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7 / 0198 ----------------------------------------------
나고야
서우는 무심코 후지야마의 목소리에 차가운 벽의 구석에 붙고 말았다. 바닥에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좀비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서우의 기척을 죽였고 방 안이 온통 어두워서 일단은 들킬 염려가 없었지만... 만약 여기에서 불이라도 킨다면 금방 걸릴 것 같은 위치였다.
"가만, 가만. 스위치가..."
설상가상으로 후지야마는 괴상하게 몸을 꺾으며 스위치를 찾는 듯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틈이 생기자 서우는 곧바로 기둥 뒤에 숨었다. 그냥 밖으로 무작정 나갈 수도 있었고, 여차하면 녀석의 뒤를 노려서[!] 기절을 시킨 다음 밖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지만..
'...아.....이 바지 마음에 들었던 건데......'
이왕 이렇게 되고, 피까지 잔뜩 묻은 거..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알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알아내봤자 별 건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후지야마는 심상치가 않은 느낌이었다. 저를 처음 보았을 때 몸을 덜덜 떨며 웃었던 그것이라거나... 거의 본능이 녀석에게는 뭔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항, 여기에 있구나. 계속 잊어 버리네."
얼마가지 않아 후지야마가 스위치를 켰다. 그제야 서우의 눈에도 여자 아이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는데, 여자 아이는 높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물러날 곳도 없는 구석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서우의 눈에도 보인 여자 아이는 아주 작은데다 무척이나 말라서 기껏해야 츠부미 보다 2~3살 즈음 많아 보였다.
"시, 싫어요..! 안 먹을 거야, 안 먹을 거라구요! 싫어어어어엇!"
"그러지 말구 좀 먹어야지, 으응? 약 가지고는 못 버텨요. 에리 언니도 결국 다시 먹고 있다구...? 약만 먹어서는 저어어얼대 못 버텨."
"하, 하지 마요..!"
"....오, 이런. 이게 뭐지? 이상한 게 떴네?"
'에리도 다시 먹는다는 말'에 서우는 순간 흠칫했다. 설마 저 녀석 알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아무리 서우가 생각해도 들킬만한 부분은 없었다.
에리는 기껏해야 며칠에 한 번 먹으면 족하다고 했고, 서우도 그렇게 움직이며 에리가 어느 정도를 먹으면 다음에 갈 때 버리는 식으로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양도 많지가 않아서 가방에 밀봉만 확실히 해두면 냄새도 나지 않았고..
정말 방에 CCTV라도 설치하지 않는 한..... 설마, 집안에 CCTV라도? 만약 지켜보고 있었다면 서우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 들어왔을 때도 지나치게 예민해진 감각덕에 피해를 본 서우가 후지야마의 걸음소리와 냄새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
서우는 잠시 숨을 죽이고 후지야마와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는 마른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엉엉 울고 있었고, 그 앞에서 후지야마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러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후후후..히히히히히.....힛...!"
그 웃음에 울고 있던 여자아이도 고개를 들어 후지야마를 올려다 보았다.
...서우는 그게 무슨 일인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서우...서우님, 거기 계시는 거 다 찍혔답니다. 나오셔도 좋아요. 흐히히....히히히히.... 여기에 와주실 줄이야.."
..이곳에도 CCTV가..... 서우는 기가 막혀서 픽 웃음을 터뜨리다가 후에 짜증섞인 한숨을 터뜨렸다. 어쨌든 기둥뒤에서 서우가 슬슬 나오자 후지야마가 뭐가 그리 또 좋은지 몸을 부르르르, 떨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후후, 걱정 마세요. 제 딸입니다."
"...딸?"
"예에, 전처가 두고간 제 하나 뿐인 딸이죠. 애지중지 길렀습... 아니, 기르고 있지요."
왠지 과거형으로 말하려던 것 같다... 여자아이는 그때까지도 불안하게 후지야마를 올려다 보다가 서우를 바라보았다. 서우와 여자아이의 눈이 마주쳤지만, 서우는 딱히 아이에게 별 감정이 들지 않아 후지야마와 시선을 마주했다.
