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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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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서우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런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능력자인 서우를 선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엇다.
그래서 서우는 소희와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정부에서 지정해준 건물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대체 어디서 문제였던가.... 그러다가 떠오른 것은, 헤어지기 2주 전의 관계였다. 둘 다 술에 좀 취해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평소처럼 피임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날 밖에는 떠오르는 날이 없었다. 아무래도 늦었다. 늦었지.... 그래. 술을 그렇게 잔뜩 먹고 해 버려서 그런 좋지 않은 올챙이가...!
"....아, 이제 그 생각은 그만하자."
서우는 후우- 한숨을 쉬고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제 방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마자..
"서우님! 오셨군요! 기다렸습니다아아아아아!"
"아, 사쿠라 씨.... 엇!"
"흐앙, 서우님~"
서우가 방으로 돌아오자 좋다고, 그 품에 와락 안긴 사쿠라는 나무늘보마냥 서우의 몸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갈 때까지 간 후부터 사쿠라의 스킨쉽은 상당히 적극적이 되었는데, 그것의 일환이 바로 이것이었다. 허벅지와 종아리로 서우의 허리를 꽉 조이면서 고양이처럼 얼굴을 부볐다. 서우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미 목욕도 마친 것 같았다.
"어디 갔다 이제 오셨어요! 보고 싶었어요, 기다렸어요오."
"음, 어. 그게..... 사쿠라 씨, 할 말이 있는...."
"우웅, 하실 말씀이요? 후힛."
"큽."
유혹하기로 결심했는지 사쿠라가 서우의 아랫도리에 제 아래를 부비기 시작했다. 옷 너머로 느껴지지만 부드러운 속옷의 느낌에 머리가 어질해졌다. 일단 하고 나서 말... 아니, 아니지. 서우는 사쿠라를 제 몸에서 떼내어 침대 위에 앉혔다. 그제야 서우가 꺼낼 말이 평범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사쿠라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 무슨 말씀이신데요?"
"그게.....어, 으음."
서우는 망설이다가, 망설여 봤자 뭐하나 그냥 말하자고 결심했다. 애가 있소, 전 여친이 낳았다오.
"에엣..?! 서우님의 아이요......?"
"어, 그게.. 전 몰랐는데, 옛날 여자친구가.. 낳았다고 하더라구요. 나이는 다섯 살 정도인데.."
"아, 아아......"
"사쿠라 씨?"
"서우님의... 아, 아이라니..."
토렌트 같은 사쿠라라고 하여도 서우의 아이라는 말은 조금 충격이었는지, 부르르- 사쿠라는 몸을 떨면서 구석에 쳐박혔다. 그러면서 '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이라니...' 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츠부미를 데리고 왔을 때 아이가 서우의 애라고 생각하고 충격에 빠졌다가, 아니라고 하니 그제야 기뻐하지 않았던가.
아이라는 문제에는 조금 예민한 것 같았다. 하긴, 다른 여자의 존재만 해도 민감해야 하는데, 사쿠라 정도면...
'아직도 저러고 있네...'
사쿠라가 있는 곳만 보랏빛이 된 것 같고, 버섯도 스물스물 자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잠시 후에 서우는 멋쩍게 머리를 긁다가 몇 시간 내내 계속 구석에 쳐 박혀 있던 사쿠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름대로 부드럽게 사쿠라의 어깨를 감싸고, 좀 다독여 주려 했더니....... 자고 있었다.
"......."
"쿠우......"
서우는 왠지 모를 허탈감에 쿨쿨, 곤히 자고 있는 사쿠라를 그대로 침대 위에 자빠뜨렸다.
"꺄학?! 서우님! 왜.. 왜왜... 왜 그러세요!"
몰라, 나도 모른다고. 서우는 사쿠라의 반항 아닌 반항은 간단하게 무시하며, 그녀가 입고 있던 속이 비치는 얇은 슬립 안으로 손을 쑥, 집어 넣었다.
"흐, 흐아아악?!"
...그렇게 폭풍 같은 밤을 보낸 다음 날, 소희를 사쿠라와 몰래 만나게 했을 때였다. 소희에게 이미 정부의 협박이나 납치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한국에서 떠날 때 같이 떠나자고 미리 언질을 해 두었다. 해서 일단은 비밀스레 사쿠라를 만나게 했다.
사쿠라는 약간은 우울해 하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그래도 얼굴을 보겠다며 서우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사쿠라는 소희의 품에 여전히 안겨 있는 아이, 서영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나 놀랐는지 입도 함께 벌어져, 서우와 소희는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사쿠라는 몸을 달달달 떨면서 서우를 덥석 잡았다.
"!"
"세, 세상에."
"...서, 서우님을 닮았어요. 세상에, 어린 것 같은데 서우님을 저, 저저저.. 저렇게."
"사쿠라 씨."
