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93 / 0198 (93/198)

0093 / 0198 ----------------------------------------------

능력자vs능력자

*

호타루는 늦은 밤에 몰래 빠져나와 도쿄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이제 슬슬 겨울이 되어 가면서 서늘해진 공기가 뺨을 기분 좋게 스쳐 지나가고 있어서, 밤에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날씨였다. 그는 이렇게 혼자 밖에 자주 나오는 편이었는데, 최근 들어 계속 정부의 시설 안에 갇혀 살다시피 해야 햇기 때문에 오래 간만의 산책이 몹시나 반가웠다.

물론 어제 몰래 나가려다 들켰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 했던 하네다가 떠올랐지만.

'녀석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내 데이터 조사는 이것 뿐이지만 그 놈은 유우리 님을 납치했다구, 알겠어? 그리고 넌 정말 중요한 전력이야, 너를 앞세우고 다른 사람들이 보조를 맞춰서 그 녀석을 잡을 계획이니까! 그러니까 괜히 혼자서 싸돌아 다니지 마!'

뭐 잠깐인데 괜찮겠지... 그런데도 잔소리를 할 것 같은 하네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귀에 딱지가 앉은 것만 같아 호타루는 새끼 손가락으로 귀를 슬슬 후벼팠다.

'하여튼간,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놈이 우리한테 위치 추적기를 단 것도 아니고, 능력자들이 서로 가까이에 오면 가까이 오는 것 같은 기분도 들긴 해도 도쿄가 얼마나 넓은데. 쯧즈. 그렇게 걱정만 하고 얼굴 구기다가 예쁜 얼굴 다 망가지겠네, 하네다 누나.'

유우리의 납치 사건으로 능력자들도 어쨌거나 몸을 사리면서 보안을 철저하게 하는 편이었지만 호타루는 그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구속 받는 것, 답답한 것.. 그래서 자주 혼자서 사라진 적도 있었기에, 앞에 제대로 나서지 않는 1 능력자 대신 앞에 나서서 능력자들을 통솔하던 유우리를 적잖히 골머리 썩게 하기도 했다.

"아이고, 뻐근하다. 역시 간만에 나오니까 좋구나...."

도쿄 중심가에서 과거에는 클럽과 술집이 가득했던 거리, 지금도 여는 곳은 몇몇 개 있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새벽즈음이 되면 다들 문을 닫았고, 그곳은 좋은 산책로가 되었다. 불이 다 꺼진 거리를 걸으면서 호타루는 길게 하품을 했다. 높이 떠 있는 달이 어두운 거리에 밝게 빛나서 꽤나 운치 있는 거리였다. 호타루는 자주 꽂고 다니는 MP3를 귀에 꽂으려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어?"

그 순간 호타루는 온몸이 섬짓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능력자가 가까이에 오는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그는 주변을 둘러 보다가 건물 위로 뛰어 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에서 와이어가 날아와- 호타루는 재빨리 몸을 젖혔다.

"....?!"

이미 서우는 제 가까이에 왔던 것이다. 호타루는 능력이 약했기에 서우가 이렇게나 가까이 오도록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반대로 서우는 처음부터 유우리에게 들어, 호타루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유우리는 호타루가 새벽이 되면 자주 불이 꺼진 클럽가로 산책을 나간다고 말했고, 그곳에 갈 때는 경호원이 전혀 붙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해서 서우는 그곳에 사쿠라로 하여금 CCTV를 설치해 놓은 뒤에 호타루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서우는 유우리와 하네다와의 싸움 덕에 능력자를 더욱 수월하게 감지하게 되어, 정확하게 호타루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하지만 그것을 호타루는 알 리 없으니 그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허나 쏟아지는 공격을 호타루는 능숙하게 피하고 있었다. 호타루의 몸은 노스카와와는 다른 의미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공중에서 한 마리의 모기처럼 공격을 피하고 있는 호타루를 보며 서우는 혀를 내둘렀다.

"모기 같은 새끼..."

모기는 빗방울이 자기 몸을 향해 떨어지면 빗방울과 하나가 된 뒤 그대로 수직 낙하하다가 적당한 높이에서 분리하여 살아 남는다고 하던가, 호타루의 공격도 마치 그것과 같아 보일 정도로 신속하고 빨랐다. 거기에 호타루는 도망치려 물러난다기 보다는 계속해서 서우의 공격을 피하며 자세를 잡고 있었다.

"...싸울 생각이란 말이지, 좋군?"

서우는 만족스레 웃으며 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하지만 서우의 예상과는 다르게 호타루는 아직까지 약간은 고민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위치 추적기를 놓고 왔다. 이대로 이 녀석에게 발려 버리면 그땐 어떡하지?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머리속에서 떠돌았다. 만약 자신이 지기라도 한다면 살해 당할 테고. 유우리도 없을 때에 상당한 전력의 손실 아닌가? 하지만.. 눈앞의 상대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몸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칫...!"

