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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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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는 이후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찬물을 틀어놓고 분노의 세수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푸어푸어푸 푸확확확, 등산 다녀온 아버지 같은 소리를 내며 전력으로 세수를 하는 서우의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리다 못해 타오르고 있었다.
"..헉.....헉헉."
거친 숨을 내쉬면서 서우는 고개를 마구 흔들다가, 다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20분 전, 하필 츠부미와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 에리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았다. 혀를 쓴다거나, 입술을 움직인다거나 하는 건 아무것도 없이 그저 닿기만 했다. 에리는 발을 들고 있었는데도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서우의 어깨도 잡지 못했고, 그 덕에 에리의 입술은 달달 떨리고 있었는데.. 그게 참.
입술이 떨어졌을 때 서우는 무심코 '한번 더 해도 돼?' 라고 말할 뻔하다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망가는 에리를 잡지도 못하고 저도 모르게 욕실로 뛰쳐 들어왔다. 얼굴이 후끈후끈 거려서 가라앉힐 생각이었던 것이다.
"얼굴이 왜 이래....?!"
하지만 아무리 세수를 하고 하고 또 해도 얼굴이 여전히 시뻘겋게 변해 있으니 서우로서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짓 저런 짓 다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입술만 맞닿았을 뿐이다, 게다가 그후에 에리는..
'으하.. 오빠..... 죄, 죄송해요!'
'자.. 잠깐만 에리! 잠깐만!'
'죄송해요!'
이렇게 도망갔는데, 그래서 아무것도 없었는데... 25년 알차고 보람차게 동정으로 산 녀석도 아니고 이게 무슨? 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갔다. 세수를 얼마나 했던 것인지 괜히 얼굴도 조금 당기는 기분이 들어 서우는 툭툭 뺨을 손등으로 두드리다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서 있던 츠부미와 딱 마주쳐 버렸다.
"츠부미?"
"..아...."
"어.. 욕실 쓰려고?"
츠부미를 보자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들어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는데, 츠부미는 썩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입술을 삐죽이는 것 같기도 하고..? 츠부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또 처음 보아, 오늘은 자매가 함께 표정으로 저를 저격하는 날인가. 서우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츠부미는 제 옆을 슥, 지나 자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순간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확실히 느껴질 만큼 뭔가 쌀쌀 맞아서 서우는 멍하니 눈을 꿈뻑였다.
"....그날인가?........ 하긴, 요즘 애들은 발육이 빠르다니까."
별 대수롭지 않게 서우는 생각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서우에게 있어서 츠부미는 그저 '어리고 어린 여자애' 로린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뭔가 묘한 긴장감을 가지고, 집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괜히 식사를 할 때에도 다 같이 있을 때, 에리는 주춤거리며 서우를 피하다가도 서우가 좋아하는 음식을 앞으로 밀어주었고, 그러면 서우는 대체 어떻게 에리를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에리."
"네? 네!"
"아니, 그다지 내 앞으로 이렇게 밀어주지 않아도 돼."
"어....."
아침부터 후지야마는 바쁘다면서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세 명이 되어 버린 집안에서 에리는 눈에 띄게 서우를 볼 때마다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서우도 당황스러웠다. 이제까지 이런 감정은 느껴본 적도 없었기 떄문이었다.
그러던 찰나, 서우는 날이 되어 에리를 위해 또 다시 좀비 셔틀이 되어 철조망을 넣고, 담을 넘어 좀비를 잘라왔다. 저번에 보니 에리가 처음보다 확실히 먹는 양이 줄어, 그다지 많은 양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서우는 적당히 좀비를 잘라서 가지고 왔다.
....거기까지는 딱 좋았다. 하지만 막상 밤에,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간 방인데도 갑자기 가방을 들고 에리의 방 안으로 들어가려니 차마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에리의 방을 열 발자국 정도 앞에 두고서 서우는 굳게 닫힌 문을 보다가 이리저리 빙글빙글, 거실을 돌았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그러고 있자니 스스로도 한심하고,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서우는 머리속으로 선택지를 그렸다.
1)그냥 들어간다.
'근데 이게 지금 안 된단 말이지....... 돌겠네?
2)문을 두드리고 문앞에 가방을 두고 간다.
'장난하냐, 지금.'
3)츠부미를 시켜서.....
'츠부미가 가방 안을 실수로 보기라도 하면....'
"끄흐......"
좀비 같은 소리를 내며 서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순간이었다. 반대쪽에 있던 츠부미의 방문이 열리더니, 그쪽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물론 방문을 연 츠부미도 있었다.
"서우 오빠? 뭐 하세요...? 안 주무시구."
"어.. 잠깐 에리랑 볼 일이 있어서."
"아.... 네."
또다시 츠부미가 입술을 삐죽였지만, 서우는 에리와의 일을 감당하기도 상당히 벅찼다. 일을 어쩌나? 다시 서우가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쇼파에 앉았더니, 츠부미가 갑자기 옆에 앉았다.
"!"
혹여 츠부미가 가방을 알아챌까, 서우는 살짝 떨어졌다. 그랬더니 곱게 일자로 난 츠부미의 눈썹이 순간 꿈틀하는 것이 아닌가? 서우는 내심 당황했다.
'얘가 왜 이러지?'
