을 열고 그리로 담배를 툭툭 털었다.

      

"....벌써 밤인가?"

오후였던 바깥은 이제 밤이 되가고 있는지 붉은 빛이 창문에서 쏟아들어져 오고 있었다. 서우는 기지개를 쭈욱- 핀 다음 머리를 가볍게 정돈했다. 바깥이 꽤나 시끄러운 것을 보니 벌써 저녁시간이라도 된 듯 싶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밖에서 똑똑 두드렸다.

"서우님~ 일어나셨어요?"

에리의 목소리였다. 일어나 있다고 대답하자 문이 살짝 열렸다. 자다 깨서 보아서 그런지 왠지 괜시리 더 예뻐보여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순간, 에리의 머리 위로 머리 하나가 더...

"....."

"이, 일어나셨군요."

'대가리 치워 새끼야..'

"흐히.. 저녁을 차려놨습니다, 와서 드세요."

그냥 끝까지 에리 목소리로 들으면 안 되는 건가.

말을 더듬으며 히죽거리는 후지야마를 보니 서우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나름 얹혀사는 것이니 그냥저냥 밑으로 내려갔다.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츠부미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내려오는 셋을 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는데, 서우도 일단 적당히 자리에 앉으려다가.. 옆에 있던 에리의 상태가 이상해 보임을 느꼈다.

방금 전에는 불도 안 키고 어두워서 몰랐는데, 밝은 곳에서 보니 왠지 아까보다도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이고, 얼굴에 핏기도 없는 것이, 정말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앗..!"

아니나 다를까, 비틀거린다 싶던 에리가 갑자기 앞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고 서우는 바로 에리를 잡아 안아 일으켰다. 그 덕에 에리는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정신이 없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손을 떼기는 했지만 그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에리 씨, 괜찮아요? 힘이 없어 보이는데.."

"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삼촌. 발을 헛디뎌서...."

발을 헛디뎠다기에는 에리는 뭔가 조금 이상했다. 헛디딘 게 아니라 힘이 없어서 그대로 무너진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서우는 잠시 에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식사를 했다. 

에리는 몸이 안 좋은지 계속 불편한 표정, 후지야마는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고 츠부미는 그냥 마냥 행복한 듯 싶었다. 그 사이에서 후지야마는 서우에게 계속해서 뭐라도 말을 걸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서우는 쿨하게 그것을 씹어 버리고는 식사를 계속하다가, 설거지를 한다는 에리의 옆에 남았다.

"에리 씨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그냥, 좀....."

"혹시 못 마셔서 그래요?"

"네?!"

"피요, 피."

깜짝 놀란 에리의 손에서 그릇을 뺏어 슬슬 닦으며 서우는 그리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보게된 에리의 팔이 눈에 거슬렸는데... 설거지를 하는데도, 여전히 옷을 별로 걷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서우는 그게 무척이나 거슬림을 느꼈다. 가는 팔목을 가리고 있는 스웨터.. 서우는 잠시 손을 보다다 에리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도와줘요?... 뭐, 방어벽만 금방 넘으면 되니 커다란 가방 하나 빌려주면 한 마리 정도는 금방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일단 제가 신세지고 있으니까."

그 말은 거의 얼떨결에 나온 것이었다. 신세를 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신경써 줄 필요는 없는데... 그동안 아키오가 있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에리에게 잘 대해줬다는 사실과 에리가 거의 굴러서 눈앞에 딱, 하고 몇 번이나 오기까지 했는데 차마 제 앞에 두고 아무런 짓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느낌이었군, 지금도 그렇고.'

서우는 가만히 에리를 내려다 보았다. 에리는 조금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제 예상이 맞은 듯 싶었다. 좀비의 피... 그건 분명히 에리에게 필요한 것 같았다. 물론 이쪽도 이유를 모르는 것 같으니 말해주진 못할 것 같지만.

"사.. 삼촌이 과학자세요."

"과학자?"

미친 과학자 같이 생겼다 싶었더니 진짜 과학자였나! 서우는 내심 당황하며 에리의 말을 들었다.

"좀비 연구를 하시는 분인데..... 삼촌이 많이 도와주시구, 제가 이러는 것도 도와주시거든요. 그래서 사실.. 피, 피는 마시지 않아도 되는 것 같은데... 그냥 좀 몸이 안 좋아서요."

"도와주신다고요? 그걸 어떻게.....?"

"그냥 뭐.."

에리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서우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무심코 에리의 손을 잡아 끌었다.

"앗, 자.. 잠깐만요!"

에리가 깜짝 놀라며 바로 팔을 빼긴 했지만, 순간 스웨터를 걷어서 본 에리의 오른팔은 온통 주사자국 투성이였다. 정말인지 무슨 스펀지처럼 팔을 뚫어놓아서 서우는 기가 막힐 정도였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람? 왠지 왼팔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사라도 맞는 겁니까?... 근데 에리 씨 몸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그래도 피는 안 마셔도 되니까...."

"...이 정도라면 그냥 먹는 편이 낫겠군요."

이상하게도 에리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가 못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왠지 그때보다 살도 더 빠진 것 같고, 눈 밑에 다크서클도 길게 늘어진 데다가 볼살도 훅 파인 것 같고 그 때문인지 손등의 뼈도 괜히 도드라져 보인다. 아니, 그냥 그런 걸 다 두고서라도 아파 보인다. 무지 아파 보인다.

거참, 서우는 뒷 머리를 벅벅 긁다가 에리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혼자 빠르게 설거지를 끝냈다. 그리고는 에리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무시한 채, 츠부미에게 적당한 가방을 하나 받아 철조망을 넘고 방화벽을 넘어서 좀비 하나를 토막내 담아왔다.

제가 하고도 왜? 라고 생각될 정도로 의아한 일이었지만, 서우의 말대로 제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리가 그것을 허겁지겁 입에 담는 것을 보니.... 괜시리 기쁜 마음까지 들었다. 거기에 그로테스크하게 잘린 손발을 물고 있는 여자가 괜히 예뻐 보이기까지 하니, 이 무슨.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서우님..."

"뭘. 그보다 서우님, 님, 이러지 않아도 돼요. 츠부미도 그렇고. 서우 씨 정도로 괜찮고 츠부미는....."

츠부미는 오니쨩, 정도가 어떨까! 로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니쨩 소리는 듣고 싶은 서우였다. 그리 생각하던 서우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좀비의 손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 에리를 보며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 작품 후기 ============================

4월 2일 현재 8천원이 들어왔군요.

이야아아아

근데 3개월 뒤에 받는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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