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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너..?"
서우는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 나름대로 같이 다니던 녀석이 아니었던가? 물론 졸업을 한 뒤에도 근근히 연락을 했지만, 좀비 사태 이후로 연락이 완전히 끊겼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서우와 이것저것 공통점이 있어, 꽤 친했던 축에 속했던 녀석이었다. 간만에 이렇게 만나게 되니, 나름대로 반가운 마음이 든다고 할까.
"넌 저 밑에 지방에 살지 않았냐? 와, 살아 있었구나! 질긴 새끼!"
"너는 어떻게 살아 있었는데?"
"우리 집이 좀 살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다 보니 서울 와서 살고 있다."
"아아..."
그랬었지, PC방 가면 이 녀석이 자주 쐈던 것을 기억하며 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박영재는 서우가 능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뭐 아무렴 어떤가. 서우는 픽 웃다가, 박영재를 스윽 훑어 보았다. 그러다가 코끝에 풍기는 술냄새를 맡았다. 어디서 한 잔 하고 왔나.. 아니, 하고 있는 것 같다.
"술 좀 마시는 걸 보니, 여전히 살만한가 보다?"
"그렇게 술 냄새가 심하냐? 별로 안 마셨는데... 아무튼 원래 사는 놈이야 어딜 가서든 잘 살지. 그나저나 넌 뭐하냐? 너도 옷 좀 보니 그럭저럭 지내나 본데."
"잘 지내고야 있지."
"야야, 그럼 이 근처에 아직 운영하는 술집에서 애들이랑 마시고 있거든? 너도 가자. 다 고등학교 때 애들이야."
"그래?"
뭐, 가지 않을 이유도 없다. 옛날 생각도 나고..... 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재의 뒤를 따라 갔고, 지하에 있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시설도 꽤나 나쁘지 않은 것이, 역시 한국. 어느쪽은 굶어 죽어도 어느 쪽은 열심히 노는 법이지.
그러고 보면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서민은 야동도 마음대로 못 보게 해놓고, 고위관리들은 고급 성접대 받으며 노는 곳 오묘한 곳 아니었던가.
돈 많으면 한국보다 살기 편한 곳이 없지. 서우는 꽤나 호화로운 내부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야, 물 빼러 간다더니!"
술에 취했는지 빽! 하고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우는 그 목소리도 익숙함을 느꼈다. 이건 뭐 고교 동창회도 아니고, 동창회라 하기엔 인원수가 적지만 그 안에는 3명 정도의 남자들이 더 있었다. 서우는 낄낄 웃으며 그들을 쳐다 보았다.
"어, 최서우? 너 살아 있었냐?!"
"니 연락 안 되길래, 좀비한테 물려서 그냥 뒤진줄 알았다."
"남자새끼들만 있냐? 더럽게 칙칙하네. 여자 불러, 여자."
"미친놈아 여자가 어딨어, 남자만 있어도 고마운줄 알아야지."
서우는 정당방위의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주변을 쭉 둘러 보았다. 역시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었냐? 라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서우는 자리에 털썩 앉아서 수북하게 쌓인 맥주병 하나를 잡았다. 맥주 맛이 맛있기로 소문난 일본의 맥주나, 호텔의 비싼 양주만 먹다 보니 입이 고급이 되어, 살짝 거북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름대로 싸구려 맥주도 시원한 게 괜찮았다.
"넌 그 동안 어떻게 살았냐? 계속 서울에 있었어?"
"아니, 지방. 그러다가 어떻게 올라왔어."
딱히 능력자라는 걸 밝히기도 귀찮고, 어차피 다시 일본으로 갈 건데 말하기도 귀찮아서 서우는 그리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또 지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서우는 그제야 떠올렸다. 다들 더럽게 말 많은 새끼들이었다는 사실을. 서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낄낄거리며 다른 쪽으로 흘리고는 제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그때, 영재의 옆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던 수영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서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왜."
"맞다. 나 그러고 보니, 너 왜 졸업하고 사겼던 애 있잖아, 박소희."
"어?"
"기억 나냐?"
박소희라 하면, 서우가 20살 이후 처음으로 사귀었던 여자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서우의 마음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예나 그때나 서우는 짐승 같았고, 아니 그때는 지금보다 성격이 더 나빴다.
'...쪽팔리네.'
거기에 제가 생각해도 얼굴 외에는 딱히 볼 것도 없었으며 사람에게 무관심, 신경 써 주는 자상함 같은 것도 없고 기념일은 소희가 열심히 챙겨야, 아 오늘이 그날이군. 하고 지갑을 여는 정도. 생각해 보면 그 정도의 여자가 여자 친구라고 붙은 것도 신기하다고 서우는 생각하며, 소희에 대해 반추해 보았다.
[나 졸려.. 나중에.]
[..다 식어, 응? 먹고 자면 안 돼? 너 주려고 잔뜩 싸왔단 말야.]
[누가 하라고 했어? 나 잘 테니까, 네가 먹던가...]
[.........]
