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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처음에는 제 손을 뱀이 꿰뚫었다고 생각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꿰뚫었나 싶었더니 그것이 손에서 빠져나갈 때는 마치 뱀과 같은, 꾸물거리는 움직임으로 손에서 빠져나가 서우는 숨을 그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뱀... 아니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촉수 같은 것이 제 팔다리를 잡아, 해부실의 개구리처럼 벌렸다.
"...와하하, 씨발 이건 뭐야?"
하네다랑 싸우다가 입 안에 잔뜩 고인 핏물을 내뱉으며 서우는 손목을 돌려 와이어를 휘둘렀다. 그러자 어떻게 팔다리가 풀리긴 했지만 쉭- 하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서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고, 다시금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제야 서우는 그 근원지.. 유우리를 보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 제 2능력자의 대면이었다.
"하네다, 내가 분명히 적당하게 시간만 끌고 있으라고 했을 텐데..?"
"쿨럭, 쿨럭.. 죄, 죄송합니다......"
하네다의 임무는 서우를 직접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끌며 서우의 진을 빼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 그것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하네다는 서우를 공격했고, 그를 제대로 상대하며 완벽한 방어가 아닌 공격을 택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쯧."
"..면목 없습니다."
하네다도 서우 같지는 않지만 능력자였고, 그 안에는 참을 수 없는 전투 본능이 있었다. 유우리는 자신의 그런 점마저 냉철하게 이용하는 반면, 하네다는 그것에 휘둘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는 유우리의 예상 범위였다. 그래서 계획을 앞당겨 나타난 것이고.. 유우리는 자신을 향해 살의를 드러내고 있는 서우를 쳐다 보았다.
"....."
저것은 이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짐승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녀석은 이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유우리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재미 있겠는걸..' 그와 동시에 휘익- 엄청난 바람소리를 내며 투명한 촉수가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서우는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겨우겨우 그것을 피하긴 했지만 수가 너무나도 많아 촉수에 이리저리 맞고, 이따금 강한 일격으로 몸의 일부가 뚫리기 직전까지 가야 했다.
"..미친, 이게 뭐야?!"
서우는 그제야 군인에게 들었던 정보로 그녀가 유우리라는 것을 떠올렸다. 에다 유우리, 일본 내 제 2 능력자이며 투명 촉수 능력자..!
"투명 촉수라고 해서 장난으로 웃어 넘겼더니 이런 거였나...!"
몇몇 촉수는 강도가 약하고 한 개에서 두 개 정도는 몸을 뚫을 정도로 강도가 강한 것 같았다. 서우는 겨우겨우 그것을 피하며 와이어를 뻗었지만 유우리는 간단하게 그것을 피하고 있었다. 과연 일본의 2 능력자였다. 게다가 서우는 하네다와의 싸움으로 상당히 지쳐 있어, 그녀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순간, 촉수는 하네다가 만들었던 두터운 얼음벽을 번쩍 들었고, 그것을 그대로 서우에게로 던졌다.
"큭!"
이것을 베는 것보다는 피하는 것이 낫다. 서우가 뒤로 물리는 순간 그것은 그대로 집을 향해 떨어졌고, 집 안에 아직 있던 에리와 츠부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서우는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꺄아아앗!"
"에리!"
"보고서에는 소라 어쩌고 하던데 호오.. 그새 여자가 바뀌었나 보지?"
하지만 당황하는 것도 순간이었다. 다시금 날아오는 촉수에 서우는 겨우 몸을 굴려 피하며 와이어를 뻗어 촉수를 잘라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와이어에서 잘라내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짐작했는데.. 아마 예상이 맞다면 촉수는 다시금 붙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와이어를 뻗으며 수십 번을 잘라냈는데 다시 이렇게 날아올 리가 없으니까.
"..에다 유우리라고 들었는데."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왜... 질투라도 하냐?!"
발도라도 하듯 앞으로 뛰어오른 서우의 와이어, 그것은 순식간에 유우리의 뺨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의 공격... 치명상은 아니고 간지러울 수준이었지만 제 눈으로 보지 못할 정도의 스피드였기에 유우리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 쓸만하군...? 역시 실험용으로 쓰고 싶어."
"하하, 내 노예로 들어오는 건 어때?"
유우리는 그 말에 상대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을 서우는 온몸으로 실감했다. 지금부터는 이제까지와 다를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해, 서우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찰나 마치 포탄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서우가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만약 저것을 그대로 맞았다면 서우 또한 뼈도 추릴 수 없었을 듯한 강력함이었다.
"...밸런스 패치가 시급한데......?"
서우가 와이어를 뻗는 순간 그것이 또 다시 다가오려 함을 느꼈다. 하지만 유우리의 표정은 지극히도 태연하고 다른 곳까지 보고 있으니 그 표정으로 촉수의 위치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순전히 자기 감각에 맡겨야 했으며, 순전히 운이었다.
"크윽!"
이번에도 서우는 간발의 차이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문득 서우는 깊은 위화감을 느꼈다. 순간이지만 촉수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와이어를 뻗어 유우리를 공격하려는 찰나, 촉수가 저에게 날아왔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또다시 촉수가 완전히 사라졌던 기분이 들었다.
'뭐지...?'
미약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서우는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할 수 없었다. 그의 시간은 쪽박했다. 하네다와 싸우는 동안 이미 충분히 능력을 사용했고, 유우리와 싸우는 동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몸이 점점 지쳐가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느껴지는 것을 서우는 온몸으로 실감했다.
