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8 / 0198 ----------------------------------------------
능력자vs능력자
"그래서, 처제 에리는 어디 있니?"
"처제라고 하지 말라고."
"처남이라고만 하지 말라며?"
"그거나 그거나 그게 그거잖아!"
"그래?"
"그래!!"
호타루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낄낄 웃던 서우는 잠시 후에 표정을 묘하게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호타루도 조금은 긴장하며 서우를 올려다 보았다.
"처제와 금단의 사랑을 저지르기 전에 빨리 말해. 나 한가하지가 않다."
"...?!"
쿵쿵쿵쿵. 말하면서 아크릴 판을 서우가 미친듯이 두드렸다.
"어서 말하랑께."
"시발, 진짜 미친놈."
그 말에 호타루는 정당방위의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면서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력으로 이 안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고. 주어진 선택지도 너무나도 적었다. 서우에게 협력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지만..... 하지만..
'정말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는 건가....... 젠장, 이래서야 유우리랑 똑같은 꼴이잖아?'
호타루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어 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제 2 능력자인 유우리... 일본 정부의 보복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녀를 겁도 없이 능욕한 녀석이니, 자신에게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누나 어쩌고 저쩌고는 한다지만.....
그것도 믿을 수 있는 소리인지 개소리인지 모르겠고..... 결국 이리 되나 저리 되나 답은 비슷했다. 호타루는 별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 다른 무시히메들이랑은 다르게 도쿄 지상기지에 있어. 어디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지만 지하에 숨겨 놓았다고 들었어."
"도쿄 지상기지?"
"연구본부의 중앙에 있는 곳이지. 저번에 테러한 연구소에서 20km 정도 떨어져 있어, 하지만 그 전의 연구소랑은 비교도 안 돼. 저번의 폭탄테러로는 어림도 없을 걸."
"흠."
"......누나가 널 좋아하니까..."
"어?"
이 부분이 굉장히 빡치는지 호타루는 말하기를 껄끄러워 하다가 겨우겨우 말을 뱉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그냥 말해주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포기해, 방비 시설도 시설이지만 거기에는 1 능력자가 있어. 아니 있을 거야. 지금이라면."
"1 능력자? 일본의....?"
"그래. 그 1 능력자, 너희 나라에도 제일 강한 능력자가 있을 거 아냐."
"뭐 있겠지?"
호타루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자기 나라 능력자를 보고도 그냥 쌩까버렸던 서우였기에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냐는 듯 그를 내려다 보았다. 호타루는 여전히 짜증난다는 듯이 한숨을 쉬다가 말을 이었다.
"하네다는 능력자 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1 능력자에게 도움을 청하겠다고 했어. 정부는 당연히 1 능력자가 나서는 걸 승인하겠지, 그러니까 1 능력자가 나설 거야.... 1 능력자는 무적이야."
"뭐?"
"1능력자랑 싸운 건 나랑 유우리정도, 하지만 나는 제대로 얼굴도 못 보고 순식간에 당했어. 유우리도 비슷할 걸. 난 기억도 안 나, 방에 들어가서 이제 시작합니다- 소리만 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공중에 둥 떠올라 있었어. 그리고는 갑자기 여기서 종료 하자고, 내가 졌다고만 발표 하더라. 그게 끝이었어. 난 뭐가 뭔지도 몰랐다고."
"유우리처럼 투명 촉수에 잡힌 건가?"
"그거면 느끼거나 감촉이라도 있지. 아무것도 없었어. 그냥 그 능력으로 날 마음대로 다룬 거야."
"무슨 능력인지도 모르는 건가? 구라 안 치고?"
"몰라, 1 능력자에 대한 건 기밀이야. 능력자들도 제대로 몰라."
"그럼 이 부분은 유우리에게 물어봐야 겠군."
".....그러든가."
그럼 호타루에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인가, 도쿄 지상기지의 지하..... 서우는 입술을 삐죽이더니, 옆에 있던 버튼을 그대로 눌렀다.
"엇?"
"축, 석방. 두부줄까?"