[그럼, 나 잔다.]
심지어 여자친구가 기껏 아침부터 와서 생일상 차려놨더니, 전날에 사냥 다녀와서 피로하다고 여자친구를 내버려두고 잠만 잤으니 뭐 말 다했지. 그 외에도 데이트 하기로 해 놓고 귀찮다고 안 나가기, 여자친구 집에 온다는데 귀찮아서 동물 시체 안 치우고 있다가 놀라서 기절하게 만든 적도 있었고, 연락두절은 옵션이었다.
그 외에도 수두룩 빽빽. 그래서 너랑 못 사귀겠다고 소희가 떠난 후에야 서우는 나름대로 후회를 했다. 후회라기 보다는 짜증이 더 섞여 있었지만.
[다신 너한테 연락 안할 거야.]
[그러던가 말던가.]
왠지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하고, 좀 그렇기도 하다. 서우는 구겨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 새끼는 마음 심란해지게 왜 그런 옛날 소리를 하고 난리야? 확 짜증이 났다.
"걔는 왜?"
"엊그제 가다가 걔 봤거든? 봤더니 요만한 여자애 데리고 다니더라. 여자애였는데... 아무튼 우리도..... 아, 징그러. 고등학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미친놈이 그런 시덥잖은 소리 하려고... 마시고 뒤져 버리라고 생각해, 서우는 수영의 잔에 위스키와 맥주를 이상하게 섞어 내밀었다. 그런 서우의 기행에 수영은 혀를 내둘렀지만, 그래도 술이 아까웠는지 꾸역꾸역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북하게 쌓인 술병이 바닥을 보여갈 즈음, 그들은 다 취해서 서서히 발음이 새어 나가기 시작하고, 말이 많아지는 둥 취한 사람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으음, 술이 단 것 같다. 누가 여기 설탕 넣었냐?"
개소리지만 서우는 술이 달다라는 말이, 술에서 아무런 맛이 안 난다는 말로 바뀌면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두고 도망치리라고 생각했다. 원래 술에서 아무런 맛이 안 난다는 녀석은, 거리에 내버려 두고 멀쩡한 녀석 혼자 돌아가는 게 예의 아니던가. 침몰하는 배에서 부상자는 남고, 건강한 사람은 구명보트에 타고 도망가는 것처럼.
거기에 서우가 고작 이 정도의 술에 취할 리가. 오히려 간에 기별도 안 간 느낌이어서 서우는 나머지 술을 입에 탁탁 털어 넣고 있었다. 그때였다. 술에 완전히 취해 말이 막 꼬이기 시작하는 수영이 핸드폰을 꺼냈다.
"야, 야. 이것봐라."
"응?"
"내 여자친구임. 히히. 예쁘지?"
"오. 쩐다......"
여자? 서우는 슬쩍 그 핸드폰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웃을 뻔하다가 겨우 웃음을 참았다. 여자가 궁하긴 하나 보다. 예전에는 지 얼굴 생각도 안하고 예쁜 여자만 찾던 새끼가... 쯧즈, 굶주림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군. 게다가 취해서 다른 녀석들도 슬슬 맛이 갔는지, 예쁘다며 극찬하기 시작했고, 서우만이 제 정신으로 그 핸드폰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것을 기점으로 술에 취했던 녀석들의 자랑질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그것도 무지하게 쓸데없는.
'새끼들이.. 자기 자랑 쩌네.'
얼마전에 자가용이 생겼네, 얼마전에 뭘 먹었녜, 소소하게 사진까지 찍어둔 것으로 인증하면서 시작되는 자랑질. 하지만 서우에게는 가소롭다 못해 우스울 뿐이었다.
"지랄, 이번에 우리집에 배신온 게 더 쩔거든? 기다려 봐. 사진 찍어 놨는데...."
"뭔 배신."
"배식, 병신아"
여자들은 간만에 만나면 가방과 반지, 그리고 성형으로 예뻐진 얼굴을 자랑한다더니 남자도 만만치 않다. 하긴, 좀비 사태에 서울에서 이렇게 자리 잡고 있는 녀석들이니 나름대로 부심 가질만 하겠지, 서우는 킥킥 웃었다. 이젠 배식이 나온 것까지 자랑하기에 이르다니.
하필이면 그들의 생활 수준은 다 거기에 거기여서, 딱히 자웅을 겨룰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홱, 고개를 돌려 서우에게로 타겟을 바꾸는 게 아닌가. 조용히 맥주를 비우고 있던 서우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넌 어떻게 사냐? 네가 소설 쓰던 소설 사이트, 치아라도 망했을 텐데."
"맞다. 너 글 써서 돈 벌었잖아, 그거 대박 꼴릿했는데."
"근데 거기도 망했으니 넌 뭐 먹고 사냐."
"뭐 그럭저럭."
소설 사이트인 치아라가 망하기도 전에 능력자가 될줄은 몰랐지. 세상 일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좀비 사태 터졌다길래 식량이 부족해져서 사냥하고 놀면서도 강제로 1일 1식하고 있었는데, 능력자가 될 줄이야.