게다가 말도 한 마디 안하고 갑자기 고개를 숙인 채 꾸웅... 볼은 묘하게 빵빵해지는 것 같고, 입술이 슬쩍 튀어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더니 츠부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샌가 쑥 커버려서 자리에서 서면, 서우의 앉은 키보다 살짝 큰 츠부미 고개를 확 숙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너도 잘 자."
뭐지? 잠시 생각하던 서우는 츠부미의 방문이 조금 세게 닫히는 것을 보다가 다시 에리의 방문 앞에 서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모르게 긴장도 되고 너무 긴장이 되는 탓에 눈앞에 FBI WARING 라는 글씨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지만[!] 서우는 방문을 두드렸다. 이내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에리가 문을 활짝 열었다.
"서우 오빠..!"
활짝 웃고 있는 에리는 마악 목욕이라도 했는지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것도 있었지만 왠지 잠옷을 입고 있는 에리가 오늘따라 참.. 평소에 자주 입던 바지 잠옷 대신, 딱 한 번 입은 것을 보았던 원피스 잠옷을 입은 에리는, 자취방에서 라면 먹고 가겠냐고 하는 자취녀보다도 유혹적으로 보였다. 물론 에리에게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
"저기, 어... 에리, 이거. 너 먹어야 하잖아."
"아..."
서우는 머뭇거리다가 방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밀었다. 에리는 바로 그 가방을 받아 들기는 했지만... 동시에 에리가 화악, 저를 끌어안았다. 그때처럼 순식간의 일에 서우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에리.."
얼씨구나 감사합니다, 이 상황을 노려 그대로 침대로. 자매 중의 언니인 에리, 제가 한번 먹어 보겠..... 은 무슨, 서우는 에리가 이어나가는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 저... 제가 그때 너무 갑자기 그래서, 오빠가 저를.. 어, 그러니까..... 안 좋게 보신 줄 알았어요, 가벼운 여자라구..."
"뭐? 그럴 리가..."
"그래서 저 보기도 싫어하시는 줄 알고.. 그래서......."
"아니, 절대 아니야. 절대로. 절대."
그 정도에 에리가 가벼운 여자인 거면, 서우는 산소 같은 남자다 못해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기체인 수소 같은 남자였다. 어쩄든 서우가 격렬히 그 말을 부정하자 에리가 서우의 어깨 부근에서 얼굴을 떼고 활짝 웃었다.
그런 에리의 등에 어떻게 손을 올리면서, 서우는 에리를 다시 끌어당겼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뭔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대마법사 현자 직전의 동정이 하는 첫사랑 같지만 플라토닉 같은 느낌이랄까.
'....좋네, 뭐...... 이것도.'
피식 웃던 서우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왠지 모르게 뜨끈뜨끈한 열기가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고, 기분도 좋아지는 게... 굉장히 좋았다. 습관 같이 웃음도 픽픽 나오는 것도 괜찮고.
'...가만, 이 방에 후지야마가 카메라를 설치한 것 같은데.....'
서우는 에리를 끌어안은 상태로 눈을 돌려 방 안을 살펴 보았다. 어디에 숨겨야 보이지 않을까, 들키지 않을만한 위치.. 그곳을 찾다가 서우의 눈이 정확하게 몰래카메라에 닿았을 때, 후지야마는 구석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예, 접니다. 후지야마.... 말씀 드릴 것이 있으니 유우리님의 비서 분과 연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에... 유우리님이 한국 능력자 '서우'를 찾고 계신다고 들었거든요... 히히, 예에. 그에 대해 알고 있어서 말입니다."
낄, 낄낄. 웃으면서 몸을 떠는 후지야마의 앞에는 수북하게 쌓인 종이들이 있었다. 후지야마는 전화 연결이 되는 동안 그 종이를 파쇄기에 전부 넣어버렸다. 그리고는 손에 커다란 가방을 쥐고서,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는 유우리의 비서가 아닌, 유우리에게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그 능력자에 대해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거짓된 제보는 아니겠지?>
"예에, 물론입니다. 물론이에요."
<녀석을 잡으려면 많은 인원이 움직여야 한다. 만약 너의 제보로 녀석을 잡는다면 그만큼 포상하겠지만 허위 제보라면 그만한 대가는 치뤄야 할 거야.>
만약 못 잡는다면, 그 대신 네놈을 당장 육시 내서 실험용으로 쓰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날카롭고 냉정한 목소리, 후지야마는 부들부들 떨며 웃음 짓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집, 저희 집에 있습죠.... 여기는 나고야입니다 A구역이요.. 흐후, 흐...."
.....쉰 목소리로 웃는 후지야마의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지하실에서 번지듯이 울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수소 같은 남자, 서우...
+)
짐승 2부인 백탁의ㅈㄱ편을 당기기 위해서 연참대전에 다시 한번 참가 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ㅈㄱ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진구입니다. 도라에몽에 나오는 애인데.....네. 그렇습니다. ㅗㅛ가 아닙니다. 네.
상대는 소이정님의 로벨리아. 이번에 노쓰님은 사정상 참가를 하지 못하시고 소이정님의 설욕전이죠, 후후... 제가 저번에 이겨서 두 분의 손모가지와 딱지 50장을 받았기 때문에 후후. 기간은 일~월, 저번처럼 52kb 정도 뽑아낼 수 있도록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응원해 주세요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