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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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vs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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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그냥 소라만 슉, 데려올 줄 알았더니 꽤나 늦다. 호타루는 서우가 나간 뒤에 당연하게도 계속 그 아크릴 통 안에 앉아 있었다.

그 좁은 안에서 앉는 것밖에 마땅히 할 것이 없기도 하고... 사쿠라는 심심하지 않느냐며 호타루의 앞에 영화를 틀어 주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그런 걸 볼 거라고 생각해? 식으로 나가던 호타루도 너무 심심한 나머지 은근슬쩍 커다란 화면에 떠오른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으...아응. 아아아아악!>

<후후후, 겨우 이 정도로 가는 건가? 이거이거 이래서야..>

<흐아아앙 으아앙허으엉, 안 돼. 더 이상 그러면 가 버렷.......>

쑤컥쑤컥쑤컥! 쑤커어어억!

<그래, 가 버리라고. 허락해 주지 후후후후후훗!> 

<지옥으로 가버려어어어엇!>

<큭... 정의는 승.리.한.다.>

"뭐야, 이거... 왜 쓸데없이 감동적인 건데....." 

게다가 영화도 재밌어서 상당히 집중하고 있는데... 마악 음식을 들고온 사쿠라와 눈이 마주쳤다.

"후후훗♡ 귀여우셔라."

밥을 넣어주러 온 사쿠라는 영화를 보지 않겠다며 등을 돌리고 있던 호타루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귀엽게 웃었다. 호타루는 저도 모르게 쑥쓰러워져서 얼굴을 화악 붉혔지만 도망칠 수도 없고, 그냥 고개를 확 돌리자 사쿠라는 주머니에 있던 립스틱을 꺼냈다. 그리고는 아크릴판 안에 하트를 연달아 그려주었다. 

"아크릴 판이 너무 심심해 보여서요. 이렇게 하니까 예쁘지 않나요? 헤헷."

그리고는 다시 화사하게 웃는 사쿠라,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다가 호타루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도 그 자식 여자냐?"

"예? 아, 뭐....... 그.. 그렇겠죠? 그럼요!"

"....."

얼굴을 복숭아 빛으로 확 물들인 사쿠라는 쑥쓰럽다는 듯이 아크릴 판을 팡, 치면서 몸을 베베 꼬았다. 하지만 좋아 미치겠다는 표정인 것이 마치 최고의 칭찬을 들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체 그 새끼는 여자가 몇이야? 거기에 유우리가 그렇게 전부 다 불어 버릴 정도면 아예 굴복시켰다는 이야기인데.... 호타루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왜 누나는 이딴 녀석을 좋아해서, 현실 세계에서 하렘을 구축하겠다는 거 아니야, 이거? 그 숫자나 파악하자 싶어 호타루는 사쿠라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혹시.."

"네?"

".....너 말고 또 있냐? 그런 건 아니지?"

"우후후. 서우님이 부러우세요?"

"그냥 몇 명이나 있나 궁금해서 그런다! 누나가 그 새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 그렇군요. 잠시만요. 제가 아는 것만 해도....."

"......!"

"저, 호타루님의 누나인 소라님. 에리님. 유리님 모모님 나나님 나미님 아키오님 유우리 씨... 그리고 츠부미..... 아아, 츠부미는 넣어주기엔 아직이네요."

사쿠라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호타루는 멍하니 물었다. 좋아하는 거 아니야? 사쿠라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질문에 사쿠라의 대답은 실로 장관이었다. 정말인지 태평양 같은 멘탈!

"좋은 건 공유해야죠! 헤헷."

"공유요?"

"예, 서우님 같은 좋은 분을 어떠게 저 혼자 독식 하겠어요, 모두랑 나눠야죠. 혼자 먹으면 배탈납니다."

"....이 무슨 토렌트 같은 여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자료를 나누어주는 토렌트 같은 마음 씀씀이의 여자, 정말인지 남자들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토렌트라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가 없었다. 너무 프리한 마음 씀씀이에 호타루는 눈앞이 뿌얘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떻게 이런 여자가 있을 수가.... 호타루는 흐릿한 시야를 바로 잡으려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사쿠라는 이내 호타루에게 식사를 넣어주고, 다른 영화를 틀어주며 밖으로 나갔고 호타루는 그제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뒤 사태를 파악했다.

서우에게는 누나 마고도 여자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이거 뭐 석유왕이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부인 중 하나라니? 하, 하. 호타루는 웃음을 터뜨리다가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현실을 직시했다.

언제쯤 소라는 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사쿠라가 넣어준 밥을 먹으면서 호타루는 통 안을 발로 뻥뻥, 차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게 부숴지면 소라를 데리고 도망쳐서, 부모님한테 투척하면 될 일인데...... 아버지 새어머니 보시오, 누나가 정신이 나갔소. 남자한테 미쳤단 말이오.

"아오, 시발. 좀 열려라. 열려! 열려라 참깨! 아우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서우가 말하기를 제 와이어로도 자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할 정도였으니.. 게다가 제 몸이 들어 있는 통 안은 두 겹으로 만들어져, 발로 차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체중을  실거나 가속도를 실는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런 좁은 통 안에서는...

"개 빡치네."