"야, 너 혹시 할 거 없으면. 그 뭐냐. 군에서 배식 일 하는 거. 그거. 아버지가 자리 하나 남았다는데, 거기 끼워줄까? 준태 새끼도 거기서 일하는데. 내 말 한 마디면 그냥 바로 붙어."
서우는 그 말에- 팡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아예 소리내어 웃자, 머쓱해진 듯한 영재는 다시 주절거렸다.
"그럼 너는 뭐 배급 받는데? 아니, 어디 사냐. 아니아니, 그 뭐냐. 넌 뭐하냐, 말 좀 해봐. 야."
"그래, 넌 애기 하나도 안 하잖아. 어떻게 지내나 좀 까봐."
뭔가 횡설수설. 술주정뱅이들이 중얼거리는 걸 듣던 서우는 손으로 휘휘 꺼지라는 듯 제스쳐를 보내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우, 순식간에 서우는 담배를 끝까지 태워 버리고는 대충 지졌다. 그랬더니 영재가 제 여자 친구가 자기를 데리러 이쪽으로 올 것이라며 또 다시 횡설수설 하는 게 아닌가?
"쯧즈."
서우는 핸드폰을 몇 번 두드리다가 주머니에 넣고, 술주정뱅이들의 주정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술이 다 바닥날 때가 되고, 영재의 여자친구가 이쪽으로 온다고 하자 남자들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거나하게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비틀 거리긴 했지만 서우는 그런 남자들을 잡아줄 성격이 아니었다.
"빨리 나와."
비틀 거리는 녀석들을 대충 뒤에 두고, 서우는 얼른 지하에서 밖으로 빠져 나왔다. 아무래도 예민하다 보니 지하의 공기 보단 확실히 바깥의 공기가 상쾌한 것이 느껴진다. 서우는 길게 숨을 들이키고는 아직도 계단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녀석들을 그냥 잡아서 질질 끌다시피 밖으로 끌고 나왔다.
"너 힘 되게 좋아졌다?"
당연히 능력자니까, 서우는 입술을 비죽다가, 저를 맞이하러 온 차가 멀리서 오는 것을 느끼고 슬쩍 앞으로 나섰다.
"난 여기서 이만 가야겠네."
"뭐?"
그리고 이내 서우의 앞쪽에 준비된 벤츠 한 대가 섰다. 한국에서 임시적으로 지급한 차량, 일본에서 타고다니던 차보다 소박해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서우가 차로 한 발 걸어가자, 뒤에 있던 녀석들은 아직도 멍하게 서우를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럼 간다. 다음에 또 보자."
"미친 너, 차 뭐야?... 네 거야?"
"나 능력자 됐다. 좀비 사태 일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바로. 그럼 간다. 안녕."
"?!"
친구들이 더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서우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차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때, 바로 튀어 나온 사쿠라가 서우의 목을 와락 끌어 안았다.
"서우님! 어디 가셨던 거예요! 연락 안 받으셔서 놀랐어요!"
"뭐야, 저건?"
꿈뻑꿈뻑, 갑자기 튀어나온 미인 때문에 친구들은 적잖히 놀란 듯 보였다. 전형적인 일본 미인상이긴 하지만, 확실히 예쁜 여자가 갑자기 차 안에서 튀어 나오더니 서우를 와락, 끌어 안기까지 하니까. 서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사쿠라를 소개했다.
"내 여자친구.... 중에 하나야."
"뭐?"
"일본애고, 이름은 사쿠라. 마음이 토렌트처럼 넓어서 모든 걸 허용해 주고, 능력도 작살나는 여자거든? 일본에 오면 짐승[케모노]교를 찾아. 잘 대해줄 테니까."
"뭐라는 거야....? 야, 너 정말 능력자야? 네가, 진짜?!"
술이 확 깼는지 소리치는 친구들을 보며, 서우는 가볍게 와이어를 휘둘렀다. 그리고는 친구들의 놀란 표정을 보기도 전에 차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최강의 자기자랑을 한 서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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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이것저것 쿠폰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따라 주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하루입니다.
로 집사님은 제게 감동적일 정도로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시고, 녿 작가님은 표지도 만들어 주시고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밍 작가님은 제게 총질을 하시고[!]
그리고 님들은 조회수를 올려 주시고 쿠폰을 주시는군요 ㅇ0ㅇ!
님들 덕분에 저는 오늘 짱구는 못 말려 [과자] 도 먹고 국화빵[아이스크림]도 먹고 샌드위치도 방금 전에 하나 해치웠습니다. 저의 삶은 점점 윤택해지고 있습니다. 해서 오늘은 간만에 화장 좀 하고 외출했더니 엄마가 눈썹 그렇게 그리지 말라고 혼내셨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일자눈썹 하고 갔는데 엄마가 다음에 그렇게 하고 가게에 논누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짬뽕을 시켜 주셨습니다. 아이고 맛나다.
그럼! 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