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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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알았어, 그럼 일단 끊지."

"......."

유우리는 전화를 끊고 나서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 놓았다. 그 옆에는 최근 들어 가까이에서 유우리와 함께 행동하는 하네다가 있었는데, 전화 내용을 지금 그녀 또한 듣고 있었기에 상당히 긴장된 표정이었다. 이내 유우리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상당히 짜증이 섞인 것 같았지만, 하네다는 얼핏 알 것 같았다

유우리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흥, 그런 건가, 거기까지 가서 숨어 있었던 거로군....?"

"녀석이 나고야까지 간 건가요?"

"그래, 나고야에 있는 과학자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 과학자의 밀고야. 나도 이름은 몇 번 들어봤지."

"나고야에서요? 어째서요?"

하네다가 놀라서 되묻자 유우리는 투명한 촉수로 쥔 펜으로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톡톡 두드리다가 말을 이었다.

"거기엔 그 무시히메가 살고 있어."

"아...에리 말씀이군요."

"알고 있어?"

"예, 노스카와님이랑 함께 그 녀석도 감시할 겸 에리도 사로잡을 겸 함께 움직였었거든요. 그래서 좀 알고 있어요."

"무시히메는 그 과학자의 조카야."

"조카요?"

"그래, 그래서 자기가 보호하에 연구하면 도망치지 않고 경계도 하지 않을 거라며 자청해서 인수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동생이랑 말이야."

"하지만 가족인 경우에는 혹시...."

하네다의 걱정에 유우리는 검은 슈트에 감싸인 제 어깨를 들썩였다.

"그 녀석은 상 또라이야, 제 딸도 모르모트처럼 쓰는 놈이거든."

"자기 딸을 모르모트처럼 쓴다구요?"

아무리 시대가 이렇다고 한들, 남도 아니고 자기 딸을 실험으로 쓰다니?! 하네다가 충격받은 얼굴을 하자 이미 예상했다는 듯 유우리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런 녀석도 있는 거야, 싸이코패스 수준을 뛰어 넘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지."

"....예.."

자기 실험실에서 온갖 잔학한 짓은 다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 서우마저 생포해서 실험용도로 쓰려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정도라니...  하네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쩄든 도망칠 낌새는 없지만 빨리 오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하는데 말이지..."

유우리는 입을 실룩실룩 거리다가 갑자기 웃음을 띄웠다. 오전에 회의가 있던 탓에 아주 오래간만에 화장을 한 유우리의 붉은 입술은 그녀의 성격처럼 잔혹한 빛을 띄우는 것 같았다.

"참 멀리까지도 갔더군. 어떻게 거기까지 간 거야? 그 녀석은 그런 계통도 아니잖아? "

"예, 차를 훔쳤을 리도 없을 텐데..."

"흐음... 정말인지 실험용으로 쓰는 게 기대되는 녀석이야."

일본에 있는 능력자 중 한 명은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엄청난 스피드 때문에 만약 그가 마음 먹고 도망을 치거나 잠적한다면 누구도 그를 잡을 수 없었고, 그가 어디로 가든지 막을 수 없었기에, 그는 표면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우가 그와 같은 능력을 가졌을 리 없으니...

".......이런 생각은 그만하지, 어차피 쓸데없어. 일단 녀석을 잡고 보자."

유우리는 길게 늘어진 제 머리를 포니테일로 만들어 높게 묶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네다가 저절로 자리에서 함께 일어나자, 유우리는 자신의 투명 촉수로 옆의 서류를 집고서는 문을 열었다.

"저번에 실패한 사유는 정예 부대를 끌고 가려고 했기 때문이야, 시간을 너무 끌었지. 이번에는 군의 인원은 최소로 하고..... 그리고 다른 작전을 세웠으니 그대로 이행해줘."

유우리는 전화를 하는 순간에 바로 작전을 짜둔 것 같았다. 하네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일단 지금 당장 나고야로 가자, 작전은 간단하니 가면서 말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

서우는 왼손에 들고 있던 컵을 놓쳤다가, 깜짝 놀라 무릎울 굽히며 오른쪽 손으로 받아들었다. 순간이었지만 무언가가 가슴을 스치고 날카롭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서우 오빠?"

"어... 어, 왜?"

"아니.... 그냥 오빠가 방금 좀.. 무서워서."