"헉- 허억..!"
폐가 찢어지는 것 같다. 촉수를 피하면서 유우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제대로 킥을 한번 날렸지만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촉수가 방어해내며 그와 동시에, 서우의 다리를 세게 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다리를 짜내듯 부러뜨려, 서우는 무심코 다른쪽 다리로 공중에서 유우리의 안면을 걷어찼다. 어찌나 강하게 찼는지 유우리는 그대로 저만치 날아가 버렸고 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흐, 이 자식이...?!"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순간 서우는 바로 땅으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촉수가 또다시 사라진 탓.. 뒤로 물러난 유우리는 콱,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설마 자기가 얼굴을 그대로 맞는 순간이 올 줄이야? 내심 기가 막힐 정도였다. 그렇게 그녀가 조금 냉정함을 잊는 순간, 다시 촉수 공격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우의 생각은 그 순간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몇 번, 촉수가 완전히 사라졌었던 이유..!
'내 몸을 놓는다기 보다는 완전히 없어진 것 같았다. 왜 갑자기 촉수를 아예 없앤 거지? 분명 그대로 공격해도 됐었을 텐데? 설마.....'
설마가 확신이 되려는 순간, 다량의 촉수가 서우의 배를 향해 날아왔고, 그 중 몇 개는 그의 배를 그대로 꿰뚫었다. 그 뿐 아니라 서우의 팔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인지 팔과 다리를 다시금 잡기까지 했고, 이미 완전히 지친 서우에게서는 제대로 와이어가 나오지 못했다.
"하하, 젠장...!"
"이걸로 끝이다!"
고기가 찢어지는 소리,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던 순간 서우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장면은 에리와 츠부미에게도 여과없이 보여졌고, 두 자매의 비명소리가 귓가에서 크게 울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하네다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건지 30초 만에 군인들이 달려와 집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하네다를 의료진에게, 무시히메는 수거하고... 옆의 저 애는...... 분명 친자매는 아니라고 들었지만 일단 수거해라."
"알겠습니다!"
"서우 오빠... 오빠아아!"
애초에 두 능력자, 게다가 하나는 무려 2위인 고위 능력자를 상대로 이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서우도 얼핏 그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배가 뚫리고 팔다리가 전부 부숴진 상태로도 서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에는 지독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귓가에서 들리는 에리와 츠부미의 울음소리, 에리가 자신을 부를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에리를 끌고 가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은 무력했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것을 누군가 강탈해 간다.
감히 자신의 것을..!
이글거리며 끓어오르는 감정에 숨도 쉴 수 없어, 서우는 씩씩 거리며 피와 함께 숨을 토해내다가, 제 앞까지 올라온 유우리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웃는 듯한 표정이 만연해 있었다.
"싸움 실력은 쓸만 했지만 말이야.. 별 거 없는 애송이였군."
"....2:1로 다구리 해놓고 말은 잘해요."
"한국말인가? 뭐 아무래도 좋지."
커억, 서우가 피 섞인 숨을 토해내는 순간 다시금 그 촉수가 팔을 붙잡고 뱃속으로 파고듬을 느꼈다. 유우리는 천천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것이 실험체로써 지금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 하지만 저와 싸우는 동안 이미 녀석의 팔다리는 다 찢겨져 너덜너덜 거리고 있었고, 내장 파열. 손은 뚫렸고 사진상으로 봐줄만했던 얼굴도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이대로라면 5분 내에는 능력자라도 죽을 것이다, 고로 실험대로 끌고갈 가치가 없다. 장기도 성한 것 하나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던 유우리는 제 밑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에 조금 놀라 서우를 내려다 보았다.
"......둘 다, 찢어 죽여줄 테니까.. 기다려."
"참 재미 있는 소리를 하는군."
할 수 있으면 해 봐, 유우리는 씩 웃다가 마주친 서우의 시선에 움찔해 버렸다. 그러다가도 순간 기가 막혔다. 자신이 이렇게 두려워 하다니? 제 1 능력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이렇게 위압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하지만 서우는 말 그대로 짐승이었다. 자신의 것을 빼앗겨 잔뜩 독이 오르고, 그 안에 독을 채우고 있는 짐승!
"....후."
거기에 그 짐승 같은 목소리는 낮고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고 유우리는 무심코 물러나다가 마지막 선물이라며 촉수로 서우의 목을 그대로 꿰뚫었다. 그것은 그녀의 두려움에서 기반한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다음 수순은 당연했다. 서우는 방어벽 너머로 군인들에 의해 이송 되었고 그대로 좀비에게 뜯기게 될 것이었다.
그랬어야 했었다.
"...어이 스즈키, 코타츠.... 이거... 아니, 이 분 설마."
"마.. 맞아, 우리 예상이 맞았어. 그때 우리를 구해주신 교주님이셔! 역시 이 분을 잡으려고 그렇게...."
"일단 내가 다른 녀석들 시선을 끌 테니 방화벽 안에 숨겨 놓아. 최고 신도님께 혹시 모른다고 사람 좀 보내달라고 미리 연락해 놨거든? 적어도 세 시쯤 되면 올 거야."
"알겠어, 그럼 간다-"
만약 거기에 헨타이센빠이의 교도가 군인으로 없었기만 했더라도 아마 유우리의 그런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을 것이다. 완전히 찢어져 걸레가 되어 버린 몸을 보고 안심했던 것, 그것이 유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지 그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2부, 백탁의 종교인가 조교인가 편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는 밥만 먹고 다음 연참을 향해 달릴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