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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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뭐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뭔가 가라앉아 있던 소희의 얼굴이 순간 확 일그러지더니, 이내 격하게 울그락 불그락해졌다. 기 막혀. 뭐라고 이 새끼야? 죽고 싶어? 같은 다양한 감정이 섞인 얼굴, 하지만 서우는 그것에 신경쓰지 못하고 아이의 얼굴만 쳐다 보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칭얼거리고 있었고,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킨지라 서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소희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그녀는 마른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너 되게 안 닮았네. 아쉽다. 너 닮아야 했을 텐데."

".....야."

"애 아빠 닮았나 보지?"

요즘도 성형외과가 할까? 해야 할 텐데..... 못 봐줄 얼굴은 아니지만, 저건 그냥 남자 얼굴 아닌가. 아기 때부터 저러면... 게다가 요즘 같은 어려운 때에는 남자도 물론이지만 여자는 더 살기 힘들다. 

그러니 좀 괜찮은 남자 꽉 무는 편이 좋을 텐데. 저 얼굴이라면... 커서도 글쎄, 썩 예쁠 것 같지는 않다. 의사 선생님에게 가서, 5월 8일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날 정도로 재창조되지 않으면.. 흠.

서우는 혹시 소희가 성형했나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전형적인 동양인 얼굴 상이었다. 뽀얗고, 눈은 작지만 쭉 찢어지고 턱은 갸름한 그런 얼굴. 그래서 예뻐 보이고 매력 넘치는 얼굴... 아무리 성형티가 안 나게 했다고 해도, 그 어디에도 손을 댄 성형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애 아빠를 닮았나 보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애 얼굴도 왠지 딸이라기 보다는 아들에 가까워 보이고. 아기치고는 인상도 사납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기도 하고.. 애기치고는 얼굴도 볼살 없이 날렵한 게....

"흐음...."

 여전히 아이의 얼굴을 평가하던 서우를, 소희는 빤히 보고 있었다.

"....."

그러더니 왠지 이를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것을 보고 그제야 서우는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왠지 살의 같은 느낌이랄까? 그 순간 소희는 제가 배급받은 것을 담아 들고 있던 봉투를 서우를 향해 날렸다. 

"죽어."

"!"

물론 그냥 마구 휘두른 아이 수준의 공격이니, 당연히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슬로우 모션처럼 되어 날아오는 걸 피하지 못할 리가. 그런데, 뒤에 들려오는 소희의 목소리에 무심코 손이 굳었다.

"너랑 똑같이 생겼잖아! 너 닮아서 이렇게 생겼어!"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서우는 일단 얼굴을 가격한 봉투를 받고 씩씩거리는 소희를 쳐다 보았다. 처음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나, 전에 알았던 조금 왜소하고, 얌전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탱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희 밖에 없었다. 

거기에 왠지 모르게 독기로 가득찬 것 같은 소희의 표정은 무심코 서우를 긴장하게 할 정도였다. 서우는 일단, 제 얼굴을 가격한 봉투를 잡고는 소희를 쳐다 보았...

...가만.

똑같이 생겼다고? 그 말의 의미를 서우는 그제야 깨닫고, 배급 봉투를 잡은 채 부르르 떨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한국에 왔더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숨겨진 자식이란 것은 본디 부모가 백혈병 걸렸을 때나 나타나서 아낌없이 쪽쪽 골수를 뽑아주는 용도 아니던가? 아니면 대기업 물려 받을 때.......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 놔."

생각도 잠시, 소희가 성큼성큼 다가와, 씩씩거리며 배급봉투를 날카롭게 가로챘다. 서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큼큼, 숨을 들이켰다.

"..그럼 말을 하던가. 하지."

"네 성격 내가 아는데 말하라고? 말했음 뭐 어쨌을 건데!"

"......"

그건.... 그렇다.

