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8 / 0198 ----------------------------------------------
츠부미
*
다시 교단 소속의 건물로 돌아오는 길에, 서우는 문득 에리가 있는 실험실을 보게 되었다. 분명 일주일만 해도 멀어서 잘 보이지 않던 곳이었는데, 그곳은 그새 사진으로 찍어 앞에 들이민 것처럼 선명하게 눈앞에 비췄다.
"......"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저길 습격해서 에리를 구해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갔다간 개죽음일 뿐이다. 거기에 기회는 한 번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서우는 깊게 숨을 들이키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어렵게 그곳에서 눈을 돌리는데, 거리에 현상수배범으로 자기 얼굴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음?"
이렇게 대놓고 붙힐 줄이야,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서우'라는 이름은 쓰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해 놓았지만 제 얼굴이 떡- 하니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복장을 보니 대피소에서 찍힌 사진 같았는데.. 서우는 잠시 그것을 보다가 밑을 내려다 보았다.
뭐, 흉악범이라고 적혀 있는 것 같은데 결정적인 제보를 한 사람에게는 포상금을 즉시 지급하겠노라고 적혀 있었다. 왠지 우스꽝스러워서 서우는 픽- 웃다가 시선을 돌렸는데... 하필이면 똑같이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
"엇?!......."
"......."
서우는 그 남자를 보고, 자기가 찍힌 사진을 본 다음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저랑 참 닮았네요, 그쵸?"
"예?... 아, 어.... 어억!"
서우는 남자의 관자놀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당연히 남자는 그대로 넉 다운 되어 기절해 버렸고, 서우는 포스터를 잡아 뜯은 뒤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와 지하에 있는 길로 내려왔다. 그곳은 비밀스럽게 교단의 건물과 이어져 있어서 서우가 애용하는 곳이었다. 역시나 평소나처럼 그 입구에서 서우가 오는 것에 맞추어 사쿠라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서우를 보며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 서우님. 손..."
"손이 왜요?"
"피가 묻어 있어서...."
"아, 너무 세게 떄렸나 보다."
"네?"
"오다가 어쩌다 보니...?"
"아, 그럼 서우님의 피가 아닌 거군요? 그럼 됐어요!"
나름 조절하고 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튄 피인지... 치면서 코라도 스쳤나? 서우 상대에게 애도를 표하며 사쿠라가 준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서우의 피가 아니라는 것에 사쿠라는 기뻐하면서 서우의 뭉친 어깨를 주물러 안마해 주겠다며 어깨에 매달렸다.
"잠깐, 간지러운데....."
시원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우습기도 해서 서우가 키득키득 웃으며 욕실 쪽으로 걸어가는데, 사쿠라가 그 자리에서 딱 멈추었다. 그리고는 후훗, 뭔가 야하게 서우를 보며 웃었다.
"선물이 있어요, 서우님."
"선물?"
"욕실로 들어가 보세요! 에잇!"
"으?!"
사쿠라의 몸통 박치기?! 서우는 방심하고 있다가 제법 센 몸통 박치기에 욕실 안으로 쑥 들어갔다. 하지만 들어갔을 때에 욕실은 그냥 무지하게 넓을 뿐 아무것도 없었고, 입욕제라도 푼 듯이 고급스러운 냄새만 자욱했다.
"뭐지?"
잠시 이리저리 둘러보던 서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기지개를 쭈욱 폈다. 그리고 땀에 찌들은 옷을 저 만치로 벗어서 던져 놓았다.
"일단 좀 씻을까...."
모자를 눌러쓰긴 했지만 머리는 돌연변이에게서 튄 자잘한 피와 먼지로 더럽혀져 있었다. 서우는 일단 몸부터 대충 샤워기로 씻은 뒤에 곧바로 탕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니 몸이 쭈욱 녹아내리는 것 같은 것이, 곧바로 몸이 노곤해졌다. 그렇게 서우가 커다란 욕조 안에서 잠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다. 발걸음 소리에 서우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려오는 발소리는 작지만 꽤나 경쾌했고, 그걸 보니 유우리는 아닌 것 같았다.
'아, 그럼 선물이라는 게 목욕시중인가...'