서우가 와이어의 사정 범위에서 벗어난 후에야, 호타루는 제 뺨을 언뜻 스치고 지나간 와이어 때문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싸움에 대한 본능은 비단 서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자들의 전반에 걸쳐 가지고 있는 감정이었다. 

물론 서우는 그 정도가 훨씬 심했지만... 호타루도 눈앞에서 싸움을 거는 서우를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안 되겠다. 한번 싸워보고 싶어서 돌겠어.'

게다가 서우의 와이어는 사정없이 호타루를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었고, 호타루는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20cm 정도의 검을 뽑았다. 하지만 사실은 특수 개발된 나이프 위장 피스톨로써 세 발이 내장되어 있어, 무언가가 단검에 꽂히면 그 즉시 총이 발사되어 세 발이 연달아 나가게 되어 있었다.

물론 일반인이 사용 했다가는 반동으로 팔에 큰 부담이 가지만 호타루는 10년이 넘도록 몸을 단련한 특수대원들 보다도 더 뛰어난 신체를 가지고 있는 능력자였다. 거기에 호타루의 능력은 빠른 스피드 뿐만이 아니었다. 호타루는 몸의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만약 서우의 와이어가 팔을 향해 날아온다면 그 순간 그의 팔은 순식간에 짧아질 수도 있었고, 배를 향해 날아온다면 그 부분만 쑥 파이게 하여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의 몸의 모든 곳을 능력자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었고, 빠른 스피드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에는 한계가 없었다.

게다가 저쪽은 분명 자신의 능력을 모른다. 허나 이쪽은 이미 서우에 대한 정보를 다 익혔기 때문에 그가 어떤 방식으로 나오는지, 어떤 능력인지 다 알고 있다. 

서우의 와이어를 빠르게 피하던 호타루는 머리속으로 하네다가 써준 정보에 있던, 그리고 돌연변이, 좀비와 서우가 싸울 때 하네다가 비밀스럽게 찍었던 영상을 떠올렸다. 

서우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저돌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기회만 있으면 앞으로 파고들어 와이어를 쓸려고 하는 탓에 이쪽이 보기엔 헛점이 보인다고 할까. 게다가 호타루는 전투기술에 있어서는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싸움에 능숙했다.

'그럼 가볼까..!'

호타루는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눈 깜빡할 새에 앞으로 튀어나가, 단검을 휘둘렀다. 

"병신."

서우는 씩 비웃으면서 그 단검을 자기 손에 그냥 꽂아 버렸다. 검을 휘두른 호타루도 무심코 당황하게 되는 서우의 기행,  그와 동시에 단검의 날밑 부분에서 연달아 총이 발사되어 서우의 손바닥은 순식간에 구멍난 스펀지처럼 되어 버렸지만, 서우의 찔린 손에서는 이미 와이어가 튀어 나가 있었다.

"흐악!"

이 단검에 총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유우리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총이 발사되는 순간에 당연히 호타루가 총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서우는 손을 내주고 동시에 다른 와이어로 호타루의 배를 찢어 버렸다.

"크윽, 으으윽..!"

호타루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지만 제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던 속도에서 확실히 느려진 것이 보였다. 물론 서우도 부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 방식, 하지만 그 과정에서 왼손이 완전히 작살이 나 있었다. 치유력이 있다고는 해도 총 세 발을 손에 그대로 맞았으니 쉽게 될 리가.

서우는 구멍이 숭숭 난 손을 탁탁 털고는 배를 잡고서 꿈틀거리고 있는 호타루를 보았다. 유우리에게 들은 바로, 호타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적의 약점을 파악해 더 강해지는 타입. 그러니 초반에 승부를 보는 게 편하다고 했지..

서우가 재빨리 다가가, 와이어를 날렸다. 하지만 호타루는 정확하게 그 부분의 신체를 변형해 공격을 피했다. 당연히 서우는 그것에 대해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호타루는 그런 서우의 반응에, 유우리의 배신을 눈치챘다.

"유우리님... 아니, 배신자니까 년이라고 불러야 하나? 다 술술 불었나 보군?"

어찌보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서우가 호타루의 주 산책장소를 알고 있다거나, 그의 능력을 다 눈치채고 있다는 듯이 움직이고 주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 마저 알고 있으니까. 

서우는 가볍게 어꺠를 들썩이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아오... 돌겠네.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그 독한 여자가 술술 불어?"

"남자 다운 그렇고 그런 짓."

".....미친놈."

쯧, 호타루는 혀를 차면서 뒤로 물러나다가 바로 앞으로 튀어 나왔다. 하지만 이미 유우리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다 말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수십, 수백 번, 공중에서 서우의 와이어가 번뜩이고 말 그대로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허나 한쪽 손이지만 와이어를 사용하는, 게다가 밤이라고는 해도 그 강도와 빠르기가 전의 몇 배는 된 서우의 와이어는 이미 부상을 입은 호타루에게 있어서는 버거웠다. 

거기에 서우가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호타루의 첫 착각이 준 리스크는 너무나도 컸다. 호타루가 저도 모르게 주춤하는 순간 그 틈을 노려 곧바로 와이어가 파고 들었다.