"후후, 잠시만요. 애가 밥을 먹질 않아서.. 오오, 사쿠라. 하나도 안 먹으면 어떡하니? 너 먹지 좋으라구 이렇게 죽죽 찢어놨는데."
"꺄아아악!"
"아빠의 사랑이 가득 담긴 거야. 으응? 사쿠라."
아까는 노리코라고 하지 않았나? 딸이라면서 대체 뭐지? 서우는 둘을 번갈아 보았다. 노리코인지 사쿠라인지.. 그 여자애는 고개를 마구마구 저으며 싫다고 거부하고 있었고, 후지야마는 끌끌 혀를 차며.. 바닥에 낙지처럼 엮여있는 좀비의 살을 칼로 거침없이 잘랐다.
"잠시만요, 아이의 밥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애가 이렇게 먹지 않으면 곤란한데 말이지..."
그러더니 그것을.. 테이블 위에 있는 믹서기에 넣고, 그대로 갈아버렸다..... 소녀는 비명을 질렀고, 얼마 뒤에 후지야마는 그것을 가지고 와서 아이의 앞에 내밀었다.
"자아, 너 먹기 좋게 잘 갈아왔잖니. 너 이거 안 먹으면 아프잖아? 으응?... 쯧, 배고플 테니 알아서 먹게 해서, 네 버릇 좀 고쳐 놓으려고 했더니.......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안 먹을줄은 몰랐다. 자아, 그러지 말구 먹어라. 응?"
"...싫어요..... 시, 싫어............"
"..어쩔 수 없군."
후지야마가 아이의 팔을 잡았다. 그 모습에 서우가 의아해하는 찰나, 후지야마는 제가 잡은 아이의 팔찌를 꾸욱 눌렀다. 그 팔찌에는 무슨 장치라도 되어 있었는지, 아이는 곧바로 기절해 버렸고.. 후지야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구석에서 정체불명의 장치를 가지고 왔다.
"이렇게 밥 투정이 심해서야, 끌끌..... 에리가 참 가냘프게 생겨도 은근히 강하지 않습니까?"
"....."
"외유내강형이라고 할까요, 에리는... 약해 보이지만 참 강한 애예요... 그래서 편하지요."
서우는 잠시 그 말을 들으며 예전, 츠부미가 강간을 당할 뻔했을 때 저를 말리던 츠부미를 단호하게 막아섰던 것을 떠올렸다. 거기에 거부감 없이 좀비를 먹는 모습... 보통 사람의 멘탈로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뭔가 약하지만 단호한 구석이 있고 똑부러진다고 할까.
소라처럼 서우랑 갈 때까지 갔거나, 유리처럼 밝혀서 서우의 몸을 노리거나[!] 하는 경우가 아닌데도 괴물과 같은 능력자를 상당히 편하게 대했기도 했고.... 확실히 그렇긴 하지, 잠시 그의 말을 반추하는 동안 후지야마는 구석에서 가져온 기계로 산낙지마냥 꿈틀거리는 좀비를 저만치, 벽으로 밀어버렸다. 그제야 서우는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후지야마가 기절한 여자아이의 목에 연결된 호스에 믹서기로 갈은 그것을 조금씩 흘려 보내주는... 실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어, 썩 기분은 좋지 않았다. 최근 꽤나 인간적이 된 탓인지 아무리 남남이라 해도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흠- 흠."
그런데도 후지야마는 흥얼거리며 끝내 그걸 아이의 몸에 밀어 넣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척 보기에도 입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제...제 딸도 에리랑 같지요."
"같다고요?"
지하는 불이 켜져 밝은데도 왠지 모르게 어둡고, 그 사이에서 후지야마의 눈만 번뜩이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로 그의 눈은 번쩍이고 있었다. 서우는 딱히 불쾌한 기분을 숨기려하지 않으며 그를 내려다 보았다.
