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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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vs능력자

"저 새끼가 뭘 씨부릴려고...."

서우는 타는 듯한 숨을 입 밖으로 내쉬고 나서, 겨우겨우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사쿠라에게 바로 전화해서 지금 TV에 나오는 내용을 전부 녹화해 달라고 말했다. 사쿠라는 이미 녹화하고 있노라고, 또한 현재 이 방송을 어디에서 하는지 위치까지 전부 파악했다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저, 서우님.....>

"예?"

서우는 그 장소가 어디인지 듣고 나서 일단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사쿠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디 조심해 주세요, 갑자기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아시죠?>

"알아요."

일단은.

유우리를 납치했을 때의 경험 덕분에 이제는 생각을 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타입으로 서우는 변했다. 예전이 앞뒤 생각 안 하고 썰어 버리는 게 재밌다고 뛰쳐나가서 미친듯이 칼질하는 타입이었다면, 이제는 적절하게 어딜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썰자고 계획하고 써는 타입이라고 할까? 

여전히 서우는 몸이 움직이는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맹수의 본능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어서, 사쿠라는 작게 한숨을 쉰 뒤 거듭 당부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맹수의 본능을 막을 수 있을까? 사쿠라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나중에."

<..네.>

서우는 전화를 끊은 뒤에 어떻게 말하나 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TV속 후지야마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 보았다. 후지야마는 여전히 광기에 찬 표정,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적인 모습 같아 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키득키득 거리며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예, 예이... 히히, 앞으로 무시히메는 능력자 분들의 관리 하에 엄중하게 감시할 예정입니다."

"..능력자 분들의 관리라구요? 그 분들이 직접 그, 무시히메라는 것을 관리한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고 말구요, 왜냐하면 연구소 테러범이 노리는 건 그거거든요!"

"이번 연구소 폭파 테러범 말입니까?"

"예에, 그렇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무시히메 중에 하나인, 여기 아케라 에리 씨를 노리고 계신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화면속의 에리를 가리키는 후지야마에게 카메라 플래쉬가 터져서, 녀석의 얼굴이 하얗게 보였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기묘한 모습을 띈다. 

"후훗, 히히힛. 큽큽."

이내 플래쉬가 좀 잦아 들자, 후지야마는 입꼬리를 볼이 찢어져라 올리고서는 노래라도 하는 것처럼 거창한 제스쳐를 취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

"후지야마 박사님! 그렇다면 그 테러범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까?"

"호오?"

"박사님의 말로 유추해 보자면 범인에 대해 이미 어느정도는 밝혀진 것 같은데요, 대답해 주십시오!"

기자 중에 한 명이 손을 들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을 했다. 무시히메인 에리를 범인이 노리고 있다는 걸 안다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기자 중 한 명이 그런 질문을 하자, 나머지가 우수수-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테러범은 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능력자 분들까지 나서신다면 그도 능력자 입니까?"

"능력자라면 외국의 능력자 입니까, 아니면 우리 나라의 능력자 입니까?! 외국이라면 어느 나라입니까! 그 나라의 능력자를 동원한 선제 공격인가요?"

"아, 이런 음경 됐네."

서우는 기자들의 질문을 보며 저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렸다. 후지야마가 한국의 능력자 '최서우'요- 라고 말해 버리면 서우는 이제 한국에서는 영영 OUT 이었다. 아무리 저를 탐내고 탐내다 못해 협박까지 했던 얀데레 속성의 정부[?] 였지만, 외국 가서 테러에 그곳 능력자 납치, 능력자와의 전투.... 등, 그런 것까지 감싸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한국으로 도망치려던 서우의 퇴로는 하나 사라지는 셈이었다. 

"후지야마, 너는 만나기만 하면 토막 안 내주고 회 단위로 친다, 진짜...."

쯧, 서우가 담배를 꺼내는 순간 낄낄 거리고 있던 후지야마는 의외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흐흐, 헤- 그것이.... 느, 능력자입니다만... 헤, 아직 신원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서우는 무심코 떨어뜨렸던 담배를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바로 잡으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TV를 올려다 보았다. 

