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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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마음을 굉장히 찝찝하게 만든 그날 저녁 이후..... 후지야마는 괜시리 서우에게 더 접근한다거나, 이상한 말을 늘어놓거나 에리에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예전보다 더 음침해 보였다. 괜히 혼잣말을 하는 것이 늘은 게 그 시작이었다.

"우후후, 오늘이 배급날인가 내일이 배급날인가, 끌글... 배급날, 배급날, 즐거운 배급날."

"좀비, 좀비. 좀좀비."

창가에 기대어 의미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다 왠지 모를 병신력까지 버무려진 후지야마... 서우는 더더욱 후지야마가 싫어졌다.  

"흐흐, 후... 안녕 에리, 츠부미. 좋은 아침이구나....헤헤."

"아.....삼촌, 안녕히 주무셨어요?"

"으응, 잘 잤고 말고. 오호호, 서우님도 계셨군요? 잘 주무셨습니까? 흐헤헤. 잠 자리는 편하셨는지요."

"아....뭐."

"다행이군요, 다행. 에리, 약은 먹었니?"

"네.."

"다행이네, 다행."

'...드디어 약을 빨았나.....?'

예전이 자판기 커피였다면 지금은 콜롬비아에서 가져온 최고급 커피콩으로 만들어 갓 로스팅한 시중 6000원짜리 프렌차이즈 커피 같다고 할까, 그 음침함에 에리와 츠부미도 이제까지는 별로 신경쓰지 못하다가 적잖히 당황하는 듯 보였다.

"...삼촌이 요즘 들어 조금.... 이상하신 것 같아요, 왠지 달라....."

처음에도 이상햇어,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참으며 서우는 슬쩍 뒤로 몸을 물렸다.

"어.. 그래, 그러네."

"....오빠?"

"잠깐 츠부미랑 산책 좀 나갔다 올게..... 츠부미, 츠부미..... 산책 가자, 산책."

"예? 예 오빠-"

".........."

서우는 은근슬쩍 에리를 피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에리만 보면 서우는 자기가 자기가 아닌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피소에서 있을 때부터 그러했지만, 그게 하루가 지날수록 더 진화하는 것만 같았다. 

서우는 기본적으로 무감정했고, 자기가 늘 하고 싶은대로 본능에 충실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다면 그 누구든지 제 멋대로 대했다. 그런데..

'왜? 왜 에리한테?.... 좀비를 먹는 여자여서?... 그럴 리가 없잖아, 뜬금없이!'

"..저 서우 오빠?"

"어?"

"오빠 많이 피곤해 보여요, 좀... 복잡해 보이시는 것도 같고."

".....하하."

"그래두 전 오빠가 좋아요, 어... 그러니까 요즘 서우 오빠가?"

이건 무슨 소리지? 서우가 의아하게 츠부미를 내려다 보자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냥, 처음 서우 오빠는 좀 무서웠거든요.... 정말 많이 무서워 보였어요."

"그래?"

"소라 언니를 업고 오셨었잖아요, 그리고는 여기저기 대피소 안을 둘러 보는데... 진짜 무서워 보였어요."

"......"

츠부미에게 잡힌 손 대신 서우는 다른 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츠부미와 함께 A구역을 돌아다녔다. 하긴, 제가 생각해도 좀 변한 것 같기는 했다. 그러고 보면 그건 소라 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키오와 있을 때 눈치를 채고.... 에리와 있을 때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은 점점 더 심해지고, 또 심해져서....

"아, 가져다 주셔서 감사해요."

"어, 응.."

"저 그런데 오빠......"

"자, 잠깐만."

"......."

 서우는 이제 대놓고 에리를 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설상가상으로 서우는 간밤 매우 흉악한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서우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변이 굉장히 하얬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차례대로 제 앞에 왔다가는 것을 느꼈다.

<....?>

유리와 모모, 그리고 나나였다.

<넌 정말 최고였어.>

<그때 참 즐거웠어요, 서우 씨....>

<가엾은 녀석.. 그래도 젊은데........>

<서우님, 흐흑......>

뭐지? 하지만 그 다음에 온 것은 아키오였다. 아키오는 펑펑 울고 있었다?!