소희는 확실히 서우를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우의 성격, 행동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으니 말을 안 했던 것이겠지... 서우는 저를 잘 알기에 말하지 못했던 소희를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애들은 생긴 게 그게 그거니까 나이를 짐작할 수 없기는 하지만 얼추 소희와 헤어졌을 때를 떠올려 보면.... 아니, 그런 거 다 빼고서라도 일단 저 얼굴을 보면 하늘도 무심하시... 아니, 아니. 서우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낳은 후에라도 말하던가. 빼도 박도 못하게.. 내가 뭐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 그럼."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하면서도 피임은 확실하게 했던 것도 있고, 운도 좋아서 그런 사고는 없었는데... 서우는 난생 처음 부딪치는 상황에 깊은 뻘쭘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되는대로 입 밖으로 말했더니 소희가 팡! 하고 서우의 팔을 쳤다. 

"그걸 말이라고 해?! 게다가 그 후에 좀비들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넌... 어디로 갔는지도 못 찾겠고. "

"아.....어, 그러게."

"그리고 난 네가 죽은줄 알았어. 연락도 안 되고... 그리구 옛날 너희 집 있던 곳은 이제 좀비 천지라고 해서.."

....할 말이 없다. 서우는 이야기를 돌리기로 결심해서, 이제까지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어 보며, 자리를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옮겼다. 그렇게 공원의 벤치에 앉은 소희는 이제 잠들어 쌔근거리고 있는 아이의 배를 도닥여 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라에서 아기 있는 집에만 주는 배급 받아서, 그냥 살고 있었어. 대충... 별 거 없어."

"가족들은?"

"아니, 다 뿔뿔히 흩어져서.... 모르겠어. 게다가 난 원래 이모랑 살고 있었잖아."

"아, 맞다."

서우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순간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리고 소희가 안고 있는 아이.. 

한국에 돌연변이 해치우러 왔다가, 뜬금없이 애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다니? 하, 하. 하. 서우는 가만히 그 아이를 보다가 아이를 도닥이는 소희를 보았다. 여자 혼자, 아이까지 데리고 살기에 서울은 만만치 않다.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이겠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밑 사람들의 등골을 빨아 먹으며 살겠지만 아마 소희와 아이는.....

만약 여기서 그냥 이 둘을 쌩까고 가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데나 싸지르고 간 새끼로 전직하는 거지, 뭐. 서우는 머리를 가볍게 헝크러 뜨리다가 다시 소희를 쳐다 보았다. 머릿속에서 뭔가 어지럽게 두 가지가 섞이고 있었다.

소희의 첫 남자는 서우였다. 그런데 그런 여자한테 애까지 덜컥 임신시켜 놓고 몇 년간 애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좀, 이건... 이건 뭐? 와 씨발, 어떡하지. 돌겠다.'

소희에게 못 해주었던 것, 심지어 처음이었던 소희를 저 꼴린다고 하고 싶은대로 해 버렸던 점이나 그외 수 많은 죄[?]들이 서우의 위로 우르르르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책임은 아무래도 무리......

무리는 개뿔.

실질적으로 서우는 짐승, 케모노 교의 교주다. 사쿠라의 지원과 그리고 유우리를 조교 했을 때, 그곳에 참여했던 고위 신도들은 서우에게 광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즉, 그들 또한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 그냥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여자 하나 더 책임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였다. 고위 신도들은 대부분 일본내에서 꽤나 힘이 있거나, 자본이 있는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지금도 충분히 많기는 한데, 어떻게 이렇게 많아진 거지? 하하하. 하하하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여자들이 쌓여 버렸어요! 도 아니고... 서우는 끙끙 거리다가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소희는 그것을 서우가 가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우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손에서 와이어를 쭉 뻗었다. 어두운 거리였지만, 한손으로 킨 라이터의 불빛으로 와이어를 쭉- 뽑아내자, 소희는 놀라서 아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하지만 겨우 잡으면서 멍하니 서우를 쳐다 보자, 서우는 방금 전까지 둘이 앉아 있던 낡은 의자를 가볍게 잘라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100년 장미칼 같은 절삭력에 소희는 서우와 의자를 번갈아 보다가, 덜덜 떨면서 입을 열었다.

"너.. 능력자였어?"

"능력자야. 그리고 내내 일본에 있었어."

"...아........"

능력자- 그 말의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알기에 소희는 부르르 떨면서, 아이를 꼭 끌어 안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서우는 이내 천천히 그 다음을 이었다.

"나 한국 올 때도 여자 데리고 왔어."

"뭐어?"