"허어?"

저 새끼가 이제  미쳤나? 모를 리가 없잖은가, 노스카와나 하네다나.... 그들은 제 이름을 알고 있을 테고 그쪽도 제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냥 척하면 척일 텐데, 뭔 개소리야? 하지만 후지야마는 그것으로 인터뷰를 끝내 버렸고.. 잠시 멍하니 있던 서우는 사쿠라가 보내준 기자회견의 풀 버젼 녹화영상을 다시금 돌려 보았다. 

내용은 다섯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1) 증거 영상을 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범인이 서우라는 것에 대한 증거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알 리가 없지.

2) 츠부미를 구해온 것은 아무래도 좋았던 듯.

3) 에리는 앞으로 능력자들의 관리 아래에 있게 된다. 즉, 능력자가 에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

4) 한국 정부랑 싸울 생각이 없어서인지, 서우만 처리하고 말 생각인지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니면 이미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도...

5) 능력자들이 나섰다. 1 능력자를 중심으로라고 생각했더니, 하네다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쯧."

서우는 신경질 적으로 재떨이에 담배를 훅, 빨아 들였다. 어찌나 폐활량이 좋은지 순식간에 반 이상 재가 되어 버린 것을, 서우는 신경질 적으로 지저서 끄다가 다시 영상을 돌려 보았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실, 도쿄 연구소를 테러한 테러범에게 전합니다.. 흐흐. 히히히......>

"후지야마, 네가 그냥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구나......"

일본의 2 능력자인 유우리도 납치해 굴복시켰다. 물론 유우리가 납치된 것이 있으니 보안에 힘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빈틈은 찾으면 있는 법,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일단 저 후지야마부터 어떻게 작살내고 싶은데, 서우는 잠시 고민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후지야마를 개 패듯 패서 죽이고 싶은 것이지, 이쪽이 개죽음 당하는 건 사양이다. 서우는 그 자리에 앉아, 어떻게 하면 후지야마를 죽일 수 있을지. 그리고 알차고 보람차게 후지야마를 조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1층, 유우리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마침 그곳에서는 사쿠라의 감독 하에 안대를 쓴 유우리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목욕 중이었다.

"앗, 서우님- 영상은 보셨나요?"

"예에.... 그보다 사쿠라 씨, 잠깐 유우리 씨랑 할 말이 있는데.."

"아,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다 씻겨요. 여러분- 조금만 서둘러 주세요~"

"예, 사쿠라님!"

사쿠라의 명에 맞추어 유우리를 씻기는 여자들의 손에 조금 더 속도가 실린다. 이내 유우리가 전부 씻자, 그녀들은 빠르게 유우리의 머리를 말리고 단장 시킨 다음, 방 안으로 데려가서 속이 살짝 비추는 가운 하나만 입혀서 의자에 앉혔다. 서우는 의자를 끌어다가 그 앞에 앉았고, 다른 여자들은 서우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흐음."

"....."

유우리의 손끝이 조금 떨린다. 서우는 유우리의 높이 올라간 모양 좋은 코 끝을 톡톡 두드렸다.

"안대가 잘 됐네요, 역시 유우리 씨는 안대가 어울리는 타입이야... 아예, 그 눈을 못 쓰게 해 버리면... 그럼 능력도 못 쓰고 편하려나?"

"예...?"

"장난이니까 겁 내지 마요."

"......."

"뭐, 나중에라도 혹시 반항하면 그때는 전기 충격이 아니라 바로 눈이니까 그건 염두해 두시고요."

물론 서우는 여자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취미는 없었다. 게다가 안구에 손상이라도 준다면 선택 폭이 좁아지니까... 뒤에 했던 말대로 혹시나 나중에 반항이라도 한다면- 그때는 저도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 볼 일이고.... 서우는 잠시 안대를 풀까 말까 고민했다. 유우리가 안대를 하고 있는 모습은, 가학심도 끓게 할 뿐더러 꽤나 보기 좋은 모습이어서 이대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우는 안대를 풀지 않은 채로 TV를 틀었다. 사쿠라가 녹화해준 영상이 TV에서 그대로 흘러나왔다.

