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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vs능력자
"서우님..."
"예, 유우리 씨."
유우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입이 씰룩거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환희에 차서 웃고 있다는 걸..... 유우리가 서우의 옆에 섰다. 하네다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리속에서 뭔가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안 돼....."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능력자로서 무언가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지.. 뭔가 복잡한 기분이 날카롭게 마음속을 스쳤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다음에 유우리가 취할 행동이 예상 되었다.
"...유우리님, 안 돼요.."
하네다에게 있어서 유우리는 우상이었다. 닮고 싶다고 몇 번이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우상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그 사진은 아무래도 좋았다 진짜 눈앞에 보이는 유우리가 그렇게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그러니, 제발. 하네다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가슴속에서 차오르고 있는 그 공포에 쫒기면서,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유우리님!"
하네다의 외침이 넓은 회장에 공허하게 울렸다. 서우는 그제야 제 옆에 서 있던 유우리를 올려다 보았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겠죠?"
".....예."
유우리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유우리는 서우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하네다와 대표들은 사색이 되어,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오직 그 자리에서 서우만이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이 유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리고 유우리는-
"앞으로도... 서우님이, 사육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우의 민감한 코끝에, 유우리의 다리가 축축히 젖어가는 냄새가 맡아졌다. 그리고 이미 환희로 반쯤 풀린 유우리의 얼굴... 그것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서우는 손을 뻗어 유우리의 발그레 하게 상기된 뺨을 쓰다듬었다. 분명히 축축히 젖었을 유우리의 아래처럼, 뺨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서우의 입가에 절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잘했어요. 잘했어요, 유우리 씨."
그 순간 유우리가 올려다 본 서우는, 예전에 유우리를 처음으로 굴복 시켰을 때처럼 그렇게 웃고 있었다. 잔인하고 친절하게.. 완벽한 주인의 모습으로.
그렇게 유우리는 충성심을 입증함으로써, 더욱 더 완벽한 개가 되었다. 주인에 대한 충섬심을 완전히 입증한 개는 사랑받을 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었고, 자질구레한 목줄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유우리는 스스로 목걸이를 목에 채웠고, 서우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유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길들여진 개에게 체벌은 필요 없었다. 그저, 버릇이 나빠지면 간단히 그에 따른, 지극히 적당한 체벌만. 그것 뿐이다.
그럼 이제 이곳에서 할 일은 없겠지, 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대표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아직도 할 말이 있습니까?"
"...큰 폐라는 것을 알지만, 이쪽의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방금 전의 일로 유우리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나 보지? 서우는 말을 건 상대의 머리 회전이 빨라 꽤 마음에 들었다. 그 유우리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서우에게 충성했다는 것에 다른 이들은 정신도 못 차리는데, 그걸 빌미로 동정심을 유발해 이쪽에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서우는 그 부탁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재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승자의 여유로 한번 들어나 보자는 마음을 가졌지만 부러 장난치듯 말을 돌렸다.
"요구는 그것으로 끝이었을 텐데요?"
"예, 그렇지만.. 그게.... 어........ 마리코님이...."
"....마리코요?"
왠 뜬금없이 마리코? 기껏해야 며칠에 한 번은 유우리를 이쪽으로 보내달라 어쩌고 자시고 하는 부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서우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네다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간 뒤, 문을 닫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게요.. 저, 만약 서우님이 시간이 되신다면.. 부디 그 시간을 할애해 마리코님을 만나 주시지 않겠습니까?"
왠지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입술을 사리 물면서 하는 것만 같았다.
이후 말하는 내용인 즉슨, 마리코가 서우와 만나고 싶다며 발광하고 있다. 연구소의 지배자, 전설의 출현! 마리코님이 미쳐 날 뛰고 있으니 와서 제압... 아니, 놀아달라는 말이었다. 도쿄 안에 있는 아직도... 아니 마리코를 위해 이따금 운행하는 놀이공원에서. 서우는 그가 주는 약도를 보면서 픽 웃었다.
"내일 여기로 말이죠.. 놀이공원이라...."
"부탁 드립니다. 마리코님이 난리셔서...... 부탁 드립니다, 꼭!"
일본 특유의 부탁 자세, 뭐라고 하더라. 아무튼 땅바닥에 머리라도 박을 기세였다. 정말 끔찍하게 시달렸나 보군? 하긴, 절대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마리코니까. 골치도 엄청 썩었겠지, 유우리처럼 이성적이거나 나라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흐으음...”
