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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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딸

“안녕하세요.”

“..어, 그래.”

제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지만 당연히 부자, 아니 부녀관계는 지극히도 어색했다. 애초에 서영은 아버지가 없는 게 당연했고 서우는 서영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떡 하니 만나 버렸고, 생긴 건 그냥 제 얼굴과 똑같이 생겨서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으니..

“......”

서우는 저와 똑같이 삐죽, 위로 올라간 눈썹을 한 서영을 내려다 보았다.

그나저나 얘가 시방 왜 여기 있다냐, 서우는 서영을 내려다 보며 허, 허 웃었다. 지금 도쿄가 얼마나 위험한데.. 다른 나라도 다른 나라지만 일본도 착실하게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범람하는 종교들이 그러했고, 범죄자들의 탈주 난민들의 이동으로 인해 멀쩡한 도시들은 다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범죄는 성행하고 있고, 제 주변만 조용할 뿐 곳곳은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사쿠라도 언젠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이대로 가다가 일본은 10년도 채 안 되어 정부가 무너지고 새 정부  혹은 파벌이 생기거나, 아니면 무정부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런데, 일본인도 아니고 말 한 마디 안 되는 애가 왜 여기까지 나왔단 말인가? 서우는 한숨을 푹 쉬며 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너 말이야. 남자애가 위험하게 밖...”

“네?”

“아, 음. 아니, 여자애가 위험하게 밖을 막 싸 돌아 다니는 게 아니야. 도쿄가 얼마나 위험한데... 넌 모르겠지만.”

게다가 제 허벅지의 반까지도 못 오는 애가, 제 얼굴을 올려다 보려면 뒤통수가 목 뒤에 닿도록 얼굴을 들어야 하는 애가 어딜 성진국의 한복판을 싸돌아 다닌다는 말인가. 

자세히 보니 서영의 주변에서 괜히 잡놈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이, 서우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이가 핸드폰만 들고 있지 않았어도 그냥 확 집어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서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위험해요?”

"엄청 위험해."

"왜요..?"

“일본은 소설속의 여자아이들한테도 가차 없는 동네거든. 다음부턴 절대로 혼자 다니지.. 아니, 그냥 나오지를 마. 웬만하면.”

“.....”

서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히 이해를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서우는 그냥 덥석 아이의 마른 팔을 잡았다.

“그나저나 소희가 너 혼자 보냈을 리는 없고 혼자 나왔어?”

“아니요, 그 모모 언니랑 같이 나왔는데요. 언니는 잊어 버렸고 저장 되어 있는 번호는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서 아무한테나 전화 걸었는데..”

“네 앞에 있던 내가 받았다?”

“그런 거죠.”

뭐 그런 우연이. 그래도 차라리 제가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납치라도 되었다가  '내 딸만 돌려주면 된다, 그러면 너를 찾지도, 너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너를 죽일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테이크의 속편을 찍는 귀찮은 일은 사양이었기에.

"...그런데, 너 일본말 못하지 않아? 어떻게 둘이 나온 거야?“

“모모 언니는 가이드였대요. 그래서 말 잘하시던데요. 음. 그리고 엄마도, 여기 말 하실 줄 안다고 했어요.”

“그래?”

뜬금없지만 뭐 그렇게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우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아무튼 이만 가자, 모모한테는 내가 전화할게.”

“네.”

아이가 느린 걸음으로 서우를 쫒아오기 시작했다. 제 발의 보폭은 넓고 아이는 그 3분의 1도 되지 않으니 당연히 걸음은 느렸다. 서우는 그냥 옆에 끼고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아이를 한 손에 번쩍 들었다.

“우왓.”

“꽉 잡고 있어.”

고개를 끄덕인 서영이 서우의 한쪽 어깨를 잡았다. 어찌나 작고 가벼운지 드는 느낌도 나지 않을 지경이어서 서우는 태연하게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아, 여보세요. 모모 씨?”

‘서, 서우.. 으허응. 큰일나, 났어요. 허어엉. 흐엉.. 저, 저어어어.. 지금 여기가..’ 

“아니 아니 사과부터 하지 말고요.”

예상대로, 수화기 저편에서 크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서우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네, 네. 서영이는 지금 데리고 있으니까 먼저 그냥 들어가세요. 그래요. 나중에 봐요.”

예상대로이긴 했지만 그렇게 울고 있을 줄이야. 그 우는 얼굴이 왠지 잠자리에서의 얼굴과 묘하게 합성이 되어, 영상 지원이 되는 기분이였다. 서우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서 뚜벅뚜벅, 다시 교단의 빌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걷고 있었을까. 서우가 멀리도 왔군.. 그리 생각할 즈음에 서영이 저어. 하고 입을 열었다.

“왜?”

“엄마가 기운이 없어요.”

“..........”

기운이 없다라, 뭐 예상가는 것은 여러 가지였다. 저 때문이던지, 아니면 일본 환경이 적응이 안 되던지. 둘 다일 수도 있고... 하지만 어린 아이는 다르다. 아이는 적응력이 강하고, 한창 말을 배울 시기니까 일본어도 금방 배울 수 있겠지. 

하지만 소희는 다를 것이다. 서우는 소희를 그닥 사랑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그냥 미안한 마음이나.. 책임져야 할 느낌, 그리고 살 부대끼고 산 것 덕분에 남은 정들. 뭐 이것저것 잡다하게 섞인 느낌이라고 할까. 

끌리는 것은 에리였고, 에리를 제외한다면 소라나 아키오에게 마음이 더 갔다. 거기에도 수 많은 여자들이 있어서.. 솔직히 소희에게 마음 써줄 여력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까지 각오하고 온 것 아니던가. 그리고 한국과는 다르게 이제는 적어도 제 옆에 있다면 굶주리거나, 좀비에게 살해당하거나 나쁜 일을 당할 염려는 없다. 