"....이건!"

기자회견 내용을 듣고 있는 유우리의 미간이 조금 좁아진다. 서우는 입가를 실룩이다가 TV에서 시선을 떼고서 유우리를 쳐다 보았다.

"맞다. 유우리 씨에 대한 내용은 딱히 없네요. 제가 설마 유우리 씨를 이렇게 굴복 시켰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겠죠?"

"..우....."

"유우리 씨가 저한테 술술 정보를 불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할 테고, 하네다 씨한테는 사진을 보냈는데.... 아마 다른 사람한테 말하고 다니진 않을 테니 걱정 마요."

"예.."

"뭐, 어디까지나 아마도인데. 하네다 씨랑 친하죠?"

유우리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

쯧, 아직까지.

그렇게 완전히 굴복하고 나서도, 이런 미약한 반항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니, 남아 있다기 보다는 계속 생기는 것일지도..

확실히 길들였다고 생각해도 이렇게 실낱 같은 반항심? 아니면 자기가 2 능력자라는 것에 대한 자각? 그런 것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서우는 기분이 나쁘기도 했고... 반대로

"대답."

"죄, 죄송합니다....."

신난다, 아직 더 남아 있구나! 아직도 더 길들일 것이 남아 있어!.... 서우는 어린 아이 같이 그런 생각이 들어 기쁘기도 했다. 서우는 유우리의 목에 예의 채워져 있는 목줄을 강하게 잡아 당겼다. 

"자, 그럼 일본 능력자들의 프로필에 대해 술술 불어 보시죠. 그 중에 한 명을 족쳐야 하니까. 능력에 대한 정보부터 어디에 살고 뭘 하고 있는지도 전부. 한 명만 일단 잡아다가... 유우리 씨처럼 끌고올 생각인데, 마음 같아서는 치고 박고 하고 싶지만 일단 빠르게 가야 하니 제일 약한 능력자와 그 능력을 술술 불어보시죠."

서우는 곧바로 하네다를 습격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하네다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듯하고, 하네다와는 일전에 싸워본 적이 있으니 실은 다른 능력자와 싸워 이겨 보고 싶다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피어오른 욕심이었다. 물론 서우는 제 욕심을 눈채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서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던 서우는, 아직까지 유우리가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화가 나서 채근했다. 벌써 채근하는 것이 두 번째.... 유우리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녀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들, 동료들을 직접적으로 팔아 넘긴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3번째 재촉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우가 다시 목줄을 잡아 당기고- 그 낮은 목소리로 채근하자, 완전히 길들여져 굴복한 유우리의 입은 반사적으로 열리고 말았다.

'...미, 미안해.... 모두, 미안.....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반항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리고 서우가 주는 쾌락에 머리가 멍해지면서 점점 익숙해져가고만 있었다. 이제 그것이 없으면 허전해서 밤에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서우를 다시 만난 자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를 적시고 있지 않은가..

"그... 그러니까....."

...잠시 입을 닫았던 유우리는 이내 술술, 정보를 불기 시작했다.

"제일 약한 능력자는... 사가와 호타루예요. 그 애는 고속으로 이동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전투기술도 타고난 듯 훌륭해요...."

"고속이동? 그거 꽤 쓸만한데.... 가장 약하다고요? 유우리 씨는 그쪽과 싸워 봤나요?"

"예.. 확실히 빨라서 처음에는 힘들긴 했는데, 고속 이동을 해도 브레이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공격이 헛나가는 점이 많아요."

"음, 그리고?"

"에... 그리고... 또..."

미안, 미안.. 바보처럼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유우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열심히 서우에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은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유우리 안의 제 2 능력자로서의 프라이드가 산산조각 나 부숴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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