스걱!

"크흐.... 악! 더럽게 아프네!"

팔에 정확히 와이어가 꽂혔다. 서우가 와이어를 그대로 내려서 팔을 베어버릴 것이 뻔하니 재빨리 그 부분에 구멍을 낸 뒤에 피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우가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하필이면 와이어의 강렬한 빛 때문에 무심코 호타루는 눈을 감고 말았고, 그 순간 호타루의 안면과 가슴에 서우의 무릎이 정확히 들어왔다. 서우의 무게와 힘 때문에 호타루는 역류한 피를 쿨럭 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반항하려 했는데, 그 덕에 서우가 휘두르는 와이어에 다리가 와이어에 반쯤 잘리게 되어 버렸다.

"으악, 젠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쯧즈."

호타루가 날 뛰어준 덕에 졸지에 더 쉽게 호타루를 제압했다. 이 공격 한 번에 호타루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서우는 킥킥 웃으며 위에서 호타루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한쪽 발로 발로 강하게 목을 잡고, 다른 한쪽으로는 배를 강하게 잡았다.

"움직이면 바로 잘린데다가 바로 발 쑤셔 넣는다."

"..크아, 으으윽......!"

그렇게 말하면서 서우는 빨래라도 밟듯이 지그시 호타루의 배를 눌렀다. 일단 호타루는 공격 불능 상태가 되어 좋긴한데... 서우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고민에 맞닥뜨렸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테이져 건을 가져오긴 했는데, 호타루와 싸우다가 그만 부숴져 버린 것이다.

물론 기절시키면 그만이다. 중고딩 때 자주했던 기절놀이 하듯이 목을 조른다거나 명치라도 세게 때린다거나, 머리라도 걷어 찬다던가.....

그런데.

"그럼 이제 이 새끼를 교단으로 끌고 가야 되는데.. 아, 가서 어떡하지."

가서 어떻게 정보를 캐느냐가 문제엿기에 서우는 잠시 고민했다. 고문? 하지만 이 녀석, 자기 몸을 마음대로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지 않은가?

묶어 놓아도 피할 수 있을 것 같고.. 때려도 남은 못 시키고 자기가 때려야 겨우겨우 때릴 수 있을 것 같은데다가.. 맞다. 묶어 놓는다고 해도 신체를 변형 시켜서 나오면 그만이니 제대로 묶어 놓을 수도 없다. 

"...존나 골치 아픈 새끼잖아, 이거...?"

서우는 무심코 한국어로 중얼거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빠르게 하려고 약한 놈을 골랐더니, 그래도 다른 능력자에 비하면 혼자 있는 시간도 있는데다가, 유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있는 것도 많는데다 가장 편하기는 했지만..... 길들여? 유우리 때는 나름 즐거웠지만 남자라니? 더 이상의 여자 캐릭터는 감당 못한다고 남자라니!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서우가 다시금 한숨을 쉬는 그때였다.

"병신아 그냥 죽여라."

"?!"

또박또박 튀어 나오는 한국말에 서우는 조금 놀랐다. 

"너 뭐냐, 왠 한국말."

"좆까, 혼혈이다. 그냥 죽여라, 어차피 아무것도 말 안할 거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유우리도.... 하지만 유우리에게 했던 짓을, 고자가 되었음 되었지 호타루에게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서우는 가운데 손가락을 지그시 올렸다.

"어려 보이면서 중 2 병 걸렸냐, 죽여 달라고 드립치게."

"뭐?"

"후우, 그보다 어쩌지....."

그냥 죽이고 시체는 적당히 처리한 다음에 다른 놈, 아니 년을 골라? 아니면  여기서 다 불때까지 고문해 볼까?

둘 다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또 하나 능력자가 사라졌다면 다른 능력자들이 호타루처럼 나돌아 다닐 리가, 불 때까지 고문한다면 인간들이 찾으러 와서 골치 아파질지도 모르고.

"......."

서우는 호타루를 슬쩍 내려다 보며 생각해 보았다. 피에 떡진 얼굴이 볼썽 사납지만.... 왠지 이렇게 보니 눈에 익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까.. 서우는 호타루의 얼굴을 내려다 보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여유를 발휘했다.

"미친놈아, 담뱃재!!"

"......누구랑 좀 닮았는데."

"아오, 악!"

서우는 잠시 멈칫하고, 여전히 호타루를 제압한 상태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누구랑 정말 닮았다. 남자 새끼인데도 닮았다. 닮았다...... 누구지? 한국에서 알던 사람들인가, 아니. 아니다. 일본에서 본 사람이다. 정확히는 여자. 여자.... 유리 유우리 에리 나나 나미 아키오 츠부미 사쿠라 모모.......

아아, 그래- 소라!

*

============================ 작품 후기 ============================

호타루가 사용한 총기는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 10권에 나오는 티멘자르군이 사용한 나이프 위장 피스톨을 보고 따라 했습니다. 실제로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아마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