순식간에 강화 아크릴 통은 쭉 밑으로 내려가 버렸고, 호타루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호타루는 처음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눈만 꿈뻑이다가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불자마자 이렇게 빨리 풀어준 건가? 저에게 한번 졌다고는 해도 이쪽은 능력자다. 그때처럼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면 이길수도, 작정하고 급소만 공격하면 큰 상처를 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세로 나온다고? 허- 호타루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너 가고 싶은대로 가라. 참, 소라는 3층에 있다."
"너 이래도 되는 거냐?"
"너 시스콤 쩔잖아, 내가 죽으면 너희 누나는 평생 너랑 얼굴도 안볼 걸? 아무튼 당분간은 그냥 이 안에 있으라고? 넌 그냥, 나한테 끌려온 뒤에 계속 기절해서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라."
"잠깐만, 뭐? 소, 소라 누나가 너 하나 가지고......."
하지만 호타루는 뒷 말을 잇지 못했다. 소라의 그 표정, 그 말투....... 게다가 우익 성향인 소라가 어머니와 같은 한국인을 좋아할 정도라면 이미 말이 다 나온 것이었다. 호타루가 입을 다물자 서우는 낄낄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뒤 이어 풀 죽은 호타루가 밖으로 나와 소라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서우는 일단 유우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무적의 1 능력자라....... 물론 서우의 예상대로 유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우리도 하는 말은 같았다. '무적'
"...그 애는 호타루의 말대로 무적이에요. 서우님은... 그게, 맞서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이길 수가 없는 상대예요."
잠깐만? 그 말에서 뭐가 이질감을 느낀 서우는 유우리의 말을 끊었다.
"그 애? 잠깐, 나는 1 능력자가 남자라고 들었는데요, 뉴스 같은 것에서....."
"그게, 그 애가 너무 어려서 일단은 숨기고 있는 거예요. 게다가 정신연령도 어려서... 병이 있거든요. 열 살 정도 어린 상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여자아이인데... 열 다섯 밖에 되지 않았어요. 정신연령을 다섯 살 정도고요."
.....아니 이 무슨.
일본은 바퀴벌레 모에화 전범국가 모에화 독재자 모에화에 이어 최고의 능력자 모에화, 그것도 실존 버젼을 이루어 냈다는 말인가. 서우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의미로 감탄하다가 고개를 마구 젓고 정신을 차렸다.
"잠깐, 그런 여자애가 1 능력자라고요?"
"예에..... 하, 하지만... 강해요. 굉장히... 그래서 저도 손발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했고, 그 애의 능력은 염력이에요."
"염력...?"
"게다가 그 아이의 능력은 자기 구역을 지정할 수가 있어서, 그 구역 안에서는 어떤 물리적 힘도 정지해요. 그 안에서 1 능력자... 마리코는 신이나 마찬가지예요."
"하?"
산 넘어 산이다. 염력? 염력이라 하니까 왠지 간소화 된 느낌이지만 이건 그냥 신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게다가 물리적 능력도 구역 안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니... 서우는 멍해질 정도였다. 아무리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냥 서우를 번쩍 들어서 탈탈 털어버리면 그만이니..
"허어, 싸울 의지마저 사라지는 스펙이네요, 그거."
"그 애한테는 약점이 없어요....... 그냥, 저어..."
조심스레 유우리는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서우는 그 말을 막듯이 유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잘 피하면 되겠죠. 꼭 정면으로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다섯 살 정신연령이라는 게 참 다른 의미로 모에.... 아닙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이만 쉬세요."
그래, 딱히 싸울 필요는 없는 거다.
그냥 적당히 상대하다가 에리만 구해오면 된다. 유우리, 하네다와 싸웠을 때처럼 이성을 잃고 싸우다가 중요한 것을 잃는 것은 질색이었다. 하지만 서우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가장 강한 적을 만났다는 것에 대한 쾌감이 기묘하게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이대로 가다간 꼼작없이 그날을 반복할 것 같았다. 서우의 마음속에 그 욕구는 성욕보다도 강하고 진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그것에 질질 끌려간다는 것을, 서우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뭔가............
"........"
"어...?"
문고리를 잡았던 서우는 다시 뒤로 돌았다. 평소처럼 목줄에 묶여 있던 유우리는 갑자기 저를 뒤 돌아 보는 서우를 보며 움찔, 떨었다. 서우는 다시 그 앞으로 다가갔다.
"서.. 서우님....?"
