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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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어.. 저보다 어리네요. 그럼 그냥 에리 씨도 편하게 말 놔요."

"예?! 어.. 어떻게 말을 놓아요, 제가..."

"...?"

"모, 못해요.."

          

에리의 반응은 상당히 격했다. 마치 '어떻게 감히 제가' 이런 느낌이어서 서우는 멋쩍게 머리를 긁다가 오빠라고 그냥 편하게 불러도 좋다고 다시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일본은 친형제가 아니면 오빠, 누나, 뭐 이렇게 부르지 않고 - 쨩, 이라거나 이름만 부른다거나... 애칭이라거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상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우쨩은 싫다. 아무리 에리가 그런다고 해도 손발이 남아나질 않을 거야..'

      

"어... 그게, 한국에선 친한 사람을 그냥 오빠라고 부르거든요."

"....그.. 그래요? 그렇지만..."

      

에리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서우의 눈치를 보는 듯 싶었다. 그러다가 서우가 한번 부드럽게 재촉하자 그제야 살짝 미소지으며, 묘하게 복숭아 빛이 도는 것 같은 입술을 휘며 머뭇머뭇,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으응, 알겠어. 오빠."

      

맙소사, 겨우 그것만으로 서우는 가볍게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주 좋다. 그레이트, 훌륭하다.'

       

이래서 막 군대 제대하고 다시 복학한 녀석들이 신입생에 환장하는 건가, 오빠- 오빠- 소리가 듣기가 참 좋았다. 군대 다녀와서 풋풋한 신입생 보는 것이 좋으니 여자는 군대를 보내면 안 된다며 열창하던 녀석의 마음도 순식간에 이해가 되는 느낌이랄까!

            

크으, 작게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 소리를 반추하던 서우는 에리가 당황하는 것 같아 일단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있으니 다시 뭔가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린다. 에리가 좀비의 피를 마시고 있는 듯 싶었다. 

        

"......"

          

당연히 영 고상한 소리는 아니었으나, 왜였을까. 서우는 그냥 뭔가.. 참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빵셔틀... 아니, 좀비 셔틀이 되도 좋을 것 같은.. 서우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머쓱하게 핸드폰을 두드렸다. 그런 서우 답지 않은 묘하고 뭔가 편안한 시간... 

그것을 화면으로 훔쳐보고 있던 후지야마는 큭큭거리면서 몸을 떨고 있었다.

서우는 당연히 방 안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후지야마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뭔가 저를 광적으로 따르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군에 신고하지 않기만 한다면 일단 괜찮기는 한데...

"후히히, 서우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잠 자리는 좀 편하셨나요."

"아.. 예, 뭐."

"흐흐. 히.. 다행입니다 ,다행...헤헤. 불편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쇼."

"....예."

"그럼 저는, 히헤...헤헤. 지하실로...... 지하실.. 지하실....."

녀석의 말은 늘 첫 마디가 이것으로 시작되었다. 잠들었던 첫날 편안했다고 말해도 말해도 녀석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니 그것밖에 말을 걸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

서우는 불쾌한 기분으로 후지야마에게서 멀어지며 두 자매에게로 향했다. 에리와 나란히 쇼파에 앉아 있던 츠부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우 오빠!"

원래 츠부미는 서우를 잘 따랐던 만큼 두 자매와의 관계는 더욱 더 좋아지고 있었는데, 셋 다 모두 딱히할 것이 없어 늘 집에서 같이 시간을 지내다 보니.. 참 묘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있죠, 있죠. 어제 해주던 이야기 마저 해주세요, 네?"

"그럴까?"

특히 두 자매는 서우가 해주는 한국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들었는데, 츠부미는 아무래도 학교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탓에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강아지 같은 눈매를 반짝이고는 했다.

"한국 학교는 말이야....음, 아침 7시 20분에 학교를 가."

"그렇게 일찍요?!"

"정말이요..?... 그래서 일찍 돌아가나요?"

"음, 10시에 돌아가지."

"빨리 돌아가네요? 다행이다. 되게 일찍 돌아가네요."

"그러게, 다행이다."

외국인에게 말하면 정말 이런 반응이구나,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10시는 10시인데 22시인 10시야."

"사람이 살 수 있어요?!"

눈이 동그래진 두 자매의 시선이 서우를 향했다. 서우는 제 어깨를 그냥 들썩였다.

"... 어떻게 살긴 하더라고요. 그냥 엉덩이로 버티는 거야."

왠지 야자시간을 생각하니 아련하다.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야자하지 않겠나? 그리 묻는다면 서우는 절대로 사양이었다. 야자라니, 이 나이에 야자라니. 아침 해 뜨기도 전에 학교에 가서 마찬가지로 해가 사라진 저녁에 돌아오라니.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다녀오라니. 그는 마음속으로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하실로 내려갔던 후지야마가 슬렁슬렁 올라와 거실 쇼파에 앉았다.

"후히히, 재밌는 이야기 하시나 봅니다. 후히히히히."

"아, 삼촌- 지금 서우 오빠가 한국 이야기 해주고 계셨어요.. 한국은 뭐랄까, 참 신기하네요."

"신기해요."

두 자매는 괜찮은 걸까, 서우는 저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 죽을 지경이었다. 뭔가 쇳소리가 섞였는데 헤비 스모커인지 가래 끓는 느낌도 나는데다 몸을 움츠리고서 웃는 꼴이라니, 서우는 결국 참다참다 못해 두 자매가 없을 때 후지야마에게 그 웃음소리 좀 고치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 웃음 소리요?"

"예, 웃음 소리.. 좀 바꿔보시는 게........"

"알겠습니다, 그러고 말고요! 그것 말고 또 없습니까?!"

"예... 어, 뭐."

            

후지야마는 웃음소리 좀 고치라는 말을 서우가 제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히죽거리며 몸을 떠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어쨌든 후지야마는 그날로 웃음소리를 고쳤다. 전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했........지...

               

"촤하~ 안녕? 에리, 츠부미."

"!"

서우는 무심코 꽉 깨문 이 사이로 신음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삼촌!"

"좋은 아침이에요. 와서 식사하세요."

"그래, 그래. 촤하하하하."

"..그... 그만....."

"촤하하하, 서우님도 안녕하십니까. 촤하~ 촤하하하하."

                        

위험하다.

            

"그러고 보니 서우님, 저는 어린 체조선수를 참 좋아하는데요."

"체조선수요.."

"예이, 한국 체조선수를 참 좋아합니다. 촤하~"

"........"

                  

이건 뭔가 아니다.

...그리고 츠부미가 위험하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서우는 그냥 평소대로 웃으라고 후지야마에게 거듭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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