어림도 없다. 결국 호타루는 전에도 그랬듯이 발차기를 멈췄다. 그리고는 통 안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문을 막 열고 들어온 것은 누나, 아카이 소라였다. 

"소라 누나!"

"호타루!"

방 안으로 들어온 소라는 호타루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여기저기 살펴 보았다. 

"어디,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어...... 뭐."

"그래, 다행이다.."

없어 보이오? 동생이 이런 통에 갇혀 있다오, 호타루는 조금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소라를 쳐다 보았다. 왜 하필이면 맞아도 저런 새끼랑 눈이 맞은 걸까, 제 누나의 취향을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겉은 번지르르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런 미친놈인걸. 게다가 소라를  자기 여자 중에 하나로 생각하는 놈이었다.

'돌겠다, 이걸 어쩌냐...'

여기서 서우가 그런 놈이라고 이야기 해 볼까, 하지만 이야기 한다고 해도 딱히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동생이 이렇게 되었는데 우익 성향을 가진 소라가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게다가 저 놈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호타루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새끼가 누나한테 뭐라고 했어?"

"...그게, 너를 잘 설득해 달라구....."

호타루에게 찔리긴 하는지 소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호타루는 짜증스레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누나, 난 군인이야. 정부 소속의 능력자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기밀을 저 녀석에게 말하라고? 이제까지 우리 가족이 호의호식한 이유도 알잖아. 게다가 누나, 저 인간... 유우리까지 납치했어. 2 능력자 유우리! 게다가..... 누나 말고도 여자가 있다고, 같이 잠깐 들어 왔던 여자 있지? 그 여자도..."

"......"

"그냥 무시히메만 있는 위치만 말하면 된다고 해도 거기서 저 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게다가 누나는 한국이라면 질색했잖아!"

스스로 답을 내린 것이었지만 다시 소라에게 물어 보았다. 소라가 깨닫기를 바라서, 하지만 소라는 침울한 표정으로 앞에 앉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좋은 걸....."

"아오!! 왜 하필 그놈이야... 왜!.... 아, 아 그래. 맞다! 누나 아이돌 좋아하지 않아? 나 이런저런 연줄 좀 있는데 거기에 연락해서 싸바싸바하면 그쪽 소개시켜줄 수 있거든? 걔넨 어때! 누나가 귀엽다고 했던 아이돌도 내가 소개시켜줄 수 있다구!"

"......."

"누나아아아아.....!"

제 누나가 이런 사람이었던가? 새침데기 같고 할 말을 딱딱 하는 사람이었는데, 물에 푼 지점토처럼 물렁물렁해진 것이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소라는 눈만 슬쩍 올리면서 호타루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호타루, 서우 씨는 정말 일본 정부에 대해 원한이 없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있는 곳만 네가 말해주면.."

"......."

"그럼 너도 풀어주신다고 했어. 호타루.. 안될까?"

"누나."

"어차피 네가 이야기한 건 모를 거야. 서우님이.... 그러니까, 그 유우리라는 여자가 이야기한 걸로 전부 넘겨 주신다고... 그런다고 그러셨거든?"

"내가 말하지 않은 걸로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야, 이건."

"호타루......."

소라는 계속 안 되냐는 듯한 눈으로 호타루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윽."

"안 돼?"

.......호타루는 누나에게 심각하게 약했다. 일단 호타루는 소라와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했다.

0)녀석의 말로는 일본 정부에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한다.       

1)여기서 자력으로는 나갈 수 없다.

2)소라는 서우를 좋아한다. 

3)서우는 소라를 어느 정도는 좋아해서 자기를 죽이지 않았다. 그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자력으로는 나갈 수 없다.

'이 빌어먹을 통, 이제 아크릴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쪼그라들 것 같다.'

자력으로는 나갈 수 없다. 이 부분 때문에 호타루는 다시금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내 소라는 방 밖으로 나갔고, 호타루는 다른 방법이 없나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한편 방 밖에서는 서우가 소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났어요? 뭐라고 해요?"

자리에 앉아 있던 서우는 마악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라에게로 걸어갔다. 살짝 시무룩한 표정이던 소라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예에... 잘 말한 것 같아요. 서우님, 이 일만 끝나면 호타루는 풀어주실 거죠?"

서우는 뭐 그런 시덥잖은 소리른 하냐는 듯, 픽 웃으며 소라의 부들부들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소라가 올려다 본 서우의 얼굴에는 나름대로 자기 손 안의 여자에게만 보여주는 미소가 있었다.

"잡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요, 뭐.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원한은 전혀 없어요. 기껏해야 후지야마 그 놈 정도."

"네....."

그렇게 말하는 서우에게서는 왠지 모르게 후지야마에 대한 깊은 원한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후지야마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불쌍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우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 소라의 뒷모습을 보던 서우는 가볍게 기지개를 쭈욱 피고는 호타루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흐음."

왠지 눈치를 슬슬 보니, 말하기로 결심한 것 같은 표정이다. 서우는 씨익 웃으며 그 앞에 앉았다.

"잘 생각했어, 처남."

"한 번만 더 그 처남 드립치면 그냥 쌩까는 수가 있어."

"그래? 그럼 처제."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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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오늘은 일찍 자려고 에반게리온 Q를 샀지요. 내일 아침 조조로 예약 아이템을 보러 가기 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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