에리가 불안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자 서우는 그제야 확실히 자기가 무심코 몸을 굳혔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도 모르게 순간 무언가를 경계했다는 것도.... 하지만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인지.. 뭔가 불쾌한 것이 가슴 언저리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기묘하게 가슴이 쿵쿵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계속된 평화속에서 잊은 서우는, 오전 내내 보이지 않은 츠부미를 에리 대신 찾으러 집 밖으로 나갔다. 다행이 츠부미는 그 근처에서 어렵지 않게 뱔견할 수 있었다. 어디 갔을까 했더니, 집 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싶어 서우가 천천히 다가가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끊어질 듯 작게 엥엥거리고 있었다. 

"츠부미, 여기서 뭐해?"

"아, 오빠...."

뒤를 돌아 서우를 올려다 보는 츠부미는 그 전처럼 작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을 뿐 저번처럼 대놓고 표독스러운 표정은 짓지 않았는데, 그 대신 표정이 무척이나 시무룩했다. 서우가 그 옆에 가서 앉자, 더러운 수건 더미에 감싸여진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보였다. 

"음..?"

배가 들썩들썩 거리는 것을 보니 어떻게 살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서우가 보면 금방이라도 죽을것처럼 보이기만 했다.

"아 그게... 매일 밥 주던 고양이가 낳은 새끼인데요, 아기들 엄마가 이틀이 지났는데도 안 와요. 이런 적은 없었는데 어딜 간 거지.. 이러다 새끼가 굶어 죽을 것 같아요."

"....갓 태어난 것 같은데."

"네, 3일 전에 태어났어요... 왜 안 오는 걸까요, 오빠?"

그런 걸 저에게 물어봐도..서우는 멋쩍게 머리를 긁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원치않는 임신이었을지도."

"예?"

"어, 뭐. 고양이 사이에도 이런저런 일이 있지 않을까... 흉흉한 세상....음."

애한테 무슨 소리를?! 저가 말해놓고 수습하려 애썼지만 다행이 츠부미는 그보다는 아기 고양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듯 싶었다. 예전에 나름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있던 서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양이를 들었다.

"으음, 우유주사를 맞추자."

"주사요?"

"어, 여배우들이 자주 맞.... 아, 아니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우유 먹이자 우유, 사람 먹는 우유 말고  고양이들이 먹는 우유가 있을 텐데.. 배급에 그런 것도 있으려나."

고양이를 안고 츠부미와 서우는 집으로 돌아와, 일단 새끼 고양이를 따뜻한 곳에 놓은 다음 배급을 받을 때 혹시 애완동물용 먹이도 있냐고 물었다. 다행이 A구역에는 상당히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 어렵지 않게 애완동물 먹이를 구해 고양이에게 먹일 수 있었다.

'사람 먹을 것도 없을 텐데 고양이 것까지...'

서우는 그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위에 있는 놈은 어떻게든 하던대로 논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는 계기였다.

그렇게 2일 정도가 다시 지나면서 서우는 에리와 더욱 더 친해졌다. 그것에 따라 츠부미가 뭔가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서우는 아키오 덕분에 알게된 그 소소한 즐거움을, 에리 덕분에 확실히 더 느끼게 되었다. 서우는 몹시도 즐거웠다. 정말인지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서우 오빠, 저녁 드세요-"

"오빠, 여기 새 옷이요."

"저기... 저녁 먹구 같이 산책 안 나가실래요?"

"오빠..?"

아무리 로린이에는 관심이 없다고 해도 오니쨩 - 이라는 소리까지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뭐니뭐니 해도 일본에 온 이유가 그런 소리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던가. 

거기에 왠지 자기에게 푹 빠진 듯한 눈을 하고 있는 에리를 보고 있노라면 아키오는 무리였어도 에리라면 자신과 함께 한국으로 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거기에 에리 정도면 자기한테 차고 넘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착하고 요리 잘하고 성격도 똑부러진 것이....

"에리."

"네?"

한국에 가서 적당히 정부의 말을 들어준다면 대우는 최상급일 것이었다. 물론 에리가 한국에 간다면 이제까지와는 사는 것이 다르니까, 문화의 차이나 언어의 차이 때문에 많이 괴로워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그냥 일본에서 지내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너도 쫒기는 처지고... 나도 일본에선 쫒기는 처지잖아?"

"네?... 예."

"그래서 말인데, 같이 한국에 안 갈래?"

"네, 네에?!"

"... 어, 그러니까, 말야...."