<바보..! 1년 뒤에 오겠다고 약속했으면서.....! 그렇고 그렇고 그런 짓까지 전부 했으면서...!>

<아키오 씨...?>

서우는 그제야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 이 광경은!

<여... 여긴? 침대?... 뭐지?>

<아, 안심하세요. 병원입니다.>

<소라..?>

심히 간만에 보는 소라가 의사 가운을 입고서 뭔가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 했더니, 서우의 다리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서우가 다시 자리에 눕자...

<흐흑.....오빠...! 서우 오빠아...>

 그 옆에는 간호사 옷을 입은 에리가 울먹이다가 서우에게 다가와 서우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나이스, 보통 여자가 입어도 +13강이 되는 간호사복을 에리가 입다니! 존나 좋군?

<거두절미하고 서우 씨는 영 좋지 못한 곳을 서우 씨의 와이어로 잘렸습니다. 아주 깔끔하게 잘렸지요.>

<.....?!>

눈물을 글썽거리던 에리가 갑자기 서우를 와락 끌어 안았다. 꿈이긴 하지만 이거 상당히 리얼한데? 그렇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였다. 고자?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서우 오빠, 오빠가 고자가 되었다고 해도 전 괜찮아요..!>

<아, 그래 고맙.......뭐, 뭐...? 아, 잠깐..이게. 이게 무슨 소리야! 잘리다니! 난 자른 적이 없다고! 잘리다니!!!! 아 이런 미친...!>

<아니요, 서우 씨가 잠결에 손으로 그곳을 만지다가 하필 그때 와이어가 뿜어져 나와서..... 예. 뭐 그런 거죠.>

<그래서 내 아들은...... 아들은!>

<여기..>

<으아아아아아...!>

<...이왕 잘린 거 분식집으로 보내서 어묵이나 되게 합시다. 이미 잘린 거, 후회해도 늦어요.>

"...헉!"

서우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마음이 뒤숭숭하다 싶더니 별 흉흉한 꿈을 다 꾸게 된다고 생각하며 서우는 숨을 헐떡이다가 땀을 닦았다. 베개와 시트가 전부 서우의 땀으로 축축했다. 잠시 몸을 일으킨 채 헉헉 거리던 서우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천천히 거칠었던 숨이 가라앉았다.

"..그러고 보니 소라는 잘 지내려나........"

소라, 스타킹을 장착한 너의 다리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서우는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이다가  손등에 축축하게 묻어나오는 땀을 보며 서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후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뒤척 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소라가 떠올랐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만났던.. 이라고 쓰고 했던 여자에 성격도 시원시원했고 참 좋은 여자였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떨어지기는 했지만..

"....뭐, 나중에 다시 만날지도."

아니면 서우랑 있었던 일은 완전히 잊을 수도 있겠지, 후자가 된다면 나름대로 씁쓸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서우는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잠이 들었다. 꿈을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괜히 마음에 걸려, 머리가 잘릴 지언정 아래는 잘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다시 잠든 서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에리를 주방에서 만났는데, 마악 약을 먹으려고 하고 있어서 서우는 이제까지 에리를 피하고 있던 것도 잊고 에리에게 다가갔다.

"아, 오빠.."

"에리, 그.... 삼촌이 준다는 약 말이야. 계속 먹고 있던 거야?"

"예? 아니요. 근데 삼촌이 계속 주시니까... 모아두고는 있어요."

"뭐? 그럼 지금 먹는 건?"

"이건 다른 약이에요. 알러지가 조금 있어서.."

"아아..... 그럼, 그 모아두고 있는 약 조금 줘볼래?"

"네?"

"무슨 약인지 궁금해서."

"제 방에 있어요..."

에리가 먼저 앞장 서서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서랍에서 약 한 봉지를 꺼내서 서우에게 내밀었다. 서우가 이 성분을 알아내거나 할 수는 없지만, 한 번 실험 정도는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우는 의미없이 약을 이리저리 햇빛에 비춰보다가, 에리와 부쩍 너무 붙었다는 것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떨어졌다.

"......서우 오빠."