...뭐, 딱히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제 당분간은 할 일도 없는데다 마리코도 귀엽고, 애 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농익은 타입을 선호하는 서우로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쪽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일을 이렇게 조용히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마리코의 덕이었다.
...마리코가 이쪽한테 반해준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린 것이었지. 그걸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었다. 서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약도는 돌려 주었다. 이쪽에서 차 타고 가면 그만인데 뭔 놈의 약도. 서우가 긍정하자 그는 그나마 유우리에 대한 일로 받은 충격을 추스르고는 밖으로 나갔다.
서우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엘레베이터를 타고는 먼저 유우리가 들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에리에게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에리는 지금 검사 중이고, 왜 의식을 찾지 못하는지 사쿠라 밑에 있던 의사들이 열심히 알아 보는 중이었기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향할 곳은 유우리가 있는 곳. 충성을 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주어야 겠지, 서우는 나른한 몸을 풀면서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어....? 츠부미?"
엘레베이터 문을 닫기 전에, 누굴 본 것 같다. 작은 그림자.. 교단에 저런 작은 여자 아이가 있을 리 없으니 츠부미일 텐데.. 서우는 잠시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뭐, 여기에 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서우는 눈을 감으며 서늘한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유우리가 있는 방으로 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그녀와 광란의 밤을 지새운 서우는 다음 날, 시간에 맞추어 차에 올랐다.
이미 사쿠라가 들은 것이 있는지, 운전기사는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놀이공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서우는 넓따란 리무진에서 다리를 쭈욱 피고 앉아서는, 심할정도로 격렬했던[!] 어젯 밤을 느리게 반추했다. 그러다가 문득 세상 앞 일 참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인지 가까운 일 무엇 하나 알 수가 없다.
일본에서 온 이후로 지금까지의 일.
소라를 만났고, 함께 대피소에 갔다가 에리, 유리, 나나, 모모를 만났다. 그리고 함께 도쿄에 왔다가, 귀찮은 이들에게 쫒겨 아키오와 나미를 만났고...
"........."
나미가 어찌 보면 최고의 공기 퀸일지도 모르겠다. 서우는 씁쓸해 하며 회상을 계속했다. 거기서 또 치이다가 에리, 츠부미와 다시 만났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여기까지 흘러와, 이렇게 마리코와 데이트라니. 서우는 전보다 훨씬 예쁘게 하고 나타난 마리코를 보며 짐짓 놀랐다. 어린 얼굴인데도 연한 화장을 하고 왔는데. 적당히 수수하게 하고 왔는데도 왠지 모르게 살짝 어른스럽게 보여 더 예뻐 보였다.
"아저씨, 아저씨!"
"얽!"
영역을 쓰면서 서우에게 다가왔는지 서우는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마리코의 돌진을 받았고, 그것은 상당히 아프게 다가왔다. 마리코는 서우를 안고는 마구 가슴에 얼굴을 부비면서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마치 앵무새가 기분 좋을 때처럼 자리에서 방방 뛰던 마리코는 서우의 얼굴을 잡아 당기고는 볼에 마구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 작은 손은 그의 목을 꼭 끌어 안고 있었다. 이런 스킨쉽이 얼마나 진한 것인지도 모르고서.
“..그런데 마리코.”
“네!”
“아저씨 말고 다른 건 안될까?”
오지쨩-[아저씨] 하는 발음이 나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오니쨩[오빠]가 좀 더 좋은데, 서우가 그렇게 말하며 이참에 제대로 말하자고 생각해서 마리코에게 강하게 말하자, 아이는 갑자기 정색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싫어요. 그렇게 하면 츠부미랑 캐릭터가 겹치잖아요. 지금도 가뜩이나 겹치는데 1 능력자 설정으로 커버치고 있다고요. 제 입장과 독자들 입장 좀 생각해 주시죠.”
“뭐?”
“네?”
“...너 방금.”
“뭐가요....? 헤헷.”
아니 얘가 지금 무슨 말을....? 서우가 당황하자, 마리코는 다시금 서우의 양 볼에 입을 쪽쪽 맞추기 시작했다. 서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그냥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저씨라고 부를래요,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좋아요.”
“........모르겠다. 마음대로 해.”
“네! 후힛!”
그렇게 다시 연달아 볼에 쪽쪽, 언뜻 입술에도 닿은 것 같은데...아이 특유의 촉촉하고 말랑한 입술이 제 뺨에 마구 뽀뽀를 하기 시작하니 이게, 기분이 상당히 묘한 것이.
.....괜찮은데? 마리코 아저씨는 시방 위험한 짐승...