"어떤 점이..? 좀비를 먹는 거?"
".....무시히메라고 합니다."
"무시히메?"
"정부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부르지요. 좀비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그 몸을 유지할 수 없는 여자 아이들을 뜻합니다."
...벌레 공주. 뜻은 그러했다. 서우는 불쾌한 기분으로 후지야마의 말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여자들만..?"
"예에, 뭐..... 그리고 그런 무시 히메들은 주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 수 있고, 좀비를 끌어 들인답니다."
좀비를 끌어 들인다고? 그렇게 말을 들으니 서우도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대피소에 있었을 때 갑자기 좀비가 된 사람, 당황하던 에리... 도쿄로 가는 길에 유독 많이 몰려들던 좀비... 그리 생각하니 상당히 많은 것이 맞아 들어갔다.
거기에 조용히 지내는데도 대피소를 습격하던 돌연변이까지... 서우가 기억을 짜맞춰가는 것을 눈치챘는지 후지야마는 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도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흐헤헤. 이런 거 원래 말씀드리면 안 되는 건데..."
"....."
"근데 여기까지 오셨으니, 비밀 좀 지켜주십사 해서 말씀 드리지요. 무시히메는 온갖 좀비를 불러 들이지만 결국 그 본인은 좀비에게서 공격 당하지 않는답니다. 에리도 그렇구요... 제, 제 딸은 양산형... 아니, 제 딸은 아직 미숙해서 가아끔 공격 당하지요. 하지만 물리진 않는답니다."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와 말한 것 같은 양산형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건 좀 놀라운 사실이었다. 서우가 놀라서 되묻자 후지야마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아니, 서우의 기분 탓이 아니라면 후지야마는 왠지 이 상황을 기다렸던 것만 같았다.
자신이 이 사실을 모두 서우에게 이야기 해주기를.... 왠지 불쾌한 기분이 앞섰지만, 상당히 놀라운 사실이어서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무시히메가 된 여자들은 에리까지해서 열 명.. 8명은 모두 도쿄에 있는 실험실에 있고 제 딸만 제가 조사하겠다는 명목 아래 여기 나고야, 제 저택에 두고 있지요. 에리는 정부가 지금 혈안이 되어 찾고 있었는데... 제가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똑같이 제 집에 두고 있지요. 히히.."
"정부가 에리를 쫒고 있었다고요?"
"실험할 가치가 있으니까요. 좀비에게 공격 당하지 않는다니, 백신과 마찬가지인 것 아닙니까. 흐히, 흐히히히히..."
"에리는 그걸..."
"물론 알고 있습죠, 알고 있어서 도망치다가 제 도움으로 집에 머물게 된 거죠."
후지야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웃고, 웃고.. 웃는다. 서우는 이제 그에게서 딱히 들을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저렇게 미친 것처럼 웃고 있는 놈을 더는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 문으로 향하는 찰나, 뒤에서 여전히 낄낄거리고 있던 후지야마가 입을 열었다.
"제가 얼마나....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실 겁니다. 크흐..흐... 오, 세상에..... 하필이면 에리가 만난 그 능력자가 서우님이었다니. 다른 그 하찮은 능력자도 아니고 서우라니. 그 서우였다니."
서우는 무심코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보았다. 그 정확한 발음, 후지야마는 처음부터 서우를 소우라고 부르지도 않고, 제대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하찮은 능력자라니? 이제까지 제가 그저 능력자라서 저러는 것이라 생각했더니..... 후지야마의 말은 마치 '서우 외에 다른 능력자는 가치가 없다' 는 것과도 같았다.
"..날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서우는 순간이지만 혹시, 예의 '사이비 종교'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 이름을 말해 보았지만 후지야마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에리와 츠부미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흐으, 히..."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 되세요.
:-) 잠 자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저는.............다시 침대로..
선작, 추천, 꾸준한 코멘트, 쿠폰 주시는 분들 늘 감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