"일본에 가면, 그러니까.... 같이 있는 여자 더 많아. 그리고 끌리는 여자애도 하나 있고. 그래서 너한테 별로 신경 못 써줄지도 몰라."

그게 얼추 열 명 정도 된다는 사실, 거기에 어쩌다 보니 어린애도 끼어 있다는 사실을 서우는 말하지 않았다. 소희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했다. 서우는 소희의 표정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상관 없으면 나랑 같이 일본 가자, 그럼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살지는 않게 해줄 수 있어." 

서우는 한 구석에 있는 소희의 배급봉투를 보았다. 방부제 범벅의 음식들, 어린 아이가 먹을만한 것은 도저히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는 계속 돌보아야 할 테니,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기도 힘들 것이다. 일한다고 해도 둘에게 고생길이 활짝 열려 있겠지. 서우는 부러 냉정하게 말했다.

"

"그게 싫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니까."

"......."

한국에 있어봣자 재미 있는 일은 없다. 정부는 끈덕지게 달라 붙을 테고, 그러면 귀찮은 일만 생기겠지. 사실 일본으로 간 이유는 어느 정도 정부가 귀찮게 달라 붙은 일 때문인 것도 있었다. 지금도 돌연변이 때문에 잠깐 온 것일 뿐,  거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괜히 오래 있다가 뒤통수 거하게 맞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소희가 수락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서우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뭐 한국 정부에 어떻게 말해서 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날 잡지 마, 내가 왜 미쳤다고 두 번 군대요?

- 라고 단칼에 제의를 거절하자, 곧바로 달콤한 미끼를 싹 치우고 서우도 모르던 그 아버지의 소재를 파악해 협박하지 않았던가? 난 모르겠으니 죽이라고 말하자 조용해졌지만,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이 둘을 미끼로 잡고 죽일 테니 서우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이나 해댈 것이 분명했다. 

고로 따라오지 않겠다면 서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해줄 수 있는 것을 해 주겠다고 했는데 받지 않겠다면 뭐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에 남아서 한국 능력자로 살라고? 저를 이용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녀석들 밑에서 빌빌 기면서, 그 밑에서? 미안하지만 그건 절대로 사양이다. 아니,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길들여지는 야수가 있고,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가 있다. 서우는 후자였다.

여자든, 자식이든 그게 저를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을 서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소희는?

"어떻게 할래?"

서우는 물어 보고 나서 아이의 얼굴을 흘긋 내려다 보았다.

..하늘은 왜 제 딸을 사내 아이로 만들어 놓으셨단 말인가?

서우는 아기의 얼굴을 보며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좋은 올챙이들끼리 싸우다가 찌그러진 올챙이가 간 게 불시착한 게 아닐까.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

============================ 작품 후기 ============================

아버지랑 오늘 마트에 갔는데요, 거기서 이마트 피자를 사 왔습니다.

..몰래 먹으려고 했는데 피자 새벽에 쳐묵쳐묵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마트 피자는 먹고 나면 왠지 모르게 토한 후에 목에 토의 잔재[?]가 남았을 때의 맛이 혀끝에서 느껴지는데요. 아무튼 피자는 피자. 가족들 다 자면 새벽에 몰래 먹으려고 했는데....! 

젠장! 역시 아버지, 저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불고기 피자... 큽..! 그러니 저는 내일 아침에 녀석을 먹어야 합니다. 아침으로 녀석을 먹겠습니다. 거대한 한 조각 따윈 저의 한 끼 식사죠. 그런데 아버지가 오늘 얼떨결에 화장품을 사주셨습니다. 당근 파우더인데요. 당근 냄새가 납니다. 킁킁킁킁.

선추코쿠 감사합니다. 쿠폰 주실 때 바뀌는 작가의 말을 바꿔 보았습니다. 지금 4kb 썼는데 후기부터 쓰고 있습니다. 현재 오후 10시 54분..! 하하하하.

+)프린세스 메이커를 시작해 주신 녿님, 유지를 이어 받아ㅋㅋㅋㅋ 이것저것 신경 써 주시는 로로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절 생각해 주시고 배려심 많은 분들이 옆에 계셔서, 투베에 오른 것보다 몇 배는 더 기쁩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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