잠시 서우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일단 마리코에게 이것 좀 풀어달라고 말했다. 그제야 마리코는 깜짝 놀라 영역을 풀고 서우를 공중에서 내려 주었다. 정말인지, 만약 마리코가 이상한 쪽으로 남자에게 집착하게 된다면... 그 남자는...........
'우후후후훗♡ ㅇㅇ 군~ 이제 절대로 안 놓.아.줄. 거.야. 후훗, 흐히히힛.... 히힛!'
‘으헝 마리코 야메로! 이런 얀데레 짓은 모 야메룽다!’
‘ㅇㅇ군은 계속 마리코만의 것이야. 마리코가 평생 사랑해줄게, 후훗. 이미 너의 소꿉친구류 여자나 클래스 메이트류 선도부장이나 담임 선생님 학생회장류 동아리의 건방진년 등등의 여자들은 마리코가 전부 썰어 버렸다구. 그게 얀데레의 상식이니까, 우후후후훗! 이젠 마리코가 직접 만든 요리를 많이 많이 먹여줄게엣!’
‘흥엉이!!’
‘자아- 아 해. ㅇㅇ군!’
.....뭐, 이런 것처럼 그냥 화끈한 얀데레물 하나 찍는 거지. <<~진 얀데레물~ 그녀가 나에게 무시무시할 정도로 집착해서 살 수가 없어!>>- by. 마리코 편. 같은 거... 서우는 그게 저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니 정신 상태가 어린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어장관리만 잘하고 잘 길들이면 컸을 때 기대할 법도 했다.
.....이미 충분히 많은데 하나가 더 늘었군. 하지만 이런 정예부대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생각하며 서우는 큭큭 웃었다. 하렘 어장관리라니. 좋지 아니한가.
거기에 좀비 사태로 인해 그렇게 강하던 미국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다른 나라와 비슷지고, 미친듯이 주변국을 집어 삼키며 크기를 키우던 중국도 망해가는 판에, 이렇게 도쿄에 남아 있는 유일한 놀이공원에서 열 일곱 살짜리 여자애와 데이트라니.
놀이공원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왠만한 부자나 정치가들도 다른 사람들 눈이 신경쓰여 누리지 못할 사치였다.
...가만, 열 일곱.
"......."
마리코는 저 얼굴에 열 일곱이라고 한다. 열 다섯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사실은 열 일곱이라는데.. 끽해야 갓 초등학교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얼굴에... 저 얼굴에 일본으로 치면 내년에 성년이라, 아니. 내년이라고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우는 보송보송한 마리코의 얼굴을 슥 훑어 보았다. 내리쬐는 빛으로 인해 언뜻 언뜻 마리코의 얼굴을 덮은 보드라운 솜털이 보였다. 정신 상태가 어리면 얼굴은 같이 어려지는 건가. 왜 자신을 젊게 생각하면 정말 잘 늙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서우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아래로 내려오는 롤러코스터의 안전바를 내렸다. 당연하게도 롤러코스터는 서우에게 있어 무섭지 않았다. 해서 당연히 마리코에게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더니, 롤러코스터 특유의 두. 두. 두두. 따닥. 닥- 하는 기묘한 소리가 드릴 때부터 표정이 기대와 공포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꺄아아아----"
서우는 롤러코스터의 옆자리에 앉아 비명을 지르는 마리코를 보며 픽 웃었다. 제 능력이면 이것보다 더 빨리 날아다닐 수도 있으면서 이런 것에 즐겁다고 꺅꺅거리는 모습이라니? 물론 서우도 나름대로 즐거웠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꽤나 빠른 것이 나쁘지 않았고, 어지럽게 도는 놀이기구나 높이까지 올라가는 관람차도 탈만했다.
거기에 지금 이 놀이공원에 있는 건 마리코와 서우, 그리고 마리코에게 딸린 유모와 비서 뿐이어서 기다림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놀이기구를 타고 놀던 서우와 마리코는 적당한 곳에서 호화로운 점심을 먹게 되었다.
마리코와 서우의 식성은 상당히 비슷해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없었다. 서우는 앞에 있던 음식을 입에 넣다가 귀엽게 볼을 우물거리고 있는 마리코를 쳐다 보았다.
최근 들어서는 가장 느긋하고 편안한 하루였다. 서우는 창 밖으로 나른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님들.
서우가 한국에 '놀러가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어떤 여자애 데려갈까요?
참고로 유리와 모모는 세트메뉴 구성이니 함께 투표해 주시고 덧글로 투표 부탁 드립니다!
ㅇㅇ 아예 가는 게 아니라 놀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