사쿠라는 그 특유의 모션,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자리에서 뛰기 시작했다. 사쿠라와 소희의 미묘한 사이라는 것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서영을 안고 이리저리 뛸 것 같다고 할까.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사쿠라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서우를 올려다 보았다. 두 눈에 좋아, 죽겠다. 가 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완전 멋져요, 대단해요! 어쩜 저렇게..... 너무 잘생겼네요..! 왜, 왠지 이 아이라면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
"아아아, 서우님을 똑 닮았어요! 정말 애가 이 정도인데 커서는 어떨까요! 으핫, 기대 돼! 사쿠라는 온 힘을 다해서 서우님이랑, 작은 서우님을 보필할게요! 후아앗!"
"지금 저 사람, 뭐라고 하는 거야...? 서영이를 좋아하는 거야?"
"어, 으응. 서영이가 좋아 죽겠다고 하네."
서우는 멋쩍게 두 여자, 정확히는 세 여자 사이에서 머리를 긁다가 두근두근 거린다는 듯이 헉헉 거리고 있는 사쿠라의 어깨를 지그시 잡았다.
"사쿠라 씨."
"네!"
"..저 애의 이름은 서영이라고 하는데요."
"서, 서요웅? 어려운 이름이네요! 하지만 그래도 좋아! 제대로 발음하도록 노력할게요!"
역시 잘 따라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서영이는 딸이에요. 딸. 여자라구요."
"....예?"
"여자예요. 저래뵈도....여. 자."
여. 자. 발음에 힘을 주자, 사쿠라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서영을 쳐다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우는 다시금 가만히 사쿠라의 어깨를 잡았고, 눈치 빠른 소희는 그것을 깨닫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어어?! 지금 서영이 이야기 하는 거지! 서영이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거짓말! 나도 일본어 조금 알거든?! 방금 여자여자 거렸잖아!"
"......."
애가 남자 같이 생긴 건 인정하는 게 어때? 서우가 푹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다시 소희가 서우에게 쏘아 붙히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이제까지 이러저러 힘든 일이 많았는지, 상당히 거칠어진 소희는 분노의 샤우팅을 시전했다. 귀가 좋아진 나머지 서우의 귀에는 더 크게 들려서, 무심코 가볍게 귀를 막으려는 순간
".....엄마."
"어?"
"나 졸려."
아이가 애교 부리듯 엄마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그 '엄마'는 시끄러워. 를 다르게 말한 것만 같았다. 무심코 세 명이 입을 다물자, 아이는 다시 눈을 감았고 서우는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저 아래에 커다란 바벨탑이 없을 뿐, 생긴 것도 성격도 딱 서우 자신이었다.
정말인지 친자검사 따윈 필요 없는... 그런..... 어쨌든 그 덕에 분위기가 진정되자, 사쿠라는 다시금 마음을 가라 앉히고는 말했다.
"사쿠라는 서우님의 딸이 여자라도 좋아요. 히힛.."
딸이니까 여자인 게 당연한 거잖아...?
...그래도 뭐, 다행인가. 의외로 쉽게 넘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우는 어깨를 들썩였다. 일본에서의 일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적어도 나름대로 리더급인 사쿠라가 넘어갔으니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실질적 리더인 유리가 조금 걱정 되긴 하는데.. 저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하반신을 떼어가고 싶어하는 쿨한 여자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서우가 생각한 여자들의 계급표는 대략 이러했다.
[실세] 유리-> 사쿠라-> 그외는 비슷-> 유우리 같다고 할까? 츠부미는 논외. 이런 느낌. 그러니 리더급인 사쿠라가 어느 정도 넘어갔다면 다른 여자들도 스물스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수도 있었다. 애초에.. 뭐 많기도 하고, 서우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세 여자들을 보았다.
그렇게 한국에서 다사다난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그디어 돌연변이가 지상으로 나왔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적어도 3일은 다시 들어가지 않으니, 그 전에 잡자는 이야기인데... 서우는 연락을 받고 집합 장소로 향했다. 모든 능력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1위 능력자인 한주원, 2위 능력자인 이주희 3위 능력자인 독고 진 4위 능력자인 김성희. 실제로는 1위에 거의 비슷한 수준의 2위지만 딱히 관심없는 최서우. 실질적인 리더는 원래부터 군인이었던 독고 진이라고 하는 것까지 김미영 팀장에게 들으면서 서우는 전화를 끊었다.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궁금하다. 서우는 모이는 장소인 이 건물의 최상층으로 올라가면서 나름대로 설레이는 마음을 붙잡았다. 이미 두 명 정도는 먼저 온 것 같다. 잠시 마실을 나갔다가 돌아오며 엘레베이터에 오르고는 서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약속 시간은 20분 정도 남았다. 나머지 둘은 아직인 것 같고....... 어떤 얼굴일까, 궁금하다.
한 명은 김성희, 그럼 한 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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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우의 딸은 마성의 레즈가 되어, 서우에 이어 서우 주변의 여자들을 후리기 시작하는데....
차기작, 짐승의 딸. 기대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