일본 애니에서 종종 보았던 것, 커다란 수건으로 가슴부터 무릎 위까지를 단정하게 둘러 메고서 안으로 들어와서는 들어오자마자 공손하게 자리에 앉아서.. 뭐 그런 건가! 서우는 안으로 들어오는 게 누구일까, 심히 궁금했다. 일단 예상되는 상대는 사쿠라. 사쿠라라면 아무래도 이제까지 그녀와는 한 적이 없는데다, 사쿠라는 뭐라고 할까, 거의 새로운 타입이었다.
전형적인 일본미인형의 얼굴이랄까? 서우는 나름 기대하며 그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들어온 것은...
"안녕하세요? 우후후후."
...이 목소리는? 서우는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 보았다. 상당히 야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여자....
"목욕시중 아키오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키오 씨?"
정확히 말하자면 아키오의 다른 인격. 서우가 상상하고 있던 그 복장 그대로 나타난 그녀는 안이 덥다면서 맨발로 물이 가득한 욕실로 쏙 들어와 그대로 풍덩. 서우의 맞은 편에 앉았다.
"으하아아아, 따뜻하다. 냄새도 좋네, 고급 입욕제인가봐."
"..오, 오랜만이네요."
쿡쿡, 서우의 발등을 자기 발로 찌르면서 아키오는 까르르르 웃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키오의 등장에 서우는 적잖히 당황했지만 기쁘기도 했다. 에리를 구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수련하는 것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지 못했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기 때문이었다.
"...사쿠라 씨가 아키오 씨가 이런 거 알아요?"
"음? 으응, 알고 말고. 나도 나름대로 안 들키려고 했는데 그 여자 눈치 엄청 빠르더라. 헤헷."
"아아..."
게다가 간만에 본 아키오는, 사실 서우는 반쯤 아키오의 뽀얀 얼굴과 속살에 정신이 혼미해져 그녀의 말에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유부녀 아닌가!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신나게 유부초밥을 만들었을 유부녀면서 어떻게 저렇게 아기같은데다 뽀얗고 예쁜지!
화장끼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얼굴인데도 되려 그게 더 예뻐보인다. 아니 그냥 원래 예뻐서 그런 것일지도.. 서우가 멍하니 아키오를 쳐다 보는데, 아키오의 발 끝이 다시 서우의 무릎 부근을 꾹 눌렀다.
"내 말 듣고 있어요?"
"예? 아... 네, 말하세요."
"나미도 같이 왔다구 말했는데."
"네? 나미?..... 아-"
군에서 우리 마을을 당분간 군사기지로 쓰겠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잠시 이쪽으로 넘어 왔는데... 걔네 부모님도 여기 신도가 되셔서. 그 애두 여기 있어."
나미라고 하면 좀비인줄 알고, 굶주렸던 서우가.... 그렇고 그랬던, 몽유병 환자!
뭔가 성격이 쎄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신선해서 괜찮았고,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서우의 취향이었기 때문에 서우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호오- 기억속의 나미의 얼굴을 떠올리며 서우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앞에 있던 아키오가 손에 거품을 들고는 서우를 향해 후- 불었다.
"거품 목욕 오랜만에 해 본다. 나 이런 거 좋아하는데."
아이 같이 웃는 얼굴이 귀엽다. 그때, 거품으로 다시 장난을 치던 아키오의 코에 약간 거품이 묻어 서우가 손을 뻗었다.
"응?"
코에 있는 거품만 닦아주려 했는데, 아키오가 조금 몸을 움직이다 보니 아키오가 가슴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미끄러져 내렸다. 아키오도 딱히 잡을 생각은 없었는지 뒤로 그대로 등을 기대고는 쭈욱 몸을 미끄러 뜨렸다. 서우의 다리에 언뜻, 아키오의 다리가 닿았다.
'아, 안 되겠다.'
서우는 무심코 몸을 일으켰다. 생각해 보니 요 근래 너무 바쁘게만 움직이다 보니 원치않는 금욕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물론 마음만 먹으면 손 뻗는 곳에 여러 명이 있었지만... 하지만 서우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아키오의 양쪽 손이 그의 발을 잡아 당겼다.
"떽."
"앗!"