"그 마리코에 대한 이야기, 있는대로 좀 해줄래요? 아는 것 전부. 아무 거라도 좋으니까."
*
마리코는 옆에서 길다란 머리를 예쁘게 손질해 묶어주는 손길에 가만가만 눈을 감고 있었다. 참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아침에 온 배송으로 예쁜 드레스도 잔뜩 선물 받았으며 인형도, 장난감도 또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다. 요즘 따라 성격이 사나워진 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털이 복실복실한 귀여운 개로 바뀌었다. 그 외에도....
"후움."
마리코는 손톱을 예쁘게 꾸민 큐빅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손에 낀 화려한 반지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 아이 같은 몸짓과는 다르게 열 다섯 아이의 손은 꽤나 성숙했다. 소녀는 다시금 자기 손을 이리저리 둘러 보다가 머리를 손질해주는 사람의 목소리에 들리지 않게 푹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이런 반짝이는 것에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분홍색 예쁜 프릴이 달린 풍성한 드레스, 번쩍이는 보석들..... 지겨웠다.
마리코는 조금 다른 것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늘 유모가 얼굴에 하고 다니던 화장이었다.
얼굴을 하얗고 깨끗하게 만들고, 볼을 발갛게 만든 다음 눈을 또렷하게 만들고 얼굴에 반짝이는 가루를 발랐다.
그것이 마리코에게는 마냥 신기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 일이 하고 싶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유모는 마리코는 아직 하지 않아도 된다며- 마리코는 하지 않아도 예쁘다는 둥의 말을 하며 저에게 화장을 시켜주지 않았다.
'좋은 건 유모만 하려구 그러는 거야, 마리코는 안 시켜주려구....'
그것이 마리코는 못내 화가났다. 하지만 이번에 시키는 일을 하기만 하면 시켜 주겠다니? 마리코는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서 언제인가 들었던 피아노 소리를 흥얼흥얼 거리며 기뻐했다. 하지만 마리코는 자기 자신이 뭔가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쁜 드레스, 화려한 보석, 귀엽게 땋은 머리와 곱게한 화장... 뭔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에쁘게 꾸민다고 해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계속 그렇게 어린 마리코의 마음에 남아 묘한 무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마리코는 '부족하다'가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그저 거울 앞에서 화장을 막 끝내고 예뻐진 자기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원래도 예쁜 얼굴에 화장을 더하니 그 이상 예쁠 수가 없었다.
"예쁘죠, 마리코 예쁘죠?"
"예에, 물론이죠. 마리코님이 제일 예쁘세요!"
"후힛!"
15살. 외모를 꾸미며 사랑을 시작해 볼 나이에 정신연령을 다섯 살, 그것이 기묘하게 마리코의 안에서 섞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마리코는 신이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씩 웃었다.
누군가 속에서 가슴을 두드리는 것마냥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있었다!
"온다. 와요."
"예?"
"능력자가 오고 있어요, 처음 느껴 보는 능력자. 흐히, 히히히. 빨리와라. 빨리. 그래야 마리코가 화장도 하고 놀 수 있어."
마리코는 기쁘다는 듯 무릎을 팡팡 내리치다가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뭔가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아이의 표정이지만 옆의 유모는 마리코의 힘을 알고 있기에 긴장하여 물러났다. 마리코는 여전히 자리에서 뛰고 있었다.
"와하하하, 와요! 올 거라구요! 바로 올 거예요! 신난다!"
이미 마리코의 주변은 모두 마리코의 영역, 가볍게 뛰어오르는 마리코는 한 뼘 정도 하늘로 떠올랐고, 점점 다가오는 서우를 느끼며 기뻐하고 있었다.
순수한 아이의 정신상태라고는 하나 그녀 또한 능력자, 능력자끼리의 투쟁 본능이 마리코의 몸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까지 정부의 명령으로 수백 수천의 돌연변이와 좀비를 찢어 죽인 마리코, 마리코의 머릿속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서우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와라아아아!"
============================ 작품 후기 ============================
에반게리온 Q를 봤습니다.
카오루, 그는 좋은 게이였습니다.
[나는 널 위해서 태어난 것일지도 몰라.]
가
[나는 널 위해서 태어났어.] 로 바뀌는 게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보세요, 두 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