하지만 그때, 바로 에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늘 상냥하거나 엷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던 에리가 그렇게 서운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아, 서우는 집채만한 돌연변이가 타난 것처럼 놀랐다.

"왜, 왜 그러니?"

서우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는 데다가 굉장히 상냥하게 말했다는 것은 말하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저어, 오빠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뭐?"

"아뇨,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에리가 뭔가 말하려는 듯 꿈질꿈질 거리더니 눈만 슬쩍 올려 서우를 쳐다 보았다. 왠지 그 눈에 서우는 턱- 숨이 막혔다. 입술 끝을 꾹꾹 깨물던 에리는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대답했다.

"서우 오빠가 절 피하시는 것 같아서......."

"아니, 피하는 게 아니라.."

"혹시 제가 뭐라도 잘못해서 화나셨나 하구.."

"화나긴 무슨... 너한테 화날 일이 뭐가 있다고."

"정말요?"

"어...."

긴장한 것처럼 몸을 꾸물꾸물 거리는 에리의 모습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귀여웠다. 남자는 여자를 위에서 올려다 보는 얼굴, 즉 하이앵글에 약하다고 하던가. 그 상태에서 눈만 올리고 저를 보고 있으니... 서우는........... 그런데도 무서운 것은, 성욕이 하나도 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기까지 하니 말 다한 것이다. 서우는 스스로도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지만 시무룩한 표정으로 울 것 같은 에리가 있으니 일단 달래주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달래야 할지를 몰라서, 일단 손을 뻗었더니..... 에리가 품에 쏙 안겼다.

"...?!"

이건 너무 의외의 이벤트잖아? 당황한 서우는 머리가 멍해짐을 느끼면서도 일단 안에 들어온 거, 에리를 안아서 토닥이기는 했다. 그렇게 에리의 등에 손을 얹자, 보드라운 스웨터에 덮여 따뜻하고 보드라운 에리의 등이 손에 닿았다. 

거기에 얼핏 풍겨오는, 샴푸 내지는 바디워시의 달달한 냄새까지...

"......"

서우는 기분이 상당히 묘해졌다. 이게 무슨 기분이라고 딱히 설명할 수도 없었고, 굉장히 묘한 그런 기분일 뿐이었다.

그렇게 서우가 생각하는 순간 에리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에리의 얼굴은 왜인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그게 입고 있는 분홍빛 스웨터와 묘하게 섞여 에리가 괜히 더 얼굴을 붉히는 것만 같았다.

"저기, 저어.. 저는 오빠랑.... 어, 그냥... 친해지고 싶어요."

"어어... 응, 나도 그래. 나도 너랑 친해지고 싶어."

친해진다는 게 그 친해진다가 아니긴 하지만 서우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어색하게 둘은 서로를 안고 있다가 멍한 정신으로 서우는 생각했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이... 이대로 머리가 이상하게 되어 버려어어엇! 진짜 되어 버린다고!'

서우가 일단 어색하게 안고 있던 손을 푼 순간이었다. 에리를 조금 밀어내려고 했는데...... 묘하게 울먹이는 듯하던 에리가 다시 와락, 서우를 끌어 안았다.

"어..."

당황한 서우가 먼저 보았던 것은 제 얼굴앞에 다가오는 에리가 아니라 계단에서 마악 내려오고 있던 츠부미였다.

============================ 작품 후기 ============================

제가 야설을 쓴다고 변태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정말로. 

얼마나 페미니스트냐면, 고등학교 떄 학교 왕따인 여자애가 화장실에서 마악 나오면서 치마 뒷 부분을 속옷에 넣고 나오고 있고 애들이 모두 그걸 보면서 낄낄거리는 장면을 목격하자마자 2층 계단에서 거의 뛰어내리다 시피해서 치마만 잡아 당겨서 옷을 바로 잡아 주었단 말입니다.

☞☜ :) ;;;

+)뜬금없지만 오늘 일본의 강간률이 실제로 낮은 이유라는 동영상을 보고 기겁했습니다... 일본이 성이 자유로워서 성범죄율이 낮다는 개드립, 더 이상은 NAVER..... 경찰이 2차 강간....흐허....허.... 역시 성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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