"그렇게나 오래 나랑 아키오를 이렇게 방치해 뒀겠다? 어림도 없어요."
서우는 미끄러운 욕조에서 그대로 미끄러지다가 어떻게 균형을 잡긴 해서 볼썽 사납게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모양새가 상당히 우스꽝스러워서 아키오는 깔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묘하게 서우에게 있어 절망이었다. 서우는 닭 쫓던 개처럼 멍하게 아키오를 쳐다 보았다.
"당분간은 어림도 없으니까 그렇게 보지 말라구?"
이건 좀..! 앞에 차려 놨는데 먹질 못하다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서우는 울먹이고 싶은 심정으로 아키오를 쳐다 보았다.
"정말..?"
"아하하핫, 뭐야- 그 표정은? 그럼 정말이고 말고."
장난스레 말했고, 마찬가지로 서우의 팔을 아프지 않게 꼬집는 아키오의 몸짓은 장난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웃는 얼굴임에도 아키오는 '어림도 없어' 라는 표정을 얼굴에 단호하게 붙히고 있었다.
"이 참에 우리의 소중함을 확실히 깨달으라구?"
소중함은 이미 확실히 깨닫고 있는데요! 서우는 그렇게 피 토하도록 외치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하기는, 꼭 돌아가겠다고 해놓고 에리에게 마음이 완전히 가 버린 이쪽이 아키오에게 어떻게 할 수는 없지.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아키오와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적어도 아키오는 그렇게 막 대할 여자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후우."
"으응?"
서우는 깊게 숨을 내쉰 뒤에 뒤를 돌았다. 아키오가 뒤에서 의아해 하자 서우는 아키오를 계속 보면 자제할 수 없다고 말했고, 아키오는 깔깔 웃으며 맨살로 뒤에서 서우를 꽉 끌어 안았다.
'윽, 이건 고문 수준인데...?!'
서우가 부들부들 떠는 것도 모르고 아키오는 깔깔 웃으며 부드러운 팔 안쪽으로 서우의 목 부근을 슬슬 문질렀다.
"어머, 참으려구?"
귓가에서 웅웅 울리는 요염한 목소리. 방금 저낙지 버티자, 아키오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말자고 생각한 서우는 심히 머리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사실 아키오는 단호하게 안 돼, 라고 말해도 하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원래 아키오의 다른 인격 '그녀'는굉장히 밝히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나도 참고 있었어~ 너랑 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예 거들떠 보고 싶지도 않더라구."
"......"
"서우니이이임~"
귀에서 끈적끈적하게 울려 퍼지는 아키오의 목소리...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계돌파 해 버린 서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순간 아키오도 팔을 목에서 풀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으로 다시 몸을 감싸고 욕조 밖으로 슉- 나가 버렸다.
"씻으시게요? 등 밀어 드릴게요~"
"으으.....! 아키오 씨!"
"자, 어서 앉으세용!"
처음부터 놀릴 작정이었던 건가! 상큼하게 웃고 있는 아키오를 보니 얄미워질 지경이었다. 결국 서우는 다시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그 사이 아키오는 빠르게 자기 몸을 씻고, 정말 서우의 등이라도 밀어줄 생각인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자, 이리 오세요- 자, 자, 서우님!"
그런 아키오의 표정은 여전히 단호했다. '절대 안 돼.'
서우는 별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래, 얼굴도 예쁜데다 짬짜면 같은 매력이 있는 미녀를 기다리게 한 죗값이라고 생각하고 참자. 참아 보자. 하지만 본인이 원해서 아키오를 거기 두고온 것도 아닌데..?! 왠지 억울한 기분도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키오의 고문 시간인지 아키오의 목욕시중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받고 몸만 개운하게 씻고 나온 서우는 매우 개운치 못한 표정으로 욕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욕실 밖에서 서우가 상쾌한 표정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흐뭇하게 기다리고 있던 사쿠라는....
"어어엇..? 왜 저러시지?"
서우의 표정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
============================ 작품 후기 ============================
선작이랑 조회수가 미친듯이 오르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오묘한 일이로다.
아무튼 좋은 하루 되세요.
:D
3연참 2번 진짜 해야 하는데;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