서우는 자기가 생각해도 바보 같이 자기와 한국에 가면 좋은점이라던가, 자기가 전화만 잘해서 싸바싸바를 잘하면 금방 여기로 비행기가 올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이것은 그냥 '나랑 같이 일본 뜨자' 로 보일 것 같은 말.

그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은 서우는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겨우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그때, 에리는 천천히 양 뺨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그래도 될까요, 제가...?"

"당연하지."

마치 뭔가에 강제로 이끌려가 듯이 서우는 에리가 좋아졌다. 

'...왠지 이상하긴 하군.'

그것이 뭔가 강제성과도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그 강력함을 서우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날 밤도 에리의 방에서 보내다가 에리가 잠들었을 때, 서우는 카메라를 방 안에서 전부 찾아내 제거해 버렸다.

"그 새끼.. 어디까지 보려고 이렇게 많이 달아 놓은 거야?"

만나면 눈부터 찔러 버릴까, 서우는 그리 생각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가 스스로의 예상대로, 방 문을 나서자마자 후지야마와 만났다. 서우는 보란 듯이 그의 앞에 몰래카메라를 던졌다.

"조카 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삼촌이라니, 역시 성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데굴데굴 굴러가는 둥근 몰래카메라가 후지야마의 발 밑에서 멈춘다. 그는 낄낄거리면서 그것을 주섬주섬 챙겼다. 이미 서우가 떼버리면서 부숴버려서 제 기능을 할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별 거 아니었습니다, 다 에리를 위해서였죠... 서우님."

기분 나쁜 후지야마의 목소리가 저를 부른다. 서우는 왠만하면 녀석이 몸을 덜덜 떠는 꼴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자 생각했지만, 후지야마가 하는 말을 결국 듣고 말아싿.

"고통도, 절망도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요.... 그렇게 강해져야 돼요. 강해지고, 강해져서 말입니다.."

이새끼가 무슨 소리를 하려고? 서우는 불쾌한 기분으로 불편한 얼굴을 숨기지 않으며 후지야마를 쳐다보았다. 후지야마는 평소처럼 웃지도 않고서 서우를 똑바로 쳐다 보고 있었다.

"닳아버린 칼은 다시 예리하게 가는 것처럼...서우님도....... 그저 이렇게 있으면 다른 것들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뻗어난 송곳니가 아깝잖아요, 흐히.."

"개소리하고 앉아 있네."

후지야마가 알아듣지 못하게 서우는 웃음을 활짝 띄우며 한국어로 그리 말하면서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다. 이후 그 찝찝한 얼굴을 기억속에서 지우려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지만... 이상하게도 후지야마의 얼굴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무엇인가가 잘못 되었다. 그런 생각에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던 밤이 지나고.....

그 다음 날, 후지야마는 그 집에서 사라졌다.

"...아무런 말도 없었다고? 정말?"

"예.. 삼촌이 어젯 밤에도 잘 자라고 인사까지 해주셨는 걸요, 거기에 내일 저녁에는 전골을 해서 먹자고까지 하셨어요."

"그 말 저두 들었어요."

"......."

"대체 어디 가신 거지..?"

 마치 원래부터 이 집에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워 버렸다. 서우는 당황하는 두 자매를 두고 지하실로 내려와 보았다. 

지하실의 두 문은 마치 보란 듯이 완전히 열려 있었다. 그 안으로 서우가 들어가자..  그렇게나 더러웠던 지하실은 어찌된 영문인지 마냥 깨끗했다. 이곳에 그렇게 더러웠던 것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깨끗했고, 작은 흔적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서우는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 숨을 깊게 들이켰다. 아주 옅은 피냄새, 소독약과 세제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후지야마는 이곳의 모든 흔적을 없애 버린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

아니, 왜가 아니었다. 서우는 또 다시 도쿄에서 느꼈던 그 기이한 긴장감이 다시금 제 가슴을 후려치고 있음을 느꼈다. 오고 있었다... 분명히 두 명이.

============================ 작품 후기 ============================

다시 한번 생명을 불태우는 연참대전, 응원해 주세요 ㅎㅎㅎㅎㅎㅎㅎ!

서우의 각성도 기대해 주시구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근데 임파선 부음.

연참대전 할 때면 꼭 누가 아프네요, 저번엔 노쓰님이 알러지, 이번에는 제 임파선이 동그랗게 부어 올랐습니다. 연참대전의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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