소희도 그것을 알기에, 서영을 위해 따라온 것일 테고... 

서우는 슬쩍 시선을 내렸다. 정말 제 눈과 똑같은 그것이 저를 빤히 올려다 보고 있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왜?”

“그, 유리 언니가 말해주던데요.”

..유리가 말해줬다고? 그렇다면 유리와는 어느 정도 친해졌다는 이야기니까, 이곳엔 꽤나 익숙해졌다는 것이고, 분명 저와 관련된 일.....

‘그나저나, 유리는 여자들 사이에서 실질적으로 제일 서열이 높았지...’

그런데 여자들과도 다 친하다니, 남자도 좋아하지만 여자인 모모를 제 첩[?]으로 두고 있을만큼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왕성한 잡식력을 가진 유리.. 예전엔 자신마저 잡아 먹을 것 같았던 유리.. NTR의 위험성이 있으니 언제 한 번 제대로 우위에 설 필요가 있었다. 물론 침대에서의 힘으로.

잠시 생각하던 서우는 일단 서영의 말을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끙 끄응 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뭐라고 했지. 모모 언니가 번역해 줬는데요.”

“.....?”

“그러니까 한 번 해 주라고.... 네, 한 번 신나게 해 주면 금방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하시던데요.”

“.......”

한 번 해 주라니, 신나게 해 주라니.

"하...하하. 아하하하하."

정말인지 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군, 역시 미시의 제왕인 유리답다고 생각하며 서우는 저도 모르게 동그래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서영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뭐가.”

“한 번 해 주라는 말이요. 뭔지는 몰라도 한 번 해 주시면 안 돼요?”

“애야, 그러니까 그 말은 그렇게 쉽게 해선 안 돼.”

“왜요? 그냥 한 번 해 주세요. 엄마 저렇게 기운도 없으신데 한 번도 못해 주세요? 그냥 한 번인데...?”

“아니,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러니까.”

“해 주세요, 한 번 하는 거 가지고... 네? 해 주세요, 빨리요.”

“그러니까 한 번 한 번 거리지 마!”

“어째서! 치사해..!”

“네가 생각하는 거랑은... 다르니까 그렇지. 어휴, 유리 씨. 젠장...”

무심코 언성을 높인 서우는 손등으로 눈앞을 가렸다. 역시 제 딸 답게 이상한 부분에서 저를 괴롭힌다. 생긴 것도 유전자 검사는 다른 곳에 팔아 먹어도 될 정도로 생겨 가지고... 서우는 일단 서영을 말없이 끌고 왔다. 

‘이래서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는 건가....’

이 정도로 판박이라니. 서우는 제 어깨를 어색하게 잡고 입술을 아래로 쭉 내리는 서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왠지 츠부미가 생각나는 것이... 아 왜 하필 그 시점에 들어와서는, 마치 부모님이 신명나게 DNA 파티를 열 때, 막 방문을 열고 ‘엄마 아빠 나 잠이 안 와..’ 라고 하면서 문을 삐걱- 하고 열고 들어오는 것 아니던가. 

다른 여자가 보았다면 같이 하자고 드립이라도 치던가, 오히려 더 좋다고 했겠지만 츠부미가 보았으니 썩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냥 츠부미가 잊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서우는 아직까지 입술을 쭉 밑으로 내리고 심통이 나 있는 서영을 내려다 보았다. 

“흥.”

정말인지 애는 애다. 그래 뭐, 대충 말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서우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할게’ 라고 말하자 서영이 반색하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요?”

“..그래, 정말.”

“언제요? 언제! 엄마한테 말씀드릴게요!”

“.....음..”

언제가 좋을까나, 빌딩에 도착한 서우는 일단 서영을 소희가 있는 층에 내려주려 엘리베이터 안에 타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겠다. 문이 열리고 서영이 내리게 되었을 때 서우는 ‘오늘’ 이라고 대답했다.

“꼭이에요, 꼭! 몇 시에요?! 지금이 여섯 시인데!”

“..하, 한... 열 시쯤....?”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나 저러는 건지, 하지만 그래도 어린애 같은 느낌이 있어 좋다고 생각하며 서우가 엘리베이터 최상층의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그럼 저는 오늘 모모 언니 방에 가서 잘게요.”

“....?!”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고 몰래 모모 언니 방에 가면 되겠다, 히히.”

“야, 잠깐... 너!”

"안녕~"

서우가 기겁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은 닫혀 버렸다.

*

============================ 작품 후기 ============================

*

왜 얀데레를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대체 왜죠.

얀데레의 기본은 밥도 차려주고, [맛있는 걸로] 게다가 대부분 초인적 능력을 가진 여자에다가 주인공이 뭐 해달라고 하면 다 해 주는데, 왜 그런 여자를 싫어하죠! 서로 마음만 맞으면 얀데레만큼 편한 것이 없습니다. 후후, 한 놈만 걸리면 역으로 시종처럼 사용하고 싶은 나무늘보 같은 자베트였습니다.

아무튼 이번 편은 지나가는 단편 에피소드인 짐승의 딸입니다.

헤..............헤헤. 헤헤헤헤헤헤헤헤.

+)오늘 이마트에 갔는데, 눈이 조금 몰렸지만 심각하게 귀여운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절 보면서 안녕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초췌하지만 않고 평소처럼 좀 꾸미고 나갔다면, 주머니에 뭐라도 있었다면 쥐어주었을 텐데! 행색이 심하게 초췌하여 아이를 더 보고 있었다간 납치범으로 오인 받을 것 같아 그냥 스치고 말았습니다